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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네르바의 부엉이

  • 작성자 쎄렌체
  • 작성일 2011-07-20
  • 조회수 833

 

 

 

미네르바의 부엉이


김광현

-아들아, 아버지는 지금 사십 도에 육박하는 더위를 지켜보며 시원한 커피숍에 앉아 있단다. 역시 중동 여행은 몇 번을 해도 익숙해지지가 않단 말이야. 하하. 사실 아버지가 이렇게 새삼스럽게 편지를 쓰게 돼서 미안한 감이 없잖아 있구나. 평소 가까이에서만 보다가 먼발치에서 더욱 네 생각이 나는 것 있지. 평소에도 너에게 하고 싶은 말이 많았다만 쉽지가 않단 말이야. 너도 이제 아버지의 마음을 어렴풋이 알 나이가 되었구나. 그러기에 너에게 이런 이야기도 할 수 있게 되고 말이다. 얼마 전에 네 꿈이 소설가라는 소리를 듣고 사실 화가 나기도 했어. 내 아들도 나처럼 가난한 글쟁이가 될까봐 말이야. 그러나 어디 네가 아버지 말을 들을 아들이니. 하하. 아버지도 물론 많은 반대를 무릅쓰고 이 길을 택한 터라 후회는 없단다. 그렇기에 네가 확실히 소설가가 된다면 말리지 않을 거야. 그래도 아버지보다는 나은 글쟁이가 되어야지. 아버지가 어렸을 때는 너만큼 생각이 깊지 않았었단다. 그러나 그 누구보다도 글을 좋아하고 나름대로의 철학을 녹여 짧은 소설 속에 우려내기도 했지. 사실 소설의 가장 핵심은 주제야. 다만 소설의 완성을 기하기 위해 문체와 표현, 기교와 구성 등이 필요한 것이지. 여기 아버지가 네 나이 때 처음 쓴 소설이 있다. 출장 준비를 하면서 오랜만에 짐 정리를 하는데 뎅그러니 가방 가장 밑바닥에 놓여 있었단다. 처음 쓴 소설인만큼 기교나 그런 면에서는 다소 부족할지도 모르겠다. 그러나 어렸을 때 쓴 소설이나 지금 쓴 소설이나 말하고 싶었던 주제는 역시나 단 하나야. 너라면 이런 이야기 속에 숨어있는 교훈, 진흙 속에 숨어있는 진주를 캐낼 만큼 현명하고 숙련된 잠수부라고 믿는다. 그럼 잘 들어봐, 아들-

[미네르바의 부엉이는 울지 않는다. 부엉이는 울지 않는다. 네 눈망울을 가만히 들어다보고 있었거니, 너는 울지 않는다. 아니, 너는 울었다. 뿌옇게 둘러싸인 운무에 가려진 원시림 속에서 너는 누구보다 목청껏 울었던 것이다. 나는 너를 보지 못한다. 너를 보기에는 짙은 안개가 너무 농후했던 까닭일까, 안개가 망울망울 얼룩지더니 너의 청량한 울음소리 가운데 콕 박혀버렸다. 그래, 너는 두려웠던 것이다. 그러기에 나도 두려워했다. 너의 울음소리 가운데 사알짝 묻혀가던 가느다란 그것, 나는 두려움에 범벅이 되어 네 목소리 중 하나가 되어버렸다. 내 목소리를 대변하던 우렁찬 그것, 그것이 어느덧 작은 울음소리가 되어 숨죽여 울어버릴 때, 내 노란 눈망울에서는 곱게 개어놓은 소실의 물방울이 하나둘씩 떨어지기 시작했다. 어느덧 정적만이 가득한 그곳에는 더욱 시뿌옇게 변해버린 안개만이 가득 찼다. 안개는 어느덧 내 목을 서서히 죄어오기 시작한다. 너에게 그랬었던 것처럼. 부엉이는 울지 않는다]

1] 깊은 원시림, 그곳은 환상 속에서만 볼 수 있는 여덟 빛깔 무지개가 뜨는 곳이다. 빨강, 주황, 노랑, 초록, 파랑, 보라, 남색, 부엉이 울음소리 색깔. 다른 곳과 마찬가지로 빨강부터 남색까지는 변하지 않는 색깔이지만 부엉이 울음소리 색깔은 매일매일 달라진다. 부엉이가 기분이 좋을 때는 황갈색으로 아롱지다가 기분이 좋지 않을 때는 회색, 그것도 짙은 회색이 된다. 마치 죽어버린 도시처럼. 아무 소리도 없는 곳처럼.

