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현경,『김수영의 연인』중에서
- 작성일 2013-07-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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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68년 6월. 김수영 선생의 영구가 수많은 조객이 함께한 세종로 예총회관 광장 장례식 뒤에 도봉산 기슭으로 떠났습니다. 그 뜻밖의 새 무덤은 무덤이기보다 차라리 이승에 사는 형제자매의 주거지에 속해 있는 가족의 한 정경이 되었습니다.”
- 고은-
김현경,『김수영의 연인』중에서
여름이 되자 수영은 심한 암치질을 앓았다. 너무나 통증이 심해서 몸도 가누지 못하고 있었다. 나는 수영을 종로 5가에 있던 '강 항문과'에 데려갔다. 의사는 내게 환자가 움직이지 못하게 위에 올라타라고 했다. 그리고는 퉁퉁 부은 항문에 메스를 들이대자 고름이 쏟아졌다. 피와 고름이 섞인 양동이가 몇 번이나 오르내렸을 것이다. 의사는 수영의 항문에 페니실린이 잔뜩 묻은 거즈를 한 움큼 구겨 넣었다. 나는 며칠 동안 집에 들어가지도 못하고 수영을 간호했다. 가끔씩 병원비를 조달하기 위해 집에 있던 비단을 훔쳐와 동대문시장에 가서 팔았다. 세 번째 비단을 훔치던 날, 이미 화가 날대로 난 아버지와 마주치고 말았다. 시 나부랭이나 쓰는 작자를 도둑질까지 해가며 만난다면서 아버지는 내 방문에 대못을 박았다.
이후 수영의 태도는 조금씩 달라졌다. 몰래 집을 빠져나와 그를 찾아갔더니 수영은 우리가 이래서는 안 된다며, 이만큼 했으면 되었다며 나를 돌려보내는 거였다. 나는 집으로 돌아와 며칠을 울었다. 나중에 안 이야기이지만 아버지가 수영을 찾아가 딸의 행복을 위해 교제를 중지해달라고 설득했던 것이다. 진심이 아닌 말들로 이별을 선언한 후에도 수영은 당시 그의 어머니가 운영하던 충무로4가 쪽의 설렁탕집 '유명옥' 다락방에서 내가 다시 찾아오기를 목이 빠져라 기다렸다고 했다.
(중략)
나는 그 길로 수영이 치질을 앓으며 지냈던 그의 방으로 함께 돌아갔다. 시어머니가 이 사실을 알고 친정어머니를 찾아갔다. 일숫돈을 얻어 금가락지도 해주셨다. 돈암동 근처에 살림방을 얻고 신혼살림을 시작했다. 사랑 앞에서 결혼식 같은 제도는 눈에 들어오지도 않았다. 문학은 어차피 각질화된 제도에 저항하는 양식이 아니던가.
● 작가·낭독_ 김현경 – 김수영시인의 아내 그리고 첫 독자. 1927년 서울 출생. 이화여대 영문과 수학. 의상실 경영. 미술 컬렉터로도 활동. 현재 김수영문학관 설립 준비중.
● 장인호 - 배우. 영화 <고지전> <하울링> 등에 출연
● 출전_ 『김수영의 연인』(실천문학사)
● 음악_ stock music /nostalgia
● 애니메이션_ 강성진
● 프로듀서_ 김태형
배달하며
한 나라를 대표하는 시인이라도 보통의 몸을 고스란히 지니고 있으며 우리가 아파하고 고민하는 것들을 예외 없이 겪었다는 것. 그게 이 책, 특히 이 부분에서 찬란하게 드러납니다. 치질을 치료하는 과정이나 연인에게 이별을 통고해 놓고도 찾아오기를 기다리는 모습, 일숫돈으로 쌍가락지를 사서 살림 시작하는 장면들이 가슴 아프기도 하고 웃음도 나오고 그렇습니다. 그런 의미에서, 사는 거는 다들 비슷하죠. 미스코리아도 똥은 싸야 하고 격투기 선수 추성훈은 귀신을 무서워하고 오바마 미대통령도 담배 피우다가 들켜 마누라에게 왕왕 혼쭐이 난다고 하잖아요. 이런 모습은 김수영 시인과 그의 아내 김현경 선생이 우리에게 주는 또 다른 선물입니다.
