슬픈 로봇
- 작성자 탈퇴 회원
- 작성일 2017-09-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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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36. 1. 1
저는 그날 아침에 어머니를 잃었습니다. 슬픈 현실입니다. 어머니를 놓치려고 한 게 아니었는데 잃어버리고 말았습니다. 물론 여기서 제가 말하는 ‘잃어버렸다’는 표현은 ‘물건을 잃어버렸다’와 같이 가벼운 의미가 아니라는 것을 명심하시기 바랍니다.
추운 겨울날, 거리를 스쳐가는 사람들은 옷을 하나하나씩 더 껴입었습니다. 새해를 맞은 그들의 얼굴엔 함박웃음이 그려졌지만, 나의 얼굴에는 차가운 바람이 때린 자국만 새겨질 뿐이었습니다. 저는 옷을 세 겹이나 껴입었음에도 목도리를 뚫고 들어오는 추위에 못 이겨 어머니의 손을 더욱 꼭 잡고 걸어갔습니다. 차디찬 바람 사이로 묵묵히 걸어가는 어머니는 전혀 추위를 타지 않는 것처럼 보였습니다. 입을 꾹 다문 어머니의 표정은 무언가를 굳게 결심하기라도 한 듯 무색했지요. 어머니는 제 손을 붙잡고 한참동안 걸어가다 전화를 받고는 멈춰 서서 대화를 나누었습니다. 상대방을 진정시키려다가도 가끔씩 언성을 높이는 어머니는 이루 말할 수 없이 심각한 표정을 띠고 있었습니다. 대화 상대가 누군지 알 수는 없어도 그것이 매우 엄중한 일이라는 걸 깨달은 저는 어머니의 눈치만 살피며 머뭇거렸습니다.
그때 제 나이는 여섯 살에 불과했으므로, 통화 끝나기를 기다리는 동안 지루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저는 멀리서 무심히 달려가는 차들에 시선을 고정한 채 의자에 앉아 다리를 떨었습니다. 수많은 차량은 별다른 소리 없이 도로 위를 달려갔습니다. 어머니의 전화는 좀처럼 끝나지 않았습니다. 어린 나는 통화 내용이 궁금하지 않았습니다. 추운 곳에서 얼른 벗어나고 싶다는 생각뿐이었습니다. 어머니가 왜 그렇게 오랫동안 전화를 붙들고 있는지 저로서는 이해할 수 없었습니다.
시간이 오래 걸리자 백화점 구경이라도 하자는 심경으로 뒤돌아 건물을 바라보았습니다. 그때 제 눈앞에 나타난 것은 특별하지도, 평범하지도 않은 하나의 사물이었습니다.
현란한 광고물, ‘20%할인’이라는 문구가 붙은 유리창 안의 커다란 로봇 장난감. 저는 그것을 가지고 싶었습니다. 번쩍번쩍 금칠을 한 플라스틱 덩어리를 만져보고 싶었지요. 저는 어머니에게 할인을 하니 사달라고 졸랐습니다. 하지만 그때는 어머니가 없어지고 난 뒤였습니다. 저는 로봇에 정신이 팔려 시간 가는 줄도 모르고 넋 놓고 있었던 겁니다. 어쩌면 어머니는 저에게 로봇 사줄 돈을 구하러 잠깐 자리를 떠난 것일지 모릅니다. 그러나 어머니는 오지 않았습니다. 어머니의 또각거리는 하이힐 소리가 들리지 않았습니다. 저는 사방을 두리번거리며 어머니를 불렀지만 눈에 띄는 건 울고불고 소리 지르는 어린아이를 쳐다보는 사람들뿐이었습니다. 누구든 제 일이 아니면 귀 기울이지 않는 법입니다. 사람들은 따뜻한 말 한번 건네주는 일 없이 저 애가 길을 잃어버렸나, 하고는 묵묵히 갈 길을 갈뿐이었습니다. 저는 계속 울 수밖에 없었습니다. 눈물이 뺨을 타고 흘러내려 보도블록 위에 툭툭 떨어졌습니다. 불어오는 바람은 점점 더 싸늘해졌습니다. 어머니를 다시는 보지 못할 것 같다는 생각에, 아니 어쩌면 그런 불안한 예감 때문에 두려움이 더 증폭된 것인지 모르지요. 아무리 어렸다 하더라도 어머니가 떠났다는 사실은 직감적으로 알 수 있었을 겁니다.
어머니는 하이힐의 발자국도 머리카락의 샴푸 향기도 남기지 않고 사라졌습니다. 저는 잠깐 장난감에 눈이 팔려 방심한 나의 아둔함을 책망했습니다. 엄마 손을 잡지 않고 로봇만 들여다보다 엄마를 잃었구나, 엄마를 봐야하는데 그러지 않아 엄마를 잃은 거구나. 저는 그렇게 생각했습니다. 여섯 살짜리가 궁리할 게 있겠습니까? 그저 스스로 자책할 수밖에 없었겠지요.
저는 무서웠습니다. 지나가다 흘끗흘끗 흘겨보고 가는 행인들의 시선이 무서웠습니다. 저 혼자 추운 길거리에 오들오들 떨며 서있는 것이 무서웠습니다. 보이지 않는 어머니의 형체가 무서웠습니다.
저는 자리에 주저앉아 울고 또 울었습니다. 얼마나 울었는지 모릅니다. 아마 여섯 살짜리 어린아이가 쏟아낼 수 있는 눈물이란 눈물은 전부 쏟아냈겠지요. 세찬 바람이 저를 아프게 때렸습니다. 얼굴도 차갑고 손도 시리고 다리도 아팠습니다. 어머니가 보고 싶었습니다. 어머니는 어디로 간 걸까요. 목적지는 정해놓고 나를 떠난 걸까요. 아니, 어쩌면 나를 버려두고 가는 게 목적 아니었을까요.
저는 두려움에 덜덜 떨며 하염없이 어머니를 기다렸습니다.
2016년 1월 1일
나는 오늘 아침에 내 아들을 버렸다. 슬프다. 아니, 슬프다는 표현이 적절한지 모르겠다. 왠지 그보다 훨씬 비참하고 애통한 표현을 사용해야 마땅할 것 같다. 하지만 지금의 나는 그런 표현을 쓸 용기가 나지 않는다. 부질없는 상념에 젖은 지금도 나의 마음은 부서진 풍경처럼 흔들릴 뿐이다. 내가 내 아들을 버린 건 사실이다. 잠깐 놔두고 온 것도 아니고 누구에게 맡겨둔 것도 아니다. 정말로 나는 아들을, 버렸다. 철저하게 계획을 세워서 버려둔 것은 아니다. 장소를 확인해놓고 기계적인 움직임으로 두고 온 것도 아니다. 기회를 틈타 조용히 길가 저편으로 달아난 것뿐이다. 아주 비열하고 약삭빠르게, 너무나 몰염치하고 매정하게, 잠시도 주저하지 않고 단번에 버렸다. 나의 마음에 조금이라도 주저하는 마음이 있었던 걸까? 그랬다면 단 한 번이라도 뒤돌아보지 않았을까? 한순간도 주저하지 않았기에 한 번도 돌아보지 않은 것이었을까? 회한이 있었다면 뒤돌아보았을까?
