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두운 밤, 바다를 바라다 보며
- 작성자 Kailete
- 작성일 2005-08-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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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는 방금 전, 바다를 보고 왔습니다. 아니, 바다와 대화를 하고 왔습니다. 오늘은 울적했는지라 오카리나와 하모니카로 제 마음을 달래려 바다에 나왔습니다. 바다는 조용하고, 잔잔했습니다. 저는 악기로 노래했습니다. 사랑을, 슬픔을, 고독을. 저는 외로웠습니다. 밤 하늘을 벗하며, 밤 바다와 바다바람과 함께 있어도, 저는 외로웠습니다. 사람이 그리웠습니다. 사랑이 그리웠습니다.
제가 사는 곳은 강과 바다, 산과 계곡, 논과 밭이 어우러진 곳입니다. 그리고 도시적인 곳도 있죠. 제가 어렸을 때엔, 자연과 자주 놀았습니다. 제가 수영을 못해서 바다와는 잘 놀진 않았지만, 바다에 공룡발자국이 있어 많이 갔습니다. 그리고 산에도 올라가 보구요. 산에서 낮잠을 잤을 땐, 정말 상쾌했답니다. 그리고 언덕에서 책도 읽고 경치를 감상했죠.
지금은 여유가 없습니다. 집에서 빈둥거리는 시간은 많으면서도, 정작 산을 바라보고 바다를 보았던 적은 거의 없습니다. 오늘은, 너무 슬퍼서, 너무 외로워서, 바다를 찾았습니다. 5분도 안 걸리더군요. 저는 바닷가에 있는 길에서 멈춰 앉아 바다를 보았습니다. 더 걸어 갈 수도 있었지만, 그 앞은 무한히 반복되는 길인것 같았습니다. 앉아서 악기를 불며 울적한 마음을 달래고 나니, 왠지 시간이 많이 지난것 같았습니다. 집으로 돌아오니, 주무시던 부모님께서 일어나셔서 절 기다리시더군요. 그리고 책상에 앉아 이 글을 씁니다.
보통 바다는 모험심과 도전을 의미하지만, 저에게 그 잔잔한 밤 바다는 다른 의미로 느껴집니다. 바다는 저에게 슬퍼하지 말라고, 외로워 하지 말라고, 너는 혼자가 아니라고. 그리고 제 노래를 진지하게 들어줍니다. 왜 저는 몰랐던 걸까요. 제가 혼자가 아니라는 것을. 그냥 제가 먼저 손을 내밀면 되는데, 남들이 내밀지 않는다고, 외로워 한 것이...바보같습니다. 그리고, 지금 제 곁엔 없지만, 제 고민을 진지하게 들어줬던, 그 친구들에게 고맙다고 말하고 싶습니다. 이 바보같은 저를, 지켜봐 주었으니...
저는 제가 강하다고 생각하고 있었지만, 이제 보니 약한 놈이었습니다. 누구나 겪는걸 아프다고, 누구나 느끼는걸 괴롭다고 했습니다. 그러나 전 눈물이 나려고 해도 꾹 참습니다. 눈물이 고여도 절대 흐르진 않습니다. 전 울지 않습니다. 견뎌 낼 겁니다. 그러나...가끔씩은...저는 울고 싶습니다. 흐느끼고 싶습니다. 그러면...이 마음속의 응어리가 약간이나마 사라질테니깐요. 하지만 울음이 해결책이 아니라는걸 저는 압니다. 운다고 해결되는 것이 아니기에, 울음은 나를 도울수 없기에, 눈물을 참고, 살아갈 겁니다. 저에겐 희망이 있으니깐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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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나는 즐겁다. 상쾌한 아침에 유쾌한 글을 쓴다. 