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제 사라마구, 『눈 먼 자들의 도시』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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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제 사라마구│『눈 먼 자들의 도시』를 배달하며…

 

 

    영화나 소설, 만화 속 식사 장면 좋아하시나요? 저는 좋아합니다. 특히 주요 인물들이 오랜 결핍 끝에 무언가 먹는 순간을요. 소설 <우리가 볼 수 없는 모든 빛>의 복숭아통조림이라든가 영화 <건지 감자껍질 북 클럽>에 나오는 돼지바비큐 장면 등이 그렇지요. 한 번은 2차 세계대전 당시 곤궁과 허기를 그린 소설을 읽다 도저히 참지 못하고 새벽에 식빵을 구워먹은 적도 있네요. 그런데 만일 누군가 ‘당신이 읽은 소설 중 무언가 먹는 장면을 가장 인상적으로 그린 작품이 뭐냐?’ 묻는다면 저는 이 부분을 꼽을 것 같습니다. 진수성찬도 산해진미도 아닌 아주 깨끗한 물 한 잔. 갓 딴 생수가 투명한 유리잔에 담겨 별처럼 반짝이는 모습을요. 수도와 전기가 끊겨 문명이란 걸 찾기 힘든 도시에서 눈 먼 채 수년 간 생고생한 이들이 정말 어디서도 구하기 힘든 생수를 발견하곤, 그 물을 크리스털 잔에 담아 격식을 차려가며 천천히 들이켭니다. 아름다운 잔에 담긴 물을 보며, 그저 물일 따름인 액체를 애써 그런 방식으로 마시는 이들을 보며 ‘그래, 인간은 이런 존재지, 이러기도 하는 동물이지’ 끄덕인 기억이 나네요. 좀 엉뚱한 결론이지만 그 뒤 저는 물이든 차든 술이든 꼭 컵에 따라 마시는 걸 애호하는 사람이 됐답니다. 물론 그 덕에 설거지는 좀 늘었지만요.
 

소설가 김애란

 
 
작품 출처 : 주제 사라마구 장편소설, 정영목 옮김, 『눈 먼 자들의 도시』, 389-391쪽, 해냄, 2002.

 
 
 

문학집배원 문장배달 김애란

• 1980년 인천 출생, 한국예술종합학교 연극원 극작과 졸업
• 소설집 『바깥은 여름』, 『달려라. 아비』, 『비행운』, 『침이 고인다』, 『서울, 어느 날 소설이 되다』, 장편소설 『두근 두근 내 인생』 등