브리스 디제이 팬케이크, 「번번이」 중에서


 
「번번이」 중에서 - 브리스 디제이 팬케이크
 
찬 공기는 여전하고 싸라기눈은 내 야구 모자를 때리며 목깃 속을 파고든다. 내 돼지들이 저희한테 밥을 주러 오는 줄 알고 축사에서 꿀꿀거리는 소리가 들린다. 저 끔찍한 잔반보다는 나은 걸 먹여야 하지만 내 아들이 무사한지 확인하기 전에는 그럴 수가 없다. 나는 가서 들여다보지 말라고, 내가 생전 죽이질 않으니까 돼지들이 마냥 꽥꽥거린다고 아들한테 말했었다. 녀석들이 늘 꽥꽥거리는 건 복에 겨워서인데도 아들은 그걸 가서 들여다보았다. 그러더니 어디론가 급히 도망갔다. 
 
작가 : 브리스 디제이 팬케이크
출전 : 『브리스 디제이 팬케이크 소설집』 (섬과달, 2021) p.129-p.131

 

 

브리스 디제이 팬케이크 「번번이」 를 배달하며

 

    이 작품은 원제인 'Time and again'을 ‘번번이’라고 번역해 제목으로 삼았습니다. ‘번번이’는 매번 같은 일이 반복될 때 사용하는 부사입니다. 빈도를 나타내는 말이면 ‘여러 번’도 있고 ‘매번’이나 '몇 번이고'도 있는데, 어째서 ‘번번이’를 제목으로 삼았을까요.
    표준국어대사전의 용례를 참고하면 이 말에는 '약속을 번번이 어기다'나 '시험에 번번이 낙방하다'와 같이 어떤 일의 실패가 되풀이된다는 뉘앙스가 담긴 듯 합니다. 여러 부사 중에서 어째서 ‘번번이'를 제목으로 삼았을지 작품을 읽으면서 짐작해보셔도 좋을 듯 합니다. 좋은 소설은 여러 말의 뉘앙스 차이를 발견하게 해주니까요.
    이 소설에는 연쇄살인범이 나옵니다. 그렇기는 해도 피도 눈물도 없는 잔혹한 살인 사건이나 냉혹한 사이코패스를 다룬 소설은 아닙니다. 오히려 고독에 관한 소설에 가까워요. 운전석 옆에 스패너를 숨겨두고 다니는 사람이 나오지만 긴장감이나 불안감, 공포보다는 쓸쓸함이 느껴집니다. 그 사람이 법면에 벽처럼 쌓인 눈을 제설차로 헤치며 다니는 모습을 상상해 보면 문득 외로운 기분도 들고요. 이런 기분은 주인공이 도망간 아들에게 쓰는 편지가 매번 반송되기 때문이기도 하고, 함께 일하는 위크스 씨에 대해서 아는 게 전혀 없기 때문이기도 합니다.
    겨울밤의 찬 입김처럼 쓸쓸함과 옅은 한기가 짧게 퍼져나가는 소설입니다. 이런 소설에는 번번이 마음을 뺏기게 되지요.

 

소설가 편혜영

 

작가 : 브리스 디제이 팬케이크

출전 :『브리스 디제이 팬케이크 소설집』 (섬과달, 2021) p.129-p.1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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