꽃의 풍화
- 작성자 리군
- 작성일 2005-11-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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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적 드문 좁은 골목길, 청명한 하늘 아래 만장이 펄럭였다. 잔잔하게 부는 바람은 애처로운 울음인 듯 끊임없이 끙끙 거렸다. 작은 대문 안, 좁은 마루에는 검은 리본을 맨 영정 사진 한 장만이 덩그러니 놓여 있을 뿐이다. 바람은 이 작은 장례식장의 유일한 문상객이었다.
검은 정장을 입은 사람이 그 집의 대문으로 들어섰다. 잠시 바람이 멎었다. 검은 정장을 입은 남자는 국화를 한 송이 들어 영정 사진 앞에 내려놓았다. 잠시 영정 사진을 보던 그는 방 안으로 발걸음을 옮겼다. 그래. 유품을 정리해야 했다.
그가 처음으로 전화를 받은 것은 그날 새벽이었다. 작가였던 그는 낮과 밤이 자연스럽게 뒤바뀌어 있었다. 멀쩡한 정신으로 글을 쓰고 있던 그는 갑자기 울린 전화벨 소리에 짜증을 부리며 펜을 놓았다. 그리고 습관적으로 무선 전화기를 찾았다. 책상 바로 옆에 유선 전화기가 있다는 것을 알았지만 이리저리 돌아다니면서 전화를 받을 수 있다는 점 때문에 그는 무조건 적으로 무선 전화기만을 찾았다. 전화벨이 10번 가까이 울려서야 겨우 전화기를 찾은 그는 전화기의 통화버튼을 누르며 주방으로 갔다.
여보세요?
수화기의 목소리는 낯선 남자 목소리였다. 그는 의아하게 생각하며 낯선 남자의 말을 경청했다. 수화기에서 흘러나오는 목소리는 자신이 119라고 말하고, 그의 어머니에 대한 이야기를 꺼내었다.
지난밤에 돌아가셨습니다.
예? 어머니가 무슨 병이 있으셨습니까?
그의 어머니는 건강한 사람이었다. 그를 낳을 때 빼고는 병원에도 가본 적 없는 분이었다. 그의 물음에 119 대원은 당신이 그걸 모르면 누가 아냐는 듯이 말했다. 부검 결과 병은 없었다고. 그리고 대원은 그에게 빨리 서울로 올라오라고 말했고, 그는 안 그래도 그럴 참이었다고 말하며 전화를 끊었다.
전화를 끊자마자 그는 바로 검은 정장을 입고 자신의 승용차를 끌고 서울로 올라갔다. 새벽 2시. 고속도로에는 차가 없었다. 이따금 한 대씩 지나갔지만 그 차들은 대부분 근처에 보이는 휴게소로 들어갔다.
1시간 반 정도 달렸을 때 그는 갑자기 졸음이 쏟아지는 것을 느꼈다. 그는 가까운 휴게소로 들어갔다. 그곳에 차를 세운 그는 고개를 좌우로 흔들고 얼굴을 비비고 두드리며 잠에서 깨보려고 노력했다. 전에는 이런 적이 한 번도 없었다. 하지만 오늘만은 이상하게 피곤하고 눈꺼풀이 무거웠다. 그는 차에서 내려 커피를 한 잔 샀다. 그리고 그것을 후후 불어가며 마셨다.
밤이 제법 쌀쌀했다. 휴게소 주변 나무들은 서로 부대끼며 바스락 거리는 소리를 만들어냈다. 그러나 바스락거리는 소리는 나무들만 내는 소리가 아니었다. 아니, 바스락거린다고 하기 보다는, 그것은 차라리 비단을 서로 비비는 소리와 흡사했다. 쌀쌀한 밤바람, 차게 비치는 망월 아래서 붉은 비단으로 된 옷을 입고 있는 그녀의 모습은 마치…….
귀신이군.
그는 중얼거렸다. 그의 중얼거림을 들었는지, 아니면 바람의 장난인지 틀어 올린 그녀의 머리카락이 약간 흔들렸다. 그녀는 가느다란 손가락을 들어 머리 위에서 무언가를 쫓아내는 것 같은 손짓을 하더니 그를 향해 걸어갔다.
