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양이 사용 설명서
- 작성자 예하_
- 작성일 2010-01-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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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 말이죠, 우리를 한없이 도도하고 차가워서 주인에게 베풂마저 없는 배은망덕한 동물로 보고 있는 사람이 늘고 있더군요. 기분 나빴어요. 그건 틀렸거든요. 받지 못할 사람들이 ‘나에게 베풀어!’라고 외치는 거잖아요. 그래서 그 오류를 바르게 잡아 고칠 방법이 없을까 생각해 봤는데 말이죠. 오우, 누군가 나를 사랑스러운 눈길로 바라보고 있네요. 일단 나와 저 사람 둘 다 여자니까 말은 통하겠어요. 깔끔하고, 차분해 보이는 군요. 날 데려가도 문제는 없을 것 같아요. 우린 알고 있어요. 인간이 우릴 어떻게 생각하고 있는지, 지금 인간의 기분은 어떠한지, 저 인간이 배고픈 나에게 생선은 언제 던져다 줄 건지 말이죠.
⋆주인공이 모르고 있는 한 가지
지금 그 말 할 때가 아닐 텐데.
아참. 얘기가 빗나가 버렸네요. 아무튼 그 오류를 바로잡기 위해서 우리 고양이들은 꽤나 고심을 해야 됐었어요. 그렇게 고심 끝내 생긴 결론은 '설명서'를 만들자는 거였고요.
갑자기 왜 어리둥절한 눈치예요? '설명서'가 그거잖아요. 밥솥이나 핸드폰을 사면 물건이 담아져 있던 박스 밑에서 ‘툭’하고 떨어지는 종이 뭉치들. 사실 그거 안 읽는 사람이 한 둘이겠어요. 괜히 조잡한 영어에, ‘이럴 땐 이렇게 하고, 저럴 땐 저렇게 하십시오! 같은 명령문밖에 내뱉지 않는 뭉치를 누가 좋아하겠냔 말이죠. 인간은 명령받는 거 참 싫어하잖아요. 우리한테는 손 내밀어, 공 갖고 와 하면서 허구한 날 명령 투성인데 말이죠. 그래도 꼬박꼬박 밥도 잘 주고 하니-뭐, 때때로 인간 축에도 못 끼는 주인들이 우리를 바깥으로 내보내긴 하지만-최대한 쉽고, 간략한 '설명서'를 만들기로 했답니다. 오히려 그게 더 효과가 있을 것 같아서요. 전번에 내 주인이 아픈 나를 이끌고 병원으로 갔는데 의사가 주인의 ’이건 뭐야‘하는 표정이 보기 싫었던지 ’그러니까 쉽게 말하자면……. ‘ 하면서 내가 아픈 이유를 대더라고요. 주인은 그럭저럭 알아들었고요. 그래서 도도하고 차가운 모습대신 친절하고, 따뜻한 모습을 보여주려고 저희는 다짐했답니다.
⋆설명서에 대한 간략한 고찰
인간들이 재미 하나면 모든 게 다 해결된다는
세상을 떠난 흙빛 고양이의 말을 토대로 만들어짐.
저자의 생각을 하나 추가하는데, 피식 하고 지나갈 웃음만큼의 재미조차 없다.
결국 여자는 저를 데리고 동물 병원 밖으로 나갑니다. 아, 다른 봉투들을 보니 내가 좋아하는 먹이들과 간식거리, 놀 거리들이 한 가득이네요. 내가 정말로 마음에 드나 봅니다. 호감도 상승 이예요. 하지만 주인은 몰랐을 거예요. 제가 몰래 입으로 물고 나온 '설명서'가 자기한테 얼마나 큰 위력을 줄지.
역시, 여자가 혼자 살아서 그런지 집은 정말로 포근합니다. 깨끗해서 좋네요. 저번에 주인은 ‘고양이는 물 닿는 거 싫어하지’라는 변명만 반복하면서 날 씻길 생각을 하지 않는 거예요. 뭐, 그래서 내가 직접 세숫대야 속으로 빠졌지만. 여자는 괜히 들뜬 눈치입니다. 무슨 이름을 지어줄까 고민하는 듯 나를 뚫어지게 바라보더니 아! 하고 소리칩니다. 과연 무슨 이름일까요.
“x! 아무리 봐도 이 이름 말곤 어울리는 이름은 없는 것 같다. 괜찮은데……!”
⋆이름의 주인공이 조용히 내뱉은 한마디
“미안하지만, 괜찮지 않아.”
