눈과 마음을 다치고 궁예가 되버
- 작성자 초록빛동화
- 작성일 2006-08-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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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월 18일.
아빠의 산재휴가가 끝났다. 처음엔 알아듣지 못했지만, 가만히 생각해보니 그것이었다. 이제 출근 일이 마이너스라던, 아빠의 말씀. 지난 2월, 부산대학병원에서 중이염 수술을 하실 때에도, 아빠께선 돌아오는 불이익을 최소화하시기 위해 미리 출근 일을 채워두셨다. 그래서 아빠께서 병원에 입원해계신 동안 출근하신 것으로 되어 있었다. 그렇지만, 이제는 출근 일이 마이너스가 되기 시작한 것이다.
그렇다면, 출근하면 되지 않느냐고? 그게 그렇게 쉬운 문제라면, 아빠께서도 이렇게 속을 태우고 계시지만은 않으셨을 것이다. 지난달, 그러니까 7월 5일. 내 시험 셋째 날, 아빠께선 4시간 30분간 수술을 하셨다. 일을 하시다, 눈을 다치셨다. 그게 그냥 다친 것도 아니고, 심하게 다치셨다.
톱질을 하고 계셨다. 그러다 갑자기 톱날이 부러져서 아빠의 눈으로 박혀버린 것이었다. 그런데 더 심각한 문제는, 그냥 날카로운 날이 아니라 뭉툭한 상태였다는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아빠의 눈은 톱날이 박히면서 함몰되었다. 함몰되었다는 표현이 적절한지는 모르겠지만, 그랬다고 들은 것 같다. T자로 찢어졌다고 하던데.
눈에서 피가 꽤 흘러내려서, 주위에 계시던 아주머니들께서 놀라셨다고 한다. 가까운 안과로 가보았지만, 고개를 저으며 큰 병원으로 가야 한다는 말뿐이었다. 그래서 제일 가까운 백병원으로 갔다. 하지만, 아빠보다 급한 환자가 둘이나 있어서, 수술이 내일이 될지, 모래가 될지 모르겠다는 대답이었다. 그래서 응급센터에 전화해보니, 그나마 동아대학병원이 수술할 수 있는 요건을 갖추고 있다고 했다. 그래서 급히 그쪽으로 옮겼고, 뭔가 연락이 되지 않았던 것인지 안과 의사들이 수술을 할 수 없다고 했지만, 응급실에 접수를 해버린 상태였다. 수술 요건이 맞아떨어지자, 그날 저녁에 바로 수술을 한 것이라고.
그때의 난, 다음날 마지막 시험을 대비해서 학교에서 공부를 하고 있었다. 핸드폰 사용이 불가능한 상황이었고, 그래서 아빠께서 연락을 하기가 쉽지 않았다. 학교로 연락을 하셨던지, 갑자기 어떤 분이 들어오셔서 날 찾았다. 아빠께서 다치셨다는 연락이 왔다고. 순간 아찔하긴 했지만, 별일 아니겠지, 라고 생각했다. 아니, 그래야만 했다. 그러길 바라는 수밖엔.
친구의 핸드폰을 빌려서 아빠께 연락을 하자, 동아대학병원이라고 하셨고, 지금 당장 집에 가서 연락을 기다리라고 하셨다. 무슨 영문인지조차 모르고 난 그저 시키는 대로 집으로 향했다. 전화 상태로 봐서는 아빠께 별일이 없는 듯했지만, 대학병원이라니…. 왠지 불안했지만, 애써 그런 생각을 떨치려 노력했다.
시간이 흐른 후, 언니가 집에 도착했고, 눈을 다치셨다는 말을 들었다. 뭔가 생각보다 심각한 상태임이 분명했다. 대충 아빠의 짐을 챙기고, 수술을 해야 한다는 말을 남긴 채 언니는 병원으로 향했다. 눈앞이 깜깜해진다는 것이 이런 것이구나 싶었다. 상태가 좋지 않으면, 실명이 된다고 했다. 상태가 더 좋지 않으면, 아예 눈알을 빼내야한다고 했다. 눈에서 차가운 것이 떨어졌고, 혼자인 나는, 엉엉 울어 버렸다. 뭔가 억울하고, 두려웠다. 엄마도 집에 계시질 않는데…. 왜 계속해서 이런 일들만 나에게 겹치는 건지, 세상이 원망스러웠다.