그녀가 한 걸음씩 걸을 때마다 화려하게 펄럭이는 붉은 옷과 앞뒤로 차분하게 흔들리는 머리장식들과 하얀 얼굴은 넋을 잃을 정도로 아름다웠다. 조금의 흔들림도 없이 그의 앞까지 걸어온-확실하지는 않지만- 그녀는 그의 뺨에 손을 얹었다. 그는 그 손가락들의 차가움에 흠칫 놀랐다. 창백하고 가느다란 손가락은 그의 뺨을 타고 허공으로 떨어졌다. 허공에서 멈춘 그녀의 손은, 곧 빠르게 움직여 자신의 품에서 낡은 열쇠를 꺼내어 그의 손에 쥐어주었다.
그는 자신에 손에 쥐어진 낡은 열쇠를 보았다. 언제 만들었는지 잘못하면 부서질 것만 같은 열쇠였다. 그가 고개를 들었을 때, 그녀의 모습은 이미 사라지고 바람과 함께 춤추는 잎사귀만이 그 자라를 대신하고 있었다.
그는 눈을 깜빡였다. 그렇게 몇 번. 눈을 떴을 때 그가 있는 곳은 자신의 차 안이었다. 손에는 아무것도 쥐어져 있지 않다. 꿈이었나? 그는 고개를 갸웃거리다 주머니에 손을 찔러봤다. 무언가 따뜻하고 단단한 것이 잡힌다. 그것은 낡은 열쇠였다. 비슷한 모양. 아니, 어쩌면 완전히 같은 것일지도 모른다.
꿈 탓인가. 정신은 무서울 정도로 말짱했다. 그는 어느새 그것을 꿈으로 치부해버리는 자신을 발견하고 코웃음 쳤다. 어느새 하늘이 조금 밝아져 있었다. 그는 시동을 걸고 창문을 열었다. 차가운 대기의 공기를 한껏 마시며 그는 다시 고속도로로 진입했다.
새벽 5시 30분. 차들이 조금 늘어나 있다. 그는 라디오를 틀었다. 라디오에서는 끊임없이 교통방송이 흘러나왔다. 새벽부터 차가 막힐 리는 없다. 그런 의미에서 새벽부터 흘러나오는 교통방송은 무의미하다고 생각하며 그는 라디오의 채널을 돌렸다.
잠깐. 주소가 어떻게 되더라? 그는 자신이 주소를 모른다는 것을 깨달았다.
오늘 새벽 1시 43분 경 서울 A구에 살던 여든 살의 박OO씨가 목을 맨 채 집 앞을 지나가던 권OO씨에 의해 발견되었습니다. 박OO노인은 발견 즉시 병원으로 이송되었지만 곧 숨을 거두었습니다.
여든 살의 박OO 노인. A구. 그는 목을 맨 그 노인의 자신의 어머니라고 생각했다. 일단 그는 A구로 찾아가기로 했다.
A구에 도착했을 때. 그는 자신이 제대로 왔다고 확신했다. 그는 꽤 낯익은 골목을 보았고 그 길을 따라 걸었다. 그리고 얼마 지나지 않아 골목 어귀에서 만장이 걸린 어머니의 집을 찾을 수 있었다. 그는 그대로 들어가 국화꽃을 한 송이 사 영정 사진 앞에 내려놓았다. 그리고 유품을 정리하기 위해 방 안으로 들어갔다. 어차피 같이 울고 힘들어하고 아파할 친척들은 없었다.
그는 방안으로 들어갔다. 방안은 예상 밖으로 깨끗하고 정리가 잘 되어 있었다. 아직은 이른 오전 시간. 꽤 크게 뚫린 창문을 통해 방 안으로 여린 햇살이 스미고 있었다. 그는 투명한 유리로 된 창문을 열어 젖혔다.
검은 정장을 벗어 구석에 있는 옷걸이에 걸어놓은 그는 하나씩 하나씩 유품을 꺼내기 시작했다. 목걸이, 반지, 책, 옷가지들, 그리고 공책.
그의 어머니는 여느 노인들과는 다르게 글을 읽고 쓸 줄 알았다. 책 읽는 것을 좋아하던 그의 어머니는 미수의 나이에도 불구하고 굵은 돋보기까지 맞춰가면서 책을 읽었다. 잘 알려진 무정이나 혈의 누 같은 책 외에도 한문으로 된 구운몽이나 금오신화 같은 책도 있었다. 모두 누렇게 변색된 책들이다. 겉표지는 너덜너덜하고 금방이라도 떨어질 것만 같았다.
그는 낡은 책들을 모두 한 쪽 구석에 쌓아놓고 다른 것들을 꺼내었다. 그는 한 권의 공책을 발견했다. 공책을 펼치자 곧 누런 종이가 눈에 들어왔다. 거기에는 정자로 글자가 적혀 있었다.
