닭다리 납치사건
- 작성자 윤별
- 작성일 2015-05-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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치킨아, 치킨아, 치킨아, 치킨아, 어화둥둥 내 사랑 치킨아. 집으로 돌아가는 윤의 발걸음이 유난히 가볍다. 출근길 지하철을 놓쳐 삼십 분 처량하게 쪼그려 앉아 있던 것으로부터 시작해서, 회사에서는 상사한테 무진장 쪼이고, 거래처한테 잔뜩 깨졌대도 윤의 얼굴은 다른 날보다 밝다. 이리 기분 좋은 윤의 얼굴도 오랜만이다. 한 달 만이려나? 그 이유가 뭔가 하니, 방금 울린 진동이 이 모든 것을 상쇄시키고 윤의 얼굴에 함박웃음을 던져 넣은 것이다.
그래, 오늘은 아무리 힘들었어도 이거 하나면 돼.
윤은 혼자 중얼거리고서 흐뭇한 미소를 입가에 걸었다. 주머니 속에서 기분 좋게 달랑거리는 휴대폰. 아직 가시지 않은 액정이 반짝거린다. 도착한 지 일 분도 안 된 간단명료한 문자 메시지 한 통.
[오늘 치킨계 모임! 네 차례임 수고]
짧은 문자에 윤은 얼마나 기뻤던지 휴대폰을 들고 이얏호! 소리를 질렀더랬다. 그 어느 때보다도 재빠른 손놀림으로 답장을 하던 윤의 손 또한 웃고 있었으리라.
치킨. 일명 치느님을 영접한다고도 부르는 신성한 날. 치킨계는 한 달에 한 번, 치킨 두 마리를 시켜 가난한 학생 넷이서 나누어 먹는 일종의 모임이다. 넷이서 두 마리라면 모자라진 않을까, 하는 걱정은 맥주에 몇 가지 곁들임 안주와 함께라면 저 하늘 위로 날려 보내도 좋다. 그럼 차라리 혼자 시켜먹지 왜 귀찮게 계까지 만들고 운영하며 치킨을 먹기 위해서 고군분투하냐? 모르는 소리. 치킨은 여러 명이 삼삼오오 둘러앉아 공공의 적을 같이 물어뜯으며 뽀얀 닭봉을 하나씩 집어들고 동시에 뜯는 것이 진정한 묘미란다. 게다가 이제야 대학을 졸업하고 겨우겨우 인턴으로 들어갔는데 치킨을 혼자 먹을 돈이 어디 있겠냐는 말이냐. 가난한 인턴에게는 사치다. 게다가 치킨은, 치킨이라 함은 이 모든 귀찮음을 감수하고서라도 먹을 만한 가치가 있는 음식이 아닌가.
오늘은 제가 계산을 하는 날이라는 것이 마음에 걸리기는 하다만 아무래도 상관없다. 치킨, 치킨, 치킨 그것도 닭다리의 영예가 돈을 낸 자에게 고스란히 돌아올지니. 윤은 연신 콧노래를 흥얼거리며 밤거리를 날아오른다.
“여어, 왔어? 일찍 왔네?”
대체 집 비밀번호는 어떻게 안 거야? 귀신도 아니고 원 참. 니가 먼저 들어와 있으라고 알려 줬잖냐. 아아, 그랬던가. 윤은 서류가 잔뜩 든 가방을 방바닥에 털썩 내려놓는다. 푸릇푸릇한 이십 대 네 명이 원룸 하나에 들어차 있으니 좁은 감이 없지는 않으나 치킨과 함께라면 아무래도 좋다. 윤이 들어오자마자 전화기를 덥석 붙들고 외워 버린 번호를 누르는 서현의 모습이 눈에 잡힌다. 가녀린 체구에 어울리지 않는 어마어마한 발성을 내지르는 것은 덤. 거의 비명 수준이다.
“여기 삼성동 천 팔십 오 다시 일번지 일층, 반반 무 많이 두 마리에 맥주 천오백 두 개 배달요!”
아웃사이더마냥 속사포처럼 랩을 쏟아내니 알아들었을까 하지만, 어찌 되었든 전화는 성공리에 마무리되었다. 환호하는 동창들, 윤도 예외는 아니다. 집주인이기에 탁자를 내펴면서도 입가에서 연신 싱글거리는 웃음이 떠나질 않는다. 기실 탁자는 한 시간도 안 되어 광란의 파티장으로 변모할 집을 생각하면 아무래도 필요없을 듯하였다. 윤이 탁자를 거둔다. 대신 묵직한 서류가방에서 꺼내든 서류더미들을 바닥에 차르륵 펼친다. 이제는 폐기될 서류들이니 아무래도 좋다. 와아아! 다시 한 번 환호성이 좁은 방 안에 울려든다.