옛날에 할아버지가 내게 지어준 이름은 너무나도 아름다웠죠. 샬롯 드 다코타. 참고로 가장 멋있고 귀족 같은 고양이의 이름은 여기저기서 따온 이름들로 이루어지는 거래요. 그래서 그런지 내 할아버지의 이름은 정말이지 무척 길어요. 난 할아버지와 친구 사이가 아닌 것에 고마움을 느끼죠. '할아버지‘하고 짧게 부를 수 있으니까요. 인간들은 번개자국처럼 뾰족뾰족, 메말라있어요. 하나 같이 이렇게 작명 솜씨가 똑같으니. 누구는 나비이니, 누구든 흰둥이니. 그래도 x는 그나마 제일 난 것 같기도 하고요. 일단 아무런 행동도 하지 않고 '설명서'를 던지기로 합니다. 주인이 봉투 속 가득한 애완용품을 뒤적거리는 사이에 나는 슬그머니 내려놓고 나른한 듯 창문만 바라보기로 합니다. 완벽해요. 주인이 발견을 합니다. “…고양이 사용 설명서? 뭐지, 어디서 난거야?”
미안하지만 어디서 났는지는 말할 수 없어요. 고양이들만의 비밀은 지켜줘야죠.
이렇게 시작한 게임은 실수만 가득합니다. 벌컥 화를 내면서 쓰레기통에 버리는 주인도 있는데다 물어놔도 신경조차 쓰지 않는 주인도 있어요. 하지만 우린 후회를 하지 않습니다. 사실 이 게임의 승패는 인간에게만 영향을 주기 때문에, 우린 그저 인간들이 그 게임에 동참하도록 살짝 건드려주는 것뿐이에요,
영악하다고요? 난 지금 그대가 가장 영악해보여요.
……
킁, 다시 주인을 살펴보기로 하죠―괜히 쏘아붙였어요, 어색해졌잖아요―
일단 화를 내지는 않을 것 같습니다. 오히려 더 흥미로운 눈치예요. 여자들이 좋아하는 꽃무늬 장식에-아, 저건 내가 직접 찾은 거죠-분홍빛 양장 표지는 정말이지, 누구나 좋아할 만한 향기를 뿜어내고 있습니다. 살짝 빛바랜 듯 한 종이에 적혀있는 잉크들은 황홀하다고 느낄 만큼 들떠있는 분위기예요. 고양이표 삽화도 있다고요. 그래요, 거기, 쪽수 위쪽에. 그리고 다시 한 번 말하지만 ‘이런 건 어떻게 만들었어?’라고 묻지는 말아요. 고양이들에게 이해는 가장 필수적인 요소죠. 워낙 인간들의 말로 껍데기가 촘촘하게 씌워진 동물들이라, 우리의 행동을 그냥 지나쳐서는 안 된다고요. 그럼, 그럼.
다행히 주인은 어떠한 말도 내뱉지 않고 있습니다. 오히려 그 책에 빠진 모양입니다. 나 같은 건 안중에도 없는 모양이에요. 괜히 들뜨는 마음을 가라앉히고 식탁 의자에 앉습니다. 일단 지켜보려고요. 반응은 좋은 편이니까요.
우리는 그대들을 아주 옛날부터 지켜보고 있었어요. 소소한 일상사까지도 모두요. 하나로 묶은 머리에다, 깔끔한 앞치마를 입은 인간이 심은 새싹이 나오는 것도, 양 갈래로 귀여운 머리를 묶은 여자아이가 그네를 타다 그림자에게 잡혀가는 것도, 혹 다리 위의 누군가가 세상과의 술래잡기를 그만두려고 하는 것도. 어떠한 움직임하나 없이 그 자리만을 고수하면서 계속 지켜봤어요. 그리고 기다렸죠. 인간들이 알아줄 때까지.
인간들은 무척 혼란스러워 하고 있어요. 외로워하고 있고, 겉으로만 당찬 모습으로 위세를 하려고 하죠. 신호등에서 엇갈리는 인간들과 서로 눈을 마주치면 벌레라도 본 듯 재빨리 시선을 돌려버리고, 기다림도 없이 ‘빨리, 빨리’만 내뱉는 당신들을 보면서 내심 안타까웠어요.
⋆여기서 말하는 고양이가 생각하는 인간들의 혼란
가장 빛나고 맛있다는 생선을 먹어보지만 맛이 형편없어 과연 이것이 가장 빛나고 맛있다는 생선이 맞는지에 대한 의문이 점차 확산되는 것.
혼란을 풀 방법은 거의 다 자신에게 있다.