일기였다. 찾아보자 그런 공책이 3권정도 나왔다. 한 권은 초등학생들이 쓰는 얇은 공책이었고 나머지 두 권은 두꺼운 스프링 공책이었다. 그는 공책을 나중에 가져가 읽기로 하고 자신의 무릎 앞에 놓아두었다.
근처에 살던 사람이 알려준 덕분에 어머니의 시신이 안치된 병원은 쉽게 찾을 수 있었다. 그곳에서 나는 조용한 장례식을 치렀다. 문상객들은 없었다. 그렇게 조용하게 장례식을 치르는 동안 그는 눈물 한 방울도 흘리지 않았다. 어머니의 죽음에 대해 통쾌하거나 아무런 느낌이 없는 것은 아니었다. 그는 처음부터 끝까지 무표정으로 일관했다. 장례식을 끝마치고 어머니의 뼈를 납골당에 안치한 뒤 그는 차를 타고 자신이 살던 남쪽으로 내려갔다.
그리고 전과 다름없는 날들을 보낼 것이다. 다른 사람들과 다른 생활 패턴이지만 살아가는 방식은 똑같다. 밤이 깊으면 일어나서 글을 쓰고 햇빛이 비춰들면 잠자리에 들 것이다.
집에 도착하자마자 그는 자신의 침대로 가서 엎드렸고 그대로 잠이 들었다.
그는 문득 눈을 떴다. 그가 눈을 떴을 때는 밤 9시가 넘은 시간이었다. 그는 습관대로 화장실로 들어갔다. 그리고 커다란 거울을 봤다. 그곳에는 아직 정장을 입은 채로 서 있는 자신의 모습이 있었다.
그는 자신이 상을 당했고 장례식을 치르고 오늘 돌아와서 돌아온 상태 그대로 침대에 쓰러져 잠들었다는 것을 겨우 기억해냈다. 그리고 어머니의 일기도.
어머니의 일기를 기억해낸 그는 차 열쇠를 찾기 위해 주머니에 손을 넣었다. 문득 차 열쇠가 아닌 다른 것이 집혔다. 그는 그것이 그날 그 귀신같은 여자에게서 받은 열쇠라는 것을 알고 있었다.
화장실에서 나온 그는 그 열쇠를 침대 위에 던져두고 반대쪽 주머니에서 차 열쇠를 꺼내 어머니의 일기를 가져왔다.
그는 일기장 가운데 가장 낡은 것을 펼쳤다.
그녀는 가끔 다른 아이들보다 늦게 하교하곤 했다. 여느 때처럼 빈 교실을 정리하고 계단을 뛰어 내려가던 그녀를 누군가가 불렀다. 학교장이었다.
그녀가 다니는 학교의 학교장은 일본인이었는데, 보통사람들이 반감을 갖고 있는 일본인들과는 사뭇 달랐다. 학교 뒤에 작은 텃밭을 일구면서 밥을 먹지 못하는 아이들에게 찐 감자나 고구마를 서너 개 씩 쥐어주곤 했다. 이마에 몇 개의 굵은 주름살을 가진 백발의 교장은, 서툴지만 또박또박 한국어로 말했다.
“집에 가니?”
그녀는 고개를 끄덕였다.
“네.”
교장은 들고 있던 검은 비닐봉지를 그녀의 손에 쥐어주었다.
“집에 가면서 먹어라. 남으면 동생도 같이 먹고. 알았지?”
“네.”
그녀는 고개를 끄덕이고 교장에게 인사한 뒤 총총 걸음으로 교사를 나왔다.
동쪽 하늘에 어스름이 내린다. 그녀는 하늘을 보며 발걸음을 재촉했다.
그녀의 집은 학교 뒤에 있는 판자 골목 가장 안쪽에 있었다. 골목 가장 안쪽에는 작은 공터가 하나 있었다. 그리 넓은 공터는 아니었지만 입동 즈음에 각 가정마다 연탄을 돌릴 때면 마땅히 연탄을 쌓아둘 곳이 없어서 골목 안쪽 공터에 쌓아두곤 했다.
그곳 공터는 판자촌에 사는 아이들에게는 유일한 놀이터였다. 골목길에서 나가면 일본 순사들이 있다고 부모들은 아이들을 겁주었다. 아이들은 부모가 원하는 대로 골목길 안쪽 공터에서만 놀았다. 다 태우고 하얗게 된 연탄을 꺼내어 두는 곳도 그 공터였다. 하얗게 타버린 연탄을 꺼내 놓으면 얼마 지나지 않아 땅은 부서진 연탄재로 덮였다.