서류더미 위에 옹기종기 모여 앉은 인턴들은 이 순간만큼은 ‘갑’이다. 그러나 그들이입을 여는 순간 본성은 감출 수 없으리니.
“아흐, 오늘 박 부장이 무슨 일을 그렇게 시키던지. 아니 사람인지 악만지 구별이 안 된다니깐?”
“말도 마, 인턴이라고 잡무만 시키잖아. 자료도 안 줘, 알려주지도 않아, 회의를 어떻게 하라는 거야. 그래놓고 실수하면 또 나만 신나게 까이지.”
맞아, 맞아 하면서 여기저기서 와르르 웃음이 터진다.
“야아, 너네는 그래도 남자잖아. 여자라고 커피 심부름이나 시키면서 은근히 슬쩍슬쩍 만지는 기분을 니들이 알아? 대리며 부장이며 진짜 성격 이상해.”
“아윽, 싫다. 그놈의 인터어어어어어어언!”
진저리를 치는 각자의 몸에는 숨길 수 없는 ‘을’의 이름표가 새겨져 있다. 아무리 웃으며 떠들고 발버둥을 쳐 보아도 그것의 굴레를 벗어날 수 없기에 처참한 실상이다. 허나 그것을 직시하기가 두려워 단지 모두가 피하고 있을 뿐이다. 괜히 말을 꺼냈다 시한폭탄이 언제 터질지 모르니 입조심은 필수다. 팽팽하지 않으나 팽팽한 분위기 속에서 윤이 깔깔거리다 말을 받았다.
“야야, 나 좀 찝찝해서 씻고 나올게. 오늘 창고에서 일 뛰었더니 땀 좀 봐라.”
고등학교 3년, 대학교 4년 내내 친구였던 그들에게는 그리 놀랄 일도 아니라. 한 집에서 같이 밤을 몇 번이나 지새웠는데 뭘 더 감추겠는가. 별일 아니라는 듯 가볍게 고개를 끄덕인 아이들 너머로 옷을 주섬주섬 챙기며 윤이 소리친다.
“너네 나 없다고 내 닭다리 몰래 먹기만 해 봐라?”
어깨를 으쓱이는 서현과 눈을 맞추며 유나가 생글거린다. 어린애처럼 두 손을 입가에 가져다 대더니, 어린아이보다 몇 갑절이나 해맑게,
“싫은데~ 내가 왜~ 얼마 줄 건데~”
그래, 애다. 그냥 아이다. 정신연령이 도대체 몇 살인지 궁금할 정도다. 장난스럽게 유나를 째려본 정수의 웃는 입이 요리조리 움직인다. 유나는 진심이었는지 픽 소리를 내며 입술 한쪽을 주욱 내민다.
“얼른 씻고 나와. 치킨 곧 올 것 같은데.”
“어어, 돈 거기에 있으니까 그걸로 계산해.”
욕실 문이 닫힘과 동시에 기가 막힌 타이밍인지 초인종이 띵동, 하고 울린다. 윤이 씻기를 기다린다면야 치킨이 다 식어 버릴 것임이 분명하다. 하여 윤을 부르려 정수가 욕실 문을 쾅쾅 두드렸으나 아뿔싸, 이미 물줄기 소리가 문 너머로 선명하다. 어쩌겠어, 기다려야지. 그러나 이 다짐은 작심삼분. 딱 삼 분 되는 시점에 서현의 손이 먼저 치킨을 향한다. 김이 모락모락 나는 따끈한 치킨의 치명적인 유혹을 뿌리치기에는 서현은 너무 물렀다. 포장을 벗기니 나머지는 일사천리란다. 무엇이든 처음이 어려운 법이요 시작이 반이라 하지 않던가. 윤이 젖은 머리를 털며 욕실에서 나왔을 때는 이미 셋 다 양 손에 치킨 한 조각씩을 들고 맛나게 뜯고 있더라.
“야야, 내 닭다리!!”
괴성을 지르며 달려드는 윤을 서현이 단 한 손으로 저지한다. 가능한 걸까? 아까의 무지막지한 발성을 본다면 불가능한 일도 아닐 터였다. 새침한 표정과 도무지 매치가 되지 않지만.
