혼자하는 수학여행
- 작성자 연주
- 작성일 2006-05-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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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조회수 974
"안녕"
늘 그렇듯 평범한 인사로 아침을 맞았다. 형식적이고 일상적인 인사란걸 알지만 억지웃음을 지으며 나도 인사를 건넨다. 자리에 앉자마자 가방을 능숙하게 책상 옆에다 걸고 언제나처럼 필통부터 꺼냈다. 한참을 멍하니 있다가 문득 지우개를 꺼내 책상 모서리의 'D-1'을 지웠다. 바로 지난 주 까지만 해도 하루하루 줄어가는 숫자에 행복해했었던 나였다.
지난 주 수요일. 나는 들뜬 기분으로 평소의 나와 전혀 맞지 않는, 좀 지나치다 싶은 옷을 입고 일찍부터 학교에 갔었다. 수학여행 때문이었다. 나를 비롯한 모든 아이들은, 반복되는 평범한 일상과 시험의 압박에 지쳐있었다. 그 때문에 그 어느 때보다 밝은 얼굴로 저마다 재잘대고 있었다. 나도 그 틈에 끼여 그들처럼 즐겁게 떠들고 싶었지만, 나는 소심함의 극치다. 그래서 부끄럽게도 나는 그 때까지도 당당하게 '친구'라 부를 수 있는 아이가 없었다.
그래도 그렇지 않은 척 버스로 들어갔다. 하지만, 버스 안은 오히려 더 어색했다. 나는 함께 앉을 친구도 정하지 않았던 것이다. 저마다 짝을 지어 농담과 수학여행의 설레임을 주고받고 있고, 나는 쳐다봐주지도 않았다. 단춧구멍에 맞지도 않는 단추가 억지로 끼워맞춰져 있는듯해 다시 나오고 말았다.
같이 탈 친구를 기다리듯 얼굴을 꾸미고서 어정쩡하게 버스 근처를 서성거리고만 있던 나는, 버스에 우리 반 아이들이 다 타는 것을 보고서야 버스 계단을 올랐다. 이미 아이들은 모두들 자리를 잡고 앉아 있었다. 어색한 웃음을 지으며 천천히 버스 복도를 걸었다. 눈으로는 열심히 앉을 자리를 모색하면서.
그렇게 버스 길이의 반쯤 걸었을까, 아영이가 일어나더니 날 불렀다.
"니가 안으로 들어가."
아영이는 평소 급식시간에 밥을 같이먹던, 내게 처음으로 말을 걸어주었던 아이였다. 그렇지만 특유의 사교성으로 친한 친구가 많던 아영이에게 나는 뒷전일거라 생각했는데 다정한 목소리로(그 때는 그렇게 들렸다) 불러준 것이다. 솔직히 무척 감동해서 대답도 제대로 못하고 후다닥 창가 쪽 자리에 앉았다.
하지만 그게 '어쨌든 밥을 같이 먹는 친구'라는 의무감에 그런 것이란걸 알게 되기까지는 얼마 걸리지 않았다.
아영이는 복도를 건너 앉아있는 수민이와 뒷자리의 민정이에게만 말을 걸고, 장난치고, 과자를 주고받고 있었던 것이다. 왜 안쪽으로 들어가라고 했는지 알 것 같았다. 그래도 옆자리의 내가 신경쓰였는지 그 옹색한 과자 한 조각을 주는데, 공연히 서러웠다. 하지만 어쩌겠는가, 멀미를 핑계로 창에 기대어 잠을 잤다. 그러면 날 신경쓰지 않고 편하게 이야기 할수 있을거라고 생각했다.
그렇게 몇 시간을 달려 소수서원에도, 부석사에도, 고수동굴에도 도착했지만, 나는 구경을 하는둥 마는둥 대충 둘러보기만 했다. 내가 무얼 봤는지 전혀 기억이 나질 않았다. 그리고 저녁이 되어서야 숙소에 도착했다. 방도 그나마 말은 하는 사이인 아이들과는 갈라졌다. 한 학기가 끝나갈때까지 말 한 번 해본적 없는 아이들과 같은 방을 쓰게 된 것이었다.