당연한 일이지만 처음부터 그런 짓을 하려는 것은 아니었다. 누구나 그렇게 생각하지 않겠는가? 애인의 제안이 엄두조차 내서는 안 될 섬뜩한 행위를 떠올리게 한 것이다. 그와 함께 끔찍한 고안을 내다니 나는 어머니로서 자격이 있는 걸까. 고안만 한 게 아니라 실전에 옮겼으니, 나는 지옥에 떨어져도 충분한 걸까.
얼마 전에 나는 남편을 버렸다. 그와 함께 살 이유가 없기도 했고, 그와의 삶이 아무런 의미가 없기도 했다. 나는 고등학교에서 그를 만났다. 나는 나보다 두 살 많은 그를 선배라 불렀지만, 한 차례 관계를 가진 후로는 선배라는 호칭이 아무런 의미 없는 수식어가 되어버렸다. 내 아들이 태어난 건 순전히 그와 나의 경솔한 감정 때문이었다. 처음 관계를 가질 때 임신은 상상조차 못했었다. 남들도 한다던데, 우리도 해보자는 심정이었다. 어쩌면 나의 학업 스트레스가 성적 욕망으로 변질되어 나타난 현상이었는지 모른다.
그와 나는 서로의 부모에게 사실을 알리지 않은 채 아들을 6년 동안 숨기고 살았다. 간신히 단칸방을 얻었지만, 하루하루가 괴롭기 짝이 없었다. 언제 발각될지 몰라 매번 노심초사했고, 나도 모르게 소문이 퍼질까봐 전전긍긍하며 두려움 속에서 살아야 했다. 어쩌면 나는 아들이라는 징역 6년을 선고받은 걸지도 몰랐다. 남편의 도움 같은 희망은 전혀 존재하지 않는 6년의 시간. 6년이라는 고통과 후회의 시간. 나는 저주의 숫자와도 같은 시간 속에서 시간의 노예로 살아왔다. 지금까지 무가치하고 허황된 삶을 보냈다는 사실이 한스러울 뿐이다.
남편은 나와 내 아들을 키울 만큼의 능력이 있지 않았다. 직장이 없는데다 변변찮은 아르바이트 일도 얻지 못했기 때문이다. 그때까지 간신히 부모가 대주는 돈으로 버텼지만 더 이상은 무리였다. 그는 스물다섯 살이었다. 대한민국에서 법적으로 마땅히 취직할 수 있는 연령이었지만 술로 하루를 보내기 마련이었다. 남편은 출생할 때부터 게으른 사람이었는지 한 번도 자의로 무언가를 해본 적이 없었다. 내 일을 도와준 적도, 돈을 벌어다준 적도 부모에게 이렇다 할 효도를 한 적도 없었다. 하는 일이라곤 매일 술집에 가 양껏 마시고 침대에 드러누워 해가 떠오를 때까지 자는 것뿐이었다. 그때마다 나는 그와 잔 사실이 한없이 후회되곤 했다. 뱃속의 아이를 책임질 수 없으면 왜 나에게 부질없는 감정을 심어주었을까. 남편은 나와 함께 가정을 꾸려나갈 자신이 없었다. 아니, 애당초 우리에게 가정이란 존재하지 않는 희망사항이었다. 나는 그와 함께 살아갈 수 없었다. 그의 피를 물려받은 내 아들은 나와 함께 사는 것이 불가능했다. 어떻게 보면 아들을 버리는 행위가 불가피한 것이었는지 모른다.
그는 나를 사랑한다고 했다. 그는 진정 날 사랑한 걸까, 아니면 내 몸만을 사랑한 걸까? 진정으로 사랑했다면 왜 나를 떠나기로 마음먹었을까? 나를 사랑했다면 내 피붙이도 사랑한 걸까?
그는 지긋지긋한 삶을 견디기 힘들어 지쳤는지, 어느 날 일언반구도 없이 바람처럼 사라져버렸다. 오랜 세월을 근근이 버티다 하필 왜 그때 떠나갔는지 나로서는 의아할 뿐이다. 그가 떠나고 얼마 지나지 않아 나는 새 남자를 만났다. 품행이 단정하고 외모도 뛰어난데다 엄연히 직장까지 지니고 있는 젊은 남자였다. 이름은 기억나지 않지만 대학에서 학생들을 선발하는 직책을 맡고 있다고 했다. 그는 나를 진심으로 사랑하는 것 같았다. 그러나 얼마 지나지 않아 매우 염치없게도 그럴듯하고 현실성 있는 사실들을 내 앞에 늘어놓았다.
- 이대로 계속 숨기며 사는 건 모두에게 좋지 않은 일이다.
- 알다시피 지금 와서 사실을 알리는 것은 매우 위험하고 무모한 짓이다.
- 다른 곳에 맡기거나 맡아줄 사람을 찾는 것 역시 불가능한 일이다.
- 당신 아들은 계속 자랄 것이고 절대 감출 수 없을 것이다.
모두 옳은 말이었다. 내게 아들을 계속 키울 자신은 없었다. 포기하고 부모에게 털어놓을 자신도 없었다. 부인하고 싶지만 부인할 수 없는, 부인해서는 안 될 현실이었다. 결국 나는 그와의 협의 하에 결심을 했다. 별다른 도리가 없었을 뿐더러, 결과적으로 내 아들은 그의 아들이 아니었다. 자본주의 사회에서 사람들은 누군가의 도움 없이 자립할 수 없도록 정해져있었다. 결국 남은 건 선택이었다. 긍정적이든 부정적이든 아들이 있었다는 사실을 지우는 것이 최선이었다. 사실 이러한 선택은 불가항력적이고, 가난 때문에 일어난 문제이기 때문에 그와 나의 견해는 절묘하게 일치했다. 다른 길이 없었다. 이 방법이 최선인 것 같았다. 훗날 후회하게 되더라도 누군가에게 발각되는 것보다는 훨씬 낫다고 생각했다. 그는 아이가 더 크기 전에 정을 떼버려야 한다고 말했다. 나는 애인의 말에 전부 동의했다. 동의할 수밖에 없었다. 그러나 전혀 행복하지 않았다.
2036. 1. 1
마냥 그 자리에 주저앉아 기다리고 있을 수만은 없었습니다. 사람은 정신보다 육체가 먼저 반응하기 마련이라, 손이 얼어붙고 발가락이 간지러워지자 저는 본능적으로 일어섰습니다. 밖은 추위가 점령했고 백화점 안은 온기로 가득했습니다. 어느 누구라도 겨울바람이 휘몰아치는 바깥보다 뜨끈뜨끈한 히터를 틀어놓은 백화점을 선택할 겁니다. 저는 기다리기를 포기하고 백화점 안으로 들어갔습니다. 그리움도 외로움도, 그 어떤 애절함과 슬픔도 추위를 이길 수는 없더군요. 백화점으로 들어서자 손님들의 분주한 모습이 눈에 들어왔습니다. 저마다 화장품, 가방, 겨울용 점퍼를 고르느라 정신없었습니다. 그 어떤 자연적인 광경도 없이 기계적인 손들은 바삐 움직이고 있었지요.
