탈주, 그리고 그 후, 내가 겪은
- 작성자 펜끝의 자유
- 작성일 2006-11-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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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량생으로부터 온 편지.
한국인이 제시하는 모범생의 가치를 비웃게 된 나.
2학년을 마치고 학교를 자퇴할 예정인 나.
대단한민국의 학생으로서 제일 지루한 일은 무엇보다도 길고도 긴 아홉 시간의 수업을 듣는 것이었다. 이미 목표를 상실한 지 오래였고 난 늘 불만스러운 태도로 자리를 차지하고 있었다.
심지어 어떤 늙은 노처녀 선생님은 나에게 이렇게 말하기까지 했다.
"수업시간에 선생님 지침을 왜 따르지 않는 거니? 내가 이런 대접 받으면서 수업해야하는 거니? 말해보렴? - 선생님은 말해보렴의 대목에서 학습용 리모콘을 던지는 시늉을 했고 난 반사적으로 피하려다가 교실 사물함에 몸을 부딫쳤다- 정말 네 녀석의 태도를 용서할 수 없구나, 싸가지 없는 새끼, 꼴도 보기 싫어, 너 결석체크 안할테니까 나가있어, 그리고 앞으로 선생님 피해다니구, 복도에서 마주치면 죽여버릴 거야."
만약 마음약한 여학생이 이런 말을 듣는다면 자존심 상해 눈물을 흘렸겠지만 대한건아인 나는 그 수업을 안 들어도 된다는 희망에 부풀어 웃으며 "예!"하고 힘주어 대답했다. (선생님은 거의 울지경이 되었다.)
이 정도이니 내가 전 선생님들 - 아주 종교적 신념이 강한 선생을 제외하고-께 미운 오리새끼인건 당연한 일이었다. 그러나 난 오히려 당당하게 지내고 있으며, 지금도 나의 선택이 틀렸다고 생각한 적이 없었다. 항상 내 머리 속에는 이런 생각이 뿌리박혀 있으니까.
'내가 너희를 괴롭힌 건 최근 1년이지만, 넌 비인간적이며 비창조적이며 비효율적인 교육으로 내 인생의 17년을 낭비하게 했다. 너희들에게 베풀어줄 동정은 없다. 캬!' 한 술 더떠서 난 부끄러움 없이 늘 친구들에게 "내가 우리 학교 개교 이래 최대의 불량생이다"하고 소리치고 다닌다.
하지만 이런 내게도 최고의 강적이 있으니 그 분이 Mr. R(가명) 법사선생님이였다.
그 분은 나이가 지긋한 50대 중반이었으며, 쉬는 시간 뒷뜰 전교조 담배클럽의 회장이셨다.
그 분은 또한 대한민국 최고의 주입식 강사셨다. 예를 들어 법의 정신을 이해해야한다는 명목으로 헌법 전문을 노트에 두 번 씩 적게 했다. 또한 현대음악을 전공하셨는지 수업을 랩으로 진행하셨다. 유명한 문제집 한권의 요약정리를 교과서에 그대로 베끼신 후 그걸 수업시간에 한 글자도 틀리지 않고 읽어주셨다. 그 속도가 얼마나 빨랐던지! 우린 1학년 때 일반사회와 법과사회의 절반을 끝냈으며, 2학년 1학기가 되기 전 과정을 모두 훑어 지금 2번째로 보고있다. (참고로 다른 사탐과목은 - 우리학교가 일반 인문고가 아니 여서 사탐과목에 대한 배려가 없기에- 이제 막 절반을 겨우 넘겼다.)
물론, 아이들의 수업 참여도는 영에 가까웠다. 아예 과목자체에 흥미를 잃은 채 그 시간을 수면 시간으로 규정한 아이들이 반의 절반에 가까웠고 나머지 아이들도 다른 과목을 공부했다. 심지어 법과 사회를 선택한 아이들도 인터넷강의를 더 이용했다. 하지만 그 분께서는 아이들의 그런 태도를 용납하지 못하셨다. 늘 항상 아이들에게 일어나라고 끊임없이 소리쳤으며 그 행동은 차라리 잠이라도 자려는 시도를 무너뜨리곤 했다. 결국 나의 불량생적 의협심은 그 분을 골탕 먹이는 게 정당한 것이라고 스스로를 합리화시켰다. 그래서 어느 날 난 굉장히 의도적인 농담으로 선생님에게 일침을 가했다.
"왜, 우리 학교엔 사탐과목 선생님께서 네 분이나 계시는 거죠, 선생님 혼자면 1년 안에 10과목도 마스터해주실텐데 말이죠, 선생님께서는 속도부문에선 타의 추종을 불허하시니까요, 따라올 테면 따라와봐, 메가페스!"
순간, 교실은 아이들의 왁자지껄 소리로 가득차기 시작했고 수업은 계속 진행될 수 없는 지경에 이르렀다. 난 선생님의 목덜미에서 파란 핏줄이 여리게 떨리는 걸 볼 수 있었다.