“안 먹었으니까 걱정 붙들어 매셔.”
윤은 털썩 앉아 닭다리를 골라내기 시작한다. 후라이드에서 두 개, 양념에서 두 개……가 아닌 하나. 당연스럽게도 네 개여야 할 치킨의 다리는 세 개 뿐이다. 이런, 내 닭다리 어디 갔어. 내 닭다리이이이이이. 윤이 발광한다. 내 닭다리, 를 연방 외치면서 양념치킨을 연신 뒤적거린다. 달라진 눈빛이 매섭다. 마치 야수의 눈빛과 흡사하다. 닭다리 아니면 살 이유가 없어, 라는 듯한 저 얼굴 표정이 모든 것을 설명하고 있지 않은가. 성난 야수의 입에 닭다리 하나를 쑤셔 넣은 장본인은 역시 서현이다. 윤을 다룰 수 있는 조종간을 잡고 있는 것일지, 아니면 어디 매뉴얼이라도 있는 것일지. 늑대의 광기에서 온순한 개마냥 맥없이 사그러드는 불꽃에 동창들은 하나같이 입을 떡 벌린다.
“야, 그렇게 달려들기만 한다고 해서 없던 닭다리가 생겨? 엉?”
서현의 목소리가 앙칼지다.
“이씨잉, 그래도……, 내 닭다리 없어졌단 말야.”
자고로 남자는 태어나서 세 번 우는 법이랬다. 태어났을 때, 부모님께서 돌아가셨을 때, 그리고 치킨의 닭다리를 잃었을 때. 윤의 눈에 눈물이 그득 차올라 글썽거린다. 울먹이는 모습이 새끼강아지마냥 처량하기 그지없다.
“그래그래, 뚜욱. 같이 찾아보자.”
이럴 때면 서현이 엄마 같다는 의견에는 모두들 동의할 것이다. 윤이 고개를 끄덕인다. 허나 칼처럼 서늘한 눈빛은 언제든, 또 누구라도 칠 수 있다는 당당한 야수의 눈빛이다. 유나가 움찔한다. 작은 움직임조차 놓치지 않고 유나를 뚫어지게 쳐다보는 윤이다. 유나는 주변을 휘휘 둘러보다간, 윤의 눈빛이 자신을 향한 것이라는 것을 알아채고야 날개를 꼭 쥔 손을 양옆으로 내젓는다.
“왜 그렇게 봐, 나 아냐! 난 이거 하나 먹었다구!”
그래, 유나는 본디 날개 킬러로 유명한 자였다. 일전 닭다리보다 날개가 더 좋다고 하였다가 동창들에게 사람이 아니야, 라는 말을 들은 적도 있단다. 지금은 너무 익숙해져 깜박 잊고 있으나, 여튼 용의선상서 제외다.
의심의 눈총은 남은 정수에게로 날아든다. 왜 날 그런 눈으로 보냐는 정수의 말소리는 침묵에 먹혀버린다. 때로는 무언이 백 마디의 말보다 강할 때가 있는 법이다. 바닥에 깔린 무수한 서류더미들을 탕탕 치며 윤이 고함을 내지른다.
“내 닭다리 내놔!!!”
“아무도 안 먹었다니깐, 왜 사람을 그렇게 못 믿는 건데?”
아무리 알아듣게 이야기를 해도 다시 이성을 잃고 ‘닭다리’를 연발하는 윤의 모습이 섧기까지 하다. 얼마나 닭다리가 먹고 싶었으면. 하기사, 윤은 이 날만을 위해 사 개월을 기다려 왔다. 상상할 수 있을까? 닭다리 없는 네 달이라니! 서러웠던 것일지, 아니면 닭다리가 진정제 역할이라도 하는 것일지 윤은 닭다리 하나를 다시 우물거린다. 그 틈을 타서 서현이 재주 좋게 끼어든다.
“우린 정말 안 먹었어. 나는 항상 그랬듯 목 하나 먹었고 얘네 둘을 너 때문에 날개만 깨작대고 있었는데.”
그러나 단단히 뾰루퉁해진 윤은 도무지 풀릴 기색이 보이질 않는다. 퉁퉁거리는 윤을 보다 못해 유나가 한숨을 푹 내쉬더니 입을 연다.
“어차피 다음 달은 내가 사는 거잖아, 그치? 그 때 윤, 너 닭다리 줄 테니까 오늘은 치킨 그냥 먹자. 야아, 우리 한 달 만에 겨우 모였는데 기분 나빠서 헤어지는 건 좀 그렇잖아. 응?”