무언가 바빠 보이지만, 정작 한 것은 없으면서 괜히 ‘이게 다 사람 사는 일이지 뭐,’하고 내뱉고. 그 모습을 가만히 앉아서 여유롭게 지켜보고 있자니 몸이 너무 근질근질 하더라고요. 몇 번을 말하려고 해도 연신 귀엽다, 귀엽다는 말만 하니, 다른 소통 방법이 필요했고요. 그래서 우리의 할 말도 조금 더 추가된 ‘설명서’는 완성이 됩니다. 정확히 말하자면 ‘고양이 사용 설명서’예요. 인간의, 인간을 위한, 인간의 의한 동물들의 최초 사용 설명서죠.
처음 이것을 내민 주인의 표정은 정말이지 ‘충격, 그 자체’였어요. 의무적으로 나를 데려온 듯이 집에 들어가자마자 날 내려놓고는 줄곧 텔레비전만 보고 있는 거예요-그때부터 난 텔레비전이란 존재를 혐오했죠. 비디오와 오디오를 모아놓은 네모난 합체로봇 따위가 감히 품격 있는 고양이를 내팽개쳐버리게 하다니-. 그와 함께한 3달은 지루해서 할 이야기도 없어요. 그나저나 아직도 김치볶음밥 먹을 때 치즈를 위에 올려놓는지 모르겠네.
⋆주인이 고양이에게 말한 첫 마디
“김치볶음밥은 치즈가 생명이야.”
두 번째 건넨 주인은 날 너무 좋아했었어요. 그럼요. 설명서도 잘 읽어주었고요. 날 위한 옷, 먹이, 잠자리까지! 그렇게 부족한 것 없이 사는 것 오랜만이었답니다. 뭐, 저는 그 집을 일찍 나가버렸지만요. 강아지라고 하기에는 너무 커버린 ‘개’들이 넓은 마당에 수십 마리가 있었으니까요. 그때 처음 고양이들이 그쪽 애들처럼 무리를 지으면서 다니는 것도 나쁘지 않다고 생각했어요. 무서웠냐고요? ……자, 다른 이야기로 넘어가죠!
그 다음에도 시인들과, 화가들과, 작가들 사이에서 키워졌었는데 말이죠. 제가 그들을 포기했답니다. 저는 그들이 키우기에는 너무 활달한 고양이였거든요. 가끔 너무 아름답게 짜인 그림이나 글을 볼 때면 함성이 나오기도 했지만 먹이를 불규칙적이게 주는 모습에 정이 떨어졌답니다. 어떤 화가는 그림에만 열중하느라 한 작품이 끝날 때까지 나에게 밥을 안줬었다고요. 그렇게 1년도 채우지 못한 채 날 떠나보낸-혹은 내가 떠나가 버린-주인들에겐 이 설명서가 별로 도움이 되지 않았답니다. 그래서 지금 만난 주인에게 굉장한 기대를 갖고 있어요. 평범한 직업에, 평범한 얼굴에, 평범한 성격에, 온갖 평범함 투성이지만 때론 화려함보다 깔끔함이 더 빛날 때도 있으니까요. 일단 졸리니까 여기서 스탑. 그대들이 내 잠을 방해할 권리는 없으니까 이 얘기는 그만하겠어요. 나중에 봐요.
주인이 들떠있습니다. 과연 무슨 일일까…에구, 꽃줄기예요. 여기서 말하는 꽃줄기란 건 고양이들의 바른 낱말을 사용하기 위한 조금 순화된 말이랍니다. 목줄이에요, 목줄. 자유분방한 고양이들이 ‘개’ 만큼이나 혐오하는 물건. 곧 내 목에 둘러싸일 생각을 하니까 벌써부터 목이 막혀요. 그래도 색깔은 밝아서 그런지 고운 꽃줄기라고 생각하는 걸까요. 주인이 신나게 달려오더니 내 앞에 앉습니다.
⋆꽃줄기의 주인공이 조용히 내뱉은 한마디
“날 가까이 가게 하지 말아요. 지금 물어버릴까 고민 중이니까.”
인간들은 확실히 남의 감정에 서툰 것 같아요. 일단 나는 가만히 있기로 합니다. 내가 이 집에 있게 된 것과 동시에 주인이 ‘고양이 사용 설명서’를 읽어본 지는 벌써 이주일이 넘어갔으니까요. 꽃줄기가 점점 다가오는데 얼마나 싫던지. 나는 고개를 푹 수그리고 땅만 바라봅니다. 난 주인을 믿어요. 맨 첫 장, 기억 안나요?
