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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태운의 「심을 수 있는 마당」을 배달하며

  • 작성일 2023-03-30
  • 조회수 4,069




 심을 수 있는 마당 무엇을 심어도 되겠지 심을 수 있는 마당 새로운 날씨가 된다면 새로운 곤충이 온다면 심을 수 있는 마당 돋아나는 나물을 심고 그 나물 속으로 내 발자국과 현기증이 들어간다 심을 수 있는 마당 내 방을 심고 우주본도 심었다 파헤쳤다 나는 아래를 내려다보았다 계속 내려다보고 있었다



안태운의 『심을 수 있는 마당』를 배달하며


마당에 무엇인가를 심는다는 것은 희귀하고 특별한 일이다. 언제나 할 수 있는 일이 아니다. 마당이 있다고 되는 일도 아니다. “새로운 날씨가 된다면/새로운 곤충이 온다면/심을 수 있는 마당”이 된다. 지금의 날씨로는 안되고 날씨가 바뀌어야 한다. 또 새로운 곤충이 와야 한다. 이것은 현재의 마당에 대한 의구심과 회의, 그리고 새로운 상황에 대한 희원이다. 변화가 있어야 한다. 언제나 필요하다. 그래야 “심을 수 있는 마당”이 된다. 하지만 심는 것이 전부가 되는 것도 아니다. 새로운 마당이 되어도, 발자국, 현기증, 내 방, 우주본을 심어도, 그 무엇을 심어도 끝난 게 아니다. 나는 마당을 파헤치고 만다. 그렇게 새로운 상황을 갈구하고 거기에 무언가를 간곡하게 심지만 그 평이한 매몰에 멈추지 않는 것이다. 나는 내가 심은 것들을 결국 파헤치고 직시해야 하는 자이다.


시인 이수명


작가: 안태운

출전: 『산책하는 사람에게』 (문학과지성사, 2020)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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