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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안진, 「지난겨울」

  • 작성일 2016-05-23
  • 조회수 2,110

유안진, 「지난겨울」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자기의 지난날을
자랑할 수 있을까

휴지처럼 구겨 뭉쳐
내던지고 싶은,

이미 때 늦은
그래도 한번 더……

온몸의 피를
새것으로 갈아넣고

온몸의 살을
새것으로 다져넣고

모진 단근질로 혼(魂)을 다스려
한번 더 새롭게 태어나려는

저마다의 진통과 인내
필사(必死)의 수술실

필사의 위기를
겪으며 내가 산다.

▶ 시_ 유안진 - 안동에서 태어나, 1965년에서 67년 사이에 《현대문학》에 추천을 받아 등단했다. 첫 시집 『달하』를 낸 이후 『물로 바람으로』, 『날개옷』, 『월령가 쑥대머리』, 『구름의 딸이요 바람의 연인이어라』, 『다보탑을 줍다』, 『거짓말로 참말하기』, 『알고(考)』, 『둥근 세모꼴』, 『걸어서 에덴까지』 등 여러 권의 시집을 냈다.

▶ 낭독_ 정선혜 - 배우. 연극 ‘보고 싶습니다’, ‘가족’ 등에 출연.

배달하며

‘남이 나를 헤아리면 비판이 되지만/ 내가 나를 헤아리면 성찰이 되지’라고 시인은 언젠가 노래했다. ‘나 스스로 터뜨리면 병아리가 된다’(계란을 터뜨리며)고도 했다.
‘한 눈 팔고 사는 줄은 진작 알았지만/ 두 눈 다 팔고 살아온 줄은 까맣게 몰랐다’ 라는 성찰과 자책의 싯귀도 있었다.
동전 하나를 주우며 다보탑을 주웠다고 말하는 시인은 또한 “성병에 걸렸다”고 고백하기도 한다. 만해(萬海)가 강연, 축사 등에 불려 다니며 “내가 드디어 성병(聲病)에 걸렸구나”고 탄식을 했다는 일화가 있지만 성병(性病)- (聲病)을 말놀이한 이 시 역시 시인의 다른 시편들처럼 깊은 성찰이 담겨 있기는 마찬가지다.
질기고 뻔뻔한 사람들이 우글거리고, 손가락으로 어디를 쑤시어도 편법과 악취가 새어 나오는 시대에 자연스러운 시 한편이 귀해 보인다.

문학집배원 문정희

▶ 출전_ 『너의 아픔이 나의 아픔이다』(여백)
▶ 음악_ won's music library 06
▶ 애니메이션_ 박지영
▶ 프로듀서_ 김태형

문정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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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품 출처 : 복효근 시인, 창비청소년시선 05 『운동장 편지』, 창비교육, 2016. ■ 처음 인사드리는 그대여. 한때 저는, 제가 살던 강마을 언덕에 별정우체국을 내고 싶은 마음 간절했으나 개살구 익는 강가의 아침 안개와 미루나무가 쓸어내린 초저녁 풋별 냄새와 싸락눈이 싸락싸락 치는 차고 긴 밤, 넣을 봉투를 구할 재간이 없어 그만둔 적이 있습니다. 하여, 아쉬운 맘 달래보자고 마당 입구에 빨강 우체통 하나 세우고는 이팝나무 우체국을 열기도 했습니다. 이 작은 우체국 뜰에서 시엽서를 쓰고 시배달을 나갈 생각을 하니 가슴이 풀벌레 소리처럼 떨려옵니다. 이름을 불러보는 것만으로도 가슴 떨려오는 그대여, 그대에게 있어 가장 따뜻했던 저녁은 언제였는지요? 내가 멘 가방 지퍼를 닫아주는 척 붕어빵을 넣어주던 선재를 떠올려보는 것만으로도 가슴이 따뜻해져 옵니다. 은근, 기분이 좋아져 옵니다. 가장 따뜻한 저녁이 그대에게 당도하길 바라는 간절한 마음과 우체국 마당 구절초가 가는 목을 빼고 그대 향해 피었다는 소식 전하면서 이만 총총합니다. 문학집배원 시배달 박성우 - 박성우 시인은 전북 정읍에서 태어났다. 강마을 언덕에 별정우체국을 내지 못한 아쉬움을 달래기 위해 마당 입구에 빨강 우체통 하나 세워 이팝나무 우체국을 낸 적이 있다. 2000년 중앙일보 신춘문예에 「거미」가 당선되어 작품 활동을 시작했다. 시집 『거미』 『가뜬한 잠』 『자두나무 정류장』, 동시집 『불량 꽃게』, 청소년시집 『난 빨강』 등이 있다. 신동엽문학상, 윤동주젊은작가상 등을 받았다. 한때 대학교수이기도 했던 그는 더 좋은 시인으로 살기 위해 삼년 만에 홀연 사직서를 내고 지금은 애써 심심하게 살고 있다.

  • 김 태 형
  • 2016-10-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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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김 태 형
  • 2016-09-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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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김 태 형
  • 2016-09-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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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3건

  • 10615장준원

    저는 이 시를 읽게 된 동기가 제목을 보고 과거를 성찰할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입니다. 이 시에서는 과거의 실수를 후회하지 말고 더 나아가라는 말을 하고싶은 것 같습니다. 그리고 저는 지난날의 실수를 후회만 하고있는 자신을 되돌아보고 후회보다는 지금부터 미래를 더 잘 준비해보겠다고 생각하게 되었습니다. 이 시는 과거에 얽매여 있는 사람에게 더 나아갈 수 있도록 동기부여하는 아주 좋은 시 같습니다. 자기성찰을 하게 함과 동시에 한번더 해보겠다는 마음가짐을 가지게 하기 때문에 이 시는 누구나 읽어도 도움이 될 것 같습니다. 자기성찰을 함으로써 저 자신이 성장한 것 같아 아주 기쁩니다.

    • 2018-10-31 11:08:38
    10615장준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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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11013이민재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자기의 지난날을 자랑할 수 있을까라는 구절이 정말 인상깊습니다. 많은 사람들이 자신에게 떳떳하지 못하게 산다는 점이 매우 와닿습니다. 어떤 선택을 하던, 신중하게 선택을 하던 항상 후회가 남는 것 같습니다. 후회를 하며 자신을 자책하기보다는 후회를 경험삼아 다시 일어나며 성장하는 것이 옳은 것 같습니다. 자기성찰이란 늘 쉬우면서도 어려운 것 같습니다. 자신의 모습을 뒤돌아보며 잘못된 점을 찾기란 정말 어렵습니다. 남들이 잘못하면 어떻게든 깎아내리고 물어뜯으려하지만 자신의 잘못은 눈감아주고 자신에게 관대한 저의 모습을 돌아보며 저는 또한번 성장하게 됩니다. 많은 이들의 공감을 얻어내고 계속해서 자신의 인생을 돌아보게 되는 시인 것 같습니다.

    • 2018-05-28 15:55:24
    11013이민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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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포엠스타

    마음에 힐링이 됩니다. 잘 감상했습니다. 좋은 시간 되세요.^_^

    • 2016-05-27 19:26:48
    포엠스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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