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친구에게 보내는 편지

  • 작성자 순녕씨
  • 작성일 2005-07-05
  • 조회수 1,522

 

미국에 온지 벌써 9개월이 되었다. 블라인드를 친 어두운 창가 너머로 마지막 붉은 빛이 아른아른 눈가를 붉히는걸 응시한다. 김윤아의 우울한 목소리가 귀안으로 스며들고 겐조의 달콤한 향이 작년 보랏빛 하늘을 바라보던 야자시간의 나를 떠올리게 한다. 문득, 내 옆에 앉아 같이 이어폰을 나눠듣던 그아이 역시 생각이 난다. 생각난김에 펜을 들고, 편지지에 두서없이 써내려가기 시작한다.

 

 

 

나의 사랑하는 친구에게

 

 

 

펜끝이 잠깐 머뭇거린다.

 

 

 

얘, 잘 지내고 있니? (웃음) 미국에 와서 한번밖에 전화를 못한거 미안하다. 김윤아 노래 듣는데 네가 생각나더라. 미국은 지금 밤 10시가 넘어간다. 한국은 2시정도 됬을까? 오늘 딴에 멋부린답시고 두꺼운 자켓을 걸쳤는데 집에 걸어올때 많이 후회했어. 아무리 꾸며봤자 남들 눈엔 별 차이도 없을텐데 허영심이란게 생각보다 많이 버리기 어렵다. 내가 겨울에 얇은 셔츠만 입고 부들부들 떨던거 기억하니? 네가 옆에서 날 놀리는것같은 기분이 들더라.

 

오늘 처음으로 머리를 염색하고 다른사람한테 어떻냐고 물어봤더니 애들이 모두 맘에 든다고 웃었다. 하지만 여기선 모두 '너무'친절하고 '너무'웃음만 짓기에 사람을 믿기 힘들다. 나는 그네들이 속으로 어떤 생각을 할지 전혀 알수가 없거든, 어쩜 어울리지 않는다고 나를 흉봤을지도 몰라. 모든걸 농담처럼 던지고 주고받는 관계에서 상처받는건 내 잘못일까? 내 피해망상일까? 만약 네가 여기 있더라면 그딴 것 신경쓰지 않아도 된다고 바락 화를 내겠지. 이 피해망상, 나는 모든 것에 너무 조심스럽다고. 네 말대로 아마 피해망상일거라 생각해본다. 노력은 해본다만, 좀더 적극적이여야지라고 몇번이고 되뇌여도 쉽게 얻어지는것은 아니므로 노력조차 버겁게 느껴져. 남들에게 착하게 보이려, 혹 뒷말을 듣지 않게 평생을 애쓴 후 장례식에서나 "저 여잔 정말 착한 사람이었어"라고 한다면 만족할 수 있을까? 내 인생을 낭비하고 있는 것 같은 기분이 들어서 조금 우울해. 말로만 주절대는 사람을 싫다고 하면서 그런 사람의 속성을 속속들이 가지고 있는 나, 너무 어린나이에 피해망상에 잡혀 떠는 나, 게으른 나, 못생긴 나, 그리고 이렇게 앉아 침전하고 있는 나. 너는 지금의 나를 보면 화를낼까?

 

여기까지 휘갈기듯 써내려간 글씨를 음울한 눈빛으로 노려보다가 '이 피해망상...'부터 마지막 줄까지를 지우개로 벅벅 문질러 지워버린다. 너무 많은 정보를 담아 내 친구를 불안하게 만드는 것을 원하지 않는다. 잠깐 뭘 쓸까...하고 고민을 하다가 오늘 쇼핑에서 사온 분홍색 목도리에 대해 써야겠다고 생각한다.

 

그나저나 오늘 연분홍빛 버버리 머플러를 샀어. 물론 이 더운 여름에 걸치려는 것은 아니지만 겨울 상품을 싸게 팔더라. 연한 벛꽃 색을 보는 순간 가슴이 두근두근 떨리더라. 세일하는 것치고는 굉장히 비싼 가격이라고 생각하면서도 도무지 그 두근거림을 떨칠수 없어서, 30분 가량을 안절부절 못하며 빙빙돌다가 결국 사버리고 말았다. 네가 알다시피 난 목도리를 정말 좋아하잖아. 왜그런지는 모르겠어. 목도리 페티시즘이라도 있는걸까?(웃음) 네게 이 목도리를 두른 모습을 얼른 보여주고 싶어 죽을 지경이야 (한숨) 어찌나 맘에들던지 목도리와 사랑에 빠진 기분이였다니깐. 실크처럼- 아니 캐시미어의 감촉에 가까울까 - 보들보들한 연분홍 목도리를 조심스레 만져보기도 하고 입술에 대고 살살 문지르며 그 보드라운 감촉을 느껴보기도 하고 행여 주름이라도 갈까 옷걸이에 얌전히 걸어놓고 한참을 그 주위에서 뱅뱅 맴돌았다. 초콜렛 줄무늬와 벽돌색 선이 달콤한 분홍색 위에서 규칙적으로 교차하는걸 보며 두근두근거렸어. 목에 두르면 서늘한것이 상쾌하게마져 느껴지니까. 이 더운 여름날에 방안에서 목도리를 하고 거울앞에서 웃다니 나라는 여자앤 어떻게 된걸까? 하지만 행복했어.

 

 

 

또박또박, 한글자 한글자를 적어 내려가다가 정작 미국생활과 내 현재 근황에 대해선 별로 말하지 않았다는 것을 깨닫는다.

 

 

 

얘, 나 요새 네가 어떻게 지내는 지 꽤나 궁금하다. 그 사람과는 잘 되는거니? 네가 야자때문에 너무 늦게 오니까 집으로 전화하면 항상 엇갈리게 되버리잖아. 핸드폰을 사면 참 좋을텐데 말이야(웃음)  하필이면 내 친구가 원시인이라는게 슬퍼! (다시 웃음) 이곳 고등학교 생활에 대해 길게 장황설을 늘어놓으려다가 에이, 그만둘래, 라는 기분이 되버렸어. 편지에는 다 못쓸정도로 할말이 넘쳐나는 걸! 다음번에 내가 전화를 할때 네가 꼭 받았으면 좋겠다.

 

 

그럼, 너를 사랑하는 친구가.

 

 

p.s: 쪽! 내 뽀뽀를 동봉할게!

 

 

 

 

이제 창밖은 완전히 어두워 추적추적 내리기 시작한 밤비 사이의 가로등만 은은히 빛난다. 이유없이 피곤한 까닭에 편지지와 펜을 식탁에 내려놓고 침대에 드리눕는다. 포근한 베게에 녹아드는 노곤한 일상. 갑자기 잠이 쏟아져내리는 무거운 눈꺼풀을 몇번 깜빡깜빡 거리다가 어느새인가 잠에 빠져든다.

 

 

얘, 넌 잘 있는거지?

 

 

 

 

내리감은 눈동자에 밝게 웃는 그 아이가 대답했다.

 

 

 

잘 지내고 있어.

 

 

 

 

 

미소가 피곤한 입가에 걸리다.

 

 

 

 

 

 

 

 

 

 

 

 

 

순녕씨
순녕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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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익명

    편지글 중간 중간에 독백체의 문장을 삽입하고 있네요. 친구를 염려하는 마음을 느낄 수 있었습니다. 미국생활에 대한 이야기가 좀더 구체적으로 들어 있었다면 좋았을 것입니다.

    • 2005-07-07 19:46:28
    익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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