분명 8시 20분에 수술을 시작해서 2시간 후면 끝난다고 했다. 물론, 상태가 좋을 경우에. 10시, 11시, 12시가 되어도 연락은 오질 않았고, 초조해져 갔다. 무슨 일이 있는 건 아닐까, 혹여나 수술이 잘못된 것은 아닐까, 생각보다 상태가 많이 나빴던 걸까……. 1시가 다 돼갈 무렵, 드디어 연락이 왔고, 수술이 잘되었다는 말만 들을 수 있었다. (나중에 알고 보니, 함몰되었던 덕에 수정체와 홍채 등을 들어냈다고 한다.) 그래도 나는 쉽사리 잠을 이루지 못했고, 결국 다음날 시험을 망친 후, 아빠의 병원으로 향했다.
동아대학병원에 도착한 나는, 처음 와보는 이곳에서 어떻게 아빠의 병실을 찾을지 고민했다. 부산대학병원이었다면, 지난번에 일주일간 집처럼 다녔으니 쉽게 찾을 수 있을 텐데, 라는 쓸데없는 생각을 하면서 이리저리 둘러보았지만, 얻는 건 없었다. 그러다 병실을 찾아주는 곳을 발견하였고, 그곳으로 가서 아빠의 성함을 말했지만, 그런 사람은 입원해있지 않다고 했다. 검색 과정과 그 결과까지 지켜보고 있던 나는, 허탈했다. 분명 이곳에 있을 텐데. 이럴 때 핸드폰이 불구인 것이 그리 원망스러웠다. 결국, 공중전화를 찾기 시작했고, 곧 언니에게 전화를 했다.
응? 이건 또 무슨 날벼락. 이곳, 1층으로 오기 위해 지나쳤던 응급실에 있다고 했다. 왜 아직까지 응급실에 있는 건지 또 다시 걱정이 되기 시작했다. 조금 더 헤맨 후, 언니와 아빠께 도착하였고, 생각보다 멀쩡한, 단지 왼쪽 눈에 붕대를 감고 계신 모습을 뵐 수 있었다. 알고 보니, 병실이 나지 않아 응급실에 계속 머무르고 있다고. 그 말에 조금 안심이 되긴 했지만, 응급실, 처음 가보는 그곳은, 두 번 갈 곳이 되지 못했다. 바로 옆에서 사람이 죽어가고 있었다. 이래서 병원이 싫은데. 왠지 나까지 눈물이 날 것만 같았다. 언니의 얘기를 들어보니, 온몸이 피투성이가 된 채 이곳으로 들어오는 사람도 있다고 했다. 생각만 해도 끔찍했다. 엉뚱하게도, 그때의 나는 ‘역시 난 간호사는 절대 되지 말아야지.’라고 다짐했었다.
출근하고 싶어도 출근할 수 없는 상황이었다. 보름쯤 후에 퇴원하신 아빠께서는 통근치료를 하셨고, 집에서 백수와 다름없는 생황을 하게 되셨다. 그나마 다행인 것은, 산재 처리가 되어 치료비가 하나도 들지 않는다는 것이었지만, 당장 먹고살아 갈 일이 문제다. 그리고 눈 안의 염증이 완전히 아물면, 인공 수정체 이식을 위한 2차 수술이 기다리고 있었다.
들어오는 돈은 없고, 나갈 곳은 어찌도 그리 많은 건지. 본래 빚이 있었는데, 더 늘어나게 생겼다.