원시림은 마치 계획된 도시처럼 방사형으로 이루어져 있다. 직교형의 가로와 방사선의 사선 가로가 교차되어있는. 마치 녹색의 워싱턴을 보는 듯하다. 방사상의 기점이 되는 중심부에는 팔방으로 통할 수 있지만 도처에 다차로가 형성되어 있어 소통이 어려운 도시. 워싱턴. 마찬가지로 이 원시림, 유토넷은 중심부에 커다란 눈이 사방을 지켜보고 있다. 매우 커다랗고 노란 홍채 위에 콕 박혀있는 검은 동공. 그 동공은 하루 종일 쉬지 않고 숲의 곳곳을 감시한다. 그 눈에서 보이지 않는 곳은 없다. 숲의 모든 생명들은 자신의 자유의지로 생각하고 활동하지만 그가 감시당하고 있다는 사실에는 변함이 없다. 숲에는 부엉이뿐만 아니라 다른 생명들도 많이 살고 있다. 너구리, 두더지, 도마뱀, 늑대, 잠자리, 왜가리 등 우리가 눈으로 볼 수 있는 생명들부터 박테리아, 곰팡이, 버섯, 야생화처럼 유심히 지켜보지 않으면 자칫 못 볼 가능성이 있는 생명들까지 바야흐로 이곳이 생명의 근원이요 마지막인 것이다.

그러나 이 숲의 진정한 주인들은 부엉이, 특히 부엉이들 중에서도 미네르바의 부엉이이다. 유토넷의 아득한 전설 중 미네르바라는 지혜와 정의의 여신이 있었고, 항상 미네르바 어깨위에는 그녀의 진갈색 부엉이 한 마리가 모든 것을 지켜보았다고 한다. 그 부엉이는 미네르바 곁에서 수천 년을 보냈고, 그 길고 긴 시간 동안 그가 관조하고 사색한 모든 것들이 충분하다고 생각된 순간, 미네르바는 그를 세상으로 날려 보냈다고 한다. 그는 언제나 정의와 약자의 편에 서서 미네르바의 역할을 대신했고, 순간순간을 지혜와 슬기로 극복해 숲에 사는 모든 이의 존경을 받았다. 그의 후손들은 대에 걸쳐 한 마리 미네르바의 부엉이와 나머지 부엉이로 나누어져 있었고, 지금 유토넷에는 그 미네르바의 부엉이, 저스티가 열심히 그 무엇인가와 사투를 벌이고 있었다.

-눈의 움직임이 더욱 빨라지고 있습니다-

-알고 있네. 그러나 우리는 잘못한 것이 없어. 감시당한다고 해도 우리를 어떻게 하지는 못할 걸세-

눈은 언제나 움직였지만 근래 들어 더욱 빠르게 움직이고 있었다. 노란 홍채 위에 이리저리 굴러다니는 동공은 심연처럼 모든 것을 빨아들일 듯이 시커멨고 간간히 서있는 붉은 실핏줄은 무엇인가를 연상해 보는 이를 징그럽게 했다. 눈은 태초부터 그곳에 자리 잡고 있었다. 눈의 정확한 역할은 그 누구도 알지 못했다. 숲의 모든 이는 태어날 때부터 수행해야 할 역할이 각각 부과되기 때문에 그것은 더욱이 이상한 일이었다. 눈을 연구한 학자는 어디론가 사라지기 마련이고 그 자료는 알 수 없는 무엇인가에 의해 불태워진다는 미신 같은 전설만이 입에서 입으로 내려왔을 뿐이다. 저스티는 눈을 연구하고 있었다.

