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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솔아, 「초파리 돌보기」 중에서

  • 작성일 2022-03-03
  • 조회수 1,847


초파리 돌보기 중에서 - 임솔아

지유는 원영에게 매일 전화를 걸었다. 함께 일했던 동료의 이름이 뭐였나는 등, 실험을 주도했던 교수는 누구였냐는 등 물었다. 지유는 원영을 닦달했다. 잘 기억을 해 보라고. 잊고 있는 것이 분명 있을 거라고 했다. 하루는 지각을 했다고 원영이 말했다. 손을 씻는 것을 잊어버렸다. 초파리들은 바이러스에 걸렸다. 그날 원영이 손을 댄 초파리는 다 죽었다. 굳이 따지자면 해를 끼친 쪽은 초파리가 아니라 자신이라고 원영은 덧붙였다. 
“이상한 건 없었다니까.”
없는 얘기를 지어내려는 지유가 원영은 탐탁지 않았다. 아무 문제가 없는 곳을 문제가 있는 것처럼 쓰면 안 된다고 여겼다. 초파리 실험동은 원영의 꿈이 이루어진 곳이었다. 어째서 지유가 나쁜 방향으로 이 이야기를 쓰겠다 고집하는지 이해할 수 없었다. 질문을 받을 때마다 원영은 원치 않는 상상을 하게 되었다. 빨갛고 영롱했던 초파리의 눈동자가 화학물질에 절어 있는 불투명한 눈동자가 되었다. 실험동은 수만 마리의 벌레들이 득실거리며 병균을 옮기는 공간으로 바뀌었다. 차가운 형광등, 그 아래에서 허리를 구부정하게 굽히고서 현미경을 들여다보는 동료들, 머리카락이 후둑후둑 빠지는 원영, 원영의 기억을 지유가 훼손하는 느낌이었다. 
“지유야, 이야기가 너무 뻔하지 않니?”

원영은 실험동의 동료들을 떠올렸다. 미선이 아프다면, 적어도 실험동 때문은 아닐 것 같았다. 20년 동안 가족의 저녁 밥상을 차리다가 고등어구이에서 올라오는 미세 먼지에 노출되어 암에 걸릴 확률이 더 높을 것 같았다. 페스트에 걸려 죽은 사람보다 모기에 물려 죽은 사람이 많다고, 원영은 실험동 교수에게 들은 이야기를 지유에게 전했다. 모기가 퍼뜨리는 질병에 의한 사망자는 집계 자체가 어렵다더라고. 모기가 퍼뜨리는 질병의 종류가 너무 많고, 그중 말라리아에 걸려 죽은 사람만 연 50만 명에서 100만 명이 넘는다 했다고. 
“그래, 사소한 게 쌓일 수도 있지.”
지유는 수긍하는 눈치였다. 그리고 말을 이었다. 
“실험실에서 이산화탄소를 썼다고 했지? 이산화탄소가 몸에 쌓이면 어떻게 되나 알아봐야겠다.”
그게 아니라고 원영은 말을 다잡았다. 
“도대체 뭐가 원인일 것 같은데? 엄마가 말해봐.”
원영은 소설의 아이디어를 제공하는 척하며 자신의 이야기를 들려주기 시작했다. 

