문장웹진(7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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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장웹진 > 문장웹진 > 커버스토리 1월호 <문학과 일> 기획의 말
기획의 말 2018년 커버스토리는 <문학과 일>입니다. 문학 작품에 대한 감상을 이미지로 다시 되새기는 작업 속에서 폭넓은 독자층과 소통할 수 있기를 기대합니다.<문학과 일> 기획의 말 양 윤 의 2018년 커버스토리는 <문학과 일>입니다. 문학 작품 속에 등장하는 일(혹은 직업)에 대해 말할 때, 저는 언제나 필기노동자 바틀비의 ‘일’이 떠오릅니다. 다음은 허먼 멜빌의 『필경사 바틀비』(김훈 역, 현대문학, 2015)에 나오는 한 장면입니다. “처음에 바틀비는 엄청난 양의 필사를 했다. 그는 마치 뭔가 필사한 것에 오랫동안 굶주린 사람처럼 내 문서를 닥치는 대로 먹어치우듯 했다. 소화를 위해서 쉬지도 않았다. 그는 밤낮을 가리지 않고 일하면서 낮에는 햇빛으로 밤에는 촛불을 켜고 필사를 했다. 만약 그가 즐겁게 일하기만 했다면 나는 그의 근면을 상당히 기뻐했을 것이다. 그러나 그는 말없이, 창백하게, 기계적으로 필사를 계속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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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장웹진 > 문장웹진 > 소설 [기획소설_HOTEL⑥] 민달팽이
[기획소설_HㆍOㆍTㆍEㆍL ⑥] 민달팽이 김혜나 기름 냄새. 유화油畵는 완성된 그림에 물감이 다 굳은 뒤에도 기름 냄새를 숨기지 못했다. 기름을 원료로 한 물감이 덩어리진 채 말라붙은 그림은 그래서 더욱 위태로워 보였다. 마치 죽은 자의 몸처럼 차갑고 단단하게 굳어 있는 모습, 그러나 가까이 다가가 보면 굳은 상태에서도 훅 피어나는 냄새와 같았다. 사랑하는 사람과 만날 때면 언제나 똑같은 향수만 뿌리고 나간다는 친구를 본 적이 있다. 언젠가 연인과 헤어져 서로 다른 사람을 만나게 되어도 과거의 연인에게서 맡았던 향수 냄새를 맡으면 그 기억이 되살아나는 까닭이라고 했다. 그렇게까지 해서 타인에게 자신이 기억되기를 바라는 인간의 미련과 집착이 때때로 두렵게 다가왔다. 닭고기나 새우, 오징어, 야채 등속을 튀기는 기름 냄새에는 침이 고이기도 하지만, 유화 물감 냄새는 머리를 지끈거리게 만들었다. 후각보다는 촉각과 육감으로 다가오는 냄새. 그런데 왜 하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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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장웹진 > 문장웹진 > 소설 [기획소설_HOTEL⑤] 해피아워
[기획소설_HㆍOㆍTㆍEㆍL ⑤] 해피 아워 서진 이상하다. 여기가 하와이가 맞나? 하늘이 파랗고 바다는 바닥이 보일 정도로 투명하다. 야자수가 길에 죽 늘어서 있고 거대한 나무도 봤다. 내가 기대한 건 이런 게 아니다. 하와이에 오면 세상이 달라져 보일 거라고 기대했다. 그런데 내가 보고 있는 건 풍광 좋은 영화나 티브이의 여행 프로그램이 아니라 리얼한 세상인 것이다. 배경 음악도 없이, 별일도 일어나지 않는, 그런 세상. 선글라스를 벗고 뿔테 안경을 낀다. 눈물이 날 정도로 눈부시다. 등이 벌겋게 달아오른 남자는 온통 시선이 물가에서 노는 딸아이에게 고정되어 있다. 아이는 플라스틱 삽으로 모래를 퍼낸다. 파도가 밀려와 구멍을 메우는데도 삽질을 계속한다. 나풀거리는 원피스와 검은 타이즈를 입은 여자 둘은 사진 찍기에 여념이 없다. 일본인처럼 보인다. 금발의 중년 부부는 한 마디 말도 나누지 않고 책에 시선을 고정시키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