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해진, 「사물과의 작별」 중에서
- 작성일 2017-04-06
- 좋아요 0
- 댓글수 0
- 조회수 1,587
작품 출처 : 조해진 소설집, 『빛의 호위』, 80-82쪽, 창비, 2017년.
조해진 │ 「사물과의 작별」을 배달하며…
시작은 1971년의 늦은 봄밤이었습니다. 태영음반사 주인의 딸이었던 ‘고모’는 대학 입학을 앞두고 있었습니다. 음반사의 단골이던 대학생 서군이 그녀에게 원고 뭉치를 맡기고 사라집니다. 고모는 그것을 누군가에게 잘못 전달하였고, 얼마 후 그 남학생은 일본 유학생 간첩 조직의 일원으로 체포되는 사건이 일어납니다. 두 일 사이에 명확한 인과관계는 없습니다. 그러나 그 일로 고모는 평생 마음의 빚을 짊어진 채 살아가게 됩니다.
어떤 소설은 한 장면을 위해 존재할지도 모릅니다. 긴 시간이 흐르고 이제는 알츠하이머를 앓는 노인이 된 고모가, 역시 중병을 앓고 있는 서군을 만나러 가는 부분을 읽고 그런 생각을 했습니다. 우연한 동석자처럼 말없이 같은 텔레비전 화면을 바라보는 두 노인. 세계로부터 분실된 하나의 존재가 또 하나의 존재에게 건네는 말은 ‘미안합니다’ 입니다. 인간만이 할 수 있는 그 인사가 읽는 이의 가슴을 고요히 흔듭니다.
소설가 정이현
|
저번까지 읽은 이후로 이어보시겠어요?
선택하신 댓글을 신고하시겠습니까?
댓글0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