문학집배원 한창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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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용주,『여수』중에서 그러나 우리 아버지가 누군가. 쓸데없는 고집 하나라면 역발산기개세도 한수 접고 물러서던 때였으니, 겉보리 서 말만 있으면 처가살이 죽어도 안 한다는 신념으로 주막집 외상 술값을 불려나간 장본인이다. 취한 가장의 끊어질 듯 이어질듯 왜색가요 들리는 주막집 봉창을 흘겨보며, 작은 형은 장산으로 수룡골로 올라가 나무하고 산퇘깽이 잡고 범골이나 짚은 골까지 내려가 비얌이나 깨구락지를 잡아왔다. 겁이 많은 나는 누나를 따라 강가로 내려갔는데, 강은 소리 없는 눈물이고, 눈물 섞인 애달픔이고, 애달픈 반죽 섞인 노래와 아롱지는 푸념소리로 흘러가고 있었다. 그것은 습기 많은 남도창으로 흘러갔다. 관절 너덜거리는 동편제로 흘러갔다. 누나는 고동을 줍고 나는 나만큼이나 부황이 든 꽤봭쟁이들하고 돌팍을 들추고 흐르는 물을 막아 물길을 다른 곳으로 돌리고, 그 밑에 고여 있는 물을 고무신으로 퍼내, 피라미나 중태기 땡사리나 가재를 잡아 주전자 속에 담아 오기도 했다. 그날 밤은 꼭 그만큼 손 뻘건 자식들 손가락 닮은 고추장을 퍼내어 물고기와 다른 잡것들을 대개 1대 9 정도 비율로 버무리고, 또 거기에 한 열 말들이 속 깊은 물을 붓고 천천히 고아내면, 이끼 낀 산속 온갖 벌레들의 배설물과 새의 깃털과 나무의 숨결 같은 아주 맑은 기름도 진달래 화전으로 떠올라, 땀 번들거리는 이마, 찧는 줄도 모르고 마구 처먹어대던 그런 날도 있었다. 어쨌든 그런 날밤은 육시럽게 달이 밝아 개호주 우는 소리도 처량한데, 쇠죽 쑨 아랫목에서 호꼰하게 잠이 들면, 꼭 아까 우리가 먹었던 비릿한 물고기의 뼈 고은 탕이, 살입은 어육이, 저 여수 앞바다에서 꼬물거리고 헤엄쳐 와 하동과 구례를 거슬러 올라와 남원 요천을 힘차게 요동쳐 우리 집 앞 개울까지 오지 않았나 엉뚱한 생각을 해보기도 했다. 그것은 외가에 가고 싶은 마음이었다. 바닷가의 비린내를 맡고 싶어 하는 알들의 그리움인지도 모른다. 그래, 언젠가는 내 꼭 한 번 가보고 말리라. 가서 어머니의 어머니, 할머니의 할머니 품에 꼭 한 번 안겨보리라 다짐도 했었는데, 그것은 설핏 품은 잠 속의 꿈같은 것이었다. 꿈이 깨면 윗목은 얼어붙고 문풍지 사이로 싸락눈이 마구 비껴들고 있었다. 눈은 아까 우리가 잡아먹은 물고기의 영혼을 위로하러 온 천사의 손인지도 모른다. 그러다 또 살풋, 저 용소에 천년 좌선하고 있는 아무기의 흡판처럼 거대한 잠의 혓바닥이 나를 끌어당기면, 또 밑도 끝도 없는 눈 속을 한없이 걷기도 했다. 그 몽유 중에 삭다리 타는 냄새는 졸아든 뱃구레로 돌아드는데 아침이 왔던 것이다. 순백의 아침이 왔던 것이다. ◆ 작가_ 유용주 – 시인.1960년 전북 장수 출생. 1991년 『창작과 비평』으로 작품활동 시작. 시집으로 『가장 가벼운 짐』『크나큰 침묵』산문집『그러나 나는 살아가리라』『아름다운 얼굴들』장편소설『마린을 찾아서』등이 있음. ◆ 낭독_ 유성주 – 배우. 연극 , 등에 출연. ◆ 출전_ 『여수작가 2013년 봄호』(여수작가) ◆ 음악_