선생님은 잠시 동안 아무 말도 하지 않으셨다. 그러자 아이들은 점점 심상치 않는 분위기에 적응해 역시 입을 다물었다. 선생님은 노기를 띠며 매우 진지한 목소리로 나에게 말했다.
"너의 할아버지는 네가 열심히 공부한다고 믿고 계신다."
팅, 난 갑자기 할 말을 잃었다. 난 그 말이 어떤 의미인줄 너무나 잘 알고 있었다. 나에겐 아버지가 없었기 때문이다. 난 갑자기 내 약점을 심각하게 건드린 선생님에게 분노가 끌어 올랐으나 내가 모든 걸 초래했다는 걸 알고 있기에 대답할 수 가 없었다.
그 때 선생님이 다시 한 번 힘주어 강조하셨다. "할아버지는 널 믿고 계신다."
갑자기 왠지 지고 싶지 않다는 생각이 들었다.
난 드디어 한자 한자 힘들여 말했다.
"저희 할아버지 역시 선생님께서 유능하다고 믿고 계십니다."
와하하, 와하하, 교실은 다시 아이들의 하이에나같은 웃음으로 가득찼다. 이윽고 종이 쳤고, 나는 아이들과 함께 점심을 먹으려고 급식실로 내달았다.
밥을 먹는 동안 난 스스로가 꼭 대단한 일이라도 한 것처럼 여겨졌다.
‘난 시대의 반항아, 혹시 난 천재가 아닐까!’
아이들도 어디선가 소문을 듣고 왔는지 나에게 감탄의 미소를 지어주었고 나도 똑같이 씩 웃어주었다. 반면, 선배들의 태도는 상반되었다. 선배들은 명문고 의식이 꽤 강한 편이었다. 물론 그들 중엔 공부를 안하고 뺀질거리며 나와 같은 길을 가는 사람들도 있었다. 그러나 그건 중요한게 아니었다. 그들에게 의미를 가지는 건 학교에 소속되어있다는 것 자체였다. 그들은 내가 학교의 명예를 더럽히고 다닌다고 생각했다. 그러기에 어떤 놈은 나에게 시비조로 말을 걸곤 했다.
“인간은 사회적 인간이라고, 이 새끼야, 너 윤리선택 안했냐?”
‘쳇, 또 그 소리군, 넌 윤리 시간에 1단원 밖에 안 배웠냐?’
게중엔 나에 대한 관심을 가지고 설득조로 말하는 부류도 있었다.
“사람이 제 멋대로 살 수 있니, 어디? 어쩔 수 없이 따라가는 거야.”
그럼 난 이렇게 생각했다.
‘우리나라 사람들은 상식이 지켜지지 않는 사회를 현실이라고 받아들이는데 순응하죠. 반면에, 독자적인 길을 가는 사람들한텐 무례하다고 말하고요. 그런 아닐한 생각, 어쩔 수 없으니까, 좋은게 좋은거다 하는 그런 무기력한 개혁의지 때문에 수많은 아이들의 가능성이 짓밟히는 거 안보이세요? 전 더 이상 학교에서 배울 게 없습니다. 이제 수능 얼마 안남았는데 선배일이나 집중하시죠’
그랬다, 난 건방졌다. 하지만 건방질 수밖에 없었다. 참고로 난 처음부터 건방진 게 아니었다. 괴리감이 나를 짓눌렀고 난 순응하며 사는 게 내 신념을 배반한다고 생각했다. 나 같은 사람이 한 사람이라도 이 학교에 있어야, 나중에 누군가가 똑같은 생각을 할 때, 외롭지 않을 거라고 믿었다. 도대체 얼마나 많은 뛰어난 아이들이 획일화된 교육 안에서 꽃을 못 피고 죽어가는가? 누군가는 나에게 세월은 빠르다, 고등학교 3년은 금방이다, 조금만 참아라 하고 말한다. 하지만 그 3년이 어떤 3년인가. 가치관이 형성되는, 감수성이 가장 예민한, 세상에 대한 폭풍 같은 갈등 속 에서 새로운 시각이 창의적으로 형성되는 때가 아닌가? 난 현실에 적응하라는 사람들을 용서할 수가 없었다. 그러기에 난 늘 분노했으며, 그럼에도 불구하고 내가 아무것도 할 수없다는 사실에 괴로워했었다.
수요일 7,8교시는 면학실에서 공부하기로 되어있었다. 하지만 난 농구공을 들고 오후의 화사한 햇살을 맞으며 슛을 던지고 있었다. 사감 선생님의 눈치를 봐 밖으로 나온 아이들 몇몇이 합류했다. 그 중 한명은 나와 절친한 친구였다. 그는 중국어과 1등으로 선생님들이 매우 좋아하는 모범생 이였다. 호리호리한 체격에 얼굴이 희었으며 눈빛이 초롱초롱해 귀족적인 인상을 주었다. 최고의 모범생과 불치의 불량생이 친하다는게 이상하게 들리겠지만 우린 정말 각별한 사이였다. 서로 모든 고민을 털어놓았으며, 같이 한 여자애를 좋아하면서도 싸운 적이 없었다.