“나라면 이렇게 쓸 거야. 주인공 이름이 원영이라고 해 봐. 원영이네 택배가 엉뚱한 집에 배달된 거야. 그래서 원영이 남편이 택배 기사하고 다툰 거야. 근데 이 택배 기사가, 이후로 원영이만 보면 욕을 하는 거야. 남편한테는 아무 말 안 하면서. 아줌마, 내 눈 쳐다보지도 마쇼. 막 눈을 뽑아 버린다고 그러고. 근데 원영이는 남편한테 암말도 못 하는 거야. 세상이 얼마나 무섭니, 지유야. 싸움이 커졌다가 해코지하면 어쩌나 싶은 거지. 집 주소도 알고, 공동 현관 비밀번호도 아는데. 해코지도 원영이한테 할 거 아니니. 끙끙 앓다가 아프기 시작하는 거지.”
그 이야기야말로 인터넷 기사에서 많이 본 것 같다고 지유는 답했다. 원영은 다른 이야기도 들려줬다. 텔레마케팅 사무실에서 헤드셋 너머로 종일 욕설을 듣는 여자 이야기. 평생 자기 책상을 가져 보지 못해서 아프기 시작하는 여자 이야기. 식기 세척기를 구입하면 어떠냐고 물으면서도 책상이 필요하지 않으냐고는 한 번도 묻지 않는 가족 이야기. 밀가루가 체질에 맞지 않아 늘 위무력증에 시달렸지만 남편이 국수를 좋아해서 30년 동안 국수를 먹은 여자 이야기. 체할 때마다 그러게 왜 국수를 먹느냐고 다그치던 딸 이야기. 그러면서도 일요일 저녁이면 와, 국수다, 라며 손뼉을 치던 딸 이야기……. 원영은 조금씩 이야기를 바꾸어 가며 말했다. 거의 소설이 되어 갔다. 원영은 너무 사소해서 오히려 무시했던 일화들을 처음으로 누군가에게 말하고 있었다. 지어내다시피 한 이야기지만 속이 후련했다. 
지유는 유리문을 열었다. 테이블을 둘러봤다. 치은은 보이지 않았다. 시계를 봤다. 약속 시간보다 10분 일찍 카페에 도착했다. 커피 한 잔과 케이크 한 조각을 주문하고서 지유는 자리를 잡았다. 포크로 케이크를 잘라 먹으면서, 지유는 자신이 두고 온 케이크를 떠올렸다. 원영의 환갑 케이크. 애초에 원영은 그 케이크를 먹을 수 없었다. 더 이상 밀가루는 먹을 수 없게 되었으니까. 

원영이 지유에게 먼저 전화를 걸기 시작했다. 소설 생각을 했다면서, 이런 얘기는 어떠냐면서. 원영은 계속 말을 하고 싶어 했다. 원영의 하루하루를. 하나 마나 한 말처럼 별것 없는 사건들을. 그 이야기들은 처음 듣는 것처럼 낯설었다. 지유는 또 다른 가능성을 생각하기 시작했다. 모기에 물리는 것만큼 사소하면서도 무서운 일들에 대해 생각을 했다. 이야기를 끝마칠 때마다 원영은 지유에게 같은 질문을 했다. 
“얼마큼 썼어?”
원영은 지유의 소설을 기다리고 있었다. 어느 지면에 발표할 건지, 단편인지 장편인지 물어 왔다. 애초에 소설로 쓸 생각이 없었으므로 지유는 대답을 얼버무렸다. 어제는 소설의 결말이 떠오르지 않는다고 얼버무렸다. 
“결말이 생각이 안 나?”
잠시 생각을 하다가 원영이 말했다. 
“지유야, 원영이가 깨끗이 다 나아서 건강해지는 결말을 써 줘.”


작가 : 임솔아
출전 : 『아무것도 아니라고 잘라 말하기』 (문학과지성사, 2021)  p.57-p.61

 

 

임솔아 ┃「초파리 돌보기」을 배달하며

 

    실험실에서 초파리 키우는 일을 하던 원영이 어느 날 원인 모를 병에 걸렸다면, 누구나 쉽게 실험실의 환경을, 실험 중 사용한 약품이나 부주의한 약물 사용을 의심하게 됩니다. 실제로 비슷한 뉴스를 들어본 적도 있으니 영 개연성 없는 이야기는 아닐 것입니다.
지유의 생각대로 원영의 병은 산재일지도 모릅니다. 하지만 원영은 실험실에서의 일을 꿈처럼 소중히 기억하고 있습니다. 하찮은 초파리를 소중히 키웠고 자신이 해를 끼칠까봐 염려했습니다. 원영이 지유에게 소설의 아이디어인 척하며 들려주는 이야기를 되새기노라면, 원영의 지난 삶이 생생히 그려집니다. 원영이 그동안 감내해 왔던 것은 실험실에서 사용하는 이산화탄소나 초파리를 키우는데 드는 약품 같은 게 아니라, 아내라서 참고 엄마여서 견뎌 왔던 일상에서의 세세하고 사소한 균열들입니다. 삶의 질병은 사소한 문제가 계속 쌓이는데도 그걸 감내하고 견디는 과정에서 생기고, 별것 아니라 여기며 혼자 삭이는 동안 조금씩 퍼져나가기 마련입니다.
보통 이런 이야기라면 원영은 질병으로 더욱 고통을 받겠지만, 부디 이 이야기만큼은 뻔하지 않게, 원영의 바람대로, ‘깨끗이 다 나아서 건강해지는 결말’이 되기를 바라봅니다. 원영이 더는 참지 않고, 더는 견디지 않는 이야기가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소설가 편혜영

 

작가 : 임솔아

출전 : 『아무것도 아니라고 잘라 말하기』 (문학과지성사, 2021) p.57-p.6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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