우리 동네 도서관에 걸려 있는, '우리 도서관은 언제나 아침입니다.'라는 글귀ㅡ아침엔 도서관 안열잖아! 하루종일 안열려고?ㅡ처럼, 나의 인사는 언제나 한결같다. Good moring, everybody! 2. 즐거움이란 것은 지극히 개인적인 것이다. '나'라는 존재에만 머무르는 것이기 때문이다. 마음이 상해있는 사람은 주위사람들이 즐거워하면 괜히 기분이 나쁘다. '타인'이기 때문이다. 태양을 즐기고, 물이 흐르는 것과 바람을 즐길 수 있다는 것은 '내'가 그것을 즐길 상태가 되어있다는 말이다. 사막에서 목마른 여행자가 태양을 즐길까? 수재민이 물의 생명력을 즐길까? 3. 우리들의 일상생활에서, 이유도 모르는데 남들이 웃기에 자신도 웃어본 기억이 다들 있을 것이다. 그리고는 묻는다. 무슨 일이 있었는지, 무슨 말을 들었는지. 그리고 또 다시 웃는다. 즐거움은 쉽게 전달된다. 개인적인 즐거움이라 하고, 또 쉽게 전달되는 즐거움이라 하는 나의 태도를 말이 안 된다고 할 것인가? 나는 간단히 대답한다. '인간'이니까! 즐거움의 역설은 간단하다. '인간'이 즐거워 하기 때문이다. 4. 내가 태양이기에, 태양빛이 강렬할때 나는 즐겁다. 바람이 강력하기에 바람부는 언덕에서 나는 즐겁다. 동일시와 이심전심. 어떤 표현이라도, 나는 즐긴다. 숨 쉬는 것과 사유하는 것, 사유가 사라지고 영원의 침묵에 잠기는 것, 시린 사랑과 희미한 추억, 분노와 혼을 사르는 열심, 충만한 욕구와 염세적인 태도까지도 즐겁다. 사는 것 또한 즐거움이니 다가올 죽음 또한 즐겁다. 사후에 대한 여러 기대도 즐겁고, 사라지는 에고속에서 존재속의 즐거움을, 니르바나 속에 즐겁다. 태초와 종말과 영원과 알파와 오메가는 즐거움이다. 5. 4번의 과장된 표현. 하핫, 그냥 말이 그렇다는거다. 최대한으로 즐기고 싶다고 할까. 실제 삶 속에서 즐기기란 여간 쉬운일이 아니다. 항상 웃고 떠드는 초등학교때부터 나이를 먹을수록 웃음에 억압이 생긴다. 그리고 억지 웃음을 배우며 쓴웃음 또한 배운다. 그리고 그러한 웃음조차 주름속에 파묻혀, 잊혀진다. 세월이 흘러, 나이가 지극해졌을때, 배를 부여잡고 깔깔거릴수 있는 사람이 있을까? 나는, 늙어죽기 일보직전이라도 통쾌하게 웃고싶다. 언제나 고개를 뒤로 젖히고 하늘을 보면서, 크게 웃고싶다. 하하하하하! 6. 내 평생의 표어, Carpediem. 사전에는 '현재를 즐겨라.'라고 번역되어 있다. 그러나 나는 새로운 번역을 하고싶다. 순간을 즐겨라! 국어를 배울때나 영어를 배울때 항상 등장하는 과거, 현재 미래시제. 어법에는 과거, 현재, 미래가 있을지 몰라도 현실에는 존재하지 않는다. 과거란 순간 이전의, 이 순간에는 존재하지 않는 것이기 때문에 없다. 미래라는 것은 확실하게 존재하지 않는다. 알 수 없다. 이 순간에 따라 변화한다. 어법의 현재는 많은
- Kailete
- 2005-08-10
Luna는 달의 여신의 이름으로서 달을 의미하기도 한다. 그리고 보통은 Luna하면 아름답고 고귀한 이미지로 떠올린다. 하지만 Luna에서 파생된 말 중 Lunatic의 뜻은 전혀 그렇지 못하다. Lunatic은 미친이라는 뜻으로 광기를 나타낼 때 흔히 쓰인다. 아름다움과 광기, 어째서 비슷할 수가 있는가?오늘 붉은 달을 보았다. 나는 달의 아름다움과 그 요성을 알고 있다. 그 마력에 도취되어 광기에 휩싸일 것만 같은, 그런 느낌을 느끼는 건 그 달에 대해서 알기 때문이 아닐까. 특히나 붉은 달이 뜨는 날이면, 그 피보다 진한 붉음이 내 마음 속에서 번져나가 나의 감성을 미묘하게 요동치게 하는 그런 힘이 있는 것이다.