“범생님, 여긴 무슨 일이신가?”
난 싱긋 웃으며 인사했다.
“외로운 불량생께 인생좀 배우러 왔다.”
그와 나의 대화엔 늘 웃음이 깃들어있었다. 사실, 그는 나를 매우 아쉬워했다. 그는 내가 몇 달 전만 해도 우리 과 1등이었다는 걸 기억해주었다. 물론 더 이상 그런게 의미가 있는 건 아니었다. 하지만 왠지 그 친구가 고마웠다. 그 친구는 내가 멍청해서 게을러서 오늘에 치달은 게 아니란 걸 믿어주었다. 누군가가 당신의 진정한 의도를 알아준다면 그 사람에겐 최선을 다해야 한다. 그 사람이야 말로 진정한 친구니까.
난 그와 일대일 게임을 시작했다. 그의 드리블이 나보다 빨랐으니 난 그보다 키다 좀더 컸다. 난 이 점을 이용해 최대한 레이업을 많이 성공시켰다. 그러나 점수는 내가 생각한 것 보다 훨씬더 많이 차이났다. 평소엔 비등비등 게임을 했으며 한 골 넣는게 힘이들 때도 있었다. 녀석이 지친 목소리로 말했다.
“그만 하자.”
“너, 몸이 좀 안 좋은가 보다.”
“응, 나 폐에 구멍나서 얼마 전에 수술했잖아.”
“너, 이 자식 아직 다 안난 거야, 그럼 좀 쉬어라, 왜 그렇게 열심이냐?”
녀석은 힘겹게 숨을 몰아셨다. 통증이 생각보다 심한 모양이었다.
“쉴 수가 없어.”
“이 자식, 이래서 안된다니까, 그렇게 한국식 공부에 매달릴 필요 없어, 너의 머리를 썩히는 거니까.”
“알아, 나도 알아, 나도 가끔은 너처럼 이 망할 놈의 학교를 때려치고 싶다구, 하지만 우리집은 가난하거든, 그나마 공부한 놈이 나 밖에 없거든.”
“난, 정말 현실주의자들이 싫다니까.”
나도 웃었고, 그 자식도 웃었다.
어느 덧 여름, 학교에선 재정문제로 에어콘을 7월 이후에 가동한다고 발표했고 우린 할 수 없이 6월달을 땀에 젖어 보내야했다. 창 밖에서도 시원한 바람은 들어오지 않아 체육시간이라도 한 날이면 온 교실이 열기로 후끈댔다. 수업시간 동안 학생들은 짜증이 나기 시작했고 자율학습 시간엔 모두 조는 일이 다반사였다. 시원한 곳은 단 한 곳, 교무실이었는데 그 이유는 선생님들이 쾌적한 환경에서 수업준비를 해야 되기 때문이었다.
‘우리 가족의 세금이 너희들 땀을 닦는데 사용되는군!’
난 상당히 비도덕적인 생각을 떠올리며 학교를 다녔다. 그러 던 어느 날, 점심시간이 시작되자 친구들과 나는 여느 때와 같이 종 치는 소리와 동시에 후다닥 식당으로 달려갔다. 자리에선 아이들이 어떤 일에 대해 흥미로워하며 이야기하고 있었다. 난 무슨 이야기를 하는지 궁금하긴 했지만, 급식실도 덥기는 마찬가지여서 밥을 빨리 먹고 나가고 싶은 생각뿐이었다. 그러나 갑자기 ‘Mr.R’이라는 이름이 나왔을 때 내 몸은 자연스레 이야기소리가 들리는 곳으로 향했다.
“오늘, R수업시간에 거의 쓰러질 지경이었어.”
“담배를 너무 많이 핀 탓이야.”
“꼭, 담배 때문은 아닌 것 같은데, 글자 한 글자 한 글자 쓰는 게 힘들어 보였어.”
‘드디어 은퇴할 때가 왔군, 흐흐’
난 이야기에 끼어들었다.
“뭐 대단한 일이라구, 그러니, 수업시간에 쓰러진 것도 아니잖아. 그냥 노환일 뿐이잖아, 치. 흡연에 찌든 폐의 활량을 랩의 속도가 초월해서 기계가 고장난 것 뿐이라구.”
이번만큼은 아이들도 웃지 않았다.
“아냐, 수업 끝나자마자 응급실에 실려가셨는걸.”
“응급실? 쳇.”
난 식사를 다 마쳤고 도망치듯이 급식실의 더위 속에서 빠져나왔다. 다음날 교무실에서 선생님은 보이지 않았다. 법과사회 수업은 담임선생님 수업시간인 윤리수업 시간으로 변경되었다.
‘법이 정말 사망했군. 키키’
난 여전히 선생님의 부재를 비웃었다.
그리고 삼일 후, 아이들 중 한명이 들뜬 목소리로 말했다.
“그가 돌아왔다.”
“설마 법을 두 번 죽이는 건 아니지.”
“맞아.”
그리고 곧 시간표가 바뀌었다. 윤리 선생님이 법과사회수업을 채웠기 때문에 오늘은 법과사회가 두 시간이 된다는 소식이었다.
