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너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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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작성일 2006-01-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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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너츠
예기치 않은 비가 내리면 당혹스럽게 마련이다. 그러나 오늘은 그렇지만도 않았다. 나는 차분히 앉아 선생님을 바라보았다. 교탁 앞에선 국사 선생님이 무섭게 퍼붓는 빗발과 대적이라도 하듯 영조와 사도세자 얘기에 열을 올리고 계셨다. 그렇지만 사실 영조가 뒤주에 갇히든, 사도세자가 신문고를 울리든 내 알 바는 아니다. 비는 도무지 그칠 것 같지 않고, 나는 우산이 없다. 그 사실 - 어떻게 보면 별것 아닌 - 이 내 머릿속을 비집고 들어와 사도세자와 영조와 뒤주를 마구 뒤섞어 놓았다.
어지럽게 뒤주 속을 떠돌고 있으려니 마치는 종이 울렸다. 국사 시간을 끝으로 하루 수업이 끝났고 주번이었던 나는 대강 청소를 마쳤다. 쓰레기통을 비우고 오니 다른 애들은 다 가고 속이 빈 교실만 덩그러니 남아 있었다.
비는 아직도 그치질 않았다.
가만가만 걸었다. 조금이라도 피할 생각조차 하지 않았다. 나는 쏟아져 내리는 빗물을 온몸으로 받아내며 교문을 나섰다. 버스 정류장으로 향하는데 빵빵, 하는 자동차 경적 소리가 난다. 낯익은 차 하나가 바로 옆에 서 있다. 번호판을 읽는 순간 집에 있는 빨간 우산이 떠오른다. 아, 설마. 나의 보잘것없는 바람을 눌러 버리고 그 설마는 현실이 되어 자동차 창문 밖으로 빼쭉 고개를 내밀었다.
“혹시나 해서 와보길 잘했네. 어서 타.”
나는 말없이 차의 뒷문을 열고 올라탔다. ‘설마’는 나에게 백미러로 내 쪽을 보며 물었다.
“접때 그 내가 준 빨간 우산 어쨌니?”
“......안 갖고 왔어요.”
“아니 어쩌다? 좀 잘 챙기지 않구. 없으면 친구들 우산 같이 쓰고 오지, 왜 그렇게 혼자 비를 다 맞구 와.”
참 귀찮다.
“청소당번이었어요.”
“그래? 청소를 뭐 그렇게 오래 하구 그러니.”
내 대답이 없자 ‘설마’는 또 백미러로 내 눈치를 살핀다. 그러다 생각났다는 듯 옆자리에 있던 먹다 남은 과자 봉지를 건네준다.
“배고플 텐데 먹어. 맛있더라. 집에 가면 라면이라도 끓여줄게.”
기가 막혔다. 내일모레면 나이가 오십을 넘길 텐데. 그보다 라면이라니, 회사는 어쩌려구요? 나는 물음을 겨우 삼켰다. 봉지를 열어 과자를 몇 개 씹어본다. 아무 생각 없이 달다. 무심코 과자 봉지에 손을 한 번 더 넣었을 때 주머니의 핸드폰에서 진동이 울렸다. 엄마다.
“여보세요.”
“비 와서 전화 해봤어. 너 또 우산 안 갖고 갔지?”
“아저씨가 차 갖고 데리러 왔어.”
아저씨라는 단어에 두 사람의 얼굴이 동시에 살짝 굳는 게 느껴졌다. 한 사람은 운전석에서, 한 사람은 수화기 너머에서.
“...아빠라고 부르랬잖아.”
“끊을게.”
나는 핸드폰을 닫아버렸다. 차 안의 공기가 불편했다. ‘설마’는 조용히 운전만 했다. 두 달이 지난 지금도, 내 입이 아빠라고는 도저히 부를 수 없었던 사람. ‘설마’는 내 새 아버지다.
2년 전, 나의 친아버지는 돌아가셨다. 교통사고였다. 어른스럽다고는 하지만 나는 중학교 3학년이었고, 한 번도 가까운 사람의 죽음을 경험해본 적이 없었다. 유난히 아버지를 잘 따랐던 나에게 그것은 하나의 세계를 잃는 것과 같았다. 사람들과 어울리기보다 혼자 있기를 좋아했던 나는 더욱 더 껍질 속으로 숨어들었다. 엄마와는 대화를 했다. 그것은 주로, 뭔가 이상한 이유였다. 엄마를 좋아하지 않았던 건 아니지만, 엄마가 내 어머니이기 때문이 아니라 엄마는 나와 같은 아픔을 품고 있다는 생각 때문이었다. 엄마는 소중한 남편을 잃었고, 나는 소중한 아버지를 잃었다. 두 사람은 텔레비전 프로그램 얘기, 새로 바꾼 치약 얘기, 저녁 반찬 얘기를 하며 그 속에 묻어나는 아버지를 바라보았다.