늘 그렇듯 백화점은 어린아이를 반겨주지 않습니다. 부를 가진 자만 공손하고도 깍듯이 대하지, 저같이 조그만 어린아이에겐 티끌만큼도 눈길을 주지 않지요. 그게 더 편했을지도 모릅니다. 사람들은 옷 사기에 여념 없었고 상품 사이를 바람처럼 왔다 갔다 지나칠 뿐이었습니다. 저는 그 가운데 서서 황금빛으로 번쩍이는 로봇을 바라보았습니다. 어머니를 잃어버린 와중에도 장난감만큼은 잊을 수 없었던지, 한동안 20%할인이라는 문구가 붙은 유리 막 안을 뚫어지게 바라봤습니다. 몇 분이 흘렀는지 모릅니다. 당시 제 머릿속엔 커다란 로봇 장난감만 들어있었나 봅니다. 방금 전 어머니를 잃은 순간은 눈 깜짝할 새에 지나쳐 쌀쌀한 바람처럼 흩어졌습니다. 제가 그때 로봇을 보고 있었는지 어머니를 생각하고 있었는지는 여섯 살짜리 아이에게 물어보면 알 수 있을 겁니다.
2016년 1월 1일
마냥 기다리고 있을 수만은 없었다. 어차피 언젠가는 해야 할 일이었다. 새 애인은 내게 아들을 어떻게 버릴 것인지 물었다. 나는 그 질문에 아무 대답도 할 수 없었다. 내가 어떻게 답할 수 있었겠는가? 신문에서는 종종 놀이기구에 어린아이를 버리고 가는 부모들이 속출하고 있다는 기사가 뜨곤 했다. 나는 그런 곳에서 공개적으로 일을 벌일 위인은 못 된다. 그럴만한 용기도 없거니와 그런 곳에 갈 형편도 없다. 하지만 그것이 공개적이든 비공개적이든 한 아이의 부모로서 그런 짓은 결코 용납할 수 없는 행위다. 한창 행복해하고 있는 어린애를 기구에 태워놓은 채 무참하게 사라져버리는 것만큼 잔인한 일도 없을 것이다. 그러나 어떻게 보면 장난감에 정신이 팔린 어린애를 두고 가는 부모와 놀이기구에 탄 채 신나게 웃고 있는 어린애를 두고 가는 부모는 서로 성격만 다를 뿐이지 근본적으론 마음이 같다. 아이를 버리는 방법이 어떤 방향이든 그런 짓은 부모로서 씻을 수 없는 평생의 죄다.
내 아들은 법적으로 등록되어있지 않기 때문에 나와 남편, 애인을 제외하고는 아무도 그의 존재를 모른다. 그러니 어딘가에 버려둔다면 내 아들은 이 세상에서 영원히 잊히거나, 누군가의 손에 의해 새로운 삶을 영위하게 될 것이다. 데려다 키우는 사람이 있다면 그 사람은 틀림없이 나보다 부유할 것이다. 그러나 누가 여섯 살짜리 애를 데려가서 키우기나 할까? 키워준다 해도, 아무 탈 없이 먹여주고 재워주고 보듬어주기나 할까?
어쩌면 해외로 팔려가 끔찍한 상황을 맞닥뜨리게 될지 모른다. 중국이나 일본으로 팔려가 노예가 될 수도, 남창이 되어 노파들에게 몸을 대주면서 평생을 보낼 수도 있다. 나는 이 일에 있어 최대한 비관적인 생각을 금하기로 했지만 비관적인 생각이 자꾸만 떠오르는 건 어쩔 수 없는 일이다. 애인도 최대한 긍정적으로 생각하려 노력했다. 그러나 나는 머릿속에 계속해서 떠다니는 막연한 불길함을 떨칠 수가 없다. 내 아들을 내가 버리면 어떤 일이 일어날지 상상만 해도 두렵다.
2036. 1. 1
로봇 장난감을 구경한지 얼마 되지 않았을 때입니다. 누군가 말을 건네는 바람에 저는 화들짝 놀라 뒤돌아보았습니다.
“안녕. 너 혼자 있니?”
까만 모자를 쓰고 번쩍거리는 형광색 옷을 입은 남자는 경찰이었습니다. 광장에서 시위하는 사람들을 지켜보고 있었던 거지요. 경찰서에 대한 내 사고방식은 아주 단순했습니다. 급할 때 들어가 화장실 용도로 사용하는 게 전부라고 생각했거든요. 저는 경찰아저씨가 그저 궁금해서 물어보는 건가보다, 하고 로봇을 구경하고 있었다고 대답했습니다. 경찰은 얼굴에 웃음기를 띠더니 “엄마는 어디 가셨니?”하고 물었습니다. 저는 어느새 경찰이 발견할 정도로 오랫동안 앉아있었던 겁니다. 저는 엄마가 날 놔두고 어디론가 가버렸다고 찬찬히 설명했습니다. 아직 완전한 언어를 구사하지 못한 내 말을 경찰은 대충 알아들었는지, 아니면 흔히 있는 일이라 지레짐작한 것인지 자신과 함께 가자고 했습니다. 평소 낯선 사람을 따라가지 말라 하던 엄마의 말이 생각나 경찰의 손을 거부했지만, 그대로 앉아 엄마를 기다리는 일은 너무 괴로울 것 같아 별다른 수 없이 자리에서 일어났습니다. 하지만 그때까지도 유리 막 안의 로봇은 잊을 수 없었나 봅니다. 저는 경찰 앞에서 장난감을 사주지 않으면 따라가지 않겠다고 어리광을 부렸습니다. 자리에 엎어져 다리를 동동대며 떼를 썼습니다. 왜 그토록 한낱 장난감에 집착했는지 모를 일이지만, 경찰은 그런 나를 보더니 장난감을 사주겠다고 약속했습니다. 순순히 응낙했던 터라 눈물 흘릴 준비를 했던 나는 엉덩이를 털고 일어날 수밖에 없었습니다.
경찰은 대뜸 지갑에서 카드를 꺼내 황금빛으로 번쩍이는 로봇을 샀습니다. 그는 내 손에 커다란 장난감을 쥐어주고는 “자, 이제 됐지? 아저씨랑 엄마 찾으러 가자.”하고 말했습니다. 어린 저는 얼떨떨한 마음으로 파출소에 갔습니다. 갖고 싶었던 로봇을 손에 쥔 채로요.