-그래, 눈에 관한 자료는 단 한권도 남아있지 않던가-

-그렇습니다. 숲 북서쪽에 위치한 고대서 도서관을 샅샅이 찾아보았지만 눈에 관한 책은 찾지 못했습니다. 그러나 고대서와 역사서 사이사이에 언급되는 구절들은 찾을 수 있었습니다. 곳곳에 불탄 흔적이 남아 있었지만 그런대로 의미를 손상시키지는 못했더군요-

-그렇다면 그 구절이 의미하는 바는 무엇인가-

저스티는 마른 침을 애써 삼키며 전율하는 몸의 긴장을 풀기 위해 애썼다. 지금까지의 노력이 헛되지 않다는 사실을 보여주는 것만으로도 모두에게 힘이 될 것이었다.

-눈은 태곳적부터 존재한 것 같습니다. 눈은 우리 모두의 일거수일투족을 감시하고 있으며 특히 우리의 아고라에 많은 관심을 가지고 있다고 합니다-

-아고라.......-

아고라는 유토넷의 주민들이 말 그대로 모이는 광장이었다. 원시림은 몹시도 광활하고 거대했기 때문에 주민들은 서로 가까이 살지 않는 이상은 만나서 이야기하기가 힘든 편이었다. 그래서 주민들이 만나는 아고라에서는 모두의 자유로운 소통이 가능했으며 누구든지 타당한 이유만 있다면 비판이 가능했고, 그에 따른 반박도 가능한 장소였다. 한마디로 유토넷의 네트워크인 셈이었다. 그러나 어느 시점부터였을까. 자신의 의견을 뚜렷하게 내뱉고 비판하는 이들이 점점 줄어가면서 아고라는 그저 명맥만 유지하는 유명무실한 존재가 되어버렸다.

-물론 지금은 아니지만 아주 오래 전, 미네르바의 부엉이가 처음 숲으로 날아 내려온 그때에는 아고라에서는 자유로운 소통이 가능했다고 합니다. 누군가가 잘못된 것이 있으면 자유롭게 비판하고, 그것을 시정할 강제력까지 가졌다고 합니다-

-지금은 그 누구도 하지 않는 것들을 말인가-

-네, 그렇습니다. 그런데 말입니다. 유토넷 자체의 모순점을 개혁하자는 이들이 하나같이 흔적을 찾을 수 없이 사라졌다고 합니다. 간혹 돌아온 이들도 하나같이 말을 하지 못하거나 정신이 이상해졌다고 합니다. 더욱이 그런 일이 있은 후에는 큰 홍수가 난다거나 폭풍이 부는 등 천재지변이 꼭 있었습니다-

  

-역시 무엇인가 수상해. 편대를 준비하게. 눈에 가까이 가보아야겠어-

그날 밤, 진갈색 부엉이를 선두로 여섯 마리의 부엉이가 브이자 편대로 숲의 중앙을 향해 날아갔다. 밤은 커다란 달 두 개가 환하게 비추고 있어 어둡지는 않았다. 노란 달빛과 붉은 달빛이 합쳐지는 지점을 지날 때, 부엉이들의 깃털은 하나같이 기묘한 색깔로 번뜩였다. 마치 노란 홍채위의 빨간 실핏줄. 저스티는 전날 본 무지개의 부엉이 울음소리 색깔을 떠올리고서는 몸을 부르르 떨었다. 노란 홍채위의 빨간 실핏줄 색깔.

2] 그와 만날 약속을 정한 것은 보름 정도 전이었다. 그 날은 부엉이 울음소리가 몹시 청명하게 들렸다. 저스티는 아무에게도 행방을 말하지 않은 채 말없이 길을 떠났다.

-그가 유일한 희망이다-

 저스티는 그의 존재를 어릴 적부터 알고 있었다. 그는 ‘탑 위의 현자’라고 불렸다. 원래 마을에 하나씩 있는 현자들은, 특히나 그가 흰 수염과 몽롱한 노란 눈망울로 신비주의를 표방한다면 원래의 이름은 잊히기 마련이다. 탑 위의 현자는 백년을 넘게 산 역사의 산 증인이었다. 물론 아고라의 실제 모습을 기억했던 유일한 자이기도 하다. 그러나 이렇게 저스티가 먼 길을 날아가는 이유는 다른 곳에 있다. 바로 그는 몰래 눈을 연구하는 유일한 부엉이인 것이다.

