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장웹진(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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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장웹진 > 문장웹진 > 모색 [10주년 특집_신작시] 버지니아 외 1편
[10주년 특집_신작시] 버지니아 김별 사람의 마음과 맷돌은 과연 무슨 선착일까 여자가 머리를 끄집어냈다 여자가 갓난아기의 머리통을 끄집어냈을 때 맷돌은 왜 먼 길을 돌아갈까 달래놓았던 애가 다시 울고 여자는 아기를 달래고 여자는 손가락을 두어 개 잘라 가루를 마련할 것이고 우는 아기의 머리통을 돌려가며 멀리 돌아가며 달래고 달래는 여자 또 울음을 그치는 어린애 나는 딱딱하다 나는 희고 붉다 나는 엇갈려서 중복으로 돌아간다 맷돌은 왜 다시 태어나지 않을까 숨구멍으로는 아무도 들어오지 않고 메주를 조금 떠먹는 여자의 목마른 숟가락은 한 번도 마음을 나가지 않는, 어쩔 길 없는 버지니아 포레스트 검꼭지 숲 속에 백치가 하나 살고 그리고 젖꼭지도 있고 만지면 어떤 기분에 들릴 것인지 아직은 알 수 없어 어느 쪽 가슴에 달린 비애가 찌릿찌릿할 것인지 어느 짝가슴인지 격주로 여자는 콩 한 쪽을 가져와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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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장웹진 > 문장웹진 > 모색 [3월_신작시_입] 완벽한 입
[3월_신작시_입] 완벽한 입 오성인 세상에서 가장 빈틈없는 표정을 위해 종속(從屬)을 강요받은 입은 길들여지지 않는 말들을 가차 없이 내다버린다 버려진 말들도 그런 입을 버린다 입안에 쌓인 버려진 입들을 먹고 자라난 기름기 번지르르한 말들이 입의 구령에 맞춰 이리 구르고 저리 구르며 퍼즐을 맞추듯 표정의 빈 공간을 메운다 한 치의 균열도 용납 않기 위해, 놀려져야 하는 혀는 악역을 감수해야만 한다 자칫 봇물처럼 터져버릴 말들을 옭아맸다가 풀어 주기를 능구렁이처럼 능숙하게 하는, 그의 이면에서 초등학교를 졸업하고 이십 년 만에 우연히 연락이 닿아 함께 술을 나눠 마셨던 벗의 곰삭은 울음이 뼈만 남은 채 발견되었고 오랜 시간 끝에 백수에서 벗어났다는 또 다른 벗은 벌거벗은 채 아직 식지 않은 웃음을 꽉 끌어안고 호쾌했던 모습 그대로 죽어 있었다 괜찮아, 라는 말과 아무 일 없는 듯한 표정을 유일한 유품으로 남긴 그들은 정말로 괜찮았던 것일까, 두 벗이 남긴 유품 앞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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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장웹진 > 문장웹진 > 기획 [문장의 소리 공개방송 발표 신작시] 키위
[문장의 소리 공개방송 발표 신작시] 키위 석지연 키위 속에 키위가 있다. 마오리족이 어슬렁대는 열대 숲에 숨은 겁 많은 짐승. 봉투를 덫처럼 든 사냥꾼의 발소리를 키위는 듣고 있다. 달걀처럼 둥근 몸과 갈색 털로 뒤덮인 거친 껍질. 땅에서 붙잡히고 만 새의 운명. 보이지 않는 부리와 다리로 키위는 발버둥 친다. 말없이 어깨를 웅크리던 당신, 그 속에 얼마나 많은 키위들이 발톱을 쳐들고 목구멍을 할퀴었을까. 키위 속에 키위가 자란다. 흰 접시 위의 당신이 나를 외면한다. 《문장웹진 4월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