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용히, 조용히.
- 작성자 우리미
- 작성일 2015-06-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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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용히, 조용히.
침묵
그녀는 항상 입을 다물고 살았다. 벙어리도 아닌데 말을 하지 않는 그녀에게 난 얼마나 시끄러운 사람일지. 손을 잡고 가장 좋아하는 글귀가 뭐냐고 물었을때 그녀가 말없이 내손에 쓰던 침묵은 금이다. 그녀 입술에 발린 오렌지20호만큼의 날들. 이빨 빠진 몽키스패너처럼 우리는 흘러가고 있었다. 기울던 그녀와 내가 하지 못했던 말들.
적요
안개꽃의 꽃말을 물어오던 그녀에게 난 프리지아를 선물했다. 어지럽게, 더 어지럽게 별빛은 흐트러졌고, 검은 모자를 쓰던 노파의 죽음은 별 감흥을 주지 못했다. 그렇다. 우린 그만큼만 살아왔다고, 더 이상 사는 것은 무리라고. 콧잔등에 잔뜩 맺힌 파도 방울을 문지르며 그녀와 난 울었다. 소리 없이, 사랑 없이
아우성
그녀의 머리칼은 검은색 진눈깨비를 닮았다. 차갑던 그녀의 귓불을 매만지다 문득 죽어버릴까 생각했 다. 그녀도 나와 별반 다를게 없었던지 자신의 이빨을 톡톡 건드리더니 나에게 뛰어 내릴래 라며 권유했다. 졸음을 참을수가 없었다. 마지막으로 그녀에게 뭘 해볼까하고 물어봤지만 마지막까지 그녀는 침묵했다.
국화꽃
그렇게 그녀는 침묵으로 사라졌다. 입가에 잔뜩 맺히던 단어들을 꿀꺽 삼킨 뒤 난 그녀 납골당에 가 오렌지 색 국화꽃을 걸었다. 한번도 하지 못했던 그녀와의 입맞춤은 별빛을 맞는걸로 대신했다. 그녀는 스스로 사라지길 원했고 내가 떠드는 것을 싫어했다. 그러니 나에게 제발 조용히 해달라 말했고 난 거절했다. 이제 그녀가 없으니 난 조용히, 조용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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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생은 아름다워 나는 수 많은 시체를 밟으며 태어난 존재 엄마는 날 재앙으로 인정하였고 목덜미에선 곰팡이가 두둑 떨어지곤 했네 다들 여기여기 모여라 우리 재미있는 놀이 하나 하자 누가 더 비참하게 숨을 수 있는 지 내기하는 것 등을 돌린 아이들은 비누가 되고 목이 없는 노인들은 단추가 된다 나는 아직 무엇도 되고 싶지 않아 웃으면 안돼 침묵은 말을 하면 사라지는 것 살고 싶으면 가만히 있으렴 설령 누구도 너를 찾지 않을지라도 화약통이 알싸하게 번져간다 부서지자 우리 다같이 부서지자 웃는 아버지는 그렇게 지워지신다 한 마디도 없이 지워지신다 나를 기억하는 아버지가 지워진다 아버지를 기억하는 내가 지워진다 꽃은 많은 것들을 집어 삼켜야 아름다워 우리 다함께 아름다워지자 과하게 더 과하게
- 우리미
- 2015-11-09
알싸하게 소독약 냄새가 퍼진다 쉴새없이 들어오는 붉은 빛 앞 숫자는 쉼 없이 올라가고 있다 밀폐된 공간 안, 아버지는 어항 속 금붕어처럼 뻐끔거렸다 물먹은 솜마냥 무거워진 허파 삶의 무게는 매해 늘어간다는 말로 아버지는 올 한해를 또 버티셨다 높이 올라가기 위해 삼각형을 누르면 병마는 우박처럼 아버지머리위로 떨어졌다 하루가 무색하도록 야위어가는 얼굴 뱉지 못한 말을 중얼거리던 입 모두에게 등을 돌린 아버지가 엘리베이터에서 숨을 거뒀다 침대 밑 강으로 자주 내려가 허우적거리다 코마에 빠지고 그 마른 몸이 자꾸 덜컹거렸다 층수는 천국을 향해 올라간다 밤하늘이 폭죽처럼 터지던 별을 헌납해가는 새벽, 아버지의 심장이 두근거리다 자주 멈추었다 바이탈사인을 기다리는 식구들 앞에 혈기 없는 얼굴로 문이 열리길 기다린 당신 지금껏 걸어온 발자국이 밤 하늘에 유성처럼 우수수 쏟아진다 영영 열리지 않을 것만 같던 그 문을 열리고, 아침이 아버지의 살결에 닿는다 그제야 나는 소리내어 울기 시작했다
- 우리미
- 2015-10-31
칠이 벗겨진 벽에서 과거를 발굴해요 이곳은 대륙으로부터 떨어져 나온 우리 집, 집이예요 탯줄에게 배운 매달리는 법 애써 나를 속여 봐도 몸이 기억해요 9살 처음 가진 내방의 이름을 읊조리려 했지만 정작 이름은 없었죠 이곳은 내손으로 빚은 감옥 곰 인형도 성경책도 수직관계 속 친구일 뿐 저도 모르는 새 지붕 색깔이 바뀌었어요 청색 해안선을 잃고 가진 다홍색은 저에게 불행을 가장한 고아의 표정을 주었죠 거실의 이정표가 잘못 되었어요 내가 눈여기던 거실이 아니라고 안방에서 반추동물이 왔다가요 그곳은 우리 가족이 살아야 해 출렁이는 시간을 색소를 가진 그들이 칠해버려요 중학교 때 처음 먹은 술기운이 화악 번지듯 현재는 하루 만에 찾아 왔어요 나는 열매를 닮은 6권의 만화책을 읽고 싶은데 열매 두 개가 입맞춤 하는 극한의 발산을 알아야 해요 촌스럽게 가르치려들지 말아 모든 사람들이 넌 커버렸다며 기만하는 건가요 혹은 너무 늦어버렸기에 더욱 기민해야 하나요 오래된 페인트 냄새를 맡자 번지듯이 기절해버렸어요
- 우리미
- 2015-09-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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짜임새 있는 작품입니다 침묵, 적요, 아우성 등의 부제로 시를 이끌어가는 것도 짜임새가 있고 마지막 구절이 시의 제목이 된것도 역시 짜임새 있어요 다만 1연, 2연이 좀 문장이 산문적입니다 문장 하나에 공을 들여 써야합니다 전반적으로 괜찮은 작품입니다. 마지막 연에 국화꽃으로 죽음을 맞이하는 것은 좀 상투적이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