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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영은, 「허공 모텔」

  • 작성일 2016-09-12
  • 조회수 3,743

강영은, 「허공 모텔


꽁무니에 바늘귀를 단 가시거미 한 마리,
감나무와 목련나무 사이 모텔 한 채 짓고 있다
저, 모텔에 세 들고 싶다

장수하늘소 같은 사내 하나 끌어들여
꿈 속 집같이 흔들리는 그물 침대 위
내 깊은 잠 풀어놓고 싶다

매일매일 줄타기하는 가시거미처럼
그 사내 걸어 온 길 칭칭 동여맨다면
나, 밤마다 그 길 들락거릴 수 있으리

그 사내, 쓰고 온 모자 벗어버리고
신고 온 신발도 벗어던져
돌아갈 길 아주 잃어버린다면
사내 닮은 어여쁜 죽음 하나 낳을 수 있으리

그 죽음 자랄 때까지
빵처럼 그 죽음 뜯어먹으며
하늘 끝까지 날아오르는 날개 옷 한 벌
자을 수 있으리

저, 허공 모텔에 들 수 있다면,

시_ 강영은 - 1956년 제주 서귀포에서 태어났다. 2000년 《미네르바》로 등단했으며, 시예술상, 한국시문학상 수상 및 아르코문학창작기금을 수혜했다. 시집으로 『녹색비단구렁이』, 『최초의 그늘』, 『풀등, 바다의 등』 등이 있다.

낭송_ 권나연_ 배우. 연극 ‘갈매기 2013’, ‘리어왕’ 등에 출연.

배달하며

거미줄로 만든 허공 모텔? 그곳은 기억과 상상력의 공간이다. 집이 아니라 굳이 모텔인 것은 삶의 공간이 아니라 떠돌이 노마드의 공간이기 때문이다.
장수하늘소 같은 사내가 시인에게는 어쩌면 시(詩)일지도 모른다. 그러나 꿈속 집같이 흔들리는 그물 침대인 거미줄에는 모기나 날파리나 하루살이 정도가 걸려들기 도 한다. 소나기 지난 후 이슬이 걸리고 이슬 속에 하늘이 영롱하게 걸려있을 때도 가끔 있지만.

문학집배원 문정희

▶ 출전_ 『녹색비단구렁이』(종려나무)
▶ 음악_ guitar SFX 중에서
▶ 애니메이션_ 송승리
▶ 프로듀서_ 김태형

문정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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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김 태 형
  • 2016-10-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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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김 태 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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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김 태 형
  • 2016-09-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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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7건

  • 10610 박찬우

    제목이 매우 특이하여 한번 읽어보게 되었다. 화자는 감나무와 목련나무 사이에 거미줄로 지어진 모텔에 세를 들고 싶다고 말한다. 서로 다른 두 나무에 걸쳐진 거미줄처럼 화자가 머물고 싶은 허공모텔도 집처럼 계속 머무는 곳이 아닌, 잠깐 들러 휴식을 취하는, 휴가 여행지 같은 휴식처가 아닐까하는 생각이 들었다. 또한, 화자가 ‘죽음’에 대해 묘사하는 것 또한 흥미로웠는데, 마음에 드는 사내를 닮은 죽음을 낳고 그 죽음을 뜯어먹는다는 내용은 다소 심오하면서도 섬뜩하다는 느낌까지 들었다. 내 생각에는 그것은 죽음에 천천히 가까워지며 결국엔 모텔에서 쉬는 잠깐의 휴식이 아닌, ‘하늘 끝까지 날아오르는’ 영원한 휴식에 드는 것을 표현한 것 같다. 아마도 화자는 이 시에서 잠깐 머물다 가는 모텔을 노래하지만 결국엔 죽음과 같이 편안하고 영원한 휴식을 원했던 것은 아닐까?

    • 2018-10-31 11:16:52
    10610 박찬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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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10702김동석

    나는 이 시의 제목이 매우 새로워서 들어와보았다. 지금까지 본 적 없던 모텔이라는 소재를 이용한 것도 신기한데, 허공 모텔이라니, 내 호기심을 자극하는 소재였다. 저번 국어 시험 때 나왔던 '길'을 생각해보면, 화자의 집을 주막으로 설정하여 화자가 정착할 수 없는 상황이라는 것을 알려주었다. 이 시도 현대판 주막인 모텔을 화자의 집으로 설정하여 화자가 떠돌아 다니는 설정을 잡은 것이라고 생각한다. 화자는 현재 가시거미가 거미줄을 치고 있는 것을 보고 있는데, 6행에서 보면 화자가 현재 지쳐있는 것으로 보인다. 이 시를 한마디로 요약하자면, 화자는 무거운 책임감이 있는 현재에서 벗어나 이상의 공간을 원한다. 나는 이 시를 읽고 화자의 상황에 매우 공감했다. 나의 상황과 비슷하여 나는 이 시를 마치 나의 이야기처럼 보아 시에 호감을 갖게 되었다. 나는 어떻게 해야 이상의 공간으로 갈 수 있을까? 라는 생각을 하게 해준 좋은 시이다.

    • 2018-10-31 10:01:59
    10702김동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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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11013이민재

    화자가 머물고 싶은 공간을 집이 아닌 모텔로 설정한 것이 참신하고 새로웠다. 거미줄을 거미줄이라 표현하지 않고 허공 모텔이라고 표현하여 다른 곤충들이 거미줄에 걸리는 모습들을 새롭게 표현했다. 그런 모습을 보고 화자 또한 거미줄에 걸려 잠시 휴식을 취하고 싶다라는 느낌을 받았고 작가는 모텔에서의 활동의 결과를 죽음이라고 표현하였다. 이런 표현들을 통해 화자가 잠시 안식을 취할 공간을 찾고 있다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허공 모텔을 처음 봤을 때는 무슨 소리인가 싶었지만 다시 보니 새롭고 참신한 표현방법들이 인상 깊고 흥미로웠다. 아마 모든 사람들이 모든 것을 내려놓고 쉬고싶다라는 생각을 해봤을 것이다. 그런 공감을 이끌어낼 수 있는 좋은 시인 것 같다.

    • 2018-10-29 11:47:42
    11013이민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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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10707

    화자가 소망하는 공간을 집이 아닌 모텔로 설정해 떠돌이 생활을 마치고 쉰다는 느낌보다 잠시동안의 달콤한 휴식 후 다시 같은 생활을 계속할 것이라는 점을 부각한다는 것이 새로웠고 죽음을 모텔에서의 활동을 통한 결과로 해석하고 그런 것을 소망한다는 점에서 화자가 원하는 떠돌이 생활의 종착지, 즉 안식을 원한다는 것이 느껴졌다. 여러 부분에서 새로운 해석이 많아서 신기하고 신선한 느낌이 있었다. 나도 모든것을 잊고 가끔 다 내려놓고 쉬고 싶다는 느낌을 받은적이 있어서 더욱 인상깊었던 것 같다.

    • 2018-06-01 13:50:53
    107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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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이명숙

    집이 아닌 모텔로 장소를 설정함으로서 떠돈는 삶을 나타난 것이 인상적이었습니다. 거미줄을 그물침대로 생각한 점, 장수풍뎅이를 사내로 표현한 점이 이 시가 더 특별하게 느껴지는 이유인 것 같습니다. 좋은 시 잘 보고 갑니다~ 감사합니다.

    • 2017-07-10 00:00:05
    이명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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