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민진, 「장식과 무게」 중에서
- 작성일 2022-03-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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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민진 ┃「장식과 무게」을 배달하며
정우신은 어떤 사람일까요.
여러 사람이 말하는 바에 의하면, 정우신은 속을 잘 드러내지 않는 좋은 사람이면서 보물찾기를 하는 소녀 같은 면모를 지닌 사람이기도 합니다. 골판지 상자 같은 사람이기도 하고요. 이런 다양한 진술을 통해서 ‘정우신’이 실제로 어떤 존재인지를 알기는 어렵습니다. 그보다는 정우신에 대해 말하는 사람이 어떤 사람인지를 조금 짐작할 수 있습니다.
인형으로 친다면 사람은 종이인형처럼 앞과 뒤가 납작한 존재가 아니라, 뜨개로 짜서 솜을 잔뜩 넣은 편물 인형에 가깝습니다. 앞에서 보는 모습과 뒷모습, 옆에서 바라보는 모습이 제각기 다르게 보이는 존재이지요. 그처럼 사람은 보는 위치와 그간의 관계, 함께 나눈 경험에 따라 다른 면모로 기억되기 마련입니다. 내게는 좋은 사람이지만 다른 이에게는 그렇지 않을 수 있고, 내게는 몹시 서툰 사람이지만 다른 누군가에게는 섬세한 사람일 수도 있습니다.
그러고 보면 ‘증명 사진’이라는 말은 무척 흥미롭습니다. 신분을 확인하기 위해 규격화된 사진을 보통 증명 사진이라 칭하는데, 아무리 잘 아는 사람도 반듯한 증명 사진을 통해서 보면 낯선 사람처럼 어색해 보이기 마련입니다. 한 존재를 증명하는 일은 정해진 규격이 아니라 그 사람과 나눠 가진 경험과 기억, 추억으로 할 수 있는 일이어서 그런 모양입니다.
소설가 편혜영
작가 : 이민진
출전 : 『장식과 무게』 (문학과지성사, 2021) p.51-p.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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