당연히 분위기는 서먹서먹하기만 했다. 아이들은 저마다 모여앉아 서로의 짐을 풀어보고 머리를 다듬고 떠들고 했지만, 나는 혼자 가만히 앉아 TV화면만 뚫어지게 바라봤다. 괜히 끼어들면 그들의 한껏 부풀어 있는 분위기가 깨질것만 같았다.
저녁식사 때는 은근슬쩍 끼어 같이 밥을 먹었다. 하지만 아이들은 내게 정말 털끝만치의 관심도 보여주지 않았다. 그들끼리만 반찬투정을 하고, 그들끼리만 깔깔거리며 웃었다. 가끔씩 오는 그들의 눈길에서 '너는 왜 따라왔어'라는 말을 읽을 수 있었다. 결국 나는 한 마디도 할 수 없었다. 잘 때도 혼자서만 구석에 처박혀 잤다. 평소 잠버릇 때문이기도 하지만, 성 잘내는 그들 사이에서 괜히 구박받을 이유는 없었다.
그리고 다음날 아침, 아이들은 매우 격앙되어 있었다. 학교에서 관람에 무려 7시간이나 할애해준 '에버랜드'가 다음 코스였기 때문이다.
하지만 바로 엊그제까지도 그들과 같은 기분이었던 나는 더이상 웃을 수 없었다. 같이 놀이기구를 타며 즐거워할 친구가 없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혼자서 타고 놀다보면 길치에다 시간관념도 없는 내가 길을 잃거나 버스시간을 놓치는건 안봐도 뻔한 일이다.
할 수없이 옆자리에 같이 앉은 아영이의 뒤를 따라 줄을 섰다. 바로 30분 전, 아영이에게서 '따로따로 가자'라는 말을 들은 뒤였다. 아영이는 민정이, 민경이, 수민이, 현아와 이야기를 나누고 있었는데, 문득 민정이가 말을 꺼냈다.
"연주는 왜 여기 이러고 있어?"
그 말에 모두들 나를 돌아봤다. 한눈에 보아도 '우린 너를 원하지 않아'라는 표정들이었다. 짧은 침묵이 이어지고, 어쩔 수 없다는 듯 민경이가 그럼 현아와 같이 다니라고 말했다. 결국 그들과 함께 놀이기구를 탔지만 그들은 나를 없는 존재로 여기는 것 같았다. 그들은 내 말 따윈 모두 무시했고, 나는 맨 뒤에서 멋쩍게 따라다녔다. 게다가 민정이가 중간에 배가 아프다며 만만해 보이던 나를 끌고 나왔기 때문에, 정말 타고 싶었던 놀이기구는 먼 발치에서 구경밖에 할 수 없었다. 원체 소심한 나는, 그냥 하자는대로 순순히 따랐다. 그들에게 난 '들러리'밖엔 안되는 존재였다.
다시 어영부영 숙소로 돌아왔다.
그날 저녁은 같은 방 아이들을 따라 같이 먹지 못했다. 아이들은 모두 과자나 먹겠다며 매점으로 가버렸고, 나는 배가 고파 혼자 식당으로 갔다. 식당의 구석진 곳에서 혼자 밥도 먹고 눈물도 먹었다. 밥에 눈물이 뒤엉켜 짭짤하고 씁쓸한 맛이 났다. 억지로 꾸역꾸역 먹으니 안그래도 맛없는 숙소의 밥이 더 맛없게 느껴졌다. 난 그 밥을 몇숟가락 먹지 못하고 버리고 말았다.
다시 숙소로 돌아와 대충 씻고 졸립지 않았지만 자리에 누웠다. 물론 구석자리에 쪼그려서. 한쪽 구석에서 처량하게 쪼그려 누워있자니 가슴속에서 무언가 울컥하고 올라왔다. 들키지 않으려고 이불로 얼굴을 꾹꾹 누르며, 속으로 많이 울었다.
