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지수, 『파묻힌 도시의 연인』

 

“그녀의 사랑은 마치 약혼자가 죽기를 기다렸다가 그제서야 불타오르는 것 같았다.”

 

 

한지수, 『파묻힌 도시의 연인』

 

그녀는 빼어난 미모라고는 말할 수 없었다. 늙은 건지 젊은 건지 도무지 분간하기 어려운 분위기를 가진데다가 손이 작고 손목은 가냘팠다. 야윈 듯한 뺨은 얼핏 그늘을 이루었는데, 아래로 처진 윤기 도는 입술이 그것을 떠받쳐주고 있었다.
그 당시 플로시아에게는 약혼한 군인이 있었다. 그러나 다음 날 스테파누스가 그녀의 집으로 찾아가서 말했다. 보름 후면 자신에게 시집을 와야 할 것이라고. 그녀는 낙천적이고 웃음이 많았지만 매사에 무덤덤했고, 남자에게 특별한 감정을 느껴본 적이 없었다. 그저 나이를 따라 진행되는 과정 중에 결혼이 있다고 생각했을 뿐이었다.
이상한 일은 그로부터 보름이 되기 전에 일어났다. 약혼했던 군인이 죽었다. 더욱 이상한 것은 그제야 죽은 약혼자에게 사무치는 그리움을 느끼게 됐다는 사실이었다. 그녀는 오열하기 시작했다. 죽은 약혼자의 심장이 타지 않았기 때문인데, 왠지 턱없이 부족했던 자신의 사랑 때문에 망자의 심장이 갈 길을 못 가는 듯했다.
플로시아는 그 긴 울음 끝에 걷잡을 수 없는 사랑을 발견했다. 마치 그 사랑이 약혼자가 죽기를 기다렸다가 그제야 나타난 것만 같았다. 그러나 죽음은 의문의 대상이 아니라, 겸허히 받아들여야 하는 대상이었다. 그녀는 약혼자의 뼛가루와 타지 않은 심장 조각을 은단지에 넣어서 보관했다.
플로시아는 스테파누스와 결혼을 한 후에도 마차나 노예들만 다니는 까만 돌길을 서슴없이 밟고 다녔다. 그녀는 천성적으로 신분 따위를 사뿐히 뛰어넘는 유연함이 있었는데, 위아래를 상관하지 않았다. 그녀는 특히 햇볕에 달구어진 돌을 맨발로 밟는 느낌을 좋아했다. 그것은 세탁조 안에서 세탁물을 밟는 것과 비슷한 쾌감을 주었기 때문에, 자신이 밟고 있는 것이 얼굴도 모르는 누군가의 오줌이라는 것은 아무 상관이 없었다. 그럴 때마다 그녀의 입에서는 노래가 흘러나왔고, 사람들은 어떤 뮤즈도 낼 수 없는 천상의 소리라고 생각했다.

 

▶ 작가_ 한지수 – 소설가. 1967년 경기 평택 출생. 명지대 문창과 박사과정 수료. 중편 「천사와 미모사」로 『문학사상』 신인문학상 수상. 창의적인 소재, 독특한 구성이 돋보이는 네 권의 소설집을 펴냈다. 『자정의 결혼식』 『헤밍웨이 사랑 법』 등이 있고, 『빠레, 라맛 뽀』 로 2014년 대한민국 스토리 공보 대상수상.

▶ 낭독_ 조윤미 – 배우. 연극 ‘푸르른 날에’, ‘슬픈 인연’ 등에 출연.

 

배달하며

여자를 사랑하기는 쉬워도 여자의 사랑을 얻기는 참으로 어렵다.
여자는 심장만 빼고 늘 사랑을 연기하는 배우이다.
깊숙이 감춰진 그 심장에 날아와 꽂히는 화살이 사랑과 상관없는
연민, 슬픔, 질투, 외로움, 불안이라 해도, 그것이 깊숙이 꽂히기만 하면
여자는 더 이상 연기하지 않는다. 피 흘리는 심장이 사랑 자체가 되었으므로.
그리하여, 밟고 있는 세탁조의 물이 누군가의 오줌이라 한들 무슨 상관?

문학집배원 서영은

▶ 출전-『파묻힌 도시의 연인』(네오픽션)
▶ 음악_ Stock Music /crank city2 중에서
▶ 애니메이션_ 송승리
▶ 프로듀서_ 김태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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