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몫이다.
- 작성일 2007-12-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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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가에게 등단이 언제나 감격스런 일은 아니라는 생각이 듭니다. 내심 이 작품으로 등단했으면, 하고 우선순위에 올리는 몇몇 작품들이 다들 하나씩은 있지요. 그리고 그런 짐작들이 대개 빗나가는 것도 아닙니다만, 또 그게 꼭 그렇지만은 않습니다. 더구나 그게 기억에도 없는 작품이라면 얼마나 황당할까요. 부끄러운 글일지도 모릅니다. 제 경우가 꼭 그렇습니다. 작가의 길을 이런 작품으로 연다는 것이 당황스럽기도 하고, 정말 원했던 글들은 인정받지 못한 것 같아 슬프기도 합니다.
흔히 누군가가 문학과 관련된 상을 받으면, 특히나 등단과 같은 각별한 작품에는 평범한 독자로서는 알 수 없는 무언가가 있으리라고 대개 짐작합니다. 적어도 그 작품에 상당한 애정이 있겠다고 생각하시는 것 같습니다. 그렇지만, 저는 이 작품에 대해 오히려 경멸이랄까, 그랬으면 그랬지 어떤 영광도 느끼지 못하고 있습니다. 언제나 겸손하고 자기 작품에 만족하지 못하는 그런 건전한 정신은 아닙니다. 저는 정말로 저를 등단에 오르게 한 이 작품이 싫습니다. 여기서 싫다라는 말은 여러분들이 생각하시는 그 의미가 맞습니다. 물론 저도 미칠만큼 미쳤고 목줄기에 칼을 댄 적도 적지는 않습니다만, 제가 피와 손톱을 다해서 쓴 작품들은 정작 다른 것들입니다. 제가 서 있는 이 무대를 노리는 젊은이들을 생각하면, 제 자신의 가치를 이렇게 인정받을 수 있다는 사실이 조금은 고맙기도 합니다. 그러나 그렇다고 해서 제게 이 자리를 영광스레 받아들여야 하는 어떤 의무가 실리는건 아니지 않겠습니까. 다른 작품으로 등단할 수 있었다면 좋았을 것을, 언제 썼는지도 기억도 없는 글로 수상한다는게 참 유감입니다.
이런 말을 해야 될 정도로 한 편 한 편에 최선을 다하지 못했다는 부끄러움이 지금도 저를 엄습하고 있습니다. 당분간 잠이 많아질 것 같습니다. 제가 사랑하는 글이 인정을 받지 못해서 아쉽고, 엉뚱한 글이 주목을 받아 아쉽습니다. 나중에 누가 당신은 어느 작품을 통해 등단했냐고 물을 때 발음을 질질 끌며 한 자 한 자를 마지못해 내뱉을 제 자신을 생각하니, 지금 이 상에 문득 화가 나기도 합니다. 차라리 조금 늦더라도 내게 의미가 있는 작품으로 등단할 수 있었다면, 하는 배부른 후회도 있습니다. 그러나 시간은 일회적이고 한 번 지나간 일은 번복할 수 없는 일, 제가 해야 할 일은 이 순간에 대한 긍정 이외의 것이 아니라는 사실을 압니다. 살아가는 일이 애초에 준 만큼 받지 못하는 일일지도 모르겠습니다.
무튼 작가가 꼭 좋은 작품으로 등단하는 것만은 아니라는 것, 그래서 아무 글이나 함부로 타인에게 보여서는 안된다는 교훈을 배울 수 있었습니다. 수강료로 생각하겠습니다. 끝으로 생각나는 사람이 없습니다. 아니, 생각날만한 사람이 있다면 그때도 내가 글을 쓰고 있을까하는 생각이 듭니다. 게다가 가장 애쓴 사람이 제 자신임을 저는 잘 압니다. 타인의 사랑에 밀려 자신을 미루는 우를 범하고 싶지는 않습니다. 부끄러운 작품이라는 것까지 감안해서, 이 상의 영광은 오직 제가 가지도록 하겠습니다. 혹시라도 다음이 주어진다면 그때는 여느 이들처럼 고맙다 미안하다와 주변 사람들의 이름도 적도록 하겠습니다. 위하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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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냥, 등단이 언제나 감격스럽지만은 않겠다는 생각도 듭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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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1건
정말 톡 튀는 생각이라고 느꼈습니다.색다른 느낌에 무척 인상 깊네요.'가장 애쓴 사람이 제 자신임을 저는 잘 압니다'라는 부분이 정말 마음에 들어요.잘 읽고 갑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