하지만 오늘은 다른 이유에서 연탄재로 바닥이 하얗게 덮여 있었다. 그동안 내린 눈이 얼어 빙판길이 된 것 때문이었다.
그녀는 골목길을 걸으며 봉지 안에 뭐가 들었는지 열어봤다. 까만 봉지 안에는 알이 굵은 고구마가 4개 들어있었다.
때마침 어제 연탄도 10장 들어왔다. 그녀는 연탄불에 구운 군고구마를 생각했다.
그녀의 동생은 5살이었다. 어머니는 동생을 낳고 돌아가셨고 아버지는 어느 날 흔적도 없이 사라져 버렸다. 결국 그녀는 10살 때부터 동생을 키워야 했다.
골목에 사는 사람들을 그녀의 처지를 불쌍하게 여겼다. 여자들은 그녀가 학교에 있는 동안 교대로 동생을 봐주었다. 그녀들은 가끔씩 밑반찬을 주기도 했고, 가끔 옷가지들을 싸들고 오기도 했다.
그녀가 집에 들어가자 한 칸 뿐인 방 안에는 골목길 입구에 사는 절름발이 장씨의 아내인 충주댁이 있었다.
“아줌마. 다녀왔습니다.”
동생을 업고 방안을 돌아다니던 충주댁은 그녀가 인사하자 고개를 끄덕였다.
“힘들제? 그 까만 봉지는 무어라?”
“아. 이거요? 교장 선생님이 주셨어요.”
“그 왜놈 교장 말이여?”
그녀는 고개를 끄덕였다. 충주댁의 목소리에는 약간의 증오나 분노 같은 것이 서려 있었다. 골목길에 사는 사람들은 충주댁이 일본인이라면 그렇게 치를 떠는 이유가 그의 지아비인 장씨가 절름발이가 된 것이 일본인 때문에 그렇게 되었다고 추측만 하고 있었다. 충주댁은 장씨가 절름발이인 이유에 대해서는 말하지 않았고 사람들이 물으면 “아, 절름발이니께 절름발이지 괜히 절름발이요?” 하고 소리만 지를 뿐이었다. 마을 어른들은 장씨가 원래는 탄광에서 일하던 사람이었다고 말하곤 했다. 그러다가 다리를 다쳐서 일을 못하게 되니까 내 쫓은 거라고 했다. 아무튼 충주댁은 친절한 사람이었다.
“그거 너 묵으라고 주디?”
“네. 동생이랑 같이 먹으라고 주셨어요. 그래서 구워먹으려구요.”
충주댁은 고개를 끄덕였다.
“그랴. 내가 구워주까?”
“괜찮아요. 저도 할 줄 알아요.”
고개를 끄덕인 충주댁은 잠이 든 동생을 이불 위에 눕혀놓고 집을 나섰다. 언제나처럼 필요한 일이 있으면 부르라는 말도 잊지 않았다.
충주댁이 나가자 그녀는 석쇠를 찾아 빨갛게 타고 있는 연탄 위에 얹었다. 그리고 그 위에 고구마를 올려놓고 방으로 들어왔다. 이불 위에서는 동생이 잠들어 있었다. 그녀는 엉금엉금 기어서 동생이 누워있는 이불 밑으로 파고 들어갔다.
이불 밑은 뜨거웠다. 그 뜨거움에, 얼었던 몸이 녹자 그녀는 정신이 한없이 나른해지는 것을 느꼈다.
그녀는 일단 잠시만 눈을 감고 있기로 했다.
그가 눈을 떴을 때는 이미 자정이 넘어 있었다. 불이 환하게 밝혀진 방에는 똑딱거리는 시계 소리와 11시에 켜지도록 맞춰놓은 텔레비전에서 흘러나오는 노랫소리뿐 이었다. 손에는 낡은 일기장만이 들려 있을 뿐이었다.
이튿날, 그는 납골당에 전화를 해 어머니의 유골을 찾아가겠다는 말을 전했다. 자신이 무엇 때문에 그런 소리를 했는지는 몰라도 일단은 그렇게 해야 된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리고 그 생각을 바로 행동으로 옮겼다.
납골당 직원은 유골을 찾아가려면 몇 가지 절차를 발고 서류를 작성해야 한다고 말해 주었다. 가족이라는 증거와 고인과의 관계.