- 2013-12-26
아모스 오즈,『노르웨이 국왕』중에서 우리 키부츠, 키부츠 예캇에는 즈비 프로비조르 라는 남자가 살고 있었다. 그는 쉰다섯의 키 작은 노총각으로 눈을 깜박거리는 버릇이 있었다. 그는 지진이나 비행기 추락, 건물 붕괴로 인한 압사 사건, 화재, 홍수 등의 흉한 소식을 먼저 듣고 사람들에게 전달하는 일을 좋아했다. 새벽부터 신문과 라디오에서 모든 뉴스를 수집한 뒤 공동식당 입구에서 우리를 붙잡고는 중국 어딘가에서 광부 이백오십 명이 갱도에 꼼짝없이 갇혀 있다거나 카리브 해에 몰아친 폭풍우로 여객선이 뒤집혀 승객 육백 명이 익사했다는 등의 뉴스로 우리를 놀라게 했다. 또한 그는 부고를 외우기도 했다. 유명인이 죽으면 가장 먼저 알고서 키부츠 전체에 그 소식을 알리는 사람도 그였다. 그는 허리띠에 매달고 다니는 조그만 트랜지스터라디오로 흉흉한 소식들을 끊임없이 주입받았다. 그러고는 이렇게 말했다. “그거 들었어요? 앙골라에서 대학살이 벌어졌대요.” 또는 이런 말도 했다. “종무 장관께서 별세하셨다는군요. 십 분 전에 발표가 났어요.” 어느 날 저녁, 즈비 프로비조르는 근처 벤치에 홀로 앉아있는 루나 블랑크라는 여자에게 말을 건넸다. “그거 들었어요?” 그가 슬픈 목소리로 말했다. “스페인에 있는 어느 고아원에 불이 나서 여든 명이나 되는 애들이 연기에 질식해 죽었다고 하네요.” 학교 선생님인 마흔다섯살 과부 루나는 손수건으로 이마의 땀을 닦으며 말했다. “끔찍한 일이네요.” “구출된 생존자가 세 명 뿐이랍니다.” 즈비가 말했다. “그런데 생존자들도 상태가 위중하대요.” 뒤이어 즈비는 수단sudan을 쑥대밭으로 만들고 있는 메뚜기떼의 습격에 대해 자세히 묘사앴다. 루나가 말했다. “당신은 정말 예민한 사람이에요.” 즈비는 눈을 재빠르게 깜빡거리며 말했다. “수단에서는 지금 신록을 찾아보기가 힘들대요.” 루나가 물었다. “왜 세상의 모든 슬픔을 어깨에 지고 계시는 거예요?” 즈비가 대답했다. “삶의 잔혹함을 못 본 척한다는 것은 어리석고도 죄스러운 일이라고 생각해요. 우리가 할 수 있는 건 별로 없어요. 그러니까 최소한 알고라도 있어야죠.” (부분생략) 작가_ 아모스 오즈 – 현대 히브리 문학을 대표하는 이스라엘 출신 소설가. 평화활동가로도 활동. 1939년 예루살렘 출생. 1965년 첫 소설집 『자칼의 울음소리』로 작품활동 시작. 대표작으로『나의 미카엘』 『여자를 안다는 것』 『사랑과 어둠의 이야기』 등이 있음. 낭독_ 이상구 – 배우. 연극 , 등에 출연. 유성주 – 배우. 연극 , 등에 출연. 우미화 – 배우. 연극 , , 등에 출연. 출전_ 『친구사이』(문학동네) 음악_ backtraxx - corporateindustrial
- 2013-12-19