파출소 안은 따뜻한 공기로 가득했습니다. 난방이 어찌나 강하던지 입고 있는 잠바를 벗어야 할 정도였습니다. 소변이 마려워진 저는 곧장 화장실에 달려갔지요. 돌아오자 상당히 늙어 보이는 경찰 한 명이 묻더군요. 엄마 전화번호, 주소는 아냐고. 가까운 친척이나 아는 사람은 없냐고. 물론 전 아무것도 몰랐습니다. 로봇만 바라보고 있어서인지 어머니의 얼굴도 자세히 기억나지 않았고, 아버지의 얼굴은 윤곽마저 일그러져 눈앞에 떠오르지 않을 지경이었으니까요. 제가 살면서 아버지를 몇 번이나 봤는지 모르겠습니다. 많아야 세 번, 네 번 정도일까요. 잘 모르겠군요.
저는 어머니의 겉모습만 설명했습니다. 머리가 길고, 안경을 썼고 키가 크고 아주 가끔씩 동화책을 읽어주었다고. 사소한 것 말고는 아는 것이 없었습니다. 그들은 몇 가지 더 질문을 던지다가, 자기들끼리 귓속말로 속삭이고는 나에게 말했습니다.
“얘야, 네 엄마를 찾으려면 앞으로 몇 년은 걸리겠구나. 그동안 너를 맡아줄 사람을 찾아보도록 하자.”
저는 그 말도 제대로 알아듣지 못해 고개만 갸웃거렸습니다. 다만 좋지 않은 일이라는 건 확실했습니다. 어린 나도 상황이 좋지 않게 돌아간다는 것을 어렴풋이 알 수 있었으니까요. 앞으로 오랫동안 어머니를 볼 수 없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나는 번쩍거리는 로봇을 더 꽉 쥐었습니다.
2016년 1월 1일
아들과 거리에 나선지 얼마 되지 않았을 때였다. 애인에게서 전화가 왔다. 지금이 기회라고, 틈이 나면 내버려두고 오라고. 카페에서 만나자고, 할 얘기가 있다고. 나는 시내 구경을 시켜주기 위해 데리고 온 아들을 차마 떨칠 수 없었다.
아직 마음의 준비를 하지 않았는데. 어떻게 지금 해?
꼭 마음의 준비를 해야 하는 거야? 그냥 지금 해. 괜찮아. 아무도 신경 안 써.
그래도…….
내가 애인과 대화했을 때 아들은 장난감을 바라보고 있었다. 황금빛을 띤 로봇의 얼굴이 왠지 모르게 슬퍼보였다. 로봇의 이상한 눈은 나를 응시하고 있었다. 나는 로봇의 눈이 나의 눈과 닮은 것을 알 수 있었다.
나는 로봇일까? 아무 감정도 느끼지 못하는 로봇. 아무 감정 없이 아들을 팽개치는, 움직이지 못하는 장난감 로봇.
그렇게 생각하고 싶었다. 그렇게 생각해야 편했다. 그렇게 생각해야 아무 죄책감 없이 아들을 버리고 갈 수 있었다. 애인이 말했다.
우리를 생각해. 어쩔 수 없어. 그냥 애는 처음부터 없었던 걸로 치자.
로봇의 눈에도 눈물이 흐를까. 로봇도 감정이 있을까. 아니, 장난감은 감정이 없다. 뻣뻣하게 서있는 장난감은 가슴도 심장도 굳어 감정도 눈물도 없다. 로봇은 나와 같다. 나는 로봇과 같다.
나는 장난감을 보는 아들을 놔두고 카페를 향해 걸어갔다.
2036. 1. 1
저는 운이 좋은 편이었습니다. 하마터면 범죄의 소굴로 들어가 죽을 때까지 고통스러운 삶을 보낼 수 있었잖습니까? 어머니의 가장 큰 걱정은 제 미래입니다. 다행히도 나는, 저녁으로 고기를 굽고 후식으로 아이스크림까지 얻어먹었습니다. 경찰들은 이상하다며 아무리 찾아도 제가 이 세상에 없는 사람으로 나온다 했습니다. 내 이름이 그게 확실하냐고 몇 번이고 다시 물었습니다. 그때마다 나의 답은 같았습니다. 아마 제가 법적으로 기록되어있지 않았기 때문일 겁니다.
경찰아저씨는 저를 입양했습니다. 정식으로, 법적으로 저를 아들로 삼았습니다.
저는 그날 새아버지의 침대에 누워 잠 들었습니다. 눈을 감기 전 나는 상상했습니다. 엄마는 잘 있을까. 나를 찾고 있지는 않을까. 엄마가 나를 버리고 간 게 아니라 내가 엄마를 놓친 게 아닐까. 저는 그 뒤로도 꾸준히 죄책감에 시달렸습니다. 밤마다 꿈속에 나타나는 사람은 눈물을 줄줄 흘리는 어머니였습니다. 머릿속에서 신음하는 어머니의 목소리가 하염없이 울려 퍼졌습니다. 저는 그 소리가 듣기 싫어 베개로 귀를 막았지만 아무 효과가 없었습니다. 어머니는 아침까지 나를 깨어있게 만들었습니다. 시도 때도 없이 피곤해졌습니다. 저는 도저히 잠을 잘 수가 없었습니다. 저는 어머니가 보고 싶어 잠을 잘 수가 없었습니다.
시간이 지나니 어머니의 한 맺힌 신음소리도 줄어들었지만, 여전히 울부짖는 듯한, 끊임없이 흐느껴대는 소리는 귓속에 남아있습니다. 어머니는 아직까지 저를 찾고 있을지 모릅니다.
2016년 1월 1일
그래, 나는 운이 좋은 편이다. 속으로 다짐했다. 마음을 단단히 먹어야한다. 그런데 연약한 내가, 이 연약하고 가냘픈 내가 앞으로 어떻게 살아갈 수 있을까. 내 마음은 두려움으로 먹칠되어 있었다.
애인이 나를 보더니 말했다. 이때까지 있었던 일들, 자식을 낳은 거, 다 잊어버리자고. 없던 일로 하자고. 그래, 그러자.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 그렇게 해. 애인도 끄덕였다. 우리는 합의를 봤다. 서로의 의견을 존중하고 의견을 같이했다. 우리는 서로 손을 잡지도 않았다. 새로운 삶을 시작하자. 머릿속에 뿌리깊이 박혀 있는 몽상들은 뽑아버리자. 쓰레기통에 던져버리자. 모두 없던 일로 여기자. 이제 칙칙한 과거는 끝났다. 나는 내 아들을 버렸다.
2036. 1. 1
그 일이 있은 후 어느덧 20년이란 세월이 흘렀습니다. 저는 이제 스물여섯 살입니다. 그때의 어머니 나이를 훌쩍 넘었군요. 어머니는 이제 마흔셋의 중년이고요. 이렇게 시간이 빨리 흐를 줄은 몰랐습니다. 한 시간이 지났다 싶으면 1분이 넘어있고, 1분이 지났다 싶으면 한 시간이나 넘어있지요. 시간은 참 변덕스럽습니다. 저는 그 변덕 속에서 26년을 살았습니다. 어머니가 어디서 무얼 하고 사는지 궁금할 따름입니다. 가끔씩 나를 잊어버리지는 않았을까 걱정이 들기도 하지요. 그러나 그러지 않았을 거라 확신합니다. 어머니는 어머니의 아들을 잊어버릴 수가 없었을 겁니다. 평생을 회한과 고뇌 속에서 견뎌냈을 것입니다. 제가 어머니를 잊지 못했듯 어머니가 저를 잊지 못했을 것은 당연한 일입니다. 어쩌면 아직도 나를 찾고 있을지 모를 일이지요.