일주일에 걸쳐 그 절차를 다 밟은 그는 어머니의 뼈를 가지고 대전으로 내려갔다. 대전으로 내려가는 고속도로를 타면서 그는 내내 어머니가 어째서 세상을 등졌는지에 대해 생각했다.
그가 보기에 노인은 그 어떤 일에도 목숨을 버릴만한 인물이 아니었다.
어머니에겐 남동생이 하나 있었다. 일기에는 남동생의 이름이 언급되어 있지 않지만 그날 집에 불이 났던 건 적혀있다. 일기도 그날부터 시작되고 있었다. 집에 불이 났던 그 시점부터.
연탄불에 고구마를 올려놓고 깜빡 잠이 들었던 그녀가 잠에서 깨어났을 때, 집은 이미 불길에 휩싸여 있었다. 사방에서 스멀거리는 검은 연기는 마치 유령같이 보였다.
집을 삼키려는 것만 같은 검은 연기를 보며 그녀는 공포에 떨었다. 턱이 떨리고 눈앞이 뿌옇게 흐려졌다. 어쩔 수 없이 울음이 터져 나왔다.
정신이 점점 아득해졌다. 머리가 아프고 손을 움직여 눈물을 닦을 수 없었다. 눈이 스르르 감겼다.
그녀가 눈을 떴을 때 방 안은 온통 회색이었다. 온 몸이 아직도 화끈 거리는 것 같았다. 머리가 지잉하고 울린다. 아직도 숨이 막히는 것 같았다.
“깼냐?”
말을 꺼낸 사람은 충주댁이었다. 꾸벅꾸벅 졸고 있었는지 충주댁의 눈가에는 눈곱이 끼어있었다. 그녀는 몸을 일으켜 앉으려고 했다. 그러나 충주댁은 그냥 누워 있으라며 이불을 목 아래까지 추켜 올려주었다.
“여기 어디에요?”
그곳은 아무리 봐도 병원이었다. 회색의 천장이나 하얀 시트나 무엇을 봐도 분명 병원이었지만 그래도 일단은 의례적으로 물어봤다.
“병원이제. 느그 집에 불이 났단다.”
충주댁의 말을 듣고 그녀는 고개를 끄덕였다.
“우리 남편이 들어가서 꺼내 왔지. 나중에 아저씨 보거든 고맙다고 혀라.”
“예. 저기 근데……”
“동생 말이냐?”
그녀는 작게 대답하며 고개를 끄덕였다. 충주댁은 잠시간 말이 없었다.
“가는 이미 늦었었다. 연기에 질식했단다.”
어렴풋이 짐작은 하고 있었다. 그녀의 눈앞이 이내 뿌옇게 흐려졌다. 충주댁은 안쓰러운 얼굴로 가까이 다가와 그녀의 머리를 쓰다듬어 주고 눈물을 훔쳐 주었다.
“어린 것이 불쌍도 허지.”
충주댁은 그녀의 몸 위에 손을 얹고 토닥여주며 안쓰러운 목소리로 말했다. 그녀는 이제 외톨이였다. 어머니는 동생을 세상에 내놓고 한줌의 가루가 되어 강바람과 하늘로 올라갔다. 돈을 벌어오겠다 일터로 나갔던 아버지는 몇 년째 돌아오지 않는다. 동생은 검은 연기에 폐가 갈기갈기 찢겨진 채로 저 벽 너머 어딘가에 누워있는 것이다.
아랫입술을 깨물었다. 그녀는 애처롭게 끙끙거리며 울다가 잠이 들었다.
그 후에 어머니는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이 퇴원해서 평소와 다름없이 살았다. 그가 지금까지 읽은 일기의 내용으로는 그랬다.
그는 일기장을 덮어 가방 속에 넣었다.
한적한 시골길을 달리던 버스는 덜컹거리며 멈췄다. 그는 낡은 차부에 내려섰다. 사방에는 논밭이 펼쳐져 있었고 그 가운데로는 일자로 곧게 뻗은 도로만이 덩그러니 있었다.
고개를 들어 버스가 사라져가는 쪽을 봤다. 길의 끝을 지나 사라져 가는 버스를 바라봤다. 아득했다. 버스가 넘어간 그 곳이 너무나도 아득해 보였다. 하늘과 맞닿은 지평선을 보면서 그는 그쪽으로 발걸음을 서서히 옮겼다.
조금 쌀쌀하다 느꼈던 바람은 며칠 사이에 살을 에는 듯 했다. 그는 차가운 손을 몇 번 비비적거린 다음에 주머니에 찔렀다. 체온 때문에 조금은 따뜻해진 열쇠가 손에 잡혔다. 열쇠는 아직도 주머니에 그대로 들어 있었다. 열쇠의 따뜻함을 손끝으로 느끼며 그는 계속 걸었다.