 탑 위의 현자는 그가 사는 커다란 소나무 둔치 아래서 그를 맞았다. 소나무 또한 탑 위의 현자처럼 갈라지고 뭉툭했다. 그러나 그 세월을 자연의 적자생존 속에서 살아남았다는 것은 결코 무시할 수 없는 생존 능력이 그 우둔함 속에 감춰져 있다는 뜻이리라.

-그동안 무사히 지냈습니까, 탑 위의 현자여-

-.......-

 

-현자여, 내게 눈에 대해 가르쳐 주십시오-

현자는 한동안 말이 없었다. 그러더니 소나무의 가장 높은 가지에 올라가 고개를 길게 뻗고 주위를 살폈다. 주위에 아무것도 없는 것을 확인한 그는 바쁜 몸짓으로 그를 서둘러 가지 속의 큰 구멍으로 이끌었다.

-대체 왜 그러십니까-

 

-소리를 낮추게-

저스티는 가뜩이나 움츠려 있는 몸을 더욱 수그려 작은 목소리로 물었다.

-눈과 관련이 있군요-

-저스티, 잘 듣게. 눈은 이 순간에도 우리를 감시하고 있다. 어떠한 방법으로든지 지금 우리가 하는 대화도 결코 안전하지 않아-

-네? 그렇다면 눈의 역할은 도대체 무엇이기에 우리들을 감시하나요-

-아고라에 대해서 들은 바가 있을 거야. 아고라는 결코 유토넷의 생명들에 의해 구성된 것이 아니네. 그저 눈이 조금 더 감시를 편하게 할 수 있게 하는 도구였을 뿐이지-

-그렇다면 눈들은 왜 아고라를 없앴나요-

-눈들이 아고라를 만들었다고 해도, 그들에게 직접적인 피해를 주는 이상 아고라는 그들에게 필요가 없는 존재가 되고 말았네. 생명들, 특히 부엉이들이 눈에 대한 비판을 많이 하고는 했지. 한 용감한 부엉이는 눈을 없애야 한다고 주장했어. 그들은 눈들이 감시자의 역할을 한다는 것을 감지해 낸 것이야. 결코 그 때까지는 눈이 별다른 피해를 주지 않았지. 어쩌면 그렇게 유토넷과 눈은 공존이 가능했을지도 몰라. 눈은 계속 감시를 하고, 생명들은 감시를 당하는 사실을 알고서도 나름대로의 자유로운 생활을 즐기고 말이야. 그러나 우리 부엉이들은 그런 자유를 용납할 수 없었네. 보다 고상한 가치를 가지고 있었어. 감시자로부터 제한된 자유를 받느니 차라리 당신들의 힘으로 맞서 싸워 진정한 자유를 쟁취하겠다는 생각. 하지만 그 때부터 눈은 무자비한 공격을 가하기 시작했어. 눈에 대해 발언하는 자는 모두 어디론가 끌려가서 돌아오지를 않았지. 그러자 몇몇 현자들은 눈에 대한 사실을 그들이 사라지기 전에 책으로 남기고, 입에서 입으로 전해주기도 했어. 내가 그들의 후손이다. 나 또한 믿을만한 부엉이에게 눈의 진실을 알려줄 권리와 의무가 있네. 이것이 진실이야-

-그렇다면....... 저 또한 결코 무시할 수 없는 짐을 이렇게 짊어지게 되는군요. 하하-

-그렇지. 그러나 부당하다고는 생각하지 말게! 그대의 피가 민중의 자유가 되고 그대의 살이 민중의 권리가 될지니. 물론 그대가 여기까지 왔다는 것은 결국 그대의 운명은 이 바퀴에 묶여있다는 것을 말하네. 그 말은 곧 그대가 바퀴를 늪에 빠뜨릴 수도 있고, 하늘을 날게 할 수도 있다는 것이야. 자, 부엉이 중에서도 가장 현명한 부엉이여, 날아라-

저스티는 자신에게 쏟아지는 따스한 햇살조차 버거워지는 것을 느꼈다. 사실을 듣고 보니 눈이란 절대로 만만한 상대가 아니었다. 주도면밀하고, 계획적인 범죄가 우리의 등 뒤에서 아무도 모르게 일어나고 있었다. 이제부터 그 범죄의 싹을 자르는 것은 오로지 저스티와 부엉이들의 임무일 것이다. 그 생각을 하느라 저스티는 자신 앞에 나타난 커다란 그물을 알아보지 못했다. 그물은 사정없이 저스티를 휘감아 버렸다.

