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장웹진(1,06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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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 장이지 고백이란 제도에 어서 오세요. 여기서는 진실만을 말하세요. 그리고 잊지 마세요. 마지막엔 강물 위로 비어 있는 죽음을 띄우는 것을. 이를테면 죽은 채로 되돌아오는 아도니스 인형을, 시체의 의식을. 눈물의 유속(流速)을 계산하는 걸 잊지 마세요. 고백이란 회사에 어서 오세요. 연분홍 치마에 어서 오세요. ‘문학소녀가 이렇게 예쁠 리 없어’에 어서 오세요. ‘알바 하는 문단 아이돌’에 어서 오세요. 시와 음악이 있는 문학콘서트에 어서 오세요. 시를 사랑하는 모임의 육담(肉談)에 어서 오세요. ‘기교 시인은 상처 받지 않고…….’ ‘언제나 이 고비를 넘어가는 법의 사각을 알고…….’ 회사에서 배양되는 시체들이 멋진 냄새를 풍기고 있어요. 그래도 시인 되자고 시를 배우지는 마세요. 꿈을 짓밟히면서까지 참지 마세요. 블랙회사는 연필을 깎게 하면서 희망고문을 하지만 시인이 안 되어도 우린 슬픔을 쓸 수 있어요. * 이창동의 2009년 영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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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 김성태 아가미처럼 눈 뻐끔거리는 밤 불 꺼진 창문마다 저수지 같다 나는 빈 집을 낚시 한다 노래하는 어부로 유리창에 달라붙어 닫힌 창문 너머로 머리카락을 던진다 컴컴한 창에 불이 켜질 때까지 고래 몸집만한 사람 한 마리 출렁거리며 내 쪽으로 건너올 때까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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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장웹진 > 문장웹진 > 소설 죽음의 시
일곱 시 오십 분에서 여덟 시 사이에 뭘 하셨습니까? 잠잤나요?” “아, 그때, 피디에이가 십 분간 쉬라고 해서 물마시고 화장실도 가고 잠시 쉬다가 일했습니다.” “사원님, 작업 들어가기 전에 교육 받지 않았나요? 자동할당 마감시간이 육 분 남았을 땐데, 쉬고 어딜 다녀와요? 사원님, 앞으로 그러시면 안 됩니다. 아시겠습니까?” ‘아시겠습니까?’ 그 의미를 알 것 같았다. 종기는 대답 후 돌아서서 출고작업을 했다. 저녁식사를 마치고 작업장에 들어선 지 한 시간쯤 지났을까. ‘지금 부른 사원은 작업을 중단하고 당장 중앙으로 오라.’는 안내방송이 작업장에 퍼졌다. 총 여섯이었다. 종기도 그중 하나였다. 중앙으로 간 종기는 데스크 앞에 섰다. 직원은 종기에게 가까이 오라는 손짓을 했다. 눈을 부릅뜨고 입술을 오므리며 종기에게 주의를 줬던 관리 사원이었다. 가까이 가자 그 사원은 앞에 있는 모니터를 종기 쪽으로 돌렸다. “보세요, 사원님.” 컨베이어에 올린 토트 사진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