달 초환 의식이라는 것이 있다. 마법 의식으로서 달의 힘을 초환하는 것이다. 이렇듯 달은 마법과도 연관이 많다. 늑대인간은 보름달이 뜨면 늑대로 변한다. 달의 힘은 신비롭다. 달도 태양처럼 빛을 내지만 태양 빛을 반사하기 때문에 따뜻하지 못하다. 그리고 밤에 빛난다. 어두움 중에서 고고한 여왕처럼 군림한다. '흑마법'이라는 말에는 어둡고 악한 이미지가 있다. 그리고 뱀파이어나 늑대인간도 밤에 활동할 수 밖에 없다. 태양은 양이라 파사의 기운이 강하기 때문이다. 그렇기에 그들은 달 아래 있다. 특히나 달이 핏빛일 때, 그들의 힘도 극에 달한다. 그 힘에 취한 그들이 정상적이지는 않을 것이다. 그 힘에 도취되어 광기의 화신이 될 것이다.달은 아름답다. 어두운 하늘에 뜬 레드문을 보고, 일단은 다들 멋있다고 할 것이다. 약간 꺼림칙한 느낌은 있을지라도, 보기 힘든 진귀한 광경임에는 부정할 사람은 없을 것이다. 그 감탄으로 부터 시작한다. 모든 인간에게는 광기-혹은 집착-이 있어서 누구는 돈에, 권력에, 섹스에, 또는 예술에 모든 것을 쏟아 붓는다. 광기와 집착은 구별이 힘들지만 정도가 심해진다면 광기로 볼 수 있다. 그 중 예술인들을 보자. 보통 '예술'을 한다는 사람들은 보통 사람들과는 다르다. 심지어 '미쳤다'라는 소리까지 듣기도 한다. 그들은 아름다움을 추구한다. 그리고 그것을 음악이나, 그림등으로 나타내려는 것이다.그런 그들이 달을 보았을 때 어떻게 될까? 그들의 광기 어린 미에 대한 집착이 다양한 색채의 달-노랗고, 창백하고, 붉은 색등-을 보았을 때 월광소나타가 만들어지는 것이다. 월광소나타는 아니지만, 그 달의 요성은 예술인들을 휘어 잡았을지도 모른다. 그것은 나에게도 마찬가지다. 형용할 수 없는 미묘한 즐거움, 하염없이 바라만 보고 싶은. 바로 쳐다보지 못하는 태양과 달리, 그 세세한 표면마저도 쉽게 볼 수 있는. 옛부터 상상력과 광기를 다스려운 달.오늘 나는 레드문을 보고, 순간순간 떠오르는 생각들을 두서없이 나열해본다. 야릇한 흥분과 광기가 흐르며 이 글을 쓰는 동안, 달의 핏빛은 서서히 옅어진다. 그와 동시에 이 글도 마무리 되어간다. 이전까지는 달을 보고도 아무런 감흥이 없었던 자들도 달에대한 전설과 옛 이야기를 듣다 보면, 오늘의 진홍의 달은 그 의미가 색다를 것이다.To Luna which is cold,
- Kailete
- 2005-08-10
바람을 맞으며 언덕에 서 본 일이 있는가? 그 속에서 느껴지는 시원함과 무한한 자유를 맛 본 일이 있는가? 위도차로 인한 태양 복사 에너지 차로 공기 대류가 생겨 발생하는, 공기의 이동. 이러한 정의로는 ‘바람’을 설명하기에 부족함이 느껴지지 않는가? 어찌 바람이 단지 공기의 이동이겠는가? 가끔 생각해보면, 바람만큼 가까이 있는 것도 없을 듯싶다. 내가 찾아야만 구할 수 있는 물과는 다르게, 바람은 스스로 나에게 다가와 속삭인다. 때로는 화가 난 듯이, 때로는 다정스럽게, 때로는 묵묵하게. 그리고 땀이 옷을 적시는 한여름이 오면 바람만큼 시원한 게 어디에 있을까? 물론 물로 씻어도 상쾌하겠지만 24시간 물 속에 있을 수는 없는 노릇이다. 만약 24시간 바람이 불어준다면 땀은 흐르지 않을 것이다. 그러고 보면 바람은 꽤나 좋은 일을 하고 있는 것이다. 반면에, 추운 겨울날 코트 속을 파고드는 칼날 같은 바람처럼 차가운 게 어디에 있을까? 코트를 더욱 여미어 봐도 어떻게 알고 틈새를 공략한다. 따뜻한 집으로 오기 전까진 긴장을 늦출 수 없다. 