켄트 하루프, 『축복』 중에서
- 작성일 2018-08-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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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품 출처 : 켄트 하루프 장편소설, 『축복』(Benediction), 87-89쪽, 문학동네, 2017.
켄트 하루프 │ 『축복』을 배달하며…
저물녘, 집 앞 접이식 의자에 앉아 어스름을 바라보는 모녀가 있습니다. 그리고 우리가 ‘아는 얘기’를 하고 있군요. 이를 테면 기회와 실패, 욕망과 불안, 질병과 죽음 같은 이야기를요. 그런데 이상하죠? 이미 다 아는 얘기인데도 새삼 서운한 마음이 드는 건. 별로 놀랍지도 않은 소식에 철렁 가슴이 내려앉는 건요. 그건 아마 우리가 ‘아는’ 것과 ‘바라는’ 게 다르기 때문일 겁니다. ‘아는’ 것과 ‘겪는’ 것이 다르듯 말이지요. 켄트 하루프는 이 소설을 출간하고 일 년 뒤 숨을 거뒀습니다. 그러니 다정한 목소리로 삶의 끔찍함을 예고하는 저 어머니가 소설 말미에 마을에서 신념과 품위를 지키는 몇 안 되는 인물로 그려진 데는 다 그만한 이유가 있겠지요? 우리가 이미 아는 걸 한 번 더 알게 해주는 동시에 실은 우리가 그것에 대해 충분히 알지 못한다는 사실을 일러주는 이야기들. 작가는 그 간극이 때론 축복일 수 있다고 조용히 읊조리는 것 같습니다. 죽음을 축소하지도, 삶을 부풀리지도 않는 방식으로. 일상을 쓰다듬으면서요.
소설가 김애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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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2건
문득 엄마가 생각나는 글입니다. 이 글의 두 주인공이 되어본 적이 있죠. 나는 젊지도 늙지도 않은 중년의 나이임에도 쉬임 없이 외로웠습니다. 그리고 그 외로움을 늘 친구처럼 가지고 다녔죠. 잠을 자도 영화를 봐도 식사를 해도, 친구들과 함께 있어도...그러나 괴로울 망정 외로움을 잊고 지내고 싶지는 않더군요. 왜인지는 잘 모르겠습니다. 아마도 지금까지 나와 늘 함께여서 일 것 같습니다. 삶의 끄트머리에서 작가처럼 생각할 수 있을지 의문이지만, 그렇게 되기 전에 다시 사랑해 보고 싶은 마음도 있습니다. 좋은 글 감사합니다.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