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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은지, 「생존 수영」

  • 작성일 2021-10-21
  • 조회수 2,182




 생존 수영 -박은지 우리는 많은 일을 함께했지 너에게 수영을 배운 건 정말 잘한 일이야 평소엔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았지만 내가 가진 숨은 이 정도라는 것 깊이 가라앉을 수 있다는 것 눕기만 하면 돼, 동작이나 호흡 같은 건 중요하지 않아 별일 아니라는 태도 덕분에 두 손은 어깨를 밀고 내가 물에 뜰 줄 몰랐어 물 밖으로 얼굴을 내밀고 이곳저곳을 돌아다녔다 웃음을 참지 못하는 사람들 그 틈으로 흐르는 구름과 쏟아지는 별 아무렇게나 휘저어도 어디론가 나아가는 팔과 다리, 그을린 얼굴 숨을 뱉으면 들이마실 수 있다 길에서는 가라앉지 않는다 살아 있는 사람처럼 길을 걷는다 별일 아니라는 듯이 작가 : 박은지 출전 : 『여름 상설 공연』 (민음사, 2021)



박은지 ┃「생존 수영」을 배달하며


자유형이나 평영 접영 배영 등 다른 수영법과는 근본적으로 다릅니다. 특정한 지점까지 최대한 빨리 도착하거나 더 멀리 헤치고 나아가는 것을 목표로 하는 것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다만 머무는 것. 다급함 없이 최소한의 힘을 쓰는 것. 숨을 쉬는 것. 그러다 여력이 닿으면 누구를 도울 수도 있는 것. 이것이 생존 수영의 목표입니다. 방법은 간단합니다. “눕기만 하면” 됩니다. 그러고는 숨을 뱉었다가 들이마시는 것입니다. 무엇보다 이 생존 수영은 “별일 아니라는” 태도가 중요합니다.
이 수영법이 꼭 사는 법처럼 생각됩니다. 빠르게 헤치고 나아갈 힘도 남아 있지 않고, 내가 닿아야 할 곳도 보이지 않지만 오늘도 우리는 “살아 있는 사람처럼” 살아가야 합니다. 가을에는 살아 있는 것만으로도 충분한 날들이 있다고 믿으면서. 숨을 천천히 뱉고 마시는 일을 반복하면서. 그 무엇도 “별일 아니라는 듯이”


시인 박준


작가 : 박은지

출전 : 『여름 상설 공연』 (민음사, 2021)



박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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