3] 저스티는 어릴 때부터 스스로를 자랑스러워하는 법을 배웠다. 그것은 미네르바의 부엉이들에게 전해져 내려오는 오랜 유산이기도 했다. 부엉이 정체성이랄까. 사실 미네르바의 부엉이는 유토넷의 수호자이기도 했다. 막강한 영향력을 지녔지만 그것을 결코 자신의 능력으로 생각하지 않는 것. 권력, 권력이라고 하기도 애매한 그 힘은 고대부터 유토넷을 하나로 묶어주는 결속력이자 유대감의 근원이 되었다. 아마도 그것은 소속감, 연대의식, 참여라고도 할 수 있지 않을까. 유토넷의 힘은 유토넷을 이루는 구성원들로부터 나온다. 그렇기에 구성원들의 단합과 결속을 이끌어내는 것이 미네르바의 부엉이의 가장 큰 책무이자 과제이기도 했다.

-어머니, 만약 누군가가 유토넷의 권리와 자유를 침해하면 어떻게 해야 하나요-

저스티의 어머니는 다정다감하면서도 결단력을 가진, 두 얼굴을 가진 야누스와 같았다. 그러기에 숲 속의 생명들은 그런 그녀를 더욱 무서워하면서도 믿을 수 있었다.

-과감하게 맞서 싸워야지. 그들의 군대를 몰고 오면 너도 군대를 조직해 맞서 싸우고, 그들이 진실을 왜곡하면 너는 아고라에 나가서 진실을 외쳐야지. 저스티, 때로는 가장 높은 곳에 있는 것들이 한순간에 가장 낮은 것들로 추락할 수도 있고, 가장 고귀한 것들이 가장 외로울 수도 있는 법이야. 수호자라면 당연히 이런 것들을 염두에 두어야한다. 그러나 가장 중요한 것은 옳은 것을 추구하는 것이야. 이 세계를 만든 신은 참으로 공평해서, 춥디추운 겨울 끝에 가장 달콤한 열매가 맺히는 거란다. 네가 언제나 유토넷의 수호자, 미네르바의 부엉이로서의 책임감을 잃지 않고 옳은 것만을 추구한다면 언젠가는 세상은 너에게 환호할거야. 진실이 지배하는 밝은 세상이 오는 것이지-

그 때 저스티는 어머니가 하는 말씀의 의미를 잘 이해하지는 못했다. 그저 무척이나 중요한 말씀이고, 앞으로 내가 해야 할 일이구나라는 막연한 이해였을 뿐. 그러나 그 가르침이 항상 그의 방향을 알려주는 나침반이었다는 것을 저스티는 후에야 깨닫게 되었다.

4] 정신을 차려보니 노란 막 안이었다. 막은 얇고 투명했으며 마치 노란 셀로판지를 물컹한 유리에 붙여 논 마냥 유토넷과는 사뭇 다른 이질감이 느껴지는 물질로 이루어져 있었다. 그리고 노란 셀로판지 가운데 박혀 있는 검은색 동공.

-역시나 그렇군-

전설로 전해지는 것 중 하나가 바로 거대한 그물이었다. 거대한 그물은 마찬가지로 눈과 관련된 것으로 여기지고 있었다. 그러나 눈과의 다른 점이라면 눈은 그저 감시하기만 하지만 직접 힘을 행사하는 것은 그물이랄까. 원래 알고 있던 전설에 현자의 말을 듣고 나니 모든 것이 잘 맞춰진 퍼즐 조각들처럼 들어맞았다. 아마도 그물은 눈의 지시에 따라 움직이는 것이리라. 없어진 부엉이들은 그물의 짓이 당연하고 말이다. 막 한구석에 무언가 뒤척이는 소리가 났다. 저스티는 황급히 옆을 돌아보았다.

-!?-

 저스티는 놀라고 말았다. 탑 위의 현자 역시 그물을 피하지 못한 것일까.

