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으로 바로가기 주메뉴 바로가기

문태준, 「어두워지는 순간」

  • 작성일 2020-09-17
  • 조회수 2,718






문태준 ┃「어두워지는 순간」을 배달하며


프랑스 사람들은 ‘개와 늑대의 시간’이라고 하지. 내가 기르는 개인지 나를 해칠 늑대인지 분별할 수 없는 시간. 모든 것의 실루엣이 흐려지고 뭉개지는 시간. 그래서 개이기도 하고 늑대이기도 하고 나무이기도 하고 사람이기도 한, 그 모든 것이 되는 시간. 어두워지는 순간은 그런 시간이지. 그리고 저물녘 노을의 아름다운 회오리를 보고 있으면, 여기 한 시인과 같이 우리도 “오래오래 전의 시간과 방금의 시간과 지금의 시간을 버무린다는 느낌”이 들지. 세상의 모든 사물과 모든 시간이 버무려지는 ‘순간’. ‘영원성’이 현현하는 ‘순간’. 그러므로 늑대처럼 오래 우는 저 한 마리 개는 “다른 개의 배에서 머무르다 태어나서 성장하다 지금은 새끼를 밴 개”로 울고 있는 것이다. 그러므로 어두워지는 순간에는 내가 모르는 당신의 모든 시간을 문득 살아본 것 같은 기분이 드는 것이다. 그러므로 어두워지는 순간에는 우리의 작은 영혼에도 커다란 용서가 머무는 것이다.


시인 김행숙


작가 : 문태준

출전 :『맨발』(창비, 2004)



김행숙

댓글 남기기

로그인후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

여러분의 생각을 남겨 주세요!

댓글남기기 작성 가이드

  • 타인에게 불쾌감을 주는 욕설, 비방 등은 삼가주시기 바랍니다.
  • 주제와 관련 없거나 부적절한 홍보 내용은 삼가주시기 바랍니다.
  • 기타 운영 정책에 어긋나는 내용이 포함될 경우, 사전 고지 없이 노출 제한될 수 있습니다.
0 / 1500

댓글0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