그러나 이젠 다르다. 같이 텔레비전을 봐도 저녁밥을 먹어도 어디 한구석이 빈 얘기들뿐이다. 그 서먹함이 언제부터인지, 무엇 때문인지 나는 알고 있다. 엄마도 알고 있을 것이다. 그 사람, 새 아버지가 나와 엄마의 얘기 속에 끼어든 후부터, 나는 텔레비전 프로그램도 반찬도 얘기하기 싫었다. 그리고 아버지가 준 갈색 우산 대신 빨간 우산을 내 손에 쥐여준 후부터, 나는 그 사람의 눈동자를 쳐다보기를 꺼렸다.
“교통사고야, 많이 다친 건 아니구……. 왼쪽 발이 트럭 바퀴에 깔렸다나봐. 엄마 바로 병원 가봐야 되니까 먼저 저녁 먹고 있어.”
전화를 끊고 나는 나도 모르게 한숨을 쉬었다. 일곱 살 먹은 애 같이 덜렁대는 새 아버지의 모습이 떠올랐다. 그가 술을 무척 좋아한다는 사실도 함께 딸려왔다. 아무래도 아버지와는 너무 달라. 나는 간단한 밥상을 차렸다. 밥 한 숟갈을 떠서 입으로 넣고 씹었다. 별맛이 나지 않는다. 엄마는 왜 새 아버지와 재혼했을까.
고개를 들고 천정을 바라보았다. 따뜻하고 완벽한, 어른다웠던 아버지가 생각났다. 그에 비하면 저 인간은 정말……. 그의 입원으로 인해 속을 썩일 엄마를 생각하자 누구에게 향하는지 모를 부아가 치밀었다. 왜, 하필이면. 하필이면 엄마는 새 아버지와 재혼했을까.
다행스러운지 어쩐지, 가까운 거리로 움직이는 건 어렵지 않다고 했다. 그렇지만 보통의 생활을 하는 것은 불편하다는 의사의 말에 따라 새 아버지는 집 근처 작은 병원에 입원했다. 나는 그가 나를 보고 싶어 한다는 엄마의 말에도, 한 번도 병문안을 가지 않았다. 딱히 할 말이 없기 때문이기도 했고, 병실을 채울 어색한 공기가 싫기도 했다. 그러나 기어이 엄마는 나를 보내려고 했다. 나는 그 상황을 피하려고 안간힘을 썼다. 독서실에 있기도 했고, 친구 집에 있기도 했고, 초저녁부터 잠들어 보기도 했다. 갖은 애를 썼지만 결국 엄마가 외가에 다녀오겠다고 한 날, 나는 새 아버지의 병실에 음료수와 속옷을 가져다 드려야 했다.
새 아버지가 입원해있던 병원은 걸어서 20분 정도 걸리는 거리에 있었다. 딱딱한 빌딩의 3층에 올라가자, 간호사가 있긴 한 건지 의심스러울 정도로 작고 조용한 정형외과가 나타났다. 딱 하나뿐인 301호 병실 앞에 서자 새 아버지와 다른 세 명의 이름이 붙어있는 것이 보였다.
문을 열고 들어가자, 다른 세 명은 보이지 않고 새 아버지만 침대에 누워 자고 있었다. 지극히 평범한 병실이었다. 병실 안엔 새 아버지의 고른 숨소리만이 가득했다. 속옷을 놓으며 침대 쪽을 흘끗했다. 새 아버지의 어깨가 규칙적으로 어깨가 올라갔다 내려갔다 했다. 나는 그를 깨우지 않으려고 조심스럽게 움직였다. 옆에 있던 메모지와 펜을 들어 왔다 간다는 편지를 대충 갈겨쓰고, 음료수 봉지 위에 꽂아 놓았다. 봉지를 내려놓으러 새 아버지에게 다가가니 술 냄새가 확 풍겼다. 기가 막힌다. 대체 제정신이라는 게 있긴 한 걸까?
조심스러울 필요가 없어진 나는 문을 쾅하고 닫고 나왔다. 신경질이 났다. 태어나서 두 번째로 엄마와 싸우고 싶은 생각이 들었다. 첫 번째는 어느 비 오는 날, 엄마가 아버지가 준 갈색 우산을 숨겨두고, 새 아버지가 사온 빨간 우산을 내밀었을 때였다. 나는 소리지르고 반항했다. 엄마는 나를 설득하려 했지만 내가 아무 말도 들으려고 하지 않자 그만두고 말았다. 그 후로 나는 갈색 우산을 볼 수 없었다. 의외였다. 여태까지의 엄마라면 순순히 갈색 우산을 내게 내주었을 테다. 지금 생각해보면 그때 엄마가 내 요구를 묵살한 까닭은 엄마와 나의 싸움이 단순히 갈색 우산과 빨간 우산의 싸움은 아니었기 때문일 것이다. 그때부터 비가 와도 나는 우산을 쓰지 않았다. 다른 색깔의 우산을 살 수도 있었지만 그렇게 하고 싶지는 않았다.