산들은 대체로 낮고 평평했다. 하늘에 닿을 듯이 날카롭게 솟아오른 산은 없었고, 그저 서로서로 기대어 서 있는 산이 그곳에 있었다. 서로의 손을 잡고 있는 산 아래에 여러 채의 집이 보였다.
그녀는 건강한 모습으로 퇴원했다. 충주댁은 그녀를 자신의 집에서 살 수 있게 해주었다. 천씨는 항상 아침 일찍 나갔다. 새벽같이 나간 천씨는 늦은 밤에 돌아오거나 다음날 아침이 되어서야 들어오곤 했다. 그랬기 때문에 집에 있는 건 늘 충주댁과 그녀였다.
충주댁은 항상 그녀를 신기한 눈으로 쳐다보곤 했다. 가족을 모두 잃고서도 저렇게 태연하게 살아가는 어린 여자아이를 보며 충주댁은 가끔씩 속으로 놀라기도 했다. 가족이 모두 죽었으면 아무리 남자 아이라 해도 울기 마련인데. 그녀는 울지 않았다.
그녀는 예전처럼 학교에 다녔고 교장도 그녀를 예전처럼 대했다. 한동안은 그렇게 조용하고 아무 일 없이-혹은 무사히- 지나갔다. 그녀와 충주댁과 천씨, 세 사람이 다시 돌아온 일상에 익숙해질 즈음에 일은 터졌다.
허리춤에 칼을 찬 순사들이 도로를 활보했고, 하찮은 미물이라도 비껴가지 않는 마마 손님처럼 그들은 스멀스멀 그녀가 살고 있는 골목길에도 침투해 왔다.
골목길에 살고 있는 모든 남자들에게는 입영 통지서가 날아왔고, 절름발이인 천씨에게도 입영 통지서는 예외 없었다.
그날 밤. 골목은 망자들의 도시 같았다. 불도 켜지지 않는 골목길에는 그나마 느껴지던 온기마저 소멸한 지 오래였다. 사람이 살지 않는, 마치 망자들의 도시 같았다.
“어, 아줌마. 눈 내려요.”
대답은 없었다. 다만 가련한 깊은 한숨 소리가 들릴 뿐이었다.
안녕하세요.
그는 고개를 살짝 숙여 인사했다. 창호지를 바른 초가집의 문이 조금 열린다. 그 안에는 70살 정도 되어 보이는 늙은이가 있었다.
누구시오?
바람 빠지는 소리를 내며 질문한 노인은 몇 번 밭은기침을 하더니 요강에 칵!하고 가래를 뱉었다.
누구시오?
노인은 큼큼거리는 소리를 몇 번 내면서 말했다. 그는 어머니의 이름을 말해주고 내가 돌아가신 당신의 아들이라고 말했다.
누님이 돌아가셨소?
예. 어머니와 친남매셨습니까?
노인은 고개를 가로 저었다.
친남매는 아니었소. 누님이 나보다 한 10년 정도 많았던 걸로 기억하오. 일단 들어오시오. 얘기를 더 듣고 싶구만.
노인은 반가운 얼굴로 그를 방안으로 들였다.
누님께선 어찌 돌아가셨소?
자살하셨습니다.
자살? 목을 맸소?
그는 고개를 끄덕였다. 노인은 고개를 갸웃거리며 생각했다.
그 양반. 세상에 미련이 참으로 많았던 것 같소. 가족이 모두 죽었어도 꿋꿋하게 살았던 여인이 목을 맬 일은 없소.
노인은 혀를 끌끌 찼다.
세상에 미련이 많다는 건 무슨 말입니까?
말 그대로요. 세상이 징그럽게 보기 싫거나 세상에 미련이 없는 사람들은 다른 사람들이 자신의 시신을 보지 못하게 바다나 강으로 투신자살을 택하오. 하지만 누군가가 자신의 존재를 알아주길 바랄 때, 세상에 미련이 남을 때는 수면제 다량을 복용하거나 목을 매거나 하는 거요. 유서를 쓰는 것도 그런 마음에서 비롯된 거요.
유서는 없었습니다.
노인은 고개를 끄덕였다.
그 양반 성격이 그럴 성격은 아니지. 누님이었으면 차라리 소설을 썼을 거요. 아니면 일기를 쓰던가.
