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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용미, 「작은 새의 죽음」

  • 작성일 2016-04-25
  • 조회수 2,308


조용미, 「작은 새의 죽음」



죽은 참새가 마당에 떨어져 있다
목련나무 아래
납작해진, 이미 며칠이 지난
새의 주검
질경이 위에 누워 있는
그 작을 것을 나는 그냥 둔다
목련나무 아래 잠든 새의 죽음을 보라고
꽃이 떨어지듯
풀이 마르듯
고요한 시간들을 그냥 두고 보려고

상복보다 더 하얀
새의 죽음
저 작은 새의 죽음만으로도
모든 봄을 기억해낼 수 있으리라
허공 속에 잠시 피어난
붉은 꽃들,
죽은 것은 더 이상 피를 흘리지 않는다

▶ 시_ 조용미 - 1962년 경북 고령에서 태어나 1990년 《한길문학》으로 등단했다. 시집 『불안은 영혼을 잠식한다』,『일만 마리 물고기가 山을 날아오르다』, 『삼베옷을 입은 자화상』, 『나의 별서에 핀 앵두나무는』 등이 있다. 김달진문학상을 수상했다.

▶ 낭송_ 성경선 - 배우. ‘한여름밤의 꿈’, ‘가내노동’ 등에 출연.

배달하며

언제부턴가 우리 시에서 ‘고요’를 만나기 어렵다. 휴지(休止, pause)는 집으로 들어 설 때 현관처럼 우리들에게 잠시 숨을 고르게 하는 중요한 부분이지만 우리의 시는 죽음이나 비극, 혹은 상실을 소리 내어 울부짖기 일수이다.
이 시는 드디어 다다른 고요한 평화, 상복보다 더 하얀 시간의 고요를 보여준다. 꽃, 풀, 모든 봄의 기억들이 작은 새의 죽음 속에 하나의 은유로 모아진다.
“삼베옷을 입은 자화상‘에서 병과 죽음의식으로 위태롭던 시인이 이 ‘작은 새의 죽음’을 지나 고요를 거치며 드디어 우레를 먹은 “소나무”가 상처를 꽉 물고 있는 것을 볼 줄 알게 된 것이다. 우레를 삼켜 소화시켜 버린 푸른 소나무의 목울대가 그 흉터가 툭 불거져 나와 구불구불…….

문학집배원 문정희

▶ 출전_ 『삼베옷을 입은 자화상』(문학과지성사)
▶ 음악_ won's music library 05 : heewon song
▶ 애니메이션_ 제이
▶ 프로듀서_ 김태형

문정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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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김 태 형
  • 2016-10-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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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김 태 형
  • 2016-09-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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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4건

  • 김재호10607

    이 시를 보니 문득 옜날에 시골에서 키운 백구가 생각이 나서 보게되었다 이시는 꽃,풀,모든 봄의기억들이 작은 새의 죽음속에 하나의 은유법으로 쓴것이 인상깊었고 이시를 보니 작은생명도 앞으로는 소중히 여기는 태도를 취해야 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시에서 가장 인상깊은 연은"허공 속에 잠시 피어난 붉은 꽃들, 죽은것은 더 이상 피를 흘리지않는다"이다. 작은생명을 소중시 여겨 이런 시를 쓴 작가가 작은 생명을 소중시 여기는것같았다.또한 작은새를 하얀털로 비유해서 표현한것이 인상 깊었다. 작은 새의 죽음을 뜻깊게 만들어주는 시엿던것

    • 2018-10-31 11:16:01
    김재호106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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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10413이주상

    작은 새의 죽음도 뜻깊게 생각하게 만들어 주는 시였다 그 작은새의 하얀 털을 상복으로 표현한것이 인상깊었고 마지막에 죽은것은 피를흘리지않는다는 말도 인상깊었다 작은 새의 주검으로 시를 쓰겠다는 생각을 한게 대단하다고 생각한다 평소에 무심코 지나칠수있는것을 이렇게 좋은 시로 만든것을 보면 나도 평소에 보았던것, 들었던것들을 뜻깊게 생각할수있을것이다 작은 생명 하나도 소중하게 생각한 모습이 정말 인상깊고 나도 앞으로 작은 생명하나라도 중요하게 생각하는 태도를 보일것이다

    • 2018-05-28 10:17:17
    10413이주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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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장준하.

    작년 학교 뒤편에서 죽어있던 새를 발견해 묻어줬던 기억이 납니다. 고요한 시 내용이 인상깊습니다!

    • 2018-05-25 03:08:35
    장준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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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포엠스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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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16-05-07 13:26:26
    포엠스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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