하지만, 이건 아니다. 더워서 불쾌지수가 올라간 탓도 있겠지만, 어제와 오늘, 태풍으로 인해 계속해서 비가 내리고 있었다. 그럼 비 때문일까. 알 수 없다. 참으로 알 수 없다. 아빠의 짜증의 횟수가 점점 증가하고 있었고, 비꼼으로 화장한 그 말들. 기억하고 싶지 않았기에, 그리고 한둘이 아니었기에 그 말들은 지금 내 머릿속에 남아 있지 않지만, 그때의 그 기분, 느낌. 그것은 아직도 생생하다. 지금 생각해보면, 그때의 내 인내심에 박수를 보낼 정도.
어제는 그런 일도 있었다. 밤 12시를 넘긴 시각, 아빠께서 나를 부르셨다. 혹시 언니가 요새 이상하지 않느냐고. 엥? 그건 또 무슨 말이지? 그런 것은 없다고 대답한 날 향해, 내 느낌일 뿐이지만, 한심하단 표정을 지으셨다. 모르면 됐다, 뭐 그런 표정.
가끔 이런 아빠를 보면, 그 옛날의 궁예가 생각난다. 관심법을 할 줄 안다며 수많은 사람을 죽였던 그 궁예. 이럴 때의 아빠는 마치 “난 관심법을 할 줄 알아. 속일 생각은 하지 마.”라고 말하는 듯하다. 그러면 내 속은 끙끙 앓아야만 했고, 머리끝까지 화가 나는 것도 느껴봤다. 그리고 치유될 수 없는 상처를 받기도 했다. 궁예 같은 아빠께선, 예전에 그런 말씀을 하셨다. 엄마에게 다른 남자가 있다고. 그래서 이혼한 거라고. 그래서 동네 아주머니들이 엄마가 도망갔다고 한다고. 차마 아빠께 화를 낼 수 없는 나는, 나는, 그저 아빠 몰래 엉엉 우는 수밖엔 없었는데, 엉엉 우는 것조차 나에겐 허락되질 않아서, 상처는 상처로 남아 계속 날 괴롭히고 있다. 지금도 그 생각을 하면, 눈앞이 흐려지는 것이, 가슴 저편 깊은 곳에서부터 뭔가 알 수 없는 감정이 내 마음을 꾹꾹 누르는 것만 같다. 만약, 엄마가 정말 다른 남자가 생긴 거였다면, 아빠 몰래 만날 때 가끔 눈물을 보이기도 하고, 우리에게 너무 미안해하고, 우리 집 걱정을 하고, 아빠 걱정도 가끔 하고, 곁에 있어 주지 못함에 죄인이 되어버리고, 아주 가끔 술에 취해 울며 미안하다고 미안하다고…, 그럴 리가 없잖아?
언니가 집에 오고, 아빠는 언니를 부르고, 아빠의 일방적인 말이 쏟아지고, 쏟아지고, 언니는 베개를 적시고. 저건 내가 자주 하는 건데, 언니는 거의 하질 않는 건데. 언니에게 아무 말도 할 수 없었다. 정확하게 어떤 말이 오갔는지도 모르고, 저 상태의 언니를 잘못 건드렸다간 모든 화살은 나에게 돌아온다. 좀 이기적이지만, 저럴 때엔 혼자 울도록 두는 것이 오히려 좋을 때도 있다. 자기 합리화 같지만, 어떻게 생각하든 어쩔 수 없다. 그때의 내가 할 수 있는 일은 없었으니까.
곧 물을 마시기 위해 아빠께선 부엌에 오셨고, 방으로 돌아가기 직전, 그런 말씀을 남기셨다.
“혹시 외가에 돈 보내주는 거 아니야!?”
“…….”