-어떻게 된 일입니까? 탑 위의 현자께서도 그물에 잡히신 것입니까-

-자네, 요즘 눈의 움직임이 더욱 활발해졌다는 소식을 들었을 걸세. 옛날에는 부엉이들의 세력이 막강해 눈들도 대놓고 부엉이들을 잡아가지는 못했지만 지금은 달라. 그들의 무법천지가 온 것이지. 더구나 우리가 유일한 진실을 알고 있는 부엉이 아닌가. 아마 그들은 우리가 만나는 것을 일찍이 예견하고 움직임을 기다렸을 게야-

-그렇다면 어떻게 해야 하나요? 이대로 눈에게 당하기에는 억울합니다. 저뿐만이 아니라 부엉이들 전체가 말입니다. 부엉이는 유토넷의 대변자였습니다. 소통의 창이자 지켜주는 방어벽, 필요할 때는 공격까지 하는 전사들이었습니다. 이렇게 무너져서는 아무것도 지킬 수 없게 됩니다. 당장 잃는 것은 눈에 대한 진실뿐이겠지만, 결국은 부엉이의 뿌리, 부엉이의 근본, 부엉이의 정체성까지도 모두 잃어버리는 것이 될 겁니다-

 탑 속의 현자는 무척이나 흐뭇한 표정으로 저스티를 바라보았다.

-역시나 미네르바의 부엉이는 마음가짐부터 다르군. 자네 어머니를 꼭 빼닮았어-

 저스티는 탑 속의 현자의 깊은 주름살을 바라보며 가르침을 준 어머니를 떠올렸다.

-어머니께서는 항상 도전을 하시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이렇게 물러설 수는 없습니다. 정의를 지키기 위해, 왜곡된 진실을 밝히기 위해 우리는 하나로 뭉쳐야 합니다-

그 때, 요란한 소리가 막 밖으로부터 들려왔다. 분명 부엉이들의 아우성이었지만 중간 중간 섞여있는 소리는 다양했다. 흡사 성난 들소 무리가 울부짖는 소리랄까. 잘 정돈되어있는 듣기 좋은 소리는 결코 아니었지만, 듣는 이에게 무언가 희망을 주고 기운을 북돋아주는 소리였다.

-이게 무슨 소리일까요-

-짐작하기가 어렵군 그래. 잠깐만 잘 들어봐! 저스티, 자네 이름을 부르고 있는 것 아닌가-

-그럴 리가요, 저희가 이곳에 잡혀있다는 것을 그들이 알 리가 없습니다. 더구나 눈을 상대로 이렇게 용감하게 덤빌 그들도 아니고요. 그런데 막이 점점 갈라지고 있습니다. 무슨 일이죠-

말 그대로 막이 갈라지고 있었다. 노란 홍채가 두두둑 하는 소리와 함께 반으로 갈라졌다. 그 위에 둥둥 떠 있던 빨간 실핏줄도 잘게 쪼개졌다. 점차 보이는 밖에는 부엉이들뿐만 아니라 수많은 유토넷의 주인들이 환호하고 있었다.

-저스티! 저스티-

-숲 속의 현자여, 진실을 밝힐 때가 왔습니다-

-옳소-

숲의 생명들이 이렇게 한 자리에 모인 것이 얼마만이었던가. 저스티는 자신도 모르게 두 날개를 부르르 떨었다. 전혀 어울리지 않는 생명들이 어깨동무를 하고, 어제까지 적자생존의 원칙으로 잡고 잡히던 그들이 오늘은 하나가 되었다. 말 그대로 파도였다. 절대로 멈추지 않는, 강한 생명력을 지닌 파도. 그들이 눈앞에서 목숨을 걸고 벌인 시위는 하얀 포말을 일으키며 햇살 속에 스며들어갔다. 그리고 무지개가 떴다. 울창한 녹음 속에 걸친 무지개, 그 때 무지개의 마지막 색깔은 저스티의 날갯죽지 색깔, 바로 황갈색이었다.