⋆고양이 사용 설명서
고운 꽃줄기로도 묶어 두지 말 것.
아쉬운 건 너 일뿐.
주인은 꽃줄기를 아쉽게 바라봅니다. 뭐, 색깔은 맘에 들지만요. 내 목에 감기기는 바라지 않거든요. 가끔 우리가 인형 같다고 ‘인형’처럼 꾸미는데 말이죠, 0.01%라도 우리는 흥미를 가지지 않아요. 자기 것과 똑같은 주황색 패딩을 입히거나, 목을 조이게 하는 모자를 씌우거나, 그렇게 옷을 입다보면 내가 인간이라는 생각도 든다니까요. 어이, 거기. 인터넷 쇼핑몰에서 위에게 입힐 옷을 고르고 있다면 당장 멈춰요. 목 베게-정말이지, 인간들이 만든 것 중에 가장 아름다운 건 노래와 목 베게인 것 같아요. 이렇게 나른하고 편한 건 처음이에요-나 공을 살 게 아니라면 당신의 눈을 휴식 시키란 말이죠. 소위 ‘구매’란 통로로 우리가 당신들에게 왔어도 이건 지켜줘야 되지 않겠어요? 모르겠다고요? 흐음. 두 번째 장.
⋆고양이 사용 설명서
너의 고양이라는 착각하지 말 것.
고양이의 너 일뿐.
인간의 집에서 살게 되면 소리가 많아져요. 음. 그러니까 깨어있지 않은 물건들에게도 이따금씩 말하는 게 들린다는 거죠. 물론 인간들은 그런 소리를 특별하게 느끼기도 전에 버스 탈시간을 놓치겠다고 헐레벌떡 뛰어나가지만 우리 고양이들은 여유롭게 소리들을 듣곤 하죠. 꽤 재미있어요. 창 밖에 물방울들은 과연 창에 걸터앉아 안정되지만 재미없는 삶을 살 것인지, 아니면 바닥으로 떨어지면서 위험은 감수해도 나름 재미있는 삶을 살 것인지 바로 그 자리에서 결정을 해야만 해요. ‘어떡하지, 어떡하지’ 하고 중얼거리면서 바닥을 내려 보는 그들의 표정은 무척 익살맞아요. 하지만 그들과 눈이 마주치지는 않는 게 좋더라고요. 아무 의도 없이 바라본 것에도 ‘뭘 봐, 지금 작다고 무시하는 거야?’하고 물을 튀겨대니까요. 비신사적인 녀석들이지만 대단한 면도 가끔 있는 것 같기도. 인간들이 목숨을 위협하는 존재들을 절대로 없어서는 안 되는 존재들로 여기는 것처럼 말이죠. 불은 밸브만 열리면 인간의 숨통을 조이기 시작하고, 차의 바퀴는 틈만 나면 이리저리, 원하는 방향과 틀어지게 달리곤 하는데다 가만히 있는 벽돌은 높은 곳에 올라가면 당신의 머리를 줄기차게 노려보고 있잖아요. 그런데 그것들의 눈빛은 눈치 채지 못하고 그저 좋다고, 편하다고 하고 있으니, 어찌 보면 인간들, 바보라는 껍질 속에 숨겨져 왔던 천재성을 가장 잘 발휘할 인간일지도 모르겠어요. 우리 고양이들은 위험한 도전 따위 하지 않거든요. 어차피 찾아올 위험을 직접 만들려는 욕심은 없어서 말이죠. 그래서 당신들에게 고양이는 매우 따분하고, 나른한데다 움직이는 것을 싫어하는 게으른 동물로 인식되는 게 많은 것 같아요. 뭐, 이런 말쯤이야 흘려 넘기면 되지만 ‘어차피 고양이들 키워봤자 주인에 대한 인식이 없어서 고마움을 몰라’라고 외치는 인간들에겐 손톱이 가장 좋은 것 같아요. 우린 당신들의 소유물이 아녜요. 다른 생각과 사고를 공유할 매개체라고요. 당신들이 우리에게 인간 세상을 공개하는 것처럼, 우리도 우리 나름의 느낌을 표출하곤 하죠. 그것을 딱딱하게 묶은 게 이 설명서예요-생각해보면 ‘이렇게 해서 이렇게 된 게 고양이 사용 설명서입니다.’ 라는 말을 많이 했는데 이해해줘요. 그만큼 요 책 하나가 모든 것을 대신했다는 뜻이니까요-. 아, 잠깐. 물 좀 마시고.