‘빌어먹을’
그는 수업시간에 무사태평한 듯 들어와 교탁위에 책을 올려놓았고 자신에게 있었던 일에 대한 한마디 설명도 없이 수업을 시작했다.
“자, 교과서 00페이지.”
그러나 역시 그도 인간이었다. 그는 수업시간 중간 중간 말을 멈춘 채 돌 하루방처럼 창밖을 얼마간 바라보다가 수업을 이어나갔다. 그의 이마위엔 땀이 송골송골 맺히기 시작했고 힘없어 보이는 손에선 하얀 분필이 계속 떨어져나갔다. 그는 얼굴이 빨갛게 상기된 채 오늘은 자율학습을 하자고 했다. 그러고 나선 교실 모서리에 있는 컴퓨터 의자에 앉았다. 그의 몸이 떨리고 있는데 보였다. 이 모든 걸 보는 것은 예상외로 괴로운 일이었다.
‘왜 이렇게 약한 모습을 보여서 내 동정심을 이끌어내는 거야?’
얼마 후 종이 쳤고, 이젠 청소시간이었다. 그는 몸을 힘겹게 이끌며 교실 밖을 나갔다. 난 교무실 앞 복도 청소이기 때문에 그의 뒤를 따라갔다. 그의 몸이 계단 앞쯤이었을 때 그는 멈춰서 계단 난간을 온 신경을 다해 잡았다. 그리고 천천히 몸을 움직였다. 한 발자국, 한발자국씩. 그는 매우 천천히 조심하며 나아갔다. 난 그를 앞지르기 위해 발걸음을 빨리했다. 하지만 그의 바로 뒤에 선 순간 그럴 수 없었다. 왠지 그를 앞지르는 게 비인간적인 행동으로 여겨졌다. 하지만 그를 도와 계단을 내려갈 수도 없었다. 그렇게 행동하는게 너무나 어색하게 느껴졌기 때문이다. 난 결국, 그가 계단을 완전히 내려갈 때 까지 초라한 그 뒷모습을 바라봤다.
‘선생님, 정말 아프시군요.’
그 후, 그 광경은 내 뇌리 속에서 떠나지 않았다. 잘 때도 밥을 먹을 때도 세수를 할 때도 항상 머릿속에서 맴돌고 또 맴돌았다.
‘왜 하필 그런 모습을 보고 만 걸 까. 젠장!’
그러나 이 모든 건 곧 기억 속에서 사라졌고 난 다시 낯을 찌뿌린 채 학교를 다니며 지루한 시간을 견뎌냈다. 그리고 드디어 대형사고를 쳤다.
그날은 중간고사였다. 첫 번째 시험은 담임선생님 과목인 윤리시험이었다. 물론 내가 아는 게 있을 리가 만무했다. 난 주관식 답안란에 내 이름을 여섯 번 적었다. 허무한 기분 때문인지 곧 졸음이 몰려왔고 난 시험 5분만에 책상위로 쓰러졌다. 그런데 누군가가 내 책상을 싸인펜으로 두드렸다. 고개를 들어보니 나보고 수업시간에 나가 있으라고 한 노처녀 선생님이었다.
그녀는 내 답안지를 보더니 화장으로 가려진 이마의 주름을 하나하나 다 찌푸렸다. 결국 난 잠을 잘 수 없었고 시험이 끝날 때까지 멍하게 내 발 밑만 쳐다보고 있었다. 드디어 종이쳤다. 아이들은 또 뭐 틀렸어, 뭐 틀렸어 하며 질질 짜길 시작했다.
‘쳇, 잘하지도 못하는 놈들이 또 시작하는 군, 하긴 내가 할 말이 있나, 난 이제 골등을 할텐데. 00의 화려한 추락’
이런 생각을 하니 갑자기 한없이 우울해졌다. 앞으로 남은 시험기간은 3일, 3일동안 이런 똥 씹은 기분으로 있어야 하는 건가. 어차피 꼴찌를 할 시험을 위해서. 그럴 순 없다. 그래 나가자, 밖으로 학교를 탈출하자. 내 머릿속은 빠르게 앞으로의 계획을 세웠다. 먼저 가장 친한 친구 두놈의 핸드폰 번호를 수첩에 적었다. 주머니엔 만원이 있었다. 잠은 어디서 잘까! 좋아, 나와 친했던 작년 원어민 선생이 근처에서 산다고 했지. 그는 한국인이 아니니까 나를 이해할 수 있을거야. 정말 나의 문제아적 재능은 타고난 것 같았다. 난 반장에게 OMR펜이 떨어졌다고 거짓말을 한 뒤 신발을 신고 교정으로 나왔다. 학교 주사가 삽을 든채 돌아다니고 있었다. 그가 나를 볼 수없는 곳 까지 갔을 땐 이미 시작종이 쳤을 때였다.
