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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경자, 『남자를 묻는다』 중에서

  • 작성일 2013-08-16
  • 조회수 1,382



  "한국, 남녀 임금 격차 39%...30개 회원국 중 최악"

(출처: 2012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양성평등보고서)

아직도?


이경자, 「남자를 묻는다」 중에서



학대받는 모습을 가장 많이 보여주며 살아온 어머니가 당신도 모르는 사이에 내게 교육한 것 중 가장 강렬한 것은 ‘여자도 사람이다’라는 말이었다. 어린 나로서는 쉽게 눈치챌 수 없는 문제로 화가 난 아버지로부터 짐승처럼 맞고 난 어머니가 혼잣말을 했었다. 여자도 사람인데······

내가 소설가가 되지 않았어도 나는 무슨 일이건 해서 돈을 벌었을 것이다. 돈을 번다는 일은 남자로부터 최소한의 독립을 하는 일이며 그 독립은 폭력으로부터 나를 지키는 방패라고 생각했을지 모른다. 그런데 여자가 돈을 벌러 나온 사회는 무수한 가부장들의 집합이어서 거기서 느끼는 폭력도 집단적 무게였다. 이를테면 가부장 병영(兵營)이라고 할까?

기억이 확실치는 않지만 언젠가 소설가 김성동은 어떤 잡지와의 인터뷰에서 작가는 근원적으로 혁명가일 수밖에 없는 운명이라고 했었다. 그 말에 공감했다. 소설가는 세계와 인간의 갈등을 쉼 없이 들여다보고 질문하고 해답을 얻는 과정을 소설이라는 틀로 만들어 사회와 소통하는 사람들이다. 나도 그와 같으니 현실사회의 갈등을 들여다보고 그 문제를 찾아내면서 끝까지 가부장제와 충돌해야 했다. 이런 충돌은 유구한 가부장제 역사 속에서 여러 가지 모습으로 알게 모르게 떠오르고 가라앉곤 했었다.

나의 충돌이 비록 계란으로 바위를 치는 것과 같다 할지라도 내겐 젖 먹던 힘까지 퍼올리는 전력투구의 연속이었다. 그것은 내 생명에게 때론 희망과 두려움으로 때론 좌절과 회의로 때론 무기력과 모욕으로 때론 무서운 소외로 돌아왔다. 가부장 사회는 여성에게 남성으로부터 사랑받는 여성으로 살아남을 것인가, 인간 여자로 살 것인가를 끝없이 선택하게 한다. 여성의 인간화를 남성과의 대립으로 이해해서 노골적인 적개심을 드러내는 것이 얼마나 가혹한 폭력인지.



작가_ 이경자 – 소설가. 1948년 강원도 양양 출생. 지은 책으로 소설『절반의 실패』, 『혼자 눈뜨는 아침』,『순이』, 에세이『남자를 묻는다』등이 있음.

낭독_ 백은정 – 배우. 연극 <메디어 환타지>, <이디푸스와의 여행> 등에 출연.

출전_ 『남자를 묻는다』(랜덤하우스 코리아)

음악_ signature collection /lite&easy mix2

애니메이션_ 김은미

프로듀서_ 김태형





배달하며


나도 당신과 같은 사람이라는 것을, 나도 괴로움의 감정과 고통을 느끼는 몸을 가지고 있다는 것을 상대에게 전달하기가 어쩌면 이렇게 어려울까요. 특히 그 상대가 야만적인 독재자나 탐욕스러운 상관, 남존여비(男尊女卑)의 버릇이 몸에 배어버린 가부장 일 때 더욱 그렇습니다. 아마 알고는 있을 거에요. 모른척하는 것이죠. 아니, 모르고 싶은 것이죠. 누군가의 수고와 인내가 나에게는 이익이 되기 때문에 그렇습니다. 자신의 이익 앞에서는 보편적인 인간의 가치를 깡그리 무시해버리는 모습은 지금도 차고 넘치잖습니까.

저자는 장편소설 『절반의 실패』때부터 꾸준히 이 문제를 붙들고 있습니다. 근원적으로 혁명가일 수 밖에 없는 직업이라서 그렇고, 아직도 이 문제가 해결이 되지 않았다는 뜻이지요.


문학집배원 한창훈



한창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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