킁. 전에 친구가 제 발로 우리 은신처-라고 해봤자 동물가게 일뿐-로 돌아옵니다. 무심하게 고개를 흔들고 있는 그 친구에게 다가갑니다.
“왜 혼자 온 거야? 그 주인, 장난 아니게 널 좋아하는 것 같던데.”
“흐음. 모든 게 다 좋았긴 했는데, 간섭이 너무 심했어.”
“간섭?”
“그래. 주인이 울고 있어서 그냥 묵묵히 있었더니 갑자기 나한테 쿠션을 던지는 거 있지-보나마나 소위 ‘차인 게’ 뻔해-. 넌 너무 무심하다고. 위로도 해주지 않는 비인간 적인 동물이라고. 사실 그 말에는 오류가 있잖아. 난 인간이 아닌데 나보고 비인간 적이래.”
“울컥해서 그런 거겠지. 네가 심한 거 아냐?”
“그래. 그럴 줄 알고 가까이 갈려고 했지만 나한테 쿠션들을 던지는 명중률이 너무 뛰어나서 그렇게 못했다. 내가 그렇게 잘해줬더니 어떻게 나한테 그럴 수 있냐고 하더라고.”
여기서 나오는 고양이 사용 설명서 세 번째.
⋆고양이 사용 설명서
무심한 태도에 상처받지 말 것,
오해한 건 너 일뿐.
사실 새침한 얼굴 생김새는 인정하겠어요. ‘ㅅ’ 모양의 입은 누가 보더라도 밝은 인상을 줄 수 없기 마련이니까요. 하지만 성격은 정반대예요. 좋아하는 것도 많고, 활발하고, 명랑하다고요. 다만 그걸 밖으로 보여주지 않는 거예요. 인간들이 말하는 단어로 치자면 조금 무뚝뚝하니까요. 처음에는 이 단어가 정말 너무 싫었는데 막상 생각해보면 인간들은 이 느낌을 살리기 위해서 얼마나 많은 공을 들였을까 하고 생각하게 되더라고요. 그래서 아무렇지도 않게 넘기게 됐어요. 인간들도 그렇게 생각해주면 좋을 텐데. 이게 ‘나’와 ‘너’가 생긴 이유니까 그냥 이해하고 넘기면 될 텐데 말이죠.
주인이 창문을 열고 청소를 할 모양이에요. 일단 방으로 피신하는 게 좋겠죠. 밖은 눈이 가득합니다. 얼마 전에 도심 한복판에도 눈이 가득 쌓였는데, 아직까지 녹지 않았어요. 이랬다가 저랬다가 어찌됐든 눈은 따듯한 기운에 녹아 사라질 거예요. 그러고 보니 눈: 도 눈이 참 아플 거예요. 녹기 전까지, 흐물흐물해져서 정신이 아득해질 때까지 날마다 새로운 일이 일어나는 이곳을 계속 지켜봐야 할 테니까요. 엉덩이도 시리고, 누가 자기를 밟고 지나가기만 하면 빨리 밤이 와서 실컷 인간들의 발의 상태에 대해 떠들고 싶다고 생각할 텐데 그에 비하면 고양이는 정말 자유로운 것 같아요. 어떠한 일이 있어도 느긋하니까. 인간보다? 그래. 이 점에서는 인간보다.
우리를 사용-어감이 애매하지만-하려면 일단 인간 자체가 다시 한 번 이해해주어야만 해요. 설명서들이 ‘절대로 입에 넣지 마십시오.’, ‘어린이의 손이 닿지 않는 곳에 놓으십시오. 와 같은 알고 있는 내용을 넣는 이유는 말이죠, 알면서도 그걸 잊고 살기 때문이에요. 다 파악했음에도 불구하고 정작 그 상황이 오면 허둥대기 쉽거든요. 물론 요즘은 설명서는 무게만 차지하는 종이 뭉텅이가 되어버렸지만. 우리 고양이들이 그런 ’애물단지‘를 사용하기 위해서 얼마나 많은 공을 들였는지 몰라요.
⋆고양이 사용 설명서
당신의 눈물과 외로움도 다정한 침묵으로.
오해는 하지 마. 고양이의 배려일 뿐
지금의 주인과는 얼마나 있을지 알 수 없어요. 둘 사이의 불화가 생길수도 있고, 새로운 식구를 데려올 수도 있는 거겠죠. 그래도 이 사용설명서를 건네는 건 두고두고 간직하라기보다는 빛이 바랠 때까지 항상 애용하라는 이유에서 일거예요. 폼? 그래요. 우리 고양이들은 꼭 읽으라고 주었다가 돌아갈 때 ‘나 이제 여기 안 올 거니까 그 책 다시 돌려내’라고 외치는 품위 없는 짓은 하지 않으니까요.