‘그래, 가는 거야!’ 난 초고속으로 학교 체육관 뒷담으로 가서 철조망을 넘었다. 비가 온 뒤여서 학교 주변의 공터에는 물이 작은 웅덩이를 이루고 있었다. 그러나 난 그런 걸 신경쓸 겨를이 없었고 내 신발과 교복바지엔 온통 진흙이 묻었다. 난 고양이를 피하는 들쥐처럼 공터를 내달았다. 그리고 드디어 학교에서 이십 미터쯤 나왔을 때 난 외쳤다.
‘자유다, 자유다, 해방이다.’
난 선생님들이 나를 찾아올 수 없는 곳인 교외로 걷고 또 걸었다. 곧 눈앞엔 영산강이 나타났다.
‘아, 저 영산강의 물방울로 흐를 수 있다면!’
정말 살 것 같았다. 막혔던 숨이 트이는 것 같았다. 난 푸른 풀로 뒤덮인 강둑 위를 노래를 부르며 걸었다.
“난, 책을 접어놓으며 창문을 열어~ 흐린 가을 하늘에 편지를 써~ 난 잊혀져간 꿈들을 다시 만나고파, 흐린 가을 하늘에 편지를 써~우워워~”
지금은 여름이었지만 그런 건 상관없었다. 난 자유니까, 모든 걸 초월했으니까.
꽤 오래 걸은 후 버스정류장에 도착한 나는 원어민 선생님에게 전화를 걸었다. 그는 근무중이었다.
"Cathy(가명), It's sorry for you to call now, but there is an emergency."
(캐시, 지금 당신에게 전화해서 미안합니다. 그러나 응급상황이 있어요.)
"Oh, my lovely, That's Okay. What happened to you?"
(오, 00, 괜찮아요, 무슨 일이죠?)
"I'm out of my school."
(나 학교에서 나왔어요)
"You mean you got the ax?"
(설마 퇴학당했단 건가요?)
"No, you are wrong, I went out during the test."
(아뇨, 당신은 틀렸어요, 나 중간고사보다가 나왔어요.)
"Oh, my god." 갑자기 미국인 특유의 과장된 비명소리가 들렸다.
"I'll talk you later, anyway, Would you do me a favor?"
(나중에 이야기 할께요, 아무튼 날 좀 도와줄 수 있어요?)
"Yes, What?"
(네, 뭐죠?)
"Please, accommodate me in your house, I know It's difficult. You can do it?"
(부탁인데 나 당신집에서 하룻밤만 재워져요. 난 그게 어려운 부탁인거 알아요. 가능할까요?)
"Oh, my god." 그녀는 오마이 갓을 한 열 번은 외쳤다.
“There is no way but to call you. You can do it?"
(당신에게 전화하는 방법 밖엔 없었어요, 할 수 있어요.)
"That can make me quit my job"
(그건 내가 직장을 그만두는 일이 될 수도 있어요.)
"Really? Okay, I'll find another way"
(정말요? 알았어요. 다른 방법을 찾아보죠.)
"No, You can sleep in my house"
(아니에요, 당신은 내 집에서 잘 수 있어요.)
"Oh, thank you. thank you."
(고마워요, 정말 고마워요.)
"But, Keep secret."
(하지만, 비밀을 지켜야해요.)
"Of course. Then meet in front of your house."
(물론이죠, 당신 집 앞에서 만나요.)
"Bye"
(그럼 안녕)
"Bye"
(그럼 안녕)
그녀의 집은 꽤 넓었다. 난 그녀가 나를 집에서 비밀로 재워주는 것 보단 내가 그녀에게 남자로 비춰지는 게 더 심각한 문제라는 걸 알아차렸다. 난 내가 왜 나오게 됬는지 차근차근 설명했다. 그리고 이젠 두 번 다시 학교에 가지 않을 것이며 전화로 어머니, 할아버지와 자퇴에 대해서 협상을 할 것이라고 말했다. 그녀는 다시 한 번 비밀을 지킬 것에 대하여 철저히 당부했다. 그리곤 끝이었다. 그녀는 그 날 저녁 나에게 스테이크를 해주었다.
“미국에선 이렇게 식사하죠.”
그녀는 나를 위해 무척 배려하고 있었다. 사이다를 냉장고 안에 놔두지 않았다며 자기 혼자 나가 새 사이다를 사다 줄 정도였다. 난 틈틈이 친구들에게 연락해 상황이 어떤지 물어봤다. 학교는 예상대로 발칵 뒤집어 져있었다.
“야, 그래도 애들이 너보고 매너있다더라, 담임선생님 시험보고 갔다고.”
“빙고!”
지구는 반대편으로 돌아가고 있었지만 난 웃고 있었다.
나와 캐시는 저녁을 먹고 DVD영화를 봤다. 캐시는 나에게 DVD로 영어공부 하는 법을 가르쳐주려고 했다.
“Are you kidding?"
(지금 장난치는 건가요?)
결국 그녀는 그녀의 계획을 단념했다. 지금 생각해보니까 그녀 기분을 위해서라도 난 그녀를 따랐어야만 했다.
대신 그녀는 나에게 대담한 질문을 던졌다.
“Do you want to smoke?”
(담배 필래요?)
