권여선, 「손톱」 중에서
- 작성일 2020-04-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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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여선의 「손톱」을 배달하며
때론 숫자를 읽는 일도 이렇게 슬플 수 있지요. 스물한 살 소희의 삶은 온통 숫자로 채워져 있습니다. 통근버스를 타고 있을 때나 늦은 밤 '24시간 짜장 짬뽕'집에 들어갔을 때나 소희는 언제나 계산을 하고 숫자로 상황을 판단합니다. 사람은 떠나도 숫자는 정직하게 남는 법. 엄마도, 언니도, 똑같이 빚만 남겨 놓은 채 사라진 소희 앞엔 숫자의 구체성만 오롯이 살아 있습니다. 어쩌자고 작가는 이렇게 아픈 인물을 우리 앞에 데려다 놓은 걸까요? 힌트는 아마도 '얼어죽을 냉동치료'에 있겠죠. 그냥 '냉동치료' 해도 되는데 작가는 굳이 '얼어죽을'을 붙였습니다. 그러니까 그때 작가는 너무너무 속상했던 겁니다. 아마도 그냥 소희가 되어버렸겠지요. 같이 속상해하며 같이 욕을 하고 싶었던 거겠죠. 그러니 이 소설을 쓸 수밖에 없었던 거겠죠.
'상하차'하는 마음으로 집배원 일을 시작합니다. 엘리베이터 없는 곳이라도 차근차근 계단을 밟고 올라가겠습니다. 부디, 경비실에 맡겨달라는 말만은 하지 말아주세요.
소설가 이기호
작가 : 권여선
출전 : 「손톱」, 『아직 멀었다는 말』. (문학동네. 2020) p71~p7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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