일기. 일기는 당신의 유서였다. 하지만 유서의 내용이 무엇인지는 알 수 없었다. 아마 끝까지 읽어보면 알리라.
어머니는 어떤 분이셨습니까?
노인은 한참동안 서랍을 뒤져서 어미니의 과거 사진을 꺼내어 보여주었다. 빛바랜 흑백사진 거기 있는 작은 여인은 왠지 낯이 익다. 그는 그 사진을 보면서 열쇠를 만지작거렸다.
충주댁은 이듬해 아들을 낳았다. 전선에 끌려 나갔던 천씨의 소식은 들려오지 않았다. 아들을 낳고 날이 갈수록 충주댁의 모습은 눈에 띄게 수척해졌다. 통통하던 뺨은 어느새 홀쭉해졌고, 건강해 보이던 까무잡잡한 얼굴도 핏기 없이 창백했다.
얼마 후, 일본의 패전 소식이 들려왔다. 천황이 무조건 항복을 선언했다는 것이다. 그 소식이 퍼지자 골목은 한동안 시끌벅적 했다. 혹시나 전쟁터에 끌려나간 아들이 돌아오지 않을까 골목 앞에서 하루 종일 서 있는 노파도 있었고, 죽었을 지도 모르는 남편을 기다리는 여자도 있었다. 충주댁은 한동안 다시 살이 오르는 것처럼 보였다. 그렇게 아무런 일도 없이 한 달이 지났다.
천씨는 돌아오지 않았고, 그렇게 하루하루가 지날 때마다 충주댁은 다시 야위어 갔다. 아이는 어느새 목을 가누고 아장아장 걸어다녔다.
“미안허다. 내가 꼴이 이 모냥이라 잘 챙겨주지도 못하고.”
어느 날 충주댁이 그녀를 불러놓고 한참 뜸을 들이다 한 말이었다.
“우리 서방님만 있었어도 내 꼴이 이렇게는 안 됐을긴데. 참말로 미안타.”
자리에 누워있던 충주댁은 이불 밑으로 손을 꺼내 그녀의 손을 잡았다.
“요새 날씨가 어떻더냐?”
그녀는 무덥던 여름이 지나갔다고 말해주었다. 충주댁은 고개를 끄덕였다.
“그럼 더할 나위 없이 좋겠구나. 산에는 자주 올라가니?”
“주말이면 가끔 올라가요.”
“거긴 좋더냐?”
그녀는 고개를 끄덕였다. 산의 풍경을 하나하나 충주댁에게 말해주었다. 멀리있는 산의 꼭대기는 구름에 가려져 있는데 그 모습이 너무 아름답더라고. 충주댁은 그녀의 이야기를 들으면서 가끔씩 고개를 끄덕였다.
“내가 죽거든 땅에 묻지 말고 그 구름 위에 뿌려다오.”
충주댁의 말에 그녀의 심장이 철렁했다. 그녀의 눈에 충주댁의 표정은 기묘하게 편안하게 보였다. 충주댁의 말이 계속 되었다.
“그 속에서 떠돌아다니면서 우리 서방님이나 찾아 다닐련다.”
죽어서 혼자 땅속에 눕느니 차라리 객사귀가 되어 사람들 사이를 떠돌겠다는 말이었다.
두어 달 후, 그 집에는 만장이 달렸다. 집이 너무 비좁아 어쩔 수 없이 골목 끝에 있는 공터에 장례식장을 차렸다. 늙은이들은 충주댁의 장례식장을 보며 혀를 찼다. 길에서 죽은 사람은 저승에 가지 못하고 객사귀가 되어 떠돈다고 했는데.
전날 밤, 충주댁은 학교에서 돌아온 그녀가 자고 있는 틈을 타 무리하게 외출을 했었다. 그리고 밤새도록 골목을 거닐었던 것 같았다. 충주댁은 골목 끝에서 싸늘하게 식은 채로 발견되었다.
집이 너무 좁아 관을 들여 놓을 곳이 없었기 때문에 장례식은 공터에 작은 천막을 만들고 치러졌다. 그 앞을 지나는 노인들은 하나같이 혀를 차며 한마디씩 했다. 길에서 죽으면 객사귀가 되어 세상을 떠돈다고 하던데. 불쌍한 사람.
