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한아, 「잉글리시 하운드 독」 중에서


 
정한아 「잉글리시 하운드 독」 중에서
 
나중에는 누가 먼저랄 것도 없이 눈싸움을 시작했다.
만신창이가 된 몰골로 눈밭에서 굴렀다.
그들은 미친 사람들처럼 웃었다.
미연도 웃을 수 밖에 없었다.
바람이 심장을 통과해서 지나가는 듯한 느낌이었다.
그렇게 눈밭에 누워 한참 웃다가 마침내 웃음 소리가 잦아들었다.
 
"나는 부자가 될 거야."
성재가 진지한 목소리로 말했다.
"커다란 저택에 살면서 커다란 개를 키울 거야.
개를 가지는 게 어렸을 때부터 소원이었거든."
 
작가 : 정한아
출전 : 『술과 바닐라』 (문학동네, 2021) p.31-p.33

 

 

정한아 「잉글리시 하운드 독」을 배달하며

 

    다정하고 따뜻했던 마음은 언제 흐트러질까요. 어떤 관계든 몹시 허기지고 추운 날을 맞게 되기 마련입니다. 사이가 괜찮았을 때는 눈썰매를 타는 것처럼 붕 떠올랐던 마음이 어느 순간 아득하게 아래로 꺼져 버리죠. 그럴 때면 상대가 미워진 나머지 모든 걸 상대 탓으로 돌리고 싶어집니다.
    마음이 식고 나서야, 헤어질 때가 되어서야, 관계가 나빠지고 나서야, 사람들은 우리가 얼마나 다른 줄 아느냐고 질문합니다. 마치 다른 사람인 줄 몰랐던 것처럼요. 마음이 두터울 때는 서로 다른 게 미덕이 되지만 마음이 희박해지면 어느 것도 참을 수 없어집니다.
    “우린 모두 자기만의 개를 가지게 될 거야.”
    눈밭에 외친 이 소망처럼 우리는 모두 무엇인가 가지게 될 겁니다. 커다란 저택일 수도 있고 커다란 개일 수도 있고 운이 좋다면 둘다 가질 수도 있을 겁니다. 하지만 이 말은, 우리가 갖게 될 미래를 가리키는 말이 아니라 언젠가 우리가 잃게 될 것을 예언하는 것으로 들립니다. 사는 동안 우리는 뭐든 잃어갈 테니까요. 커다란 저택일 수도 있고 커다란 개일 수도 있고, 어쩌면 둘다 잃을 수도 있습니다. 그럴 경우 대개는 가까운 마음도 함께 잃고 맙니다..

 

소설가 편혜영

 

작가 : 정한아

출전 :『술과 바닐라』 (문학동네, 2021) p.31-p.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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