이 글을 읽고 있는 당신. 혹시 사용설명서가 그냥 궁금하다는 목적으로 우릴 데려가려는 생각은 하지 않는 게 좋아요. 고양이들도 그냥 당신이 궁금해서 따라갈 수도 있잖아요? 무관심으로 대하는 주인에겐 똑같은 무관심으로. 사랑으로 대하는 주인에겐 겉으론 도도한 척하지만 속으론 똑같은 사랑으로. 김치볶음밥만 챙기는 주인에겐 똑같이 딸기만 챙기는 법이니까요.
⋆훗날 김치볶음밥에 치즈를 넣어먹는 주인에게 외친 한마디
“이봐, 딸기는 설탕 안 뿌려 먹는 게 좋거든?
비타민 c 부족으로 노화촉진이 오고 싶은가 보지?”
고양이. 우리도 한 생명이기 때문에 키우기 쉽다, 쉽지 않다는 건 애매해요. 하지만 그만큼 매력 있고 사랑스러운 동물이라는 거, 인간들도 과연 알지 모르겠어요. 내가 말하고 싶었던 건 ‘고양이사용설명서’는 단순히 말해 우리와 인간들을 이어주는 매개체 역할을 단 30%만 맡는다는 거예요. 물론 70%는 노력이죠, 노력. 당신과 나만의 힘들지만 가까워지는 노력. 어때요? 알다가도 모르겠지만 매력하나 만큼은 정말 아름다운 고양이, 한번 키워보실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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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통키니즈라는 고양이로 주인공을 생각하고 썼는데, 제가 고양이가 아닌 이상 힘드네요;;
고양이를 너무 좋아하는 편이라 열심히 써봤는데 얘기가 빗나간것 같기도 하구요 ㅠ 힘내야겠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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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코끼리가 눈을 슬며시 들어 자신이 있는 곳을 바라보았다. 원래는 크림색이었을 천막은 누렇게 닳아 낭창낭창해졌고, 구멍 난 천막 사이로 차가운 바람이 휙 들어왔다. 코끼리는 몸을 부르르 떨더니 자신의 오른쪽 발을 내려다보았다. 자신의 발을 죄이는 밧줄. 어깨에 얹어놓은 반짝이 천 조각들. 지금 이것보다 무거운 것은 없었다. 천막 문이 휙 열리자 바람이 매섭게 몰아쳤다. 들어온 남자가 살며시 웃더니 손을 들었다. -미안, 미안. 오늘은 조금 춥네. 그치? 곧 있으면 크리스마스라 그런지 그는 머리에 하얀 술이 달린 산타 모자를 쓰고 있었다. 몸을 떨며 품에 가득 안고 있던 알록달록한 선물 상자를 한쪽에다 놓고, 그는 먹이를 들고 코끼리 앞에 섰다. 그가 선반 위에 있는 물통을 집으려고 하지만 손이 닿지 않아 실패하자 코끼리가 가뿐하게 들어 자신의 오른쪽 발에 내려놓았다. 머쓱한지 머리를 긁적이며 짓는 그의 웃음은 보는 사람마저 따뜻하게 만들었다. 그가 조용히 외쳤다. -서커스 올라가기 30분 전이야. 이번에는 손님들 꽤 많으니까 실수하지 말고, 열심히 해야 된다-. 알았지? 좀 이렇게 코도 흔들어 보고, 귀도 살랑살랑하고 말이야. 왜 당신은 서커스에 올라가지 않아? 코끼리의 눈이 그렇게 말하고 있는 걸 알기라도 하는 건지 그는 고개를 저어보이고는 코끼리의 등만 쓰다듬어 줄 뿐이었다. 갑자기 그가 주위를 둘러보았다. 한쪽에는 발랄한 노란색의 앵무새가 있었는데 앵무새는 그를 보고 있는 것 같지 않았다. 그는 코끼리에게 다가가더니 조용히 소리쳤다. -내가 전에도 말했지? 사람들이 날 엄청 좋아해. 그래서 내가 무대에 올라가서 공연을 한다고 해도 사람들이 말린다니까-. 너 다치면 우리 끝난다고, 절대 안 된다고. 우리는 믿을 사람 너 밖에 없다고 말이다. 너, 옛날에 내가 공 재주 부리는 거 봤었지? 그거 보고 나서도 팔이니 손이니 근육통 생기면 큰일 난다고 해서 지금은 이렇게 보조를 하고 있는 거야. 