오늘따라 무척 어머니가 보고 싶어집니다. 이제 얼굴도 기억나지 않지만 말입니다. 어머니의 손이 차가웠는지 따뜻했는지조차 기억나지 않습니다. 세월은 참 매정합니다. 시간과 함께 기억을 말끔히 지워버리니 말입니다. 그러나 20년이란 긴 시간이 흘러도 어머니에 대한 그리움이 사라지지는 않습니다. 나는 어머니의 아들이고 어머니는 나의 어머니이기 때문입니다.
2016년 1월 1일
그 일이 있은 뒤 나는 곧장 집으로 가려 했으나 발걸음이 떨어지질 않았다. 왜 그럴까. 왜 자꾸만 그곳에 가고 싶어지는 걸까. 왜 아들의 얼굴이 잊히질 않는 걸까. 잊어야 하는데, 단단히 마음먹고 잊어야 하는데 왜 잊히지 않는 것일까. 가야하는데, 애인의 집으로 가서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 태연하게 살아야하는데. 자연스럽게 생활하며 늙어가야 하는데. 아들의 존재를 완전히 잊어버려야 하는데.
애인의 뒷모습이 차차 멀어질 때 나는 본능적으로 왔던 길을 되돌아 뛰어갔다. 내 아들은 잘 있을까. 누가 데려가지는 않았을까.
갑자기 후회되기 시작했다. 내 아들을 다시 데려와야 한다는 강한 집념이 가슴을 짓눌렀다. 정체모를 뭔가가 몸을 훑었다. 하염없이 달렸다. 이마 아래로 땀이 무겁게 흘러내렸다. 마음속에 두려움이 가득했다. 입속이 점점 뜨거워졌다. 거기 그대로 있을까, 아직도 장난감을 구경하고 있을까, 그래야 해, 그래야만 해. 내 아들은 그대로 거기 있어야 해. 달려가서 보듬어줘야 해. 엄마랑 집에 가야해. 마음 굳게 먹고 아르바이트라도 하면 입에 풀칠이라도 하면서 살 수 있을 거야. 애인은 무시하고 우리 둘끼리 행복하게 살자.
그러나 아들은 없었다. 빈 의자만 조용히 자리 잡고 있었다. 로봇도 없었다. 나는 망연히 유리창만 바라보았다. 목과 얼굴은 땀으로 번들거렸다. 유리에 비친 내 모습이 나를 비웃는 것 같았다. 내 아들을 누가 데려갔을까? 납치범이 데려갔을까. 포기할 수는 없었다. 백화점 안으로 들어가 직원에게 물었다. 파란 옷을 입은 여섯 살짜리 꼬맹이를 못 봤냐고. 내 아들인데, 내가 버렸어요.
죄송하지만 손님, 그런 남자애는 보지 못했습니다.
너무 늦었다. 아들은 온데간데없었다. 하늘로 솟았는지 땅으로 꺼졌는지 알 수 없다. 아들의 향기가 맡아지지 않았다. 아들의 모습이 떠오르지 않았다. 모든 것이 희미해졌다. 돌이킬 수 없는 과오를 저질렀다. 나는 넋이 나간 상태로 유리만 쳐다봤다. 마치 그 유리에서 아들을 찾을 수 있는 것처럼.
나는 의자에 앉아 아들을 기다렸다. 그래, 잠깐 화장실에 간 거겠지. 금방 올 거야. 와서 나를 꼭 껴안으며 어디 있었냐고 울먹이겠지.
나는 의자에 앉아 보이지 않는 아들을 기다린다. 몇 시간이 흘렀는지 모른다. 시간을 신경 쓸 필요는 없다. 중요한 건 시간이 아니라 과거니까. 나는 몇 시간, 며칠, 몇 년이 지나도 이곳에서 내 아들을 기다릴 것이다. 내 아들은 내 아들이니까, 자석에 끌리듯 어머니의 품으로 돌아와 안길 것이다.
나는 사라져버린 로봇을, 슬픈 표정을 지닌 로봇의 빈자리를 가만히 보고 있다.
2036. 1. 1
모든 것은 세월 속에 잊혀져갑니다. 나는 어머니를 잊을지도 모릅니다. 그러나 나에게 어머니가 있었다는 사실을 잊지는 않을 겁니다. 이 세상에 어머니 없는 사람은 없기 때문이지요. 어머니의 얼굴을 보지는 못해도 어머니의 마음을 볼 수는 있습니다. 제 머릿속에서 어머니의 모습이 완전히 사라져도 어머니라는 존재는 없어지지 않기 때문입니다.
최근에 아버지가 승진했습니다. 경찰서장으로 진급한 겁니다. 저는 아버지에게 드릴 꽃다발을 사러 백화점으로 향했습니다. 백화점에서 꽃도 파냐고요? 물론입니다. 이 백화점에선 팔지 않는 물건이 없거든요. 예나 다름없이 사람들은 바쁘게 움직이고 있습니다. 저는 직원에게서 꽃을 받아들고 발을 옮겼습니다. 그런데 그때 제 눈앞에 뭔가가 나타나더군요. 그것은 유리 막이었습니다. 20년 전 황금빛으로 번쩍이는 로봇 장난감이 들어있던 유리 막 안. 물론 그곳에는 로봇 대신 새로 입고된 피규어가 비치되어있었습니다. 문득 아버지가 준 로봇이 기억나더군요. 집안에서 뒹굴다가 버렸던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만, 혹시 모르죠. 아직 집안 구석 어딘가에 플라스틱 한 조각이 남아있을지도요.
저는 잠깐 쉬려고 의자에 앉았습니다. 그런데 의자는 마치 누가 오랫동안 앉아 있었던 것처럼 따뜻했습니다. 누가 방금 막 앉았다 간 모양이었습니다. 따스한 체온이 그대로 남아 저를 데워주었으니까요. 이상하게도 의자에서 익숙한 냄새가 났습니다. 어디서 많이 맡아본, 아주 옛날에 맡아본, 기억을 불러일으키는 향기였습니다. 사람은 눈으로 본 것만 기억하는 게 아닙니다. 귀로도 기억하고 코로도 기억합니다. 코가 기억하는 것은 매우 강렬하고 지울 수 없는 애틋한 그리움을 남깁니다. 오늘 제 코는 기억한 것입니다.
그것은, 미칠 듯이 코를 자극하는 향기는 바로 어머니의 향기였습니다. 착각이 아닌 게 분명했습니다. 나의 손을 꼭 잡아주었던 어머니의 머리카락 냄새였습니다. 어머니가 자주 사용하던 샴푸 냄새였습니다. 나를 버리고 간 어머니의 냄새였습니다. 어머니의 냄새이자 나를 기다리던 마음이었습니다. 저는 설마, 설마 어머니가 이 근처에 있나 두리번거렸지만 아무도 없었습니다. 그곳에는 향기만 있었을 뿐입니다.