“Maybe, you think I can't smoke. but I love smoking"
(아마, 당신은 내가 담배필 수 없다고 생각하겠죠. 그러나 난 담배피는 걸 사랑해요.)
“No, I didn't. Anyway, I can give it for you because we're friend."
(아뇨, 그러지 않았어요. 아무튼 내가 당신을 위해 이걸 줄 수있는 건 우리가 친구이기 때문이에요.)
아무리 생각해도 그녀는 정말 멋진 여자였다. 난 그녀의 담배를 받아 피었다. 꼭 박하 향 같은 냄새가 올라왔고 난 니코틴의 황홀함에 취해 잠들었다. 다음날 아침, 난 그녀 집에서 아침을 먹고 아무 계획도 없이 밖으로 나섰다. 하루 더 있기가 미안했기 때문이다.
“Thank you, I will naver forget, Don't worry, I'll amazingly succeed"
(고마워요, 절대 잊지 않을게요. 걱정마요, 나 엄청나게 성공할게요.)
“I bet."
(나 당신의 성공에 걸께요.)
한 여름이어서 그런지 햇살은 벌써부터 비추고 있었고 난 엠피쓰리를 꺼내기 위해 주머니 속을 뒤졌다. 캐시가 숨겨놓은 오만원이 있었다.
'고마워요, 캐시, 정말 이 은혜 평생 있지 않겠어요.‘
자식 이기는 부모는 없다더니 난 자퇴서에 어머니의 서명을 받는데 성공했다. 친구들은 내가 떠나는 게 너무 허무하게 느껴졌는지 인사라도 하고 가랬다. 난 면학실로 들어가 친했던 놈들의 어깨를 어루만져 주면서 똑같은 말을 어학기처럼 반복했다.
“꼭, 서울대가라, 안 가면 패줄 테니까!”
그러나 다음 날, 집안엔 한바탕 난리가 벌어졌다. 할아버지께서 내가 학교에 들어가기 까지 단식을 선언한 것이다.
‘이거 정말 미치겠군.’
난 할아버지에게 전화를 해서 상황을 말씀드렸다.
“할아버지, 이미 자퇴처리를 해버린 걸요. 걱정 마세요. 검정고시를 보면 되잖아요.”
“이런 고얀 놈, 니가 나 쓰러지는 꼴을 보고 싶은 게구나, 이런 막되 먹은 놈.”
일은 점점 커져만 갔다. 광주에서 삼촌이 찾아왔고 순천에서 고모가 찾아왔으며, 마침내 할머니가 찾아왔다.
“너 때문에 할아버지 돌아가시겠다.”
무엇보다도 제일 견디기 힘든 건 어머니가 울며 매달리기 시작했단 것이다.
“제발, 학교 가서 자퇴한지 이틀 밖에 안됬으니까, 취소해달라고 빌어, 응. 엄마랑 가서 빌자. 나 좀 살려주라, 이놈아, 이놈아.”
‘이런, 이런, 이런!’
어쩔 수 없이 난 짐을 다시챙겨 학교로 향했다. 이건 정말 울며 겨자먹기였다.
‘사나이 자존심 다 구겨지는 구나.’
교장선생님과 교감선생님의 태도는 단호했다.
“요즘은 전산처리가 빨라서 이미 다 모든게 끝났어요, 절대 소용없어요, 돌아가십쇼.”
그러나 어머니는 포기하지 않았다.
“제발 선처를 베풀어주세요, 우리 아들이 원래 이런 애가 아니었어요. 남편이 죽고 충격이 컸던거 같아요.”
난 어머니를 교장실 밖으로 끌어냈다.
“어머니, 정말 간곡히 말하는데 그런 구차한 모습 보이실 필요 없어요.”
“닥쳐, 이 새끼야, 이 개놈새끼야.”
어머니는 이미 감정을 조절할 능력을 상실한 뒤였다. 난 학교에서 어머니랑 싸우고 싶지 않았다. 난 어머니를 놔두기로 했다. 그리고 몇 시간 뒤 모성애는 제도의 힘을 이기고 말았다.
담임선생님은 나를 수업중인 반으로 데리고 간 뒤, 아이들에게 말했다.
“여기, 전학생 한명이 새로웠다. 앞으로 친하게 지내라.”
난 몇 일동안 침묵으로 일관했다. 물론 이유는 부끄러웠기 때문이다.
‘친구들은 나를 비웃고 있겠지, 오는게 아니었어, 지금이라도 다시 나갈까, 아냐, 그건 아냐, 젠장, 젠장.’
난 학교 도서관에서 책을 잔뜩 대출해 수업시간 중에 읽었다.
이미 선생님들은 나를 단념한 듯, 아무런 제재도 가하지 않았다. 그러나 법과사회 선생님 만큼은 예외였다.
“00군, 학교에 다시 들어온 건 앞으로 열심히 하겠다는 게 아닌가!”
“네, 죄송합니다.”
평소 같으면 고분고분하지 않았을 난 책을 덥고 교과서를 폈다. 법과 사회선생님은 나의 순응적인 태도에 약간 당황한 것 같았다.