5] 모두가 아고라로 모였다. 훗날 그날은 ‘유토넷의 봄’, 혹은 ‘아고라의 부활절’이라는 이름으로 기념되었기도 하다. 저스티는 무언가 자신을 아고라로 이끄는 힘을 느꼈다. 그의 핏줄에 잠재되어 있는 그것이 마치 자석처럼 아고라로 인도했다.

-여러분! 여러분들이 알아야 할 중요한 사실이 있습니다-

아직까지 일부는 민중의 열기에 휩싸여 흥분을 가라앉히지 못하고 있었다. 그러나 대다수는 저스티의 말에 경청할 준비를 하며 반짝이는 눈으로 그를 바라보았다. 탑 위의 현자는 그의 바로 옆 나뭇가지에 앉아 마찬가지로 그를 뚫어지라 주시했다.

-여러분, 저와 탑 속의 현자를 가둔 것은 바로 눈입니다! 눈은 지금도 우리의 모든 것을 내려다보고 있을 겁니다. 눈은 언제나 여러분을 감시하는 역할을 맡고 있습니다. 또한 눈에 대해 연구한 학자들과 주변 사람들은 언제나 처절한 보복을 당했죠. 바로 그물에 말입니다! 그렇습니다. 눈은 그저 감시자의 역할 뿐만이 아닌 강제적인 힘까지 불법으로 동원할 능력이 있습니다. 그래서 우리는 여태까지 눈에 대해서 알지 못했죠. 그것은 마치 오래된 비밀처럼, 입에서 입으로 몰래 전해져 내려왔습니다. 하지만 여러분! 이제는 그럴 때가 아닙니다! 일어서야 할 시기가 온 것입니다. 눈과 그물이 제아무리 우리를 감시하고 탄압한다고 해도 우리는 혼자가 아닙니다! 우리 유토넷의 주인들은 바로 민중들인 것입니다! 민중들은 진실을 알고 그것이 잘못된 것이면 마땅히 반발하고 시정할 권리와 의무가 있는 것입니다.

저스티는 마른 입술을 침으로 적시며 다시 민중들을 향해 말을 이었다.

-여러분, 우리의 적은 눈입니다. 그것도 진실을 어둠 속에 가두려는 잘못된 눈입니다. 진실을 가두려는 행위는 단순히 거기서 멈추지 않습니다. 바로 우리의 진정한 자유를 억압받는 것입니다. 여러분, 여러분들은 진실을 알리기 위해 눈을 연구한 학자들을 기억해야 합니다. 그들이 홀로 고독히 투쟁해서, 그러나 모두에게 알리는 것에 실패한 사실을 밝히기 위해서는 바로 우리가 나서야 합니다. 우리 앞에 남겨진 그 베일에 싸인 진실을 밝힘으로써 우리는 명예롭게 죽어간 그들을 애도하며, 그들의 죽음이 헛되지 않았다는 것을 다짐해야 합니다. 우리는 민중들, 우리 자신을 자유의 여신 앞에 봉헌하면서, 민중의, 민중에 의한, 민중을 위한 진실을 밝혀야 합니다! 바로 유토넷의 진정한 자유를 되찾을 것입니다-

모두가 그 자리에서 일어났다. 어떤 이는 심지어 날개 끝으로 눈물을 훔치기까지 하였다. 그러나 모두의 입가에는 희망찬 미소가 담겨져 있었다. 아마 그들이 이루어낸 민주주의의 자각 때문이었을까. 더 이상 그들에게는 그늘진 절망의 그림자가 보이지 않았다. 오로지 그들 힘으로 이루어낸 진정한 자유의 축복만이 휘날렸을 뿐.