셋째날은 아예 버스 창문에 머리가 붙은듯 기대어 잠만 잤다. 누구도 내게 말을 걸어주지 않으니 굳이 깨어있을 필요가 없었다. 머리만 더 아플뿐이어서 그저 잠만 잤다.
그날 두번째 일정이었던 마이산에선, 아예 혼자 다녔다. 그래도 지금까지는 아영이 무리와 함께 다녔지만, 그들의 눈빛이 부담스러웠다. 그들에게 난, 귀찮은 존재였다. 그래서 혼자 묵묵히 산을 올랐다.
오르는 길은 많이 힘들었다. 다른아이들처럼 손을 내밀어 줄 사람이 없는 나는 누구보다도 힘들게 올랐다. 괜시리 강한 척 이를 악물고 올랐다. 내려갈땐 아예 달려 내려갔다. 대기하고 있던 버스에 여유있게 올랐지만, 난 혼자였다. 텅 빈 버스에 나 혼자였다. 억지로 창에 기대어 또 다시 잠을 청했다. 웃으며 손잡고 버스에 타는 그들의 모습을 보기가 싫었던 것이다.
버스는 곧장 달렸고, 눈을 떠보니 어느새 부산이었다. 터벅터벅 걸어서 집으로 들어갔다. 집 문을 열자 동생이 강아지처럼 달려와 맞아주었다. 그리고 바로 따뜻한 밥상을 받을 수 있었다. 나를 받아주고 사랑해주는 것은 가족 뿐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밥을 먹은 후 세수를 하며 펑펑 울었다. 어느 무리에도 속하지 못하고 겉돌기만 하는 내가 슬펐고, 가족들이 너무 따뜻하게 대해서 눈물이 났다. 거울에 대고 어디에도 끼지 못하는 내 처지를 하소연했고, 바보같은 이 성격을 비관했다.
그리고, 다시 수요일이 되었다. 아이들은 여흥이 남은듯 여전히 수학여행 때의 이야기로 바쁘다. 제각기 밝은 표정으로 대화하는 그들을 보며 언젠가는 나도 그들 사이에서 자연스럽게 농담을 건넬 수 있을거라는, 내가 생각해도 정말 부질없는 생각을 해본다.
다시 억지웃음을 지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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힘 내세요! 님은 절대로 귀찮은 사람이 아니랍니다. 어떤 성격을 좋다 나쁘다고 단정지을 수 없잖아요? 님은 세상에게 아주 소중한 사람이에요. 다정한 친구와 자연스럽게 이야기하며 자신을 드러내는 게 중요한 것 같습니다. 저도 약 2년 동안 제가 친구들을 받아들여야 한다는 변명에 제 주장도 거의 하지 않고 스스로 슬퍼했답니다. 하지만 저를 부정한 시간은 좀이 되어 저를 갉아먹고 있었지요. 어머니께서 그러셨죠. 그래서 요즘엔 주눅들지 않고 제 주장을 분명히 하려고 노력하고 있어요. 문제에 부딪쳐 보는 것도 좋을 것 같아요.
주위에 있는 사람 중에서 얘기를 들어 줄 만한 사람을 선택한 후, 상담을 해보세요. 이대로 지내는 건 너무 힘들잖아요. 적극적으로 노력해보았으면 좋겠어요.
좀 지나치다 싶은 옷은 ... 제 기준이기 때문에;; 말하자면 목선이 많이 파였다고 할까요? 성격개조는 어렵지요. 학교생활을 십년가까이 하면서도 아직 고치지 못했답니다.
먼저 말을 건네 보는 건 어떨까요? 물론 혼자서도 씩씩하게 지낼 수는 있겠지만 소심한 성격이 문제라면 과감하게 성격개조를 해 볼 필요도 있겠지요.
"좀 지나치다 싶은 옷"은 어떤 모양의 옷인가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