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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끝별, 「오리엔트 금장손목시계」

  • 작성일 2018-08-30
  • 조회수 3,9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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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미지를 클릭하시면 크게 볼 수 있습니다.)[/caption]




정끝별|「오리엔트 금장손목시계」를 배달하며…



아버지는 막내딸 집에 11시 39분 28초에 멈춰선 손목시계를 두고 가셨군요. 손녀딸들과 찍은 사진 몇 장, 밤새도록 들리던 심한 기침소리와 함께요. 사랑하는 이들이 세상을 떠나고 나면 애통한 마음이 끝이 없습니다. 그들이 더 따듯한 추억을 담고 갈 수 있도록 왜 더 잘 하지 못했을까 후회가 큽니다.
그러나 떠난 이들이 원했던 건 다른 것일지도 모릅니다. 천국에 챙겨갈 좋은 추억이 아니라 이곳에 깜빡 두고 가 잃어버릴 물건들. 아버지는 정말 아끼던 오리엔탈 금장손목시계를 딸 곁에서 분실하려고 기별없이 들이닥치셨어요. 주인을 잃어버린 물건들이 우리 곁에 남아있습니다. 우리 마음속에 그 물건의 주인을 되찾아주기 위해서 말입니다.

시인 진은영


작품 출처 : 정끝별 시집, 『와락』, 창비, 2008.



문학집배원 시배달 진은영

▪ 1970년 대전 출생, 이화여자대학교 대학원 철학 박사
▪ 한국상담대학원대학교 문학상담 교수
▪ 2000년 『문학과 사회』 봄호에 시 「커다란 창고가 있는 집」 외 3편을 발표하며 작품활동 시작
▪ 시집 『일곱 개의 단어로 된 사전』, 『우리는 매일매일』, 『훔쳐가는 노래』, 저서 『시시하다』, 『천사들은 우리 옆집에 산다 : 사회적 트라우마의 치유를 향하여』, 『문학의 아포토스』, 『니체, 영원회귀와 차이의 철학』 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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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23건

  • 눈물이

    아빠와는 17년을 함께 했다.이후로 33년을 아빠 없이 살었지만 아빠와의 기억은 짙다.아빠가 돌아가신 나이를 넘기고 나니 내가 아빠보다 나이가 많아져버렸다.그래서인지 아빠로서가 아니라 인생을 살아내야했던 한 사람으로 바라보게 된다.만약 살아계신다면 어떤 모습일까 지금 나에게 뭐라고 하실까.상상을 해보곤한다.아빠의 삶을 이해할 수 있는 나이가 되고보니 안쓰럽단 생각이 든다.그래서 기도한다.그래도 아빠를 좋아했다고 잘 해드리지 못해 미안하다고.

    • 2019-05-16 12:11:33
    눈물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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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한산I

    내가 사랑하고 존경하던 할아버지께서도 생전에 금장 시계를 차셨던 것 같다. 확실치는 않지만, 갖출 것은 모두 갖추고 다니셨던 분이니 시계도 있으셨을 것이다. 화자의 그리움이 잘 느껴져서 나 또한 읽고나서 눈시울이 뜨거웠다. 화자의 아버지는 막내딸의 집에는 들르지 않았다고 하는데 너무 어리게만 봐서 부담을 주지 않으려 한 게 아닐까? 아니면 막내딸에게 뭔가 미안한 점이 있었나 숨겨진 사연이 있겠지 싶다. 시인이 연세가 많은 분이 어떻게 생활하는지, 활동하는지 직접 보고 느낀 것이 잘 드러난다. 시 속의 아버지가 갑자기 들이닥쳐 식사를 하고 손녀딸을 안고 사진을 찍는 듯한 모든 행동이 마치 앞일을 알고 행한 듯한 느낌도 든다. 그렇게 헤어짐을 준비하는 마음이란 어떤 걸까, 내가 남겨지는 게 아니라 떠나가는 입장이라면 무척 다를 것 같다. 내가 미래에 만약 부모가 된다면 자식들에게 의지하게 되는 마음은 얼마나 애틋할까 싶고 있지도 않은 자녀에게 미안하기도 하고, 괜히 고생을 시키지 않게 열심히 준비해놔야겠다는 다짐도 하게 된다. 그리고 현재에 충실한 생활을 해야겠다.

    • 2019-05-15 10:09:51
    한산I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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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쿠바토디

    당장 다음주가 엄마의 환갑이다. 환갑 기념으로 가족들과 여행을 가기로 했다. 국내여행이고, 2박 3일 여행이라 별 대단치 않은 것 같은데도 마음이 되게 복잡하다. 집에서 1시간 내외로 걸리는 인근 친척집으로 제사지내러 가는 것 외에 우리 가족들이 여행을 해 본 적이 없어서 그런 것 같다. 가족들과 처음 하는 여행이라니... 너무 기분이 묘하다. 좋다 싫다 그렇게 말하기가 어렵다. 그냥 이상하다. 나에게 가족은 이렇게 어렵다. 이렇게 아버지에 대한 시를 읽고 단상을 끄적거리는 와중에도 끊임없이 마음이 불편하다. 내 불편한 마음을 반영하는 것처럼 단상도 뚝뚝 끊기는 것 같다.

