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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언희, 「트렁크」

  • 작성일 2020-11-05






김언희 ┃「트렁크」를 배달하며


나는 이따금 은밀하게 이런 꿈을 꾼다. 거대한 가방이 필요한 긴 여행을 떠난다. 나는 다시 돌아오지 않을 작정이다. 커다랗고 무거운 가방을 끌고 다니느라 나는 점점 지친다. 그러다가 나는 가방의 크기를 줄여나가게 된다. 차츰 몸피가 졸아 들어가던 가방이 마침내 한 점 빛처럼 사라지는 곳에서 나는 과거를 전생처럼 끊고 새로운 내생의 삶을 살아가는 것이다. 내가 모르는 내가 살아가는 곳을 꿈꾸는 것이다. 그러나 꿈을 깨면 언제나 거대한 가방은 남아 있다. 커다란 트렁크처럼 “이렇게 질겨빠진, 이렇게 팅팅 불은, 이렇게 무거운” 나는 “수취거부로 반송되어져” 있다. 버려도 버려도 버려지지 않는 이 가방을 나는 어디든 끌고 다녀야 하는 것이다.


시인 김행숙


작가 : 김언희

출전 :『트렁크』(세계사, 199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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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인찬 , 「법원」

황인찬 ┃「법원」을 배달하며 할머니의 세월을 생각해본다. 아침마다 양동이에 쥐덫을 빠뜨리고 그것이 죽을 때까지 흔들리는 물을 가만히 바라보던 할머니. 죄를 지으면 저곳으로 가야 한다고, 언덕 위의 법원을 가리키던 할머니. 일상의 잔혹에는 무감각하고 권력의 상징에는 공포심을 내면화한 영혼, 그것은 근대사와 현대사가 훈육하고 길들인 우리의 영혼이다. 그러나 쉿, 법원이라는 이름의 상징 권력에 포획되면, 물에 빠진 쥐처럼 버둥거리다가 쥐도 새도 모르게……. 그런 소문이 사람들의 입을 틀어막던 세월이 있었다. 근대사의 유령 같은 그 세월의 그늘 속에서 우리는 자라서 어른이 되었다. 2020년 코로나19 펜데믹의 정세 속에서 다시 베스트셀러로 회귀한 까뮈의 소설 『페스트』를 읽는데 죽은 쥐가 밖으로 기어 나왔다. 이제 할머니도 안 계시는데, “저 차갑고 축축한 것을 어떻게 해야 하나”, 나는 황인찬의 질문을 떠올렸다. 시인 김행숙 작가 : 황인찬 출전 :『구관조 씻기기』(민음사, 2012)

  • 2020-12-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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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해욱 ┃「보고 싶은 친구에게」를 배달하며 “우르르 넘어지는 볼링핀처럼/ 난 네가 좋다”라는 말, 그 말이 참 좋다. 열두 살 아이들의 까르르 웃음소리가 들리는 말이다. 네가 나를 향해 다가오면, 나는 “우르르 넘어지는 볼링핀처럼” 기꺼이 내 울타리를 치우고 네게로 활짝 열렸다. 그때 나는 네가 좋아서 나도 모르게 너의 글씨체로 노트를 채우는 아이가 되었지. 너에게 나를 다 빌려줄 수 있어. 그렇게 너를 좋아하는 마음으로 빵빵한 시절이었는데, 너는 홀연히 이 풍경에 검은 구멍을 내고 사라져버렸어. 오늘은 보고 싶은 내 친구에게 너의 글씨체로 “안녕, 친구”라고 인사를 건네며 편지를 쓴다. 너의 글씨체처럼 너의 목소리 너의 웃음 너의 손이 나를 다 가져갔으면 좋겠다. 그렇게 나는 너의 답장을 쓰고 싶다. 그런 마음이 시를 쓰게 하는 것 같아. 나는 오늘도 너의 글씨체로 시를 쓸 것 같아. 시인 김행숙 작가 : 신해욱 출전 :『생물성』(문학과지성사, 2009)

  • 2020-12-03
김사인 , 「달팽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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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20-11-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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