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송승환, 「클로로포름」

  • 작성일 2018-09-27
  • 조회수 3,1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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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미지를 클릭하시면 크게 볼 수 있습니다.)[/caption]




송승환|「클로로포름」을 배달하며…



우리는 정신 차리고 똑바로 걸으라는 말을 자주 듣습니다. 그러나 단테는 『신곡』의 천국편에서 철학자 아퀴나스의 입을 빌어 다르게 말합니다. “부디 ‘네’와 ‘아니오’를 앞에 두고 가늠하다 지친 사람처럼 느리게 움직이도록 당신 발에 추를 달기 바랍니다.”* 삶이 던지는 물음 앞에서는 성급한 긍정과 부정을 내려놓고 지친 사람처럼 걸어보세요. 그렇게 걸으며 사물과 사람들을 만날 때, 그들은 연기처럼 풀리며 내 속으로 스며들 거예요.
시인은 우리에게 견고한 세계를 기화시키는 법을 가르쳐 주는 것 같습니다. ‘잠시라도 클로로포름에 취한 듯, 긴장을 풀고 움직여 봐. 그리고 천천히 둘러봐. 그러면 의식의 습관이 깨어진 틈 사이로 당신은 처음 보는 미소와 푸른빛을 만나게 될 거야.’

* 단테. 「알리기에리」, 『신곡3』, 박상진 옮 옮김, 민음사, 2013.

시인 진은영


작품 출처 : 송승환 시집, 『클로로포름』, 문학과 지성사, 2011.



문학집배원 시배달 진은영

▪ 1970년 대전 출생, 이화여자대학교 대학원 철학 박사
▪ 한국상담대학원대학교 문학상담 교수
▪ 2000년 『문학과 사회』 봄호에 시 「커다란 창고가 있는 집」 외 3편을 발표하며 작품활동 시작
▪ 시집 『일곱 개의 단어로 된 사전』, 『우리는 매일매일』, 『훔쳐가는 노래』, 저서 『시시하다』, 『천사들은 우리 옆집에 산다 : 사회적 트라우마의 치유를 향하여』, 『문학의 아포토스』, 『니체, 영원회귀와 차이의 철학』 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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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13건

  • 10209 박재홍

    사람들이 들이고 내쉬는 숨에서 그녀가 떠오른다는 것은 떠나버리거나 이별을한 임을 생각하면 그리워하는 시적화자의 비애와 슬픔이 내 마음 속에 잘 와닿는다. 그리고 시적화자가 얘기하고 있는 대상이 꼭 사람한테 말하고 있는 것이 아니라 사물한테 말하고 있는 느낌이 들어서 인상적인 점도 있다. 사람들의 숨속에서 '그녀'가 떠오르는 후에 여러 현상들을 마주하면서 클로로포름이라는 마취제에 잠이들어 꿈속에서 나타나는 현상일수도 있겠다는 짐작을 조심스럽게 해본다. 꿈속에서 하는 행동들이 모두 임을 그리워하는 시적 화자의 마음이 드러난 것 같다. 나도 이 시를 보고 나서 잠시나마 꿈속에서 내가 그리워하던 것들을 생각해볼 수 있게 해주었던 것 같다.

    • 2018-11-05 08:56:17
    10209 박재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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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10102곽연준

    마취제가 정맥주사관을 통해 들어오는 순간, 혈관을 타고 온몸이 마비되는 느낌이 퍼지면서 내 정신은 순식간에 아득한 곳으로 떨어진다. 강력한 마취제에 내가 정신을 잃는 것과 그녀를 보았을 때의 경이로움이 비교가 되어서 느껴지는 것 같다. 삭막하고 어지로운 세상 속에서 나의 희망이 되는 존재인 그녀 덕분에 행복감을 느끼는 화자를 보아서 좋았다. 힘든 일들, 견디기 힘든 시기를 견디면서 세상을 살아가는 우리의 모습과 화자의 모습이 겹치면서 희망의 존재를 갖고 살아가야 하는 이유를 느꼈고 앞으로 힘들고 포기하고 싶을 때 클로로포름 같이 중독성 있는 목표를 생각하면서 희망적이고 도전적으로 살아가야겠다고 다짐하게 되었다.

