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정현, 「오늘의 일기예보」 중에서
- 작성일 2020-11-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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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정현 「오늘의 일기예보」를 배달하며
소설은 어떤 쓸모가 있을까요? 종종 혼자 생각해볼 때가 있습니다. 오늘 당장 소설이 사라진다고 해도 별 문제는 없지 않을까? 소설이 사라진다고 해서 모두의 소득이나 건강, 명예나 기후에는 아무런 지장이 없을 테니까 말이죠. 하지만 그래도 소설이 잘하는 것이 하나 있습니다. 그건 다름 아닌 ‘기억’이죠. 특히 보잘 것 없어서 잊혀지고, 잊어버리고 싶어 잊어버린, 작고 연약하고 이름 없는 것들을 떠올리는데 선수입니다. 소설가 한정현의 첫 소설집은 그런 기억들로 가득 채워져 있습니다. 모두 대문자 역사에서 누락된 소수자들의 이야기죠. 애도되지 못한 존재들을 기억한다는 것은 어떤 의미일까요? 여러 생각이 오갈 수 있지만, 아마도 그건 사랑의 맹세 같은 것일 겁니다. 사랑을 포기하지 않고 간직한다는 것, 내 안에 그 사람을 함부로 정의하지 않겠다는 의지. 시를 좋아했고, 시인도 좋아했지만 모두를 위해 기꺼이 혁명도 함께 한 고모. 그 고모를 복원하고 기억하는 조카의 마음이 청량한 공기처럼 소설 전면에 골고루 퍼져 있습니다.
소설가 이기호
작가 : 한정현
출전 : 『소녀 연예인 이보나』 p108~p110. (민음사. 20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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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aption id="attachment_273042" align="center" width="640"] (※ 이미지를 클릭하시면 크게 볼 수 있습니다.)[/caption] 박형서 「실뜨기놀이」를 배달하며 가끔 이야기 그 자체만으로도 흥미진진한 소설을 있습니다. 제겐 박형서의 많은 소설이 그런 경우인데요, 이번엔 국내 최초로 달라이라마 이야기를 들려주네요. 의정부 가능동에 살고 있던 어린 아들 성범수가 만약 환생한 16대 달라이라마라면? 그래서 그 아이를 티베트로 보내야 한다면? 부모는 어떤 선택을 하게 될까요? 또 그렇게 아들을 보내고 나면 부모는 어떤 마음이 될까요? 언젠가 박형서 작가는 ‘이야기는 흥미로워야 하고, 말이 되어야 하고, 의미심장해야 한다‘라고 쓴 적이 있습니다. 아들이 환생한 달라이라마라는 흥미로운 이야기를 이렇게 믿을 만하게, 또 마지막엔 이다지도 가슴 먹먹하게 쓴 것을 보니 자신의 말에 책임을 지는, 은혜 갚은 두꺼비 같은 작가라는 생각이 듭니다. 도대체 뭘 먹으면 이런 상상력을 갖게 되는 걸까요? 매일 청경채를 먹고 싱잉볼 같은 걸 곁에 두고 사나? 의심도 됩니다. ‘수많은 이어짐과 끊어짐과 만남과 이별’을 슬퍼하지 않고 다르게 이야기할 수 있는 작가, 우리에겐 박형서가 있습니다. 소설가 이기호 작가 : 박형서 출전 :「실뜨기놀이」 (한국문학. 2020 하반기) p36~p37.
- 2020-12-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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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0-11-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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