“수업시간에 나한테 와라.”
“네?”
“끝나고 오라고.”
“네.”
선생님의 자리는 예상과 다르게 매우 정갈했다.
“학교는 다닐 만 하냐?”
‘지금 나하고 장난치자는 건가.’
“네, 그럭저럭요.”
“그럼 앞으로 어떡할 계획인가?”
“저도 모르겠습니다.”
“이 번 시험은 안 봤으니 할 말 없지만 저번 까지는 일등을 했더군.”
“네.”
“그리고 모의고사 대학지망란에 공주사대라고 적어놓았더군.”
‘!’
순간 난 움칫했다. 그렇다, 기억이 난다. 난 분명 모의고사 대학지망란에 사대라고 적었다.
거기엔 이유가 있었다. 일단 우리 가족은 내가 안정적인 직장을 가진 사회인이 되기를 희망했다. 그리고 선생님이라는 직업은 그들이 생각하는 요구조건을 충족시켰다. 특히 할아버지께서는 나한테 틈만 나면 공주사대에 들어갈 수 있냐고 물으셨다. 그래서 난 적었다. 아무 생각 없이 ‘공주사대’하고.
‘이제 와서 그런 걸로 빌미를 잡히는 건가?’
그러나 선생님은 더 이상 거기에 대해선 묻지 않고 화제를 돌렸다.
“가끔, 세상을 살다보면 정말 하기 싫은 일을 해야 할 때가 있다. 특히 내가 그랬다. 무엇보다도 난 정말 선생님이 하기가 싫었다. 물론 처음 자리를 맡았을 땐 기뻤었지. 하지만 난 곧 깨달았다. 내가 능력이 없는 선생님이라는 걸, 학생들 모두가 나를 세금을 축내는 놈으로나 본다는 것을.”
난 그의 눈을 바라보았다. 그는 진지했다.
“내가 하루, 하루를 얼마나 죄책감 속에서 사는지 아니, 난 정말 지금이라도 이 일을 그만두고 싶단다, 하지만 그럴 수도 없는 걸. 그렇기에 한단다. 이 말도 안 되는 짓을.”
그의 늙은 목소리엔 애처로움이 서려있었다. 난 고개를 계속 숙인채로 가만히 있었고 선생님은 말을 이어나갔다.
“네가 예전에 나한테 반항한적 있었지. 다른 선생님 같으면 네 녀석 뺨을 한대 갈겼을 수 도 있다. 하지만 난 그럴 수 없었다. 내 잘못이니까. 내가 못나서 그러니까. 세상은 그런 거 같다. 정말 죽도록 하기 싫어도 할 수 밖에 없는 거. 그러면서 살아가는 거. 그 괴로운 와중에서도 나름대로의 보람과 행복을 찾는 거. 그런 곳이 세상인 것 같다. 난, 아직 네가 공부에 가능성이 있다고 본다. 눈 딱감고 1년만 학교를 버텨주면 안되겠냐?”
“....” 난 대답하지 않고 침묵했다.
“그래, 나중에 좀더 생각해봐라.”
그날 밤, 난 중국어과의 모범생 친구를 찾아갔다. 그 녀석은 다른 아이들이 잘 채비를 했음에도 불구하고 수학 문제집을 풀고 있었다.
‘기억난다, 예전엔 저놈이랑 나랑 기숙사에서 같이 스터디 그룹을 만들어 공부했는데, 그 땐 정말 재미있었지. 보람도 있었고.’
“무슨 일이냐?”
“그냥, 얘기 좀 하자고.”
“네가 올지 알고 있었다.”
“쳇.”
“요즘 학교는 잘 다니냐?”
“쪽팔려 죽겠다.”
“이왕 온 거 시간을 헛되이 보내진 마라.”
난 그 자식과 대충 인사를 마친 채 이야기를 꺼냈다. 난 그 자식에게 단도직입적으로 말했다.
“나, 요즘 처음으로 내가 인생을 막살았단 생각이 든다.”
“꼭, 그런 건 아니야, 그 모든 게 소중한 경험이 될테니까. 사실 난, 어떻게 내가 그렇게 짧은 순간에 나갈 계획을 세웠는지 신기할 정도니까.”
“아니야, 그런 게 아니야, 아무리 생각해도 내가 내 인생을 너무 막 사는 것 같아.”
“아냐, 넌 과도기에 너무 중요한 걸 깨달았을 뿐이야.”
“말은 잘한다, 이놈. 난 정말 네가 존경스러우면서도 궁금하다. 넌 어떻게 이런 되먹지도 않는 삶에 순응할 수 있는 거냐.”
“나도 잘 알고 있다구, 나도 정말 학교 다니기 싫어. 정말이야. 얼마전 까지만 해도 난 이번 학기를 마치고 민족사관고 편입을 준비하려고 했어. 여긴 정말 별로거든. 그냥 입시를 위한 곳일 뿐이야. 커리큘럼에 나은 게 없어. 하지만 그럴 순 없거든.”
“왜지?”
“이미, 말했잖아. 우리집은 가난하다구.”