저는 그곳에 오랫동안 앉아있었습니다. 혹시나 어머니가 찾아오지 않을까 싶어서. 하지만 아무도 오지 않았습니다. 저는 유리 막 밖을 보았습니다. 사람들이 걸어다니고 있었습니다. 저는 그곳에 어머니가 있나 자세히 눈여겨보았습니다. 그러나 내 눈에 보이는 것은 슬픈 표정을 띤 피규어뿐이었습니다.
2016년 1월 1일
모든 것은 세월 속에 망각될 것이다. 나 또한 아들을 잊을 것이다. 그러니 걱정하지 말자. 쓸데없는 걱정 따위 던져버리고 내 삶을 살자. 나 혼자 살자. 아들을 버리고, 애인도 버리고, 나 혼자 살자. 애인은 나 없이도 잘 살 것이다. 지금 여기서, 로봇의 빈자리를 느끼며 아들을 기다리는 나보다 훨씬…….
2036. 1. 1
집으로 돌아와 침대에 쓰러지듯 누웠습니다. 샤워를 해야 했지만 씻기 싫었습니다. 어머니의 향기를 지우고 싶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제 몸에서 나는 냄새는 어머니의 향기가 확실했습니다. 20년이란 시간이 지나도 향기만은 지울 수 없는 것입니다. 나는 향기를 잊고 싶지 않아 씻지 않고 누워있었습니다. 강렬한 이 냄새는 제 추억 속에 스며들어 죽을 때까지 지워지지 않을 것입니다.
한편으로 백화점에 우연히 들르게 해준 아버지에게 고마웠습니다. 아버지가 아니었다면 어머니의 향기를 맡지 못했을 겁니다.
저는 텔레비전 채널을 이리저리 돌리다가 잠깐 잠이 들었습니다. 문득 아버지에게 꽃을 드리지 못했다는 생각에 잠이 확 깨더군요. 저는 흐릿한 정신으로 아버지를 불렀습니다.
아버지, 꽃을 사왔어요. 와서 한번 보세요.
저는 여느 때처럼 “오냐” 하고 방문을 열고나올 아버지를 기다렸습니다. 그런데 아버지는 오지 않았습니다. 이상했습니다. 어디 밖에 나가셨나. 저는 문을 열었습니다. 아버지는 없었습니다. 그곳에는 슬픈 표정을 지닌 로봇이 앉아있을 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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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기 인물 사진의 가장 큰 특징은 강렬한 눈빛이다. 카메라가 영혼을 앗아간다는 미신이 만연했기 때문에, 그 즈음의 일반인 모델은 하나같이 강한 시선을 가지고 있었다. 눈을 통해 왕래하는 영혼을 지키기 위해 그들은 스스로의 구멍을 메웠다. 신념, 공포, 분노, 혹은 순수한 동경 따위로. 그런 의미에서 K의 눈은 낡아빠진 싸구려에 가까웠다. 아직 과학이 진리를 대신하기 전, 미신이 미신으로 불리지 않던 시대를 살아가는 듯, K의 눈은 기묘한 생명으로 불탔다. 그녀는 분명 이성보다 심장을 우선하리라. 촬영자로 하여금 그런 착각을 불러 일으키는 눈이었다. 나는 아무말 없이 삼각대를 세웠다. 카메라의 노출값과 함께 호흡을 가다듬었다. 갑갑한 교복 넥타이를 연신 긁어대며, K의 알몸에게 렌즈를 겨눴다. 석고상처럼 바스라지는 신체, 그 위로 수놓아진 푸른색 멍을 최대한 객관적으로 응시했다. 아마도 이번이 마지막일 것이다. 그녀가 진심 아닌 진실을 이야기하는 것도, 시퍼런 눈을 치켜뜬채 나를 바라보는 것도. K와 나는 방과후 빈 교실에서 처음 만났다. 양 팔에 아로 새겨진 멍자국이 염증처럼 부풀어오르는 탓에, 종일 묶어뒀던 팔토시를 막 벗어던진 참이었다. 나는 선생과 아이들이 빠져나간 교실에서 불어터진 흉터를 말렸다. 그렇게 하지 않으면 집으로 돌아가는 길에 상처가 덧나고 함부로 엉겨붙기 때문에 별 다른 수가 없었다. “그거, 얻어 맞은거야?” 창밖으로 시선을 돌린채 호흡을 삼키면서, 얼마나 지났을까. 적막이 감도는 교실에서 K의 시선을 눈치챈 나는 소스라치게 놀랄 뿐 차마 할 말을 고르지 못 했다. 담홍색 저녁 노을을 받은 하얀 피부가 꼭 석고상처럼 눈부시다. 교실 뒷문에서 꼿꼿이 펼쳐진 척추가 아름답다. 따위의 사고를 반추하며 무의미한 시간을 보냈다. K가 먼저 입을 열기까지, 나는 아무말 없이 그녀의 눈을 들여다보고 있었다. “사람을 죽였어.” 다만 그런 대치상황을 넘어 날아온 K의 한마디는 너무나도 뜻밖의 물건이었다. 그녀는 자신이 사람을 죽였노라 고백했다. 죄값을 치르는 건 두렵기 때문에 내일 자살을 할 것이라며, 초연한 어투로 속삭였다. 이해할 수 없는 이야기였다. 이해를 필요로하지 않는 이야기이기도 했다. 그녀는 어느새 다가와 내가 반사적으로 움켜쥔 DSLR을 검지로 쓸어올렸다. 슬쩍, 미소지었다. 나에게 처음 카메라를 건네주던 날, 아버지는 말했다. 사람의 눈동자도 카메라처럼 풍경을 담아둘 수 있다고. 잠깐 빛을 응시한 다음 눈을 감으면 눈꺼풀 속에 그 잔향이, 불꽃이, 똑똑히 보이잖아. 이게 바로 그 증거야. 보호안경 너머로 용접 불꽃을 튀기며 그는 곧잘 떠들었다. 삭으로 뜬 달처럼 희미하게 웃었다. 그 무렵의 나를 사진으로 이끈 매력적인 미소였다. 꼭 지금처럼, 체념 한방울 섞이지 않은 강인한 미소. 다시는 볼 수 없을 것 같았는데. 나는 양 뺨이 홧홧하게 달아오르는 걸 금방 실감할 수 있었다. K는 꼭 술을 마시지 않은 아버지처럼 따뜻했다. “그러니까 내 영정사진을 찍어줘. 너, 사진 찍는거지?” 그날부로 나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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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2-11-02