    • 2019-05-15 00:45:41
    쿠바토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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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담요19

    이 시는 굉장히 한국스러운 시인 것 같다. 막내딸의 말투는 거칠고 투박하며 아버지를 향한 미움과 아련함이 동시에 느껴지면서 ‘한’이라는 정서가 떠오른다. 오리엔트 금장손목시계를 떠올리면 자동적으로 약간 광택이 있는 갈색 톤의 티셔츠에 배 바지를 입은, 고집 세고 완고하며 감정 표현에 서툴러 많은 말들을 짜증나는 톤으로 전달하는 가부장적인 모습이 머릿속에 그려진다. 아버지가 출가 후 막내딸의 집에 들이닥쳐서 한 소통은 막내딸에게 사진 한 장 찍어둬라, 그렇게 두 번을 명령한 것이 전부였다. 매우 말수가 적고, 직선적이며, 밥상도, 천식에 대한 간호도 받기를 거부하는 모습을 보니 아버지가 무척이나 외로워 보인다. 금장손목시계의 딱딱함과 투박한 말투, 천식으로 나오는 걸걸한 기침소리가 아버지의 모습을 더 거칠고 힘들게 보이는 데에 일조를 하는 것 같다. 특히 “오매불망 오리엔트의 금도금/그냥 둬라, 방향을 잃고 두루 두절된/아버지의 고장난 유산”이라는 구절에서는 막내딸이 바라본 아버지의 인생이 함축되어 있는 것 같다. 아버지 자신의 돈으로는 차마 살 수 없었던, 그러나 오매불망했던 금도금 시계를 막내아들의 첫 월급으로 받았지만 아버지는 이미 본인을 가족들로부터 방치함으로써 방향을 잃고 두루 두절된 외로운 상태였던 것 같다. 아버지는 오매불망 무엇인가를 원하여 열심히 살아왔으나 두절되어 버렸으니 막내딸의 마음에 남겨진 것은 아버지의 고장난 모습이 아니었을까. 그리고 아버지가 그녀에게 남긴 것이 또 하나 있었으니 그것은 한밤이면 들이닥치는, 그리고 똑같이 아버지를 밤잠을 설치게 하고 어쩌면 아버지의 시간을 멈추게 한 원인이었을지도 모를 천식이다. 막내딸은 더 이상 해가 뜨지 않는 아버지의 시계를 바라본다. 그의 시계는 11시 39분 28초중에 멈추어있고 그의 세계도 그 시각의 시계(視界)에 갇혀 있다. 알 수 없는 아버지의 심리적 세계를 막내딸이 더듬어볼 수 있는 단서는 오리엔트 금장손목시계, 손녀딸과 찍은 사진 두 장, 하루에 두 번 찾아오는 11시 39분 28초, 그리고 밤마다 그녀를 찾아오는 천식이다. 왼쪽의 연에서는 “~는데”라고 문장이 반복적으로 이어져서 무엇인가 하지 못하여 한이 맺힌 듯한 느낌이 들고 오른쪽 연에서는 “~던, ~된”으로 표현되어 이미 끝나버린 일이라는 느낌을 준다. 아버지와 막내딸 모두 무엇인가 하고 싶었는데 하지 못하여 한이 맺힌 것 같지만 이미 끝나버린 일이라 그들은 그렇게 서로 두절된 상태로 남아버렸다. 그래도 아버지가 남긴 시계, 사진, 시간, 병증으로 막내딸은 수많은 이야기를 만들어낼 수 있으니 다행이라는 생각도 든다. 사람이 죽어서 천국에 가고 극락에 간다는 것을 누군가에게 좋고 행복하게 기억된다는 의미로 해석하는 나는, 막내딸이 이어갈 아버지의 이야기 속에서 멈추어 버린 아버지의 시계가 부활하고 환생할 수 있다고 믿는다. 막내딸은 이 시를 접하는 사람들의 머릿속에 "오리엔탈 금장손목시계"라는 아버지에 대한 이야기 씨앗을 심었다. 나에게도 그 아버지에 대한 이야기가 이렇게 하나 더 생겨나지 않았나.

    • 2019-05-14 22:37:57
    담요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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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그린북

    늙으신 아버지가 막내딸 결혼 15년만에 처음으로 딸네 집에서 하룻밤을 주무시던 밤, 맛있는 저녁 한 끼와 손녀딸을 품에 안고 찍은 사진 한 장은 멈춰버린 아버지의 오래된 오리엔트 금장손목시계속 11시 39분 28초에 박제되서 오래도록 딸의 가슴속에서 기억될 것이다. 그리하여 천식의 유전을 물려받은 딸이 한밤중에 일어나서 마치 유품처럼 남겨놓으신 아버지의 오리엔트 금장시계를 물끄러미 바라보며 아버지를 생각할 것만 같다. 그래서 화자에게는 사진 속 아버지가 여전히 11시 39분 28초중이시다. 나에게 '아버지'란 호칭은 거리감 있게 느껴져서 어색하다. ‘아빠’라는 호칭으로 부르는 게 더 편하고 좋다. 언젠가 아빠와 이별하는 날이 온다면, 내게도 오래도록 아빠를 떠올릴 수 있는 소중한 물건이 있었으면 좋겠다. 그래서 자다가 깬 한밤중이라도 물끄러미 쳐다보기도 하고 만져보기도 할 수 있었으면 좋겠다. 아빠의 물품으로나마 아빠의 빈자리를 대신하듯, 나는 아빠를 기억하고 또 기억하고 싶다. 내가 호호할머니가 되어서도 나는 여전히 아버지가 아닌 아빠의 철부지 딸이고 싶다. 내가 가장 아이같은 모습으로 마주할 수 있는 세상의 단 한 사람, 우리 아빠니까...

    • 2019-05-14 21:26:21
    그린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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