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송승언, 「학예사」

  • 작성일 2023-01-19
  • 조회수 1,490





 학예사 -송승언 이런 영혼이 있었다, 이런 영혼이 있다, 그는 이런 영혼이었다 말하자면, 그는 영혼이 없었다, 복도를 따라 울리는 목소리를 들으며 너는 복도를 따라 돌아다닌다, 청자를 잃은 소리처럼, 방향이 없는 아이처럼, 박물관에는 아무도 없다 어떤 것도 참고할 만했다, 파편 하나도 하찮은 게 없었다, 이것은 역사상 존재한 적이 없었던 자의 뼈다, 이것은 그의 그릇이며 이것은 그가 마시게 될 물이다, 유리 관 속에 제시된 만물의 세계를 보기 위해 너는 쉬지 않고 돌아다닌다 영혼을 말하는 사람이 있었다, 영혼을 말하지 않는 사람이 있다, 그 사이에 말은 주인 없이 오래 떠 있었다, 잠이 덜 깬 유령처럼 복도를 울게 하는 작가 : 송승언 출전 : 『사랑과 교육』(민음사, 2019)



송승언 ┃「학예사」를 배달하며


우리가 박물관에 가는 이유는 무엇일까. 박물관에는 아주 오래전에 살았던 사람들의 그릇이나 무기, 장신구 같은 물건들이 있다. 온전하게 모양을 갖춘 것도 있지만 부서진 작은 빗살무늬 하나만을 가까스로 지닌 토기 조각도 소중하게 보관된다. “어떤 것도 참고할 만했다, 파편 하나도 하찮은 게 없”기 때문이다. 이중 가장 마음을 사로잡는 것은 유골일 것이다. 두려움과 신비감으로 유골을 바라보면서 인간이란 무엇인가에 대해 생각하게 된다. 어떤 삶이었을까, 어떤 영혼의 소유자였으며, 영겁의 세월을 지나오는 동안 영혼은 어떻게 떠다니는가 등을 떠올린다. 비로소 우리는 피할 수 없이, 영혼이란 과연 존재하는가에 직면하게 되는 것이다. 그러나 유골은 철저히 비인간적으로 우리 앞에 전시되어 놓여있다. 아무리 애써도 영혼을 떠올릴 수 없다. “이런 영혼이 있었다, 이런 영혼이 있다, 그는 이런 영혼이었다 말하자면, 그는 영혼이 없었다”로 번복되는 진술은 영혼이 있다는 상상의 좌절을 보여준다. 우리는 영혼, 혹은 인격을 찾는 데 실패하고 만다. 이제 “박물관에는 아무도 없”고, 유골은 “역사상 존재한 적이 없었던 자”로 보인다. 시는 묻고 있다. 그렇다면 우리는 지금 존재하고 있는가.


시인 이수명


작가 : 송승언

출전 :『사랑과 교육』(민음사, 20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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