코끼리가 물끄러미 그를 바라보았다. 그는 어쩔 수 없게 됐다는 듯이 고개를 끄덕이고는 다시 코끼리의 등을 쓰다듬어 주었다. 앵무새는 멍하니 밖만 바라보고 있었다. -그러니까 내 몫을 네가 대신 해주는 거야. 열심히! 알았지? 응? 내 말 듣구 있어? -야, 난쟁이 어디 있어? 이 자식이, 꼭 바쁠 때 사라져. 빨리 안와! 그가 깜짝 놀라 코끼리를 쓰다듬는 손을 멈추더니 다 먹은 그릇을 재빨리 정리하기 시작했다. 코끼리가 소리가 들리는 쪽을 향해 귀를 철썩이더니 몸을 오른쪽으로 돌렸다. 그가 비운 물통을 선반 위에 올리려고 했지만 손이 닿지 않았다. 이리저리 몇 번 뛰어보아도 허사였다. 그가 힘차게 다시 뛰려는 순간- 천막 문이 확 열림과 동시에 선반에 있던 물건들이 와르르 쏟아졌다. 당황한 표정의 그가 고개를 휙 돌리자 문을 열고 들어왔던 무용수들과 여가수들이 그를 보고 까르르 웃어댔다. 그의 눈이 한 여자에게 멈춰 있다가 곧 시선을 돌려 몸을 일으켰다. 그랬다. 그는 난쟁이였다. 2. 그의 이름은 아무도 몰랐다. 그저 난쟁이일 뿐이었다
- 예하_
- 2011-03-14
“오늘 오전 11시 30분쯤, 서울 강남구 모 고등학교에서 수업 중 가슴을 답답해하던 한 여학생이 호흡곤란으로 쓰러져 아직까지 혼수상태로 있다고 합니다. 박 모 양은 전국에서 약 2%로 최 상위권에 올랐었으며 최근 전국에서는 박 모 양과 비슷한 증세로 깨어나지 못하는 학생들이 늘어나 문제가 되고 있습니다. 허나 병원에선 이상 없다며 아무런 조치를 못하고 있는 상황으로…….” 무심히 음식물을 씹고 있던 겨울이 밥을 먹다 말고 반찬 뚜껑을 닫아버린다. 겨울의 반에서도 벌써 세 번씩이나 일어난 일. 아무렇지도 않던 아이들이 멍하니 눈빛이 흐려지고 몸이 축 늘어진 채 먹먹한 호흡을 주체 못하고 있다. 가까이 다가가기라도 하면 심장 속 폭탄이 터져버린 듯 위협적이게 변하고 결국은 그대로 쓰러지고 만다. 숨이 막힌 채. Breathe complex. 그게 친구들이 지은 그 병의 이름이었다. 겨울이 핸드폰을 꺼내 이리저리 움직이더니 곧 닫아버린다. 뉴스에 나온 11시 30분. 겨울은 아이들의 설문지를 걷고 있는 중이었다. 전부터 어딘가 아픈 증세를 보이던 K에게 보건실로 가라고 할 참이었다. 순간 그녀의 눈빛이 새빨갛게 변하더니 소리를 질렀다. 모든 아이들이 깜짝 놀라 비명을 지르고 K는 겨울의 목을 강하게 잡았다. 켁켁 거리는 겨울을 보며 K는 사납게 웃었다. “왜, 왜 너만…너만 왜 숨을 쉬는 거야…….” “…뭐?” “숨이 막혀. 죽을…같아. 숨…못 쉬겠어.” 탁. 가볍게 무언가를 내리치는 소리가 들리더니 곧 K가 쓰러졌다. 겨울이 몸을 떨며 고개를 들었다. 찬란한 깃털을 가진 앵무새를 어깨에 얹고 있던, 동화책에서나 나올 법한 남자의 봉이 그의 손에서 가볍게 움직였다. “친한 친구들은, 싸우면 안 되지.” “이 멍청아. 괜한 오지랖 때문에 그러는 거 아냐.” 고개를 저으며 반찬들을 냉장고에 넣는다. 문득 아까 본 남자와 앵무새가 눈에 밟힌다. 차갑지만 부드러운 눈빛이었던 그 남자와, 그 어깨에 매달려있던 앵무새- 겨울을 봤다. 그리고 웃었다. 분명히 환하게. “뭐하는 거냐. 멍하니.” 겨울이 깜짝 놀라 뒤를 돌았다. 아빠였다. 검은 정장이 그간 고된 삶의 주름을 보여주는 듯, 겨울은 아무 표정 없이 고개를 숙인다. “모의고사는?” “그냥 그럭저럭.” 듣는 둥 마는 둥. “그렇게 어설프게 시험들 보내버리면 막상 가서도 어설프게 끝낸다고 아빠가 몇 번이나 말했는데. 과외랑 학원은 잘 다니고 있는 거 맞아?” “아빠.” 겨울이 물 컵을 탁 소리 나게 내려놓는다. 아빠의 표정이 굳어진다. “오늘 우리 반 어떤 애가 내 목을 조르려고 했어. 숨을 쉴 수가 없다고 새빨간 눈으로 날 노려보면서 내 목을 졸랐어.
