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수린, 「중국인 할머니」중에서
- 작성일 2016-10-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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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품 출처 : 백수린 소설가, 소설집 <참담한 빛> 149~150쪽, 창비, 2016
안녕하세요.
열 한 번째 문학 집배원을 맡게 된 정이현입니다.
제가 좋아하는 소설 중에 존 치버의 <다리의 천사>라는 단편이 있습니다. 어느 날 갑자기 ‘다리(bridge) 공포증’에 시달리게 된 한 남자의 이야기입니다. 늘 손수 운전하여 멀쩡하게 지나다니던 교량 앞에서, 이제 그는 차를 멈출 수밖에 없습니다. 틀림없이, 다리가 무너져 내릴 것만 같아서요. 그 불안이 얼마나 허황되고 근거 없는 것인지 스스로가 가장 잘 알지만 때론 그 근거 없음이 우리를 더욱 당혹스럽고 막막하게 하지요. 한순간 어이없이 삶 전체가 무너져 내릴 거라는 집요한 공포가 그의 삶을 송두리째 집어삼키기 직전입니다.
그 남자가 또 다시 다리 앞에서 꼼짝하지 못할 때 누군가 차문을 엽니다. 처음 보는 여자가 옆자리에 올라탄 것이에요. 여자는 다리 건너까지만 태워다 달라고 부탁합니다. 모르는 이가 부르는 평온한 노래 소리를 들으며 그는 얼떨결에 다리를 건너게 됩니다. 그리고 다리를 건넜는데도 세상이 그대로라는 것을 알게 됩니다. 가만가만 노래를 불러주고 사라져버린 그 여자는 누구였을까요? 무엇이었을까요?
저는 요즈음, 다리로 진입해야 하는 그 길에 누군가 함께 있어준다면 삶을 견디기가 조금은 낫지 않을까 생각하곤 합니다. 그리고 누군가의 옆에 있어주는, 함께 견뎌주는 일에 대해 생각합니다.
‘집배원’이라는 단어를 나직이 발음해봅니다.
모아서 잘 배달하는 사람. 한 사람이 쓴 편지를 다른 한 사람이 읽도록 전하는, 또 한 사람. 그러니까 편지 한통에는 모두 세 명의 사람이 얽혀있는 것이군요. 지금에야 그 사실을 깨닫고 무릎을 칩니다.
일 년 동안, 제가 잘 모아 전달해야 하는 것이 문장이라서, 문학이라서, 행복합니다. 작가의 문장과 독자의 문장 사이, 사람과 사람 사이를 잇는 충실한 매개체가 되겠습니다. 함께, 하겠습니다.
감사합니다.
정이현 드림
■ 배달하며
젊은 작가 백수린의 신작소설집 <참담한 빛>을 읽었습니다. 수록된 소설 ‘중국인 할머니’의 한 페이지에서 그만 멈추고 말았습니다. 바로 여기까지 읽고 난 다음입니다. 눈을 감자 어떤 노래가 들려왔습니다. 새 할머니가 부르셨다는 노래 모리화. 한 번도 들어본 적 없지만, 어떤 곡조의 음악인지 알 수 없지만, 그런 것은 중요하지 않겠지요. 그 침묵 속에서 저는 분명히 들었으니까요. 오직 저 하나 만을 위해 시간이 잠시 멈추었습니다.
이 아름다운 소설은, 한 사람과 한 사람이 아주 잠깐 닿았던 한 순간에 대해 이야기합니다. 사라진 것처럼 보이지만, 부서지지 않은 채 어딘가에 남아있습니다. 그 신비로움을 믿지 않고서 우리는 어떻게 살아갈까요. 그것이 우리가 소설을 읽는 이유라고 저는 생각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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