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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찬, 「정결한 집」

  • 작성일 2015-01-30
  • 조회수 1,059




정찬, 「정결한 집」

“이 세상에 지우개 외에 나를 지울 수 있는 존재는 없어.”
명희는 바짝 마른 눈으로 소년을 응시했다.
“그러니 어떡해? 내가 지우개가 되는 수밖에.”
명희에게 지우개가 되는 방법이 시체놀이였다.
“혼자 있는 곳이어야 해. 약간 어두운 데가 좋아. 그렇다고 아주 캄캄하면 안 돼. 바닥에 등을 대고 누운 다음 팔을 편하게 펴고 눈을 감아. 그러곤 마음의 눈을 떠야 해.”
“마음의 눈?”
“그래, 마음의 눈. 그 눈을 뜨면 몸 안이 어렴풋이 보여.”
몸 안은 어둡고 텅 빈 동굴 같다. 사방이 막힌 그곳에 바짝 마른 새 한 마리가 있다. 윤기를 잃은 날개가 앙상하다. 허공에서 흰 손이 내려온다. 빛으로 이루어진 손이다. 빛의 손은 가슴에 구멍을 뚫는다. 몸속으로 쑥 들어오는 빛의 손을 느낀다. 피가 몸 바깥으로 빠져나간다. 몸이 차가워지기 시작한다. 차가움은 발에서부터 무릎, 배, 가슴으로 천천히 올라온다. 감각이 희미해지면서 맥박이 느려진다. 죽음은 그렇게 찾아온다고 명희가 말했다.
“죽음과 함께 동굴의 문이 열려. 문이 열리는 소리가 어렴풋이 들려와. 뭐라고 말할 수 없는 신비로운 소리야. 동굴의 문이 열리면……”
명희는 꿈꾸는 듯한 표정으로 말했다.
“동굴에 갇힌 새가 날아가. 창공으로.”
“몸 안에 왜 새가 있어?”
소년은 머뭇머뭇 물었다.
“나의 근원이니까.”
“근원?”
“그래, 근원. 근원은 누구에게나 있어.”
“나에게도 근원이 있겠네.”
“물론이지.”
“내 몸 안에도 새가 있단 말이지.”
소년은 혼잣말하듯 중얼거렸다.





● 작가 _ 정찬 - 소설가. 1953년 부산에서 태어남. 1983년 무크지 '언어의 세계'에 중편 「말의 탑」을 발표하며 작품 활동 시작함. 소설집으로 『기억의 강』『완전한 영혼』『베니스에서 죽다』, 장편으로『세상의 저녁』『광야』『유랑자』등이 있음.
● 낭독_ 김주완 – 배우. 연극 '그을린 사랑', '오장군의 발톱', '너무 놀라지 마라' 등에 출연.
● 서진 – 배우. 연극 '서울,댄스홀을 허하라!', '러브스토리', '안티고네', '모든 이에게 모든 것' 등에 출연.
● 정훈 - 배우. 연극 '과부들', '봄날' 등에 출연.




배달하며


지난해 말부터인가요, 신문이나 방송에서 독친毒親이라는 자주 말을 접하게 되었지요. 아이들을 궁지로 몰아넣고 있는 부모를 뜻한다고 합니다. 영어로 하면 Toxic Parients? 어쩌다가 우린 이런 단어까지 만들어 쓰게 되었을까요.
여기, 아버지에게 버림 받은 후 어머니에게까지 버림받을까봐 두려워 성적을 조작하는 소년이 있습니다. 어머니가 소년에게 기대하는 것은 공부 잘하는 것, 그것 한가지뿐입니다. 옥상 난간에게 이런 무시무시한, 슬픈 대화를 나누는 아이들. 우리시대의 아들딸들이 다 그렇지는 않겠지요?

문학집배원 조경란






● 출전_ 『정결한 집』(문학과지성사)
● 음악_ StockMusic - nostalsia 중에서
● 애니메이션_ 강성진
● 프로듀서_ 양연식

서영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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