“고작 그것 때문에 네 앞길을 스스로 나아가지 않겠다는 거야?”
“물론 그것이 가장 큰 이유는 아냐, 난 스스로 이렇게 선택한 거야. 00, 잘 들어봐. 자신만의 길을 가면서 남에게 상처를 주는 건 옳지 않은 일이야. 그건 이기적인 짓이야. 가려면 남한테 상처주지 않고 가야지?”
“남한테 상처주고 가면 안된다라”
“정말이야, 그래 넌 정말 잘났어. 진심이야. 농담하는 게 아니라구. 그런데 생각해봐. 너 나중에 그렇게 살아서 누굴 위해 잘되려고 하는 거니? 너 자신을 위해서? 그건 비극이야. 그래, 니 눈에는 아마 현실에 적응하며 사는 세상 사람들이 너무나 바보같고 작아 보이겠지. 하지만 그게 아니야, 그들도 현실의 부조리를 잘 알고 있어. 진짜 위대한 인간은 그런 사람들과 막걸리를 마실 줄 아는 인간이야?”
무슨 소리지, 내가 그 사람들과 막걸리를 마신다?"
"그렇지, 막걸리를 마시는 건 인간적 공감이야. 그 사람들의 부족함을 따스히 어루만져주고 한스러운 이야기를 들어주며 같이 흥겨운 가락에 맞춰서 나아가는 거야. 같이 막걸리를 마시면서 말야.”
“멋지군, 그럴 듯해.”
난 그 자식과 이야기하고 나거 가슴이 따뜻해지는게 느껴졌다.
‘그래, 언젠간 막걸리를 마실 수 있는 사람이 되야겠지.’
그 뒤로, 난 학교에서 선생님들을 대할 때 늘 이 한 가지를 명심하기로 했다.
‘인도주의지 못한 시각은 나와 남 사이에 벽을 쌓는다.’
그 노력의 예로 난 수업시간에 선생님들이 옳지 못한 태도를 보인다고 여겨질 때도 늘 그는, 그녀는 인간이라는 걸 먼저 떠올렸다. 처음엔 반항적 감정이 앞서 힘들었지만 시간이 지나니 다르게 보이기 시작했다.
그들이 화내는 모습이, 슬퍼하는 모습이, 흥분하는 모습이 나는 사람이다, 나도 상처받는 사람이다 하고 외치는 것만 같았다.
‘내가 어떤 우월한 논리를 앞세운 들, 이들의 삶의 한 자락 하나라도 이해하지 못한다면 무슨 의미가 있겠는가!’
또한 이 때 홍세화씨의 '나는 빠리의 택시운전기사'와 '왜 똘레랑스인가'를 읽었는데 이건 지금 내 시도에 자극을 주는 동기가 되었다.
난 홍세화씨를 통해서 과거의 한국인들이 어떤 가치관속에서 살아왔는지 배울 수 있었다. 책을 통해서 본 전 세대들의 삶은 증오의 역사 한가운데 있었으며 그들의 이데올로기는 위선적 자유주의였다.
반공, 간첩신고, 빨갱이, 민족대단결, 가난과 경제발전.
그리고 난 혹시 그 들이 당시의 피폐한 시대의 피해자일 수도 있다고 생각했다.
그들에겐 오늘 날 보다도 훨씬 작은 자유가 주어졌다. 그들은 압제 속에서 신음했으며 그들의 신념은 권력에 의해 짓밟혀야만 했다. 오늘 날 까지 오는 것만으로도 세상은 그들에게 너무나 많은 피의 희생을 요구했다.
만약 나를 시대의 욕구를 표출하는 신세대라고 한다면 그들은 상실의 시대에 익숙한 구세대였다.
양자 사이에는 얼음처럼 차갑고 단단한 벽이 있었다. 양자는 그 벽을 깰 연장을 필요로 했다. 그것은, 바로 인도주의를 밑바탕에 둔 똘레랑스와 서로를 이해하기 위한 노력이었다.
결국은 난 내 처음의 뜻을 달성했다. 난 드디어 할아버지마저 이기고 이번 학기 후 자퇴하기로 결정했다. 앞으로, 학교를 다녀야 할 기간은 두 달, 그러나 더 이상 학교에 다니는 게 지루하지 만은 않았다. 이 시간을 서로에 대한 이해와 더 나은 교육을 위한 대안을 고민하는데 보낼 계획이기 때문이다. 물론, 학생인 내가 할 수 있는 건 아무 것도 없다. 하지만 괜찮다. 나에겐 미래가 있기 때문이다. 언젠간 내가 모든 불리한 조건을 딛고 사회의 리더가 되었을 땐, 세상을 바꿀 힘이 내게 있을 것임을, 꼭 그렇게 될 것임을 강하게 믿고 있기 때문이다.
그럼, 미래를 기약하며, 불량생으로부터 온 편지, 끝.
* 특별한 주제를 따지기보다는 그냥 솔직한 마음으로 썼습니다. 너무 자질구레하게만 보지 마시고 진지하게 읽어줬으면 좋겠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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