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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규승, 「은유」

  • 작성일 2013-04-22
  • 조회수 3,060

최규승, 「은유」



바람의 문 문의 바람
빌딩의 숲 숲의 빌딩
기타의 사운드 사운드의 기타
마이크의 손 손의 마이크
하늘의 끝 끝의 하늘
비둘기의 평화 평화의 비둘기
노동의 노래 노래의 노동
행복의 시간 시간의 행복
슬리퍼의 때 때의 슬리퍼
모빌의 흔들림 흔들림의 모빌
화분의 선인장 선인장의 화분
비상구의 커피 커피의 비상구
뉴욕의 비행기 비행기의 뉴욕
후쿠시마의 먹구름 먹구름의 후쿠시마
감동의 쓰나미 쓰나미의 감동
그녀의 침대 침대의 그녀
여인의 울부짖음 울부짖음의 여인
전위의 읊조림 읊조림의 전위
이것의 부재 부재의 이것
나의 너 너의 나
나의 나 나의 나
나의 나






l



시_ 최규승 - 1963년 경남 진주에서 태어났다. 2000년 《서정시학》 신인상으로 등단했다. 시집으로 『무중력 스웨터』 『처럼처럼』이 있다.


* 배달하며


왼편 오른편 한 켤레 신발처럼 짝을 맞춘 말들로 흔들흔들, 레고 쌓기를 하듯 이루어진 시 형태가 재미있다. 튼실한 이파리들 무성한데 모래 밑으로는 있는 둥 만 둥하게 뿌리 빈약한 ‘화분의 선인장’ 같다.

모든 시어가 ‘의’로 이루어졌다. ‘의’는 ‘체언이나 용언의 명사형에 붙어, 그 말이 관형어의 구실을 하게 하는 관형격 조사’다. 소유나 소속을 뜻하기도 하고, 앞의 말이 뒤의 말의 주체임을 뜻하기도 한다. 어떤 주체가 어떤 주체를 소유한다고 할 때 기본적으로 소유하는 주체는 당하는 주체보다 상위에 있다(반드시 그런 건 아니다만. 가령, ‘나의 주인’ 같은 경우). 그런데 이 시에서는 소유의 주체와 객체를 뒤바꿈으로써 상호소유, 상호소속을 드러낸다. 이래도 말이 되고 저래도 말이 되는 우리말 특성을 살린 유희다.

‘뉴욕의 비행기 비행기의 뉴욕’에서 ‘비행기의 뉴욕’은 자연스럽다. 뉴욕의 하늘에는 비행기가 많이 오갈 테니까. ‘후쿠시마의 먹구름 먹구름의 후쿠시마’에서 ‘먹구름의 후쿠시마’도 텍스트 외적인 사건 때문에 자연스럽고...그런데 간간 은유할 수 없는 걸 짝으로 맺어 놓은 곳이 있다. 가령 ‘하늘의 끝 끝의 하늘’에서 ‘끝의 하늘’은 독자의 상상력을 자극하고 이미지를 확장시켰다고 볼 수도 있지만 그저 말장난으로 보이기도 한다.

‘빌딩의 숲’ ‘평화의 비둘기’ 같은 상투적 표현도 간간 눈에 띄는데……. 시인이 그걸 못 알아챘을 리도 없고, 이리 토막토막 내서 들여다보면 안 될 테다……. 아, 최규승의 다른 좋은 시도 많은데 왜 이 시를 골랐다지? 「은유」라는 제목도 마음을 끌었고, 언뜻 ‘전위의 읊조림’이 있어 보여서. ‘노동의 노래’가 아니라 ‘노래의 노동’인 「은유」여라!


문학집배원 황인숙


출전_ 『처럼처럼』(문학과지성사)

권재욱

애니메이션_ 강성진

프로듀서_ 김태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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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3건

  • 10611 안형준

    `은유' 라는 시는 시의 형태, 내용, 느낌 등이 다른 타 시와는 다르다는 느낌을 받았다. 시의 형태가 한 문단을 반으로 쪼게어 보면 마치 거울에 비친 듯 예를 들면 빌딩의 숲 숲의 빌딩 과 같이 시의 형태가 독특하다. 시의 내용도 특이하다 시의 내용은 그저 말이 되는 문장을 가져다 놓은것 마냥 써져있고 시의 후반으로 가면 나 의 나 의 ㅇ ㅡ l 라고 하며 마무리가 되는데 약간의 찜찜함을 가지고 끝나는 느낌을 받았다. 이렇게 마무리되는 시는 처음보는지라 약간의 새로움도 느껴졌다. 그리고 이 시의 문장 중 기억에 남는 문장이 있는데 행복의 시간 시간의 행복 이라는 문장이다. 어찌보면 자신이 행복한 시간을 그려낼수도 있지만 시간이 주어지기 때문에 행복한 시간을 보낼수 있다고도 해석이 되어 시를 읽는도중 문장이 바뀔 때 마다 새로운 느낌이였다. 교과서에서만 보던 시 의 형태가 아닌 독특한 형태의 시를 볼 수 있어서 좋았고 항상 고정적인 형태보다는 이런 창의적인 형태의 시 도 가끔 보면 재밌을거라고 생각한다.

    • 2018-05-29 13:54:58
    10611 안형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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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10609류태오

    '은유' 독특한 제목에 다른 시와는 차별감이 느껴져 시에 들어오게 되었다. 예상대로 보통 시에서 주로 찾아볼 수 없었던 구조로 이루어진 행들이 기다리고 있었다. 보통 주종관계로 놓여져 쓰이는 단어 두 가지를 바꾸니 기막히게도 말이 된다. 가장 눈에 띄는 행은 '후쿠시마의 먹구름, 먹구름의 후쿠시마' 이다. 몇년 전 일어났던 후쿠시마의 발전소에서 일어난 재앙의 사고로 생겨난 먹구름이란 뜻의 행에서 두 단어를 바꾸니 사고로 인해 힘들어진 후쿠시마의 상황을 먹구름으로 표현한 재미있는 문장이 되었다. 하지만 '감동의 쓰나미, 쓰나미의 감동' 같은 경우는 전자는 감동이 쓰나미처럼 몰려온다는 뜻이지만 후자는 이해하기 어려운 부분도 있었다. 쓰나미의 감동? 쓰나미 속에서도 남을 돕는 감동적인 이야기를 나타내는 것인가. 해석에 어려움이 있었다. 하지만 그것 또한 이런 독특한 시의 매력이라고 생각한다. 마음의 울림을 주는 시도 좋지만, 이 시는 은유의 아름다움을 보여줌으로서 충분히 매력있다고 생각한다.

    • 2018-05-29 13:43:58
    10609류태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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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익명

    좋다....

    • 2013-06-23 02:43:26
    익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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