    • 2018-10-31 13:32:47
    10102곽연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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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홍석찬 10720

    처음에는 클로로포름이 물에 빠져 말하지만 잘 들리지 않는 것을 꼬르륵 꼬르륵 처럼 표현한 의성어인 줄 알았습니다. 아이 시를 읽으면서 클로로포름이라는 것에 대해 궁금하여 찾아보면서 수면제라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클로로포름에 취하면서 내가 사랑한던 임을 잠시나마 떠올리게 됩니다. 그녀의 휘날리는 머리카락을 바라보면서 얼굴이 붉어지고, 그녀만 보면 긴장하게 되어 들리는 모든것이 차단되는 것을 표현한 것 같았습니다. 마치 물 속에 빠진 것처럼. 그리고 귀먹어리가 된 것 처럼 웃을 수 밖에 없는 것을 보며 풋풋한 사랑을 느낄 수 있어 좋았습니다. 그녀와 얘기하고 싶지만 차마 꺼낼 수 없는 제가 처음 클로로포름에 대해 생각한 것 처럼요.

    • 2018-10-31 10:08:27
    홍석찬 107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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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푸른상아

    소감을 올리는 마감시간이 다가오고 있다. 미루다 겨우 몇 자 적고 있다. 시가 도저히 읽히지 않는다. 다른 시인님들의 감상에서는 동감할 수 있는 것이 이 시로 돌아오면 여지없이 멈춰버리고 만다. 술에 취한, 잠에 취한 내 모습을 떠올리며 시에 닿으려 노력했지만 그건 지금의 나의 마음에서는 진실하지 않은 것 같다. 전신마취하고, 수면 내시경 경험도 있지만 완전히 의식의 상태에서 완전히 비켜나는 것이니 이 시의 느낌과는 또 다른 것 같다. 뭘까.... 나는 이런 상태를 두려워하고 있었다. 의식을 완전히 잃지 않은채 내게 침투하는 것들을 어떻게 할 수 없는 상태를 두려워하고 있다. 이건 아주 오랜 전 겪은 일로 인해 생긴 내 몸의 반응이다. 내 몸은 잊지 않고 여전히 기억하고 있다.

    • 2018-10-08 09:16:07
    푸른상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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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우주미아

    무서운 속도 장만호 다큐멘터리 속에서 흰수염고래가 서서히 가라앉고 있다 죽어가는 고래는 2톤이나 되는 혀와 자동차만한 심장을 가지고 있다고 내레이터는 말한다 자동차만한 심장, 사람이 들어가 앉을 수도 있는 심장. 나는 잠시 쓸쓸해진다. 수심 4,821미터의 심연 속으로 고래가 가라앉으면서 이제 저 차속으로는 물이 스며들고 엔진은 조금씩 멎어갈 것이다. 그때까지 마음은 어느 좌석에 앉아있을 것인가. 서서히 죽어가는 고래가 저 심연의 밑바닥으로 미끄러지듯이 가 닿는 시간과 한 번의 호흡으로도 30분을 견딜 수 있는 한 호흡의 길이 사이에서, 저 한없이 느린 속도는 무서운 속도다. 새벽의 택시가 70여 미터의 빗길을 미끄러져 고속도로의 중앙분리대를 무서운 속도로 들이받던 그 순간 조수석에서 바라보던 그 깜깜한 심연을, 네 얼굴이 조금씩 일렁이며 멀어져 가고 모든 빛이 한 점으로 좁혀져 내가 어둠의 주머니에 갇혀가는 것 같던 그 순간을, 링거의 수액이 한없이 느리게 떨어지는 것을 보며 나는 지금 가물거리는 의식으로 생각하고 있다 마음아, 너는 그때 어디에 있었니 고래야, 고래야 너는 언제 바닥에 가 닿을 거니 '심연의 바닥으로 떨어져버리고야 말때, 등을 돌리고 내보인 내 왼쪽 뺨도 붉어지기를.'

    • 2018-10-08 05:01:13
    우주미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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