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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자이 오사무,「추억」중에서

  • 작성일 2013-11-18
  • 조회수 1,779




다자이 오사무,「추억」중에서

학교에서 쓴 나의 작문도 모조리 엉터리였다고 해도 좋다. 나는 나 자신을 온순하고 얌전한 아이로 보이도록 쓰려고 애썼다. 그러면 언제나 모두에게 갈채를 받았다. 표절까지 했다. 당시 걸작이라고 선생님에게 칭찬받은 「동생의 그림자놀이」는 어떤 소년잡지의 일등 당선작을 내가 그대로 훔친 것이다. 선생님은 나에게 그것을 붓으로 깨끗이 써서 전람회에 내라고 했다. 나중에 책을 좋아하는 한 급우가 그것을 알아냈고 나는 그 급우가 죽기를 바랐다.
역시 그 무렵 「가을밤」도 모든 선생님들로부터 칭찬을 받았는데 그것은 내가 공부하다가 머리가 아파 툇마루로 나가 뜰을 바라보는데, 달이 좋은 밤의 연못에는 수많은 잉어와 금붕어 떼가 놀고 있었고, 나는 그 뜰의 적막한 경치를 멍하니 바라보고 있다가 옆방에서 와 하고 어머니 등의 웃음소리가 들려왔기 때문에 문득 정신을 차리고 보니 두통은 나아 있었다는 소품이었다.
여기에는 진실이 하나도 없다. 뜰에 대한 묘사는 분명히 누이들의 작문 노트에서 뽑아낸 거였고, 무엇보다 나는 머리가 아플 만큼 공부한 기억 따위는 전혀 없었던 것이다. 나는 학교를 싫어했고, 따라서 학교의 책 같은 걸 공부한 적은 한 번도 없었다. 오락 책만 읽었다. 집에서는 내가 책만 읽고 있으면 공부하고 있다고 생각했다.
그러나 내가 작문에 진실을 쓰면 반드시 좋지 않은 결과가 일어났다. 부모가 나를 사랑하지 않는다는 불평을 썼을 때는 교무실로 불려가 담임선생님한테 꾸중을 들었다. 「만약에 전쟁이 일어난다면」이라는 제목을 주었을 때는, 지진, 천둥, 화재, 아버지보다 무서운 전쟁이 일어난다면 우선 산속으로 도망가자, 도망갈 때는 선생님도 같이 가자, 선생님도 인간, 나도 인간, 전쟁의 무서움은 같을 것이다, 라고 썼다. 그때는 교장선생님과 교감선생님이 달려들어 나를 조사했다. 무슨 마음으로 이걸 썼느냐고 물었으므로 나는 그저 반은 재미로 썼다고 적당히 얼버무렸다. 교감선생님은 수첩에 '호기심'이라고 적어 넣었다.




● 작가_ 다자이 오사무 -- 소설가. 1909년 일본 아오모리 현 출생. 1948년 투신자살로 생을 마감한 일본을 대표하는 작가. 고교시절부터 작품 발표. 소설집 『사양』『만년』『인간실격』등이 있음.

● 낭독_ 최지훈 -- 배우. 연극 '동주앙', '황구도', '관객모독' 등에 출연.

● 출전_ 『만년』(서커스)
● 음악_ backtraxx /mellow1
● 애니메이션_ 민경
● 프로듀서_ 양연식



배달하며

이거 남 이야기 아닙니다. 아이들 글짓기 관련해서 좋은 일례이기도 하죠. 우리 어른들은 아이가 진지하고 도덕적이고 노력하는 모습의 글을 쓰면 안심하면서 칭찬합니다. 그래서 아이들은 대놓고 반성과 다짐을 해댑니다. 글짓기 관련해서 가장 괴로웠던 것이 무엇일까요. 제가 보기에는 '느낀 점'을 쓰라고 강요하는 것입니다. 느낀 게 없는데 쓰라니까 잘못한 것을 찾아 버릇처럼 반성하고 훌륭한 사람이 되겠다고 다짐합니다. 그렇게 밥 먹듯이 하는 반성이 어디 진짜겠어요? 물론, 그래서 다자이 오사무가 자살 한 것은 아닙니다. 그의 좌절의 감성이 궁금하신 분들께는 장편 『인간실격』을 권합니다.

문학집배원 한창훈


한창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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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1건

  • 익명

    15년 간 애들과 책 일기를 함께 했는데 느낀점을 한줄로 쓰라고 가끔 요구한다. 사실 부모들에게 보이기 위한 나만의 생존방법이다. 가장 많이 쓰는 글으 '재미 없다'이다.

    • 2013-11-18 10:17:40
    익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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