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솔아, 「초파리 돌보기」 중에서
- 작성일 2022-03-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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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솔아 ┃「초파리 돌보기」을 배달하며
실험실에서 초파리 키우는 일을 하던 원영이 어느 날 원인 모를 병에 걸렸다면, 누구나 쉽게 실험실의 환경을, 실험 중 사용한 약품이나 부주의한 약물 사용을 의심하게 됩니다. 실제로 비슷한 뉴스를 들어본 적도 있으니 영 개연성 없는 이야기는 아닐 것입니다.
지유의 생각대로 원영의 병은 산재일지도 모릅니다. 하지만 원영은 실험실에서의 일을 꿈처럼 소중히 기억하고 있습니다. 하찮은 초파리를 소중히 키웠고 자신이 해를 끼칠까봐 염려했습니다. 원영이 지유에게 소설의 아이디어인 척하며 들려주는 이야기를 되새기노라면, 원영의 지난 삶이 생생히 그려집니다. 원영이 그동안 감내해 왔던 것은 실험실에서 사용하는 이산화탄소나 초파리를 키우는데 드는 약품 같은 게 아니라, 아내라서 참고 엄마여서 견뎌 왔던 일상에서의 세세하고 사소한 균열들입니다. 삶의 질병은 사소한 문제가 계속 쌓이는데도 그걸 감내하고 견디는 과정에서 생기고, 별것 아니라 여기며 혼자 삭이는 동안 조금씩 퍼져나가기 마련입니다.
보통 이런 이야기라면 원영은 질병으로 더욱 고통을 받겠지만, 부디 이 이야기만큼은 뻔하지 않게, 원영의 바람대로, ‘깨끗이 다 나아서 건강해지는 결말’이 되기를 바라봅니다. 원영이 더는 참지 않고, 더는 견디지 않는 이야기가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소설가 편혜영
작가 : 임솔아
출전 : 『아무것도 아니라고 잘라 말하기』 (문학과지성사, 2021) p.57-p.6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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