장례식은 3일 동안 치러졌다. 매일 낮이면 사람들이 찾아왔다. 그들은 왔다가 금방 나가거나 날이 저물 때까지 있었다. 그리고 밤이면 각자의 집으로 돌아갔다. 그들이 돌아가고 나면 그녀는 잠을 잘 준비를 하고 자리에 누웠다. 가만히 누워 천장을 보고 있으면 골목에서 길을 잃은 바람 소리가 들렸다. 그때마다 그녀는 죽은 충주댁이 팔을 문지르며 “하따, 참말로 춥다.”하고 들어올 것만 같았다. 그리고 무서웠다. 아이는 품에서 잠들어 있었다. 아이를 당겨 꼭 끌어안았다. 아이의 심장 고동이 느껴졌다.
장례식 3일이 지나고 그녀는 사람들에게 충주댁의 유언을 말해주었다. 그들은 충주댁의 유언대로 그녀를 화장해 구름 위에 뿌려주기로 했다.
산길은 꽤 험했다. 사방에서 튀어나온 돌부리와 땅에서 불쑥불쑥 돋아난 나무들 때문에 시야가 제대로 확보되지 않았다. 땅에서는 물이 찔끔찔끔 솟아나는지 온통 진흙투성이였다.
나뭇잎 사이로는 탁한 흰색의 하늘이 보였다. 곧 비가 내릴 것이다. 그 전에 반드시 정상에 올라가야만 했다.
빗방울이 차갑다. 목덜미에 떨어지는 빗방울에 흠칫흠칫 놀라며 그녀는 충주댁의 분골이 든 상자를 열었다. 작은 자물통으로 잠겨 있는 상자를 열고 그 안에 있는 충주댁의 넋을 하늘로, 구름 위로 날려 보내주었다.
넋은 하얗게 날아갔다. 바람에 날려, 빗방울에 날려, 충주댁의 넋은 사방으로 흩어져 날아갔다. 외로운 세상을 뒤로하고 하늘하늘 하얀 손을 흔들며 하늘로 올라갔다.
그녀는 입술을 열어 노래했다.
비 내리는 산은 이곳이 하늘인지 땅 위인지 구분되지 않았다. 사방을 하얗게 덮은 구름은 이곳이 하늘이라고 말해주고 있었고, 발아래서 느껴지는 단단함은 이곳이 땅이라고 말해주고 있었다.
새삼스럽게 살아있음이 축복으로 느껴졌다. 삶과 죽음은 어느새 하나가 되어 있었고, 사람은 사람으로 태어났다는 이유 하나만으로 정당한 삶의 가치를 부여받았다. 세상 모든 사람들은 사랑할 권리가 있고 사랑받을 권리가 있다.
모든 것은 빗물에 씻겨 내려가고 하나의 진리만이 남았다.
그는 어머니의 분골을 노인에게 받은 함에 넣어서 갖고 왔었다. 함을 꺼내었다. 함의 주둥이에는 작은 자물통이 채워져 있었다. 그는 주머니에 손을 넣었다. 손에 잡히는 열쇠는 따뜻했다.
열쇠는 자물통에 딱 맞았다. 그는 함을 열고 어머니의 분골을 조심스럽게 풀었다.
하얀 분골은 하얀 구름 위로, 하얀 하늘 위로, 씻겨 올라갔다. 한 떨기의 꽃이 풍화되듯이. 하늘하늘 손을 흔들며, 뜨거운 빗방울을 뿌리며 하늘로 올라갔다.
그는 입술을 열어 노래했다.
가시오 가시오.
넋일랑 모두 잊고
가시오 가시오.
하찮은 세상일이야
죽어 흩어지면 그뿐.
가시오 가시오.
세상 쌓인 한 따위
구름 위로 훌훌 날려 버리고
갈길 멀어 정히 심심하면
내가 함께 가주겠소.
무거운 짐일랑 벗어던지고
옛 사람 기다리는
하늘로 가시오.
세상일일랑 모두 잊고
모두 잊고
가시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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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렇게 끝이 났습니다. 여러모로 지저분한 글 읽어주셔서 감사드리고
다들 좋은 밤 되시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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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군! 반갑습니다!
11시에 켜지도록 맞춰놓은 텔레비전←글 내용중 주인공의 과거사를 보면 일본순사가 등장합니다. 학교장도 일본인이고요. 아무리 시대가 늦어서 50년대를 지났더라도 아마 일본인들이 우리나라에서 활개를 치고 있을 수는 없을것입니다. 거기다가 그렇게 잘 사는 집도 아닌데 주인공 집에 타이머 기능이 있는 티비가 존재할리가 없겠죠? 그리고 우리나라에 시대가 아무리 80년대까지 올라간다고 해도 그렇게 좋은 티비가 있었을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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