궁예로 변해버린 아빠의 앞에서, 난 또다시 뭔가 참을 수 없는 것을 느꼈다. 아빠와 엄마의 이혼 후, 외가에 다녀오면 안 되나요, 라는 나의 조심스러운 질문을 무참히도 짓밟아버렸던, 그때의 기억이 떠올랐다. 그래, 그런 분이시다. 결혼 전부터 알고 계시던, 엄마와 아빠를 중재해주신 광의 이모할머니를 뵈러 가서, 그 동네에 살고 계신 외할머니도 뵙지 않고, 다른 외가 친척들도 일체 만나지 않고 오셨던 분이다. 비록, 왼쪽 눈에만 끼고 있던 안대, 혹은 붕대도 집안에만 있는 터라 없었고, 거느리는 부하들도 없었지만, 그리고 눈을 다치기 이전에도 그런 적이 있었지만, 분명 이럴 때의 아빠는 분명 궁예였다.
난 그런 궁예아빠가 너무 싫었다. 싫다는 말로는 다 표현이 되지 않겠지만. 술주정보다도 어쩌면 이게 더 심할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사람을 정신적으로 괴롭히는 것은, 너무나도 견디기 힘든 형벌이었다.
하지만, 그 많은 일이 지나고 어느 정도 시간이 흐르면, 어쩌면 아빠를 이해할 수 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과연, 궁예로 변한, 듣는 사람을 적으로 만들어버릴 그런 말을 하는 아빠는, 아빠는 어떤 마음일까. 두 딸의 보호자로서 아무 일도 하지 못하고 24시간 집안에서 허무한 시간만 보내야 하는 아빠의 마음은. 자꾸 빚만 늘어나는 현실을 직시해야만 하는 아빠의 마음은. 앞이 보이지 않는 길을 계속해서 달려가고 있는 것 같은 아빠의 그 마음은, 그 마음은 어떨까.
난 돈이 싫다. 하지만, 돈이 좋다. 다들 말하곤 한다, 돈이 전부는 아니라고. 살아가는데 돈보다 더 중요한 것들이 많다고. 그렇다. 세상은 돈만으론 살아갈 수 없다. 하지만, 하지만 말이지, 돈을 무시할 수는 없다. 돈이 없으면 이 세상에서 살아갈 수 없다. 그래, 그것은 누구도 부정할 수 없는 사실이다. 그래서 돈이 싫지만 좋다. 아빠도 그럴 것이다. 돈이 있어야만 살아갈 수 있다. 하지만, 커다란 구멍이 뚫린 것처럼 조금만 모으려 해도 금세 사라지고 없다. 이것이 지금 우리의 현실. 외면하려 해봐도, 무시하려 해봐도, 결국엔 우리의 몫. 생계를 책임지는 입장에서 지금 이 현실은 어떨까. 더군다나 이런 상황에서 아무 일도 할 수 없다면, 그렇다면….
왠지 안타깝고 안쓰러운 마음이 들었다. 무능력한 자신의 모습, 화만 나는 현실, 한숨만 나오는 상황. 그렇다고 딸들이 그 짐을 덜어주기를 하나, 오히려 얹고 있을 뿐. 그렇지만, 내 욕심일지도 모르겠지만, 궁예로 변하진 않으셨으면 좋겠다. 그때의 아빠는, 아빠가 아니다. 풍족하진 않았지만, 그래도 빚은 없던, 하지만 아끼며 살던, 10년이 훨씬 넘도록 부부싸움을 두 번 정도밖에 하지 않았던 그때. 초등학교를 입학하기도 전인 그 어릴 때에도, 물론 지금까지도, 넉넉지 못한 형편을 알고 갖고 싶은 것, 먹고 싶은 것, 입고 싶은 것이 있어도 사달라는 말을 하지 못했던, 어른 흉내를 내던 나였지만, 그리고 가끔 그게 괴로울 때도 있었지만, 그때의 괴로움은 지금에 비하면 아무것도 아니었다. 행복, 이라고 말할 수 있을까. 지나간 후에서야 그게 행복이었다고 느낀단 말이 있더니. 그때가 그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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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 크게 보여요 ㅠㅠ
네?? 흠.....글자.. 평소 쓰는 크기로 했는데...크게 보이나요 ? ;;
일부러 글자를 크게 한 것은 아니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