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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선희, 「늙은 신갈나무처럼」

  • 작성일 2016-09-26
  • 조회수 2,993

양선희, 「늙은 신갈나무처럼」


몸을 침범하는 벌레를
중심을 어지럽히는 곰팡이를
속을 갉아먹는 나무좀을
그 속에 둥지 트는 다람쥐나 새를
용서하니
동공이 생기는구나
바람을 저항할 힘을 선사하는

양선희 - 1960년 경상남도 함양군 안의면에서 태어나 유년기와 청소년기를 보냈다. 서울예술대학 문예창작과를 졸업하고, 1987년 계간 《문학과비평》을 통해 시인으로 등단했으며, 1997년 동아일보 신춘문예에 시나리오가 당선되었다. 시집 『일기를 구기다』, 『그 인연에 울다』와 장편소설 『사랑할 수 있을 때 사랑하라』를 펴냈으며, 이명세 감독과 영화 의 각본을 공동으로 집필했다. 에세이로는 『엄마 냄새』, 『힐링 커피』가 있다.

낭송 - 나지형 - 배우. 성우. 연극 ‘9살 인생’, ‘대머리 여가수’, 그리고 아무도 없었다‘ 등에 출연.

배달하며

지난여름은 지독한 불볕이었다. 그 중에도 더욱 견딜 수 없는 것은 불길하고 끔찍한 뉴스들이었다. 세상 어디를 손가락으로 찔러 보아도 더러운 악취가 새어나왔다. 시정신이 없는 혼탁한 기회주의 시인을 향해 어떤 시는 “이 땅은 방부제도 썩었다”라고 탄식했다.
신갈나무는 도토리가 달린 참나무의 다른 이름이다. 그 이파리를 짚신의 신발창처럼 갈아 쓴다하여 신갈나무라 불렀다고 한다. 참나무 잎으로 신발을 갈아 신어야 할 것 같다. 온갖 설익은 말, 벌레 먹은 말, 끔찍하고 억지스러운 말, 다 가리고 크게 다시 숨 쉬고 용서하고, 가을 밤 하늘에 새로 떠오르는 처녀별 같은 그런 시가 태어나기를 기다린다. 폭력적이고 기형적인 언어의 흙탕물 속에서 싱싱한 생명의 시를 골라 배달하겠다고 했던 첫 인사말이 떠올라 가슴 아릿하다.

문학집배원 문정희

▶ 출전_ 『그 인연에 울다』(문학동네)
▶ 음악_ Tune ranch-orchstral-2 중에서
▶ 애니메이션_ Alice Jiyu
▶ 프로듀서_ 김태형

문정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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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김 태 형
  • 2016-10-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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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김 태 형
  • 2016-09-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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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김 태 형
  • 2016-09-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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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3건

  • 10620하경수

    '늙은 신갈나무' 나는 이 시를 읽으니 저 단어가 나누는걸 좋아하는 아니, 희생을 두려워 하지않는 늙은 노인분들인거 같다. 우리는 노인분들이 만들어 놓은 세상에 살아가고있다. 그들이 청춘을 받쳐 만든 세상을 살아간다는 것이다. 우리는 세상을 살아가지만, 그들에게 감사함을 느끼지 않는다. 반대로 그들도 우리가 감사함을 주기를 바라지않는다. 늙고 노쇠한 사람이 살아있다고 느낄때가 언제일까? 나는 새로운 세대와 어울리는게 그들을 살아가게 만든다고 느낀다. 시의 마지막 구절 '동공이 생기는구나 바람을 저항할 힘을 선사하는'처럼 그들은 함께있음에 기쁨을 느끼고 바람 즉, 죽음에 저항할 힘을 가지게 하는것같다.

    • 2018-10-31 10:51:20
    10620하경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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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11002 김동균

    '늙은 신갈 나무' 라는 제목을 보고서는 처음에 어떤 내용일지 몰랐습니다. 그런데 막상 읽어 보니 짧은 시 안에 큰 의미를 지녔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습니다. 늙은 신갈 나무는 말 그대로 오랫 동안 산 나무로 많은 겨울을 견뎌 내고 수많은 고비를 넘긴 나무로 생각됩니다. 또한 오래 산 만큼 크기도 크고 많은 동물들의 서식지로 사용 되겠지요. 이 시에서는 이렇게 많은 동물들이 자신의 속을 파고 들어가며 살아가는 와중 이들을 모두 용서하는 나무의 모습을 묘사하고 있습니다. 저는 이렇한 나무의 모습을 보면서 두가지를 느끼데 되었습니다. 첫 째는 시 배달자님 께서도 말한 것 처럼 폭력도 모두 용서하는 나무의 아름다운 모습이 었습니다. 두 번째로는 나 하나의 작은 희생으로도 수 많은 이들에게 도움이 될 수 있다는 사실 입니다. 이런 두 가지만 갖고도 아름다운 인생을 살아갈 수 있을 것이라 생각됩니다. 폭력도 다 용서할 수 있는 자세와 내가 갖고 있는 것들을 남에게 베풀줄 아는 자, 이렇게 살아가는 모습을 참된 아름답다고 생각하고 이렇게 살아가도록 노력 해야 겠습니다.

    • 2018-10-29 11:57:52
    11002 김동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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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포엠스타

    짧지만, 뭔가 여운이 남습니다. 좋은 시, 잘 감상했습니다. 문운과 건강을 기원합니다.

    • 2016-09-29 18:32:56
    포엠스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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