윤은 영 찝찝한 모양이다. 오죽했으면 아까 샤워를 하러 들어가지 말 걸 그랬어, 라 연방 중얼거릴까. 그러나 이건 인턴의 비애에 비하면 아무것도 아니다. 회사에서의 수모에 비하면야 새 발의 피. 이 정도쯤이야 거뜬히 견뎌낼 수 있을 것이다. 아까까지만 해도 세상을 다 잃을 것 같았던 망연자실한 얼굴빛은 단숨에 지워 버리고 방글방글 웃어 보이는 윤이라.
“그래, 그러자.”
그러나 윤이 성난 모습은 극히 보기 드물어 참으로 개구쟁이인 정수는 타들어가는 윤의 속을 벅벅 긁어놓는다. 아아, 진귀한 구경을 더 하고 싶은 마음일게다. 어쩜 이리 아픈 말들만 쏙쏙 빼내어 윤의 가슴에 직격으로 던져버리는지.
“야아, 그거 만약 내가 먹었기라도 했으면 큰일났겠네. 치킨이 그렇게 좋냐?”
깐죽깐죽거리는 정수의 행태는 누가 봐도 한 대 치고 싶을 정도였다. 추태 아닌 추태이자 얄밉다, 란 말이 절로 나오나니. 부글부글 끓어오르는 윤을 보고서는 정수는 되도 않는 거짓을 보태어 이죽거린다.
“아아, 닭다리시여. 윤에게 왜 이런 시련을 주시나이까? 치느님께서 말씀하셨나니 윤, 너는 닭다리의 은혜를 입을 자격이 없으니 그 영예는 정수라 불리는 아주아주 착한 에스 기업 인턴에게 돌아갔나니, 그리 알고……”
말을 마치기도 전에 윤이 득달같이 정수에게 달려든다. 멱살을 쥐어틀고는 곧 한 대 치기라도 하려는 분위기다. 험악한 분위기의 연속. 팽팽하기에 더욱 긴장감 어렸으나, 분위기를 깬 것은 다름아닌 유나다. 제가 야심차게 준비한 제안마저 먹히지 않자 초연하고 해맑게 싸움 따위는 관심 없다는 듯이 치킨에만 오롯 집중하였던 유나가 이상한 낌새를 눈치챈 것이다. 하나 이상한 점이라면 정수와 윤 사이의 이상기류가 아닌 치킨의 이상기류를 감지한 점이리라. 유나의 작은 입에서 뱉어낸 말의 파장은 엄청났다.
“야아, 있잖아, 목이 세 갠데?”
“무슨 소리야, 그게.”
목이 세 개. 세 마리를 시킨 것도 아니요 목 특제 세트를 - 물론 있을 리도 없겠지만 - 주문한 것도 아닌데 목이 세 개란다. 잠시 윤마저 멍해져 있을 무렵 유나의 해맑은 목소리가 다시 귓전에 맴돈다.
“날개도 두 개 먹었다고 하지 않았어? 여기 세 개 남았는데.”
확인사살이다. 기형 닭을 보낸 것도 아닐 것이요 더군다나 서비스로 넣어 줄 리는 더더욱 없는 것이다. 치킨집도 요즘 장사가 불황이라 조금이라도 더 마진을 남겨먹기 위하여 아득바득댄다는 것은 이미 공공연히 알려진 사실이다. 그게 무슨 소리야, 동일한 목소리가 다시 한 번 윤의 입에서 흘러나오더니 넋을 잃은 표정으로 서서히 치킨 앞으로 다가선다. 그제야 멱살이 풀린 정수가 캑, 하며 바닥에 벌렁 드러누워버린다. 그럴 리 없어. 윤이 치킨을 멍하니 응시한다. 목 둘, 날개 셋. 목 둘, 날개 셋. 목 두울, 날개 세엣. 아무리 눈을 비비고 고개를 흔들어도 유나가 가지런히 정리해 놓은 목은 두 개요, 날개는 셋이다. 잘못 본 것이 아니매 윤의 동공이 크게 흔들린다.
어찌 된 일이야, 이게? 아마 윤의 모습은 사탕을 빼앗긴 어린아이의 모습과 흡사했으리라.
그제야 윤의 눈에 문구 하나가 들어온다.
[저희 교톤치킨은 정량을 준수하고 있습니다.]
등잔 밑이 어둡다 하더니. 비웃듯 웃음짓고 있는 닭 캐릭터의 그림이 해맑기만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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