남자는 늑대였다. 손바닥만한 핏덩이로 태어난 그에게는 입술 대신 주둥이가 있었다. 남자의 어미는 탯줄도 채 자르지 않고 그 모습을 긴밀히 살폈다. 길게 뻗은 주둥이, 옹골찬 회색 눈동자, 전신을 덮은 이중 모피, 남자에게 인간 다운 신체 부위는 온전히 돋아난 다섯 손가락이 전부였다. 그 꼴이 영락없이 괴물이었기에, 남자는 버려졌다. 가문의 안위를 위해서였다. 바야흐로 이단 심판관이 악마와 마녀를 때려잡던 시기였다. 가축이 죽고, 곡식이 마르는 건 전부 악마의 소행이라고, 교회는 말했다. 달리 탓할 대상이 없어, 사람들은 그 말을 믿었다. 숲속에서 홀몸으로 지내는 여성은 화형, 기형아를 출산한 일가는 몸이 찢어졌다. 단, 귀족은 예외였다. 그들은 단두대 아래서 목이 잘렸다. 최소한의 존중이었다. 버려지다시피 했지만, 남자는 부모가 기요틴 아래 서는 것을 원하지 않았다. 그들을 원망하지 않았다. 열일곱이 되는 나이에 몰래 성을 빠져나와 무법지를 거닐었다. 힘들지는 않았다. 남자는 금방 자랐다. 성을 빠져나왔을 때, 그의 신장은 이미 2m 가까이 되었다. 단단하게 솟은 송곳니는 돌을 부술 만큼 강했다. 이곳저곳을 떠돌다, 버려진 저택에 둥지를 틀었다. "저곳에는 용이 산다." 얼마 지나지 않아, 남자가 몸을 붙인 폐 저택에 관한 소문이 돌았다. 먹지도, 마시지도 않는 용이 몸을 뉘었다는 소문이 돌았다. 반은 맞고 반은 틀린 이야기였다. 이제 30년 가까이 삶을 영위한 남자는 더는 아무것도 먹고 마실 필요가 없었다. 아침에 일어나 호수를 핥았다. 자기 직전, 저택 주류 창고에 남아있는 위스키 한 모금을 들이켰다. 그걸로 족했다. 덩치는 점점 커져, 처음 밖으로 나왔을 때에 비해 두 배 가까이 됐다. 하지만 남자는 늑대였다. 괴물이었지만, 용은 아니었다. 폐허에 버려진 정장을 손질하여 입고, 혀를 굴릴 때, 보다 고풍스러운 단어를 벼렸다. 마을의 처녀를 납치하거나, 황금을 탐하지 않았다. 다섯 손가락 달린 괴물은 조용히 죽음을 기다렸다. 누구보다 인간성을 갖춘 영혼이, 기사가 그의 심장을 꿰뚫어주길 바랐다. 남자는 괴물이었다. 괴물은 인간에게 죽어야 했다. 어디에도 받아들여지지 못한 남자는 결론 내렸다. 폐허는 나름대로 지낼 만했다. 가구에 남아있는 문양으로 추측해 볼 때, 몰락 귀족의 저택인 것 같았다. 정장, 거대한 거울, 마찬가지로 거대한 시계. 주머니에 들어가지 않는 것들은 모두 폐허에 남았다. 남자는 그들을 입었다. 버려진 것들을 입었다. 편안했다. 몸을 옥죄는 정장 안에서 남자는 편안할 수 있었다. 시계의 먼지를 털고 기름칠을 했다. 거울 역시 관리하긴 했지만 사용하지는 않았다. 아무리 닦아도 비치지 않았으니까. 본인 만큼은 절대로. 남자는 저택의 거울에 비치지 않았다. 옷을 갈아입기 위해 처음 그 앞에 섰을 때 깨친 사실이었다. 세상을 담은 조각은, 남자를 제외한 모두를 비췄다. 이따금 비를 피해 들어오는 올빼미, 토끼, 여우를 비췄다. 잘 정돈된 정장을 비췄다. 출처 모를 와인과 위스키 역시 그곳에 담겼건만, 남자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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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2-09-29
할머니는 소녀의 얼굴로 창밖을 보았다. 창문 너머로 쭉 이어진 벚나무의 행렬에 양 뺨을 살짝 붉혔다. 여든에 가까워 이제는 주름이 자글자글한 얼굴이었지만 초봄의 내음 앞에서 그녀는 소녀가 되었다. 두 눈을 활짝 열고서 가만가만 떨어지는 꽃비를 응시했다. 노인답지 않은 풍부한 생기가 그 표정에 깃들어 있었다. 엄마는 종종 ‘어머니가 너무 늙으셔서 그래’하며 한숨을 내쉬곤 했으나 나는 그 말을 이해할 수 없었다. 할머니는 늙지 않았다. 다만 돌아가고 있을 뿐이었다. 그녀가 지금껏 놓쳐온 과거를 향해서. “너희 아빠랑 요양원 좀 알아보고 올 테니까 오늘만 할머니랑 둘이 있어.” 그 말과 함께 부모님은 아침 일찍 집을 나섰다. 고삼이 된 너를 배려해주지 못해 미안하다며 한숨을 쉬었다. 슬픔이나 연민 대신 피로가 묻어나오는 한숨이었다. 최근 들어 엄마와 아빠는 자주 그런 한숨을 토했다. 그때마다 내가 할 수 있는 일은 몇 개 되지 않았다. 오늘도 평소처럼, 응, 그래, 괜찮아. 짧은 세 마디로 둘을 배웅했다. 부모님의 한숨을 닮아 무거운 미소를 지었다. 시선을 돌려, 거실 탁자에 주저앉은 할머니와 눈을 맞췄다. 머리도, 눈도, 뇌도, 새하얗게 질려버린 노인을 조심스럽게 살폈다. “어째서 우리의 몸은 이렇게 쪼그라들고 마는 걸까요. 그 사실을 제대로 받아들이지도 못하면서.” 나는 창문에 기댄 할머니의 머리카락을 천천히 쓸어올렸다. 거슬거슬한 촉감이 검지 손가락을 타고 전신에 감겼다. 젊음이 빠져나간 노인의 육체였다. 내 검지 손가락의 촉감이, 세월을 뚫고 올라온 그녀의 주름이, 그 사실을 열성적으로 증언하고 있었다. 하지만 할머니의 뇌는 그 사실이 퍽 마음에 들지 않는 듯했다. 쓸데없는 고집을 부리며 몸을 웅크렸다. 시간이 흐른다는, 스스로가 늙어간다는, 당연한 사실을 받아들이지 못해서. “저는 솔직히 말해서 어른들을 이해하기가 힘들어요. 시간이 흐른다는 것도 그 시간에 맞춰 자신이 점점 깎여나가는 것도 모두 당연한 거라고 다들 이야기했잖아요.” 그런 건 당연하다고 잘난 듯이 말하는 주제에, 어째서 기어코 어제를 돌아보는 걸까. 나는 할머니를 바라보며 허공을 향해 말했다. 어제, 수업을 시작하기 직전 담임이 내뱉은 중얼거림을 떠올렸다. 그는 분명 슬프다고 말했다. 우리 때가 참 좋을 때라고 말했다. 그 시간이 지나가 버린 지금은 그저 슬프다고 말했다. 우리는 대답하지 않았다. 그게 그저 농담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아침 일곱 시에 일어나서 저녁 열 한시에 독서실을 빠져나오는 일상은 빈말로라도 그리워할 물건이 아니었으니까. 하지만 나는 맨 앞자리에서 담임의 눈꺼풀이 미묘하게 떨리는 걸 보았다. 그는 그때 과연 무엇을 보고 있었을까. 나로서는 알 수 없는 일이었다. 알고 싶지도 않은 일이었다. “할머니, 꽃이 그렇게 좋아요?” 나는 그리 묻고서, 잠깐 창밖으로 고개를 돌렸다. 