참으로 집요하기 그지없다. 살다 보면, ‘바람 같은 사람을 만나는’경우가 있다. 그러나 그 표현은 바람의 무수한 성질 중 하나를 나타낼 뿐이다. 여름에 부는 시원한 바람, 봄에 부는 메마른 높새바람, 겨울에 부는 살을 에는 듯한 바람, 사막에서 부는 타는 듯한 바람, 바다에서 부는 강맹한 비바람, 툰드라지대에서 휘몰아치는 눈보라, 무지막지한 힘으로 모든 것을 파괴하는 토네이도, 그리고 한여름의 종말을 알리는 태풍까지. 다양한 장소에서, 다양한 시간에서, 다양한 세기와 풍향과 성질로 부는 바람. 나는 무슨 바람일까? 한없이 마냥 자유롭게만 보이는 바람도, 그리 자유스럽진 않다. 기압의 영향을 받아, 대세를 거스르지 못하고 그저 홍수 속의 집기들처럼 휩쓸려만 가는 것 같다. 그리고 어쩔 수 없이 수동적으로 성질을 띠게 된다. 마치 사막을 지나면 건조해지고, 바다를 통과하면 습윤해지듯이. 제 딴에는 벗어나려고 발버둥을 쳐 보아도, 등을 떠미는 다른 이들 때문에 어쩔 수 없이, 운명인양 불어나간다. 나는 그 속에 있는가? 가끔씩은, 난 태풍이 되기를 바라기도 한다. 비록 며칠에 그치는 짧은 바람이라 할지라도, 대세를 거스르고 강력하게 불고 싶기도 하다. 굳건한 편서풍 지대를 관통하고 싶기도 하다. 비를 뿌리고 싶기도 하다. 순식간에 소멸되어 태풍으로서의 일생을 마친다고 해도, 불어보는 것도 괜찮지 않은가? ‘매미’와 같이 악명을 떨치는 태풍도 좋다. 반면에 한여름 무더위를 한방에 날려주는 태풍도 좋다. 다만 태풍이 되었으면 하는 바람이다. 그러나 내가 그 어느 것을 추구하던지, 아니면 내가 추구하는 것이 아무리 약한 바람이라도, 바람에게는 ‘길’이 있다. 바람에게는 시작점이 있으며 종결점이 있다. 바람이 자신의 방향을 잃었을 때, 그것은 더 이상 바람이 아닌 것이다. 나의 ‘길’은 어디인가? 바람을 맞으며 언덕에 서 있어보길 권한다. 꼭 그렇게 하지 않더라도 한번쯤 바람을 느껴 보길 바란다. 문득 문득 스쳐지
- Kailete
- 2005-08-10
저번까지 읽은 이후로 이어보시겠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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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번까지 읽은 이후로 이어보시겠어요?
왜 외롭고, 왜 사람이 그립고, 왜 여유가 없는지 그런 것들이 들어 있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글에 내용이 없으면 넋두리에 불과하지요. 감정을 나타내는 어휘들만 잔뜩 나열되어 있지 구체적인 것은 없잖아요?
또다시...글에 없는 내용을 기대하시면서, 그 없는것으로 인해 아쉬워하는군요. 일기가 아니기에 어떤 사연인지는 낱낱이 적을 필요가 없다고 생각합니다. 그리고 특별한 사연또한 없었습니다. 구름빵님은 어느순간 문득 외로움을 느낀경우가 없나요?
울음이 해결책은 아니지만, 울고 나면 시원한 느낌 즉 카타르시스를 느낄 수 있을 것입니다. 눈물을 참지 말았으면 좋겠네요. 울 줄 아는 사람도 얼마든지 희망을 품을 수 있지 않을까요? 울고 싶을 때 소리내어 울어 버리세요. 첫 문장은 무언가 이야기가 잔뜩 들어 있을 것 같은 기대를 하게 만드네요. 그러나 글쓴이가 그러한 부분에 대해 살짝 언급만 하고 그냥 지나치고 있어서 아쉽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