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래진행
- 작성일 2018-11-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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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래진행
최백규
거리의 흰 여름은 해변 끝에서 밀려왔다 쓸려가고
지구가 있다
무사히 열대를 건축할 때마다 게스트하우스에 칠해져 바닷물만 나누어 먹는 미성년들 하나의
우리는 열사병이다
이국의 해수욕장에서 죽음을 연습하고
낯선 중앙선을 따라 교복의 맥박으로 휘청거리다 헤드라이트에 머리카락 적셔지듯 끝나지 않을 방학이다
이곳이 장마
신기루로 푸릇하면 인생에서 무중력만 골라 아름다울 수 있다
우주가 돌아서 슬프다
늙어도 힙합이나 아이돌을 좋아할 수 있을까 미래학자는 영원히 미래학자인가
더 이상 추하고 싶지 않아서 환각을 터뜨리다가 그루피 혹은 히치하이커로 익사할 수 있을 것이다
파도를 참는 표정과 몸짓의 사생아들을 가장 먼 행성으로 놓칠 때
아무것도 이해하지 못한 척했다 어린 묘지들로부터 달려가며 파열하는 국경에서
섬망하다가
거리의 아름다움은 거리에 있다 너와 나를 죽이는 절정에 세상은 실패했다
불을 끄고 손목을 놓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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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요일일요일 최백규 책상에 죽은 화초가 있다 여전히 곧고 조금 붉다 이 진료실은 환기가 잘 되지 않는다 숨으로 가득 찬 방에서 의사는 늑골 아래를 누르며 아픈지 묻고 처방전을 쓰고 이대로 살아서는 안 된다 말한다 약봉지를 들고 거리에 서면 생경한 기분이 든다 먼지마저 움직이는데 도대체 언제까지 혼자서 잠을 설치고 식사를 거르고 그 여름을 뒤돌아보다가 웃을 수 있을지 버스 창을 열어 두고 바람을 맞는다 턱을 괴고 무언가 적거나 긴 전화를 한다 몇 마디 안부를 나누고 한참 고개를 끄덕인다 광화문 광장이 우는 사람들로 가득해 멀리 돌아서 온다 부엌에서 도마에 새겨진 칼자국 위로 선명하게 햇빛이 머물고 있다
- 2022-06-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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졸업졸업 최백규 까닭 없이 피가 돌아 소란스럽다 쓰러진 나무가 몸을 씻고 있다 지난밤의 살냄새를 더듬으며 집 앞을 서성이다 무언가 이상하다는 생각이 든다 손 틈 사이 새어 들어오는 햇볕이 머뭇거린다 머리를 말리고서 옥탑 위를 지나는 구름이 시들해질 때까지 찬 국수를 말아 먹는다 아직 온기가 남아 있다 벗어 놓은 옷에 화창한 날 카메라 앞에서 짓던 웃음이 바래는 것처럼 십 년 만의 큰 장마가 지는 동안 십 년 전의 한나절을 되감는다 돌아보니 아무도 없다 빗소리를 들었는데 창 바깥에서 빈 나뭇가지만 흔들리고 있다 홀로 온 새가 울고 가듯이 또다시 꽃은 쉽게도 지고
- 2022-05-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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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시착불시착 최백규 활주로 끝에 소년이 서 있다 그어버릴게 번지듯 퍼뜨려지자 우리는 영원하지 않을 거야 우리 없이 살아갈 사람들에게 둘러싸여 죽어갈 거야 시동을 걸자 걷다가 질주하자 손을 흔들며 위험한 것을 소리치면서 꿈에서 친구를 죽이고 자퇴하겠다는 여자 친구를 달래다가 머리를 넘긴 채 식물원과 미술관을 걷는다 손차양을 한 아이의 뒤통수를 쓰다듬고 있자면 몇 백 년 전 당신과 이곳에 다녀간 내가 가지런히 덮을 옷을 지어 살고 있다 대공원과 경복궁에 나비가 있다는데 꽃밖에 보이지 않고 여름을 밟는 걸음이 곱다 이 순간을 위해서 그렇게도 많은 친구들의 무덤이 필요했던 거구나 현관에 머무르면 이 집에는 미열이 없고 마른 욕실이 있다 멀거니 걸어도 깨진 적 없는 당신의 무릎을 안으며 흰 발을 만져 주던 일이 오래다 그런 삶 아무도 우리를 해치지 않는 국경을 허물어 폭설 속에서 한없이 연착되고 싶었다 평일 내내 손등으로 떨어지는 찬물을 맞으며 그릇만 씻었다 서걱거리는 우유를 시리얼에 붓고 종이 위에 그려진 얼음을 흰 손수건으로 훔치기도 하며 마룻바닥을 쓸다가 발목에 혈관이 뛰어 징그러워 잘 봐둬 나중엔 뛰고 싶어도 못 뛸 때가 온다 늙은 개를 오래 발음하듯이 살이 나간 선잠을 접던 당신과 휴일의 숙소는 아무렇게나 벗어 놓은 백사장 같다 헐거워진 몸에서 나도 모르게 떠내려가면 어떻게 하나 악력이 희미해지는 계절이 와도 여전히 손을 잡고 있을까 아무 걱정 없이 석양에 물든 아이들이 철길 건너로 달아나는데 전선 위 늘어선 새 떼 맑은 죽이 끓어 넘친다 몇 년 후에 다시 사랑하자 했을 때 다음 생에도 이미 폐허라는 걸 알았다 꽃을 먹고 죽으면 나비로 태어난다는 미신을 믿었다 오래된 착륙이었다
- 2018-11-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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