-여러분, 눈을 부숴버립시다! 더 이상 눈은 존재할 가치가 없습니다! 우리의 자유를 탄압하는 눈은 모두의 적입니다-

누군가의 이 한마디로 모두가 다시 눈을 향해 행진해 나갔다. 저스티와 탑 위의 현자는 선두에 서서 가벼운 날갯짓으로 모두를 인도했다. 쿵,쿵,쿵 다리가 달린 생명들의 발자국 소리와 날개가 달린 생명들의 날갯짓 소리가 공명되어 땅과 하늘을 울렸다. 쿵,쿵,쿵 쿵,쿵,쿵. 어느새 그들은 눈앞에 다가와 있었다. 나름대로의 자신감과 열정을 갖고 눈에게 다가간 그들이었지만 막상 눈을 보고 나니 모두가 이상할 정도로 조용해졌다. 평소에 잘만 흐르던 시냇물이 졸졸 소리를 내지 않고, 하늘 위의 하얀 뭉게구름도 마치 놀이라도 하는 듯 그 자리에 정확히 멈춰있었다. 그러나 그들은 하늘 저편, 그들의 응원군처럼 반짝이는 여덟 빛깔 무지개를 보고 다시 마음을 가다듬었다. 아직도 무지개의 마지막 색깔은 황갈색이었다. 저스티는 큰 소리로 외쳤다.

-눈, 너는 이제 우리들을 막을 수 없다! 진실을 왜곡하는 자의 힘은 민중들의 무지로부터 나오는 것이지. 그러나 모두가 진실을 알고 있는 이상, 너는 더 이상 존재할 가치가 존재하지도 않으며 존재할 수도 없게 된 것이다-

눈은 아무런 미동도 하지 않았다. 마치 조각상처럼, 한 치의 움직임 없이.

-그래, 사실 너는 우리들에 의해서 겨우 존재할 수 있었던 거야. 정보, 곧 사실이라는 것은 보이지는 않지만 나름대로의 힘을 가지고 있다. 너는 왜곡된 사실, 장막 뒤에 가려진 그것으로부터 힘을 받아 존재하고 있겠지. 너는 유토넷을 감시함으로서 끝없는 생을 지속할 수 있었을 거야. 그들을 감시하고 진실을 묻어버리는 것이 또 하나의 힘이었을 테니까. 그러나 너는 민중들의 힘을 너무 얕보았다. 민중들은 그들 하나하나가 커다한 힘을 갖고 있지는 않지만 서로에게 미치는 영향이 엄청나지. 그렇기 때문에 그들은 뭉치면 뭉칠수록 강해지는 거야. 자, 네가 선택해라. 지금 우리는 너를 당장이라도 없앨 수 있다. 그러나 우리는 너에게 마지막 기회를 주겠어. 스스로 네가 사라진다면, 우리뿐만 아니라 네 자신에게도 이익일 것이다. 결정해라-

눈은 점점 희미해지고 있었다. 그것을 알아차린 것은 저스티 뿐이 아니었다. 모두가 수군거리면서 눈을 가르키고 있었다. 점점 웅성거리는 소리가 커져만 갔다. 커다란 눈, 노란 홍채와 시커먼 동공, 그 사이의 붉은 실핏줄. 모두가 점차 희미해지면서 공기 중으로 날아갔다. 마치 연기처럼, 그것은 생겨났을 때와 마찬가지로 흔적조차 남기지 않고 순식간에 사라져갔다.

그날부터 유토넷 여덟 빛깔 무지개의 마지막 색깔, 부엉이 울음소리 색깔은 언제나 황갈색이었다.

6] 저스티는 입 안으로 웅얼거렸다.

-눈초리가 살짝 올라간, 심술궂은 미소는 나만 본 것이었을까. 그의 최후가 편안한 휴식이라도 된 마냥 고마움과, 그러나 언젠가는 돌아온다는 비장함이 함께 섞인 그 표정을 말이야-

7] 그날, 즉 유토넷의 봄이자 아고라의 부활절 이후로 저스티는 ‘민중의 지팡이’라는 칭호를 부여받았다.

8] 저스티는 별이 총총히 떠 있는 밤, 그의 안식처인 포플러나무 둥지에 앉아 그를 쏙 빼닮은 새끼 부엉이에게 속삭였다.

-아버지가 젊었을 때는 말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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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토넷(Utonet)

: Utopia + Internet

*저스티(Justi)

: 정의 - Justice에서부터 비롯

*미네르바(Minerva)

: 로마신화에 등장하는 지혜의 여신이자 전쟁평화의 여신이다. 그러나 2009년 한국 사회에서 미네르바는 표현의 자유의 상징으로 회자되었다. 2008년, 한 인터넷 논객이 포털 사이트 다음의 아고라 게시판에 미네르바라는 필명으로 정부 경제 정책을 비판하는 글을 쓰면서 네티즌들의 관심을 끌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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