송기원, 『별밭 공원』중에서 내가 세상을 이승과 저승 식으로 둘로 나누는 버릇을 시작한 것은 어머니의 자살을 알게 된 순간부터였을 것이다. 1980년의 소위 ‘내란음모사건’으로 구 년이라는 형을 받고 감옥에 갇힌 후 얼마 되지 않아 어머니는 그만 자살을 하고 만 것이었다. 당신으로서는 세상이 뒤집힐 만한 죄목으로 자식이 감옥에 갇히자 새벽마다 뒤울안에 정안수 한 사발 떠놓고 당신의 신불에게 치성을 드리다가 바로 그 자리에서 중풍을 맞고 쓰러져 급기야 문밖출입도 못한 채 남의 손에 대소변을 받아내던 끝이었다. 어머니가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는 것을 알게 된 것은 내가 감옥에서 나온 후였다. 감옥살이를 하는 동안에는 아내며 주위 사람들이 내가 자칫 어머니의 뒤를 따라 흉한 생각이라도 품을까 염려하여 어머니의 죽음을 중풍이 약화된 때문인 것처럼 둘러댔던 것이다. 감옥에서 나와 서해안에 있는 어머니의 산소에 들린 나는 우연하게 마을 사람으로부터 자살 소식을 전해 듣게 되었다. 나는 어머니의 단발마의 순간이 너무 선연하게 눈앞에 떠올라서 도저히 견딜 수가 없었다. 이미 마비된 손이며 발이며 배며 허리 같은 전신을 안간힘을 다해 꿈틀거리며, 무슨 척수동물처럼 안방을 기어 마루를 넘고 안마당을 뒹굴어 대문에 다다른다. 좀 더, 조금이라도 더, 자식 쪽으로 가까이 다가가고 싶다. 이윽고 대문의 문고리를 잡아 노끈을 잡아맨다. 그리고 그 노끈으로 목을 감고는 척수동물 같은 몸을 뒤틀어 한껏 뒤로 버틴다. 자식에게 보여주어야 한다. 어미가 어떻게 죽어가는지 자식에게만은 기필코 보여주어야 한다. 눈앞에 너무 선연하게 그려지는 단발마의 순간을 나는 멀쩡한 정신으로는 도무지 받아들일 수도 그렇다고 지울 수도 없었다. 나는 하루하루를 눈에 시퍼렇게 광기를 품은 채, 마시면 마실수록 갈증이 나게 하는 폭음으로 보냈다. 그런 폭음에 빠져 마침내 정신을 잃기까지 나는 결코 단발마의 순간에서 벗어날 수가 없었다.나로서는 차라리 어머니가 머무르고 있을 저승 쪽이 부러웠을 것이다. 폭음으로 하루하루를 넘기는 나에게는 이승이란 차라리 저승보다 훨씬 먼 곳에 있는 어떤 곳이었다. 그런 식으로 마침내 나는 이승과 저승을 구별하지 않게 되었다. ▶ 작가_ 송기원 – 소설가. 1947년 전남 보성 출생. 1974년 《중앙일보》와《동아일보》 신춘문예에 각각 소설과 시로 등단. 시집으로『그대 언살이 터져 시가 빛날 때』,『마음속 붉은 꽃잎』등과 소설집 『다시 월문리에서』 『인도로 간 예수』, 장편소설 『너에게 가마 나에게 오마』『청산』등이 있음. ▶ 낭독_ 이상구 – 배우. 연극 , 등에 출연. ▶ 출전_ 『별밭공원』(실천문학사) ▶ 음악_ sound idea - romantic ,pastoral 8 ▶ 애니메이션_ 이지오 ▶ 프로듀서_ 양연식 배달하며 절절합니다. 무겁습니다. 피가 멈추지 않아서 승천하지 못하고 있는 영혼을 보고 있는 것 같습니다. 혈육, 사회, 국가. 우리를 존재하게 하는 이 구성체는 왕왕 구
- 2013-12-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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