숨이 찼다. 내가 낸 신경질에 북받쳐 너무 빨리 걸었다. 숨을 돌리는데 어디선가 느끼한 기름 냄새가 났다. 고개를 돌리니 빵집이 보였다. 아마 도너츠 냄새일 것이다. 전엔 별것 아니었던 냄새가 낯설게 느껴졌다. 속이 역하다. 당장에라도 토하고 싶은 것을 참고 집까지 왔다. 머리가 아팠다. 두통약을 집어 물과 함께 삼킨다. 꿀꺽.
나는 문득, 정말 진절머리가 난다고 생각했다.
다음날, 나는 또 병원에 가야 했다. 엄마의 반강제적인 이끌림에 의해. 나는 한 번 갔다 왔으면 되지 않느냐고 따져 물었다. 너 얼굴 못 봤다고 섭섭해 하셔. 엄마의 말은 별 설명이 되지 않았다. 그래, 내 얼굴 보고 싶어서 술을 그렇게 마셨나요?
가는 길에 나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나를 끌고 왔으면서도 엄마는 내 눈치를 살폈다. 새삼스럽다. 음료수는 뭐 가져갈까? 묻는 말에도 나는 귀찮은 표정만 지었다. 빵집에서는 여전히 도너츠 냄새가 계속 난다. 울렁거렸다. 온몸의 세포가 기름덩어리가 되는 것 같았다.
병실 안에는 아무도 없었다. 이젠 기도 안 찼다. 엄마는 새 아버지에게 전화를 했다. 나는 이것저것 툭툭 건드렸다가, 빈 침대 아무 데나 털썩하고 앉았다. 옆에 앉은 엄마의 통화 내용이 다 들렸다.
“어디에요? ......뭐? 호프집? 당신 제정신이에요? 아프단 사람이 왜 술을 먹고 그래요? ...지금 병실이에요. ...같이 왔어요. ...그래요. ...아니 빨리 올 생각은 안 하고 한다는 말이 기다려 달라구요? 얘 내일 학교 가야 돼요. 우리 갈 테니까 술을 마시든 말든 맘대로 해요.”
엄마는 핸드폰 폴더를 탁하고 세게 닫았다. 대강 무슨 일인지 알 수 있었다. 엄마는 크게 한숨을 쉬었다. 새 아버지는 자신의 새 가족들과 잘 지내고 싶은 마음이 있긴 한 걸까?
“집에 가자.”
엄마는 내 말에도 반응이 없었다.
“나 피곤해.”
그제야 엄마는 일어섰다. 오는 길에도 우린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그러다가 엄마가 아주 작은 목소리로 딱 한마디 했다.
미안해, 그치만 이게 저 사람 전부는 아냐.
나는 저런 꼴 보고도 그런 말이 나오느냐고, 이러려고 재혼했느냐고, 왜 하필 저 사람이냐고 물어보고 싶었지만 그만 두었다. 이 와중에도 여지없이 풍겨오는 도너츠 냄새가 더욱 싫어졌다.
이젠 제발 나를 부르지 않길 바랐다. 그러나 나는 며칠 후, 또 한 번 엄마와 그 거리를 걸어야 했고 기름기 가득한 도너츠 냄새를 맡아야 했다. 엄마는 이번이 마지막이라고 했다. 나도 정말 끝이라는 생각 때문에 아무 반항 없이 엄마를 따라 나섰다. 엄마는 놀란 눈치였다. 코끝까지 깊숙이 도너츠 기름에 담가지는 상상을 하며 301호 병실로 들어섰다. 이번엔 정말 새 아버지가 아무것도 하지 않고 누워 있다가 나를 보자 벌떡 일어서 바로 앉았다.
“왔니?”
나는 가만히 서 있었다. 거기 포도라도 먹어라. 새 아버지는 주섬주섬 포도를 챙겨다 준다. 엄마는 포도를 가져다 씻었다. 나는 처음 온 사람처럼 주위를 두리번거렸다. 역시나 어정쩡한 공기가 벽을 타고 흐르고 있다. 싫다. 빨리 벗어났으면 싶다. 포도를 하나 따서 입에 넣었다. 새콤달콤한 싱그러움이 도너츠 기름 냄새를 씻어주는 것 같다.