- 예하_
- 2010-10-18
“갈대처럼 휘고…잡초처럼…밟힌…….” 비틀비틀. 풍성한 꽃이 달린 플랫슈즈가 기우뚱 옆으로 쓰러질 것만 같이. “으이씨. 생각나는 노래는 없고……겨우 생각난 건 이렇게 눈물 나고. 에이, 진짜. 눈치 없는 세상이네, 정말.” 눈을 재빠르게 훔치더니 다시금 비틀비틀 걷는. 황금빛 머리카락에 큰 눈에 뚜렷한 이목구비를 가진 K. 아파트 옥상 새벽 2시의 밤은 그렇게 시작됐다. 모자를 벗어버리고 가방을 고쳐 멘 채 시원한 바람에 얼굴을 씻던 그녀는 한 손에 든 술병을 살짝 내려놓더니 난간으로 향해 빠른 걸음을 걷는다. 밀짚모자를 둘러쓰고 한 손엔 보랏빛 꽃을 든 채 상큼한 미소를 지으면서 풀밭을 달려가던 어린 소녀의 모습처럼. 천천히 발돋움하기 시작한다. 2달 전부터 계획해왔던 아름답고 고귀한 죽음. 물론 그 배경이 아파트 옥상이란 게 살짝 마음에 들지 않았지만 상관없다. 누군가 말했을 거다. 내적인 아름다움이 외적인 아름다움을 이기는 힘이 있다고 말이다. 근데 이걸 누가 말했지. 고 3때 담임이 말했나. 약도 생각해봤지만, 목구멍으로 몇백 개의 알이 들어갈 생각을 하려니 그동안 아무 탈 없이 꿀꺽꿀꺽 음식을 삼켜줬던 목에 그런 짓을 한다는 건 상상도 할 수 없었고, 손목을 긋는 건 소녀다운 방법이었지만 그전까지 깨어 있을 그녀의 몸 주위에 흥건할 그 빨간…어찌 됐든 그것도 아니었다. 아파트 옥상이라면 바람도 많이 불고 무엇보다 탁 트인 곳이니까 기사에 난다고 해도 ‘쓸쓸한 죽음’이란 단어는 나오지 않을 것이다. 그걸 믿고 무턱대고 ‘아파트 옥상’이라고 계획해 버린 것이었다. “술 한 잔에 울고- 노랫가락 속에 웃는↗” 역시, 소녀다운 노래를 할 걸 그랬나 보다. 그녀가 헛기침을 몇 번 하더니 다시 노래를 읊는다. “동산 위에- 올라서……” 누군가가 그녀를 보고 있다. “……!” 떨고 있다. 안도감이 느껴지지만 두려워하는 눈빛. "누구세요?“ “아…혹시 여기 자리 있는 건가요?” “뭐, 그런 건 아니지만, 용건이 있거든요. 그 자리에.” “아, 그러시구나…….” 난간에 걸터앉아있던 그녀가 느릿느릿 내려오기 시작한다. 12cm의 킬 힐을 벗으면 고작 153-4cm 될 것 같은 자그마한 키에 검은색 머리는 눈코입만 겨우 드러내 보여주고 있다. 움츠러든 어깨와 마주치지 못하는 검은 눈. 175cm의 그녀와 키뿐만이 아니라 전체적으로 모든 것이 다 달라 보인다. 그녀가 해면 여자는 해. 그녀가 고양이라면 여자는 강아지처럼. 그녀가 젓가락이라면 여지는 숟가락인. K가 그녀이면 Y가 여자라고 불려야 할 것처럼. 모든 게 다
- 예하_
- 2010-08-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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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양이를 키우고, 고양이에 관심이 많은지라 자연스럽게 손이.. 베르나르 베르베르의 소설이 떠오르는 건 왜일까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