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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시한, 「허생전을 배우는 시간」

  • 작성일 2015-02-06
  • 조회수 2,167




최시한, 「허생전을 배우는 시간」

7월 5일
남들이나 나나 모두가 억지로 살아간다는 생각에서 헤어나지 못한 하루였다. 남들은 그렇지 않은 것처럼 보이곤 했는데, 오늘은 무슨 변덕인지 모르겠다.
전부가 시들하고 지겨웠다. 선생님은 월급 때문에 수업을 하고, 학생들은 효자가 되거나 불량학생이 되지 않기 위해 자율학습을 하는 것 같았다. ‘자율학습’이라니, 얼마나 웃기는 말이냐. 수업이 다 끝났는데도 학생들이 몇 시간씩이나 ‘자율적으로’ 책상에 고개를 처박고 있다? 단 한 명의 예외도 없이, 자율대학의 졸업장을 따야만 자율적인 사람이 된다? 다들 말장난에 놀아나는 꼴이다. 이건 꼭두각시놀음을 하는 극장이지 학교가 아니다.
버스 안에서 이런 공상을 하였다. 억지로 운전대를 잡고 있는 기사가 노상 같은 길로만 다니는 자기 자신을 도저히 견딜 수 없어 몸부림치다가, 차를 한강 속으로 밀어넣는다. 모두 죽는다. 저승 문 앞에서 기사를 만난 승객들은 반갑게 그의 손을 잡으며 이렇게 말한다. 고맙습니다. 용기가 없어 개 끌려가듯 억지로 살았는데 당신 덕에 벗어났습니다.
그 공상을 할 때는 나도 승객들 가운데 하나였다. 하지만 지금 다시 생각해 보면 무언가 서운하다. 중요한 무엇, 내가 아니면 못하는 어떤 일이 기다리고 있고, 그래서 나는 살아났어야 될 성싶다.
다음 국어시간에 배울 『허생전』을 읽었다. 숙제라서 억지로 읽었는데 점점 재미가 나 두 번이나 읽었다. 허생이 마음에 든다. 그는 대단한 실력을 가졌다. 등장인물들 가운데서 우뚝할뿐더러 나라까지 좌우할 만한 비범한 사람이다. 그런데 그는 왜 자기가 꾸민 천당 같은 섬에서 글 아는 자들을 모두 데리고 나올까? 그는 ‘화근’을 없애기 위해서라고 말했다. 글 아는 자가 화근이 된다니 무슨 소린지 알 수 없다. 자기도 글 아는 선비이면서. 돈을 벌고, 도둑들을 천당 같은 섬에서 살게 해주고, 이완 대장을 꾸짖고 한 그 모든 일들도 자기가 글을 읽었기에 할 수 있었던 게 아닌가.
잠까지도 억지로 자는 기분은 아니다. 『허생전』을 읽은 덕분이다.





● 작가_ 최시한 - 소설가. 대학교수. 1953년 충남 보령 출생. 1991년 「낙타의 겨울」로 작품 활동 시작. 작품으로 『모두 아름다운 아이들』『낙타의 겨울』『소설, 어떻게 읽을 것인가』『스토리 텔링, 어떻게 할 것인가』등이 있음.
● 낭독_ 백석현 – 연극연출가, 배우. 연극 '개천에 용간지', '염도', '고향' 등 연출 및 출연





배달하며

집을 떠나온 지 이제 두 달 가까이 됩니다. 매일 걷고 생각하고 읽고 있는데요, 쓰는 것은 매일매일 하게 되지는 않네요. 모국어로 된 책들이 많지 않은 게 가장 불편합니다. 그래서 철학책과 시집을 그 어느 때보다 한 줄 한 줄 더 아껴 읽게 되는지도 모르겠어요.

오늘은, 불행한 사람이 일단 통찰력을 가지면 더욱 불행해지기 마련이라는 에밀 시오랑의 문장에 마음이 그만 탁 거리고 말았습니다. 기만하거나 물러설 방법이 없기 때문에 그렇다고 하네요. 자율에 대해 생각하게 되는 시간이 많아져서일까요, 『허생전』이 읽고 싶어지는 밤입니다.

문학집배원 조경란





● 출전_ 『모두 아름다운 아이들』(문학과지성사, 1996 )
● 음악_ Backtraxx - classical 2 중에서
● 애니메이션_ 박지영
● 프로듀서_ 양연식

서영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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