중간고사가 마무리되면 벚꽃도 지겠지. 문득 그 사실을 실감했다. 평소라면 햇빛 아래서 벚꽃을 볼 일이 없는 탓이었다. 해가 지기 전에 집을 나와 해가 떨어지고서 돌아오는 나날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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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2-09-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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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대한민국에서 법적으로 마땅히 취직할 수 있는 연령이었지만 술로 하루를 보내기 마련이었다." - "대한민국에서 법적으로 마땅히 취직할 수 있는 연령이었지만 술로 하루를 보내기 일쑤였다." : 은 준비하거나 헤아려 갖춤, 혹은 계획이나 궁리, 마땅히 그렇게 됨의 의미로 쓰입니다. 의존명사인 경우 ~던, ~은 뒤에 쓰여 그러한 상태나 정도를 뜻하기도 하지만 위의 문장인 경우에는 자주 ~한 상태로 지냈다의 의미에 맞는 일쑤가 더 적당할 듯 합니다. * "별다른 도리가 없었을 뿐더러, 결과적으로 내 아들은 그의 아들이 아니었다." - "별다른 도리가 없었을 뿐더러, 결론적으로 내 아들은 그의 아들이 아니었다." : 결과 - 어떤 원인으로 말미암아 이루어진 일의 상황이나 상태. 결론 - 생각이나 연구 끝에 최종적으로 판단을 내림. * "어머니는 하이힐의 발자국도 머리카락의 샴푸 향기도 남기지 않고 사라졌습니다." - "어머니는 하이힐 소리나 어깨 언저리에서 흔들리던 샴푸 향기를 가지고 사라졌습니다." : 발소리를 남길 수 있을까요? 엄밀히 말하면 발소리는 존재와 함께 가까워지거나 사라지는 것입니다. 또한, 발"자국"은 소리를 가질 수 없습니다. "자국"은 시각, 소리는 청각이니까요. 발자국 소리=> 발소리 * 문학(소설)은 언어를 수단으로, 문장과 문장을 연결해서 이야기를 구축해가는 예술의 한 형태입니다. 모로님의 문장은 비문도 거의 없고 단어들을 비교적 적확하게 씁니다. 그런데 문맥을 이어가는 방식은 다소 부자연스러운 측면이 있어요. 이런 조언을 드리는 건, 앞으로 소설을 써가시는 분들은 반드시 해결해야 하는 과정이기 때문입니다. 예를 들면 "부를 가진 자만 공손하고도 깍듯이 대하지, 저같이 조그만 어린아이에겐 티끌만큼도 눈길을 주지 않지요. 그게 더 편했을지도 모릅니다. 사람들은 옷 사기에 여념 없었고 상품 사이를 바람처럼 왔다 갔다 지나칠 뿐이었습니다. 저는 그 가운데 서서 황금빛으로 번쩍이는 로봇을 바라보았습니다." => "돈을 가진 자에게만 공손하고 깎듯했지 저같은 아이에겐 조금도 눈길을 주지 않는 곳이지요. 오히려 그게 더 편했습니다. 상품 사이를 바람처럼 왔다 갔다 지나치며 옷 사기에 여념이 없는 사람들 틈에서 황금빛으로 번쩍이는 로봇을 마음껏 바라볼 수 있었으니까요."/ "저는 도저히 잠을 잘 수가 없었습니다. 저는 어머니가 보고 싶어 잠을 잘 수가 없었습니다." => "저는 도저히 잠을 잘 수가 없었습니다. 그날부터 내내 어머니가 보고 싶어 잠을 잘 수 없는 날들이 이어졌습니다. * "내 아들은 법적으로 등록되어있지 않기 때문에 나와 남편, 애인을 제외하고는 아무도 그의 존재를 모른다." - "출생신고를 하지 않은 내 아들의 존재를 아는 사람은 나와 남편, 내 애인 뿐이다." * "하마터면 범죄의 소굴로 들어가 죽을 때까지 고통스러운 삶을 보낼 수 있었잖습니까? 어머니의 가장 큰 걱정은 제 미래입니다." - "어쩌면 범죄의 소굴로 들어가 죽을 때까지 고통스러운 삶을 보낼 수도 있었을테니 말입니다. 어머니의 가장 큰 걱정은 제 미래였을 겁니다." : 6살에 잃어버린 어머니의 가장 큰 걱정이 나의 미래였다,는 단정은 다소 설득력이 떨어집니다. ** 잘 읽었습니다. 2016년과 2036년을 오고가며 전개되는 이야기네요. 그런데 과연 이 이야기는 '전개'되고 있는 걸까요? 작품 후반부 -자신이 버려졌던 백화점 근처에서 익숙한 향기와 조우하며 결국 잃어버렸던 기억(감각)을 떠올리게 된다는- 에서 이야기는 시작되고 있는 것 같은데요. 이런 생각을 하게 되는 이유는 그 앞의 이야기들이 버렸다와 버려졌다는 사실의 진술에만 주력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버린 자와 버려진 자의 진술을 하는 것에 20년의 간극을 둔 이유는 무엇인지 궁금합니다. 후각과 청각으로도 오래 전 일을 기억할 수 있다는 사실을 말하기 위해? 아니면 버려진 자가 버린 자를 이해하거나 용서할 수 있는 기간을 의미하기 위해? 또한 이 작품에서 애인 때문에 아이를 버릴 용기까지 냈던 여자가 아이를 되찾기 위해 돌아간 과정, 미아가 된 아이를 자신의 아이로 받아들인 경찰관, 6년 동안 철저히 아이의 존재를 감출 수 있었던 이유가 출생신고를 하지 않았기 때문이라 사실 등은 다소 개연성이 떨어져요. 예를 들어 "내 아들은 법적으로 등록되어있지 않기 때문에 나와 남편, 애인을 제외하고는 아무도 그의 존재를 모른다." 는 진술보다는 " 아들을 집 밖으로 데려나간 건 그 때가 처음이었다. 6년 동안 아들의 세상에 출현한 사람이라고는 나와 가끔 집에 들어오는 전 남편 뿐이었다. 울음소리조차 크지 않았던 아들에게는 내 품이 방이었고 우리가 살던 작은 방이 우주나 다름 없었다. 그 우주는 세계와 철저히 차단된 공간이었다. 출생신고조차 하지 않은 내 아이는, 그 우주에서조차 투명인간처럼 6년을 살았다"는 진술이 훨씬 더 납득하기 쉬운 표현이 아닐까 싶어요. 진술의 방식에는 여러가지가 있다는 것을 잊지 않으시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