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준영, 『들소』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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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준영 「들소」를 배달하며

 

    때론 문장만으로도 탄복하게 되는 소설이 있습니다. 저에겐 기준영의 소설들이 그러한데, 그가 들려주는 이야기를 들을 때마다 ‘문장이 작가의 손을 떠난 것’만 같은 느낌을 자주 받습니다. 이 단편 또한 예외는 아니었습니다. 소설의 화자는 초등학생인 ‘고푸름’. 현재 엄마와 단둘이 살고 있는 소녀죠. 그들 모녀가 거의 공짜로 세들어 살고 있는 주인집 할머니는 오래전 둘째딸을 잃어버린 아픈 상처를 지니고 있습니다. 무용을 했던 이에스더. 열여섯 살에 스위스에서 실종된, 할머니의 둘째딸 이름이 이에스더입니다. 고푸름은 할머니 앞에서 딱 한 번 이에스더가 된 적이 있었습니다. 그리고 이제 자신의 남자친구였던 길우도 되어봅니다. 내가 아닌 누군가가 되어본다는 것은 내가 짐작할 수 없는 아픔과 정면으로 마주하는 일. 그건 정말 쉬운 일이 아니죠. 느닷없이 우리를 향해 돌진하는 들소를 받아들이는 일과 같을 테니까요. 그 들소를 피하지 않고 바라볼 용기를 낸 건 아마도 이에스더가 되어본 경험 때문일 것입니다. 운명에 대한 아름다운 우리 문장 하나를 새롭게 마주한 기분입니다.

 

소설가 이기호

 

작가 : 기준영

출전 : 『사치와 고요』 p218~p220. (문학과지성사. 20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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