“학교는 잘 다니니?”
“네.”
“선생님 말씀은 잘 듣구?”
“네.”
“숙제는 잘해 가?”
“...네.”
계속 되는 질문들이 짜증스럽다. 집에 가고 싶은 마음이 간절해졌다. 천장을 봤다가, 벽지 무늬를 셌다가, 견딜 수가 없어서 엄마를 향해 고개를 돌리려는 참에, 음료수를 안 사왔다며 엄마가 병실을 나갔다. 금방 올게. 엄마는 병실문을 닫았다. 병실 안의 공기는 한없이 무거워지기 시작했다. 무늬를 한 개 두 개 세고 있지만 엉덩이가 움찔거려서 어쩔 줄을 모를 지경이다. 무거운 방 안에서 멀뚱멀뚱하게 있던 새 아버지는, 내가 포도를 다 먹을 때쯤 어딘가에서 봉지를 꺼내와 부스럭거렸다.
“지원아.”
그때까지 벽지 무늬나 보고 있던 나는 새 아버지의 손에 들려 있는 것을 보고는 아, 하고 탄성을 질렀다. 그것은, 갈색 우산이었다. 새 우산이 아닌, 아버지가 나에게 준 그 우산이었다. 엄마가 나에게서 가져간, 그 우산이었다.
“......어떻게 그걸?”
“네 엄마 몰래 가져왔지. 엄마한테 말하면 안 된다? 잘 챙겨 가.”
새 아버지는 신난 듯 까만 비닐봉지에 우산을 챙겼다. 나는 멍하니 비닐봉지만 바라봐야 했다. 새 아버지는 웃으며 내 손목을 꼭 잡았다. 고개를 떨어뜨렸다. 새 아버지의 아주 기다란 손가락과 나의 가느다란 손목.
“이제 비 맞고 다니지 말고 우산 쓰고다녀, 응?”
그렇게도 그리워했던 갈색 우산이었는데, 내 손에 들어오니 어쩐지 마음 한구석이 간질하며 미안함이 피어오른다. 새 아버지가 준 빨간 우산은 내 방구석에 처박혀 있었다. 그걸 알고는 있을까? 내 손에 쥐어진 갈색 우산을 보면서 한 가지 생각밖엔 할 수 없었다. 알고 있겠지.
문이 열리고 음료수 봉지를 손에 든 엄마가 들어왔다. 지원이 피곤하지? 어서 가자. 엄마는 음료수 봉지를 새 아버지에게 건네주었다. 우리 갈게, 잘 쉬고 있어요. 우리는 문을 닫고 엘리베이터 앞에 섰다. 새 아버지가 따라나온다.
“잘 가. 지원이도 내일 학교 가서 선생님 말씀 잘 듣고.”
나는 고개만 끄덕였다. 엘리베이터 문 사이로 환히 웃으며 손을 드는 새 아버지가 보였다. 앗, 잠깐. 나는 막 닫히려는 문 사이에 손을 넣었다. 두 사람의 얼굴에 의아한 표정이 떠오른다. 갑자기 나는 이런 말을 한다는 것이 너무나 부끄러워 머뭇거렸다.
“저...... 미안해요. 가끔, 빨간 우산도 쓸게요.”
나는 고개를 잠깐 숙여 보이고 문 사이로 넣은 손을 뺐다. 그리고 가만히 서 있었다. 엄마가 내 옆으로 와 손을 잡았다. 엄마도 빨간 우산이 무엇을 말하는지 알고 있다.
“그냥...”
괜히 변명 같은 것을 해본다.
“빨간색도 괜찮을 것 같아서.”
이게 끝이다. 이런 말밖에 할 수 없다. 하지만 엄마는 내 손을 더 꼭 잡았다.
돌아가는 길에 그 빵집에선 또 도너츠 냄새가 난다. 웬일인지 아까보다는 덜 느끼한 것 같다.
“배고픈데, 먹고 갈래?”
대답할 새도 없이 엄마는 나를 빵집으로 끌고 갔다. 문을 열자 갖가지 빵이 빙 둘러 서있다. 나는 빵들을 쭉 훑어보았다. 저 한구석에 도너츠가 진열 되어 있었다. 엄마는 냉큼 도너츠를 집어들었다. 나는 선뜻 고를 수 없었다. 그러자 엄마가 자신의 것과 똑같은 도너츠를 골라 준다. 계산을 하고 나오자마자 엄마는 도너츠를 입에 가져갔다. 나는 아직도 먹을지 말지 갈등하고 있다. 엄마는 나를 본다.
“뭐해, 어서 먹어봐.”
그제야 나도 한 입 깨물었다.
“맛있네.”
옅은 미소가 떠올랐다. 도너츠는 생각보다 맛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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