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가가 되기 위한 글쓰기, <창작과 빈병> (배상문 저, 북포스 출판)
- 작성자 naR
- 작성일 2012-05-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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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년에 천 권?
이 책, <창작과 빈병>은 작가 지망생을 위한 글쓰기 노하우가 담긴 책이다. 나는 글을 쓰는 사람으로서 다른 사람들의 노하우를 배우기를 즐기고, 그래서 이 책을 읽고자 마음 먹었다…라고 하고 싶지만, 솔직히 말하자면 조금 다르다. 내가 이 책을 읽어야겠다고 생각한 결정적인 이유는, 책의 콘텐츠 이전에 작가소개의 한 구절 탓이었다. 정확히 말하자면 '10년이 넘도록 해마다 1,000여 권의 책을 읽으며'라는 구절이었다. 나는 글을 쓰는 사람 이전에 책을 미치도록 좋아하는 사람이었고, 나름대로 책을 많이 읽는다고 자부하는 사람이다. 그런 내가 1년에 평균적으로 읽는 책이 약 150~200권 정도다. (정확히 세어본 적이 없어서 모르겠지만, 일단 작년 한 해 도서관에서 빌려본 책만 138권으로 나오니 못해도 150권은 될 거다.) 어릴 때는 공부 안 하고 책만 읽었으니 그보다 더 읽었지 싶다. 그래도 천 권을 읽은 적은 없었다. 천 권, 그 숫자가, 독서광으로서의 내 호승심을 자극했다. '이렇게 책을 많이 읽은 사람이 무슨 소리를 하나 어디 한 번 보자' 비슷한 심보로 책을 펼쳤다.
50 : 50
책은 백 개의 꼭지로 구성되어 있다. 각각의 꼭지는 서로 다른 100인의 작가의 글을 인용하며 시작된다. 그러나 그 인용문이 글에서 크게 중요한 작용을 하지는 않는다. 각 꼭지의 내용과 절묘하게 어울리기는 하나, 작가의 말마따나, '백 권의 책, 달리 말하면 백 명의 작가를(p.4)' 독자에게 '소개'하는 성격이 더 크다. 어쨌든 핵심은 그 인용문과 직간접적으로 관련된, 글쓰기 노하우들이다.
진지하게 글을 쓰고자 다짐한 뒤로, 작법책을 많이는 아니지만 몇 권 읽어봤다. 수필집이나, 소설 뒤편 '작가의 말'에 나온 작가님들의 노하우나 창작관(?)도 제법 봤다. 그런 것들을 보며 느낀 점은, 글쓰기에 정도(正道)는 없을지라도 일정한 방향만큼은 존재한다는 사실이었다. 사소한 표현이나 방법에 있어서 차이가 없지는 않지만, 다독 다작 다상량을 기본으로 하는 그 방향성만큼은 뚜렷했다. 이 책에도 역시 그런 방향성이 있었다. 많이 읽고 많이 쓰고 많이 생각하고, 필사와 메모, 자투리 시간 활용 따위를 말하고. 그러나 역시 그것 뿐만은 아니었다. 그런 기본적인 이야기들과 더불어, 저자만의 고유한 생각들도 많이 포함되어 있었다. 저자의 말마따나, '절반은 그 책들과 비슷한 내용으로, 나머지 절반은 그 책들에 없는 내용으로(p.215)' 채워진 책이었다.
블로그 집필
'그 책들에 없는' 50% 중에서 가장 돋보였던 것은 '블로그'였다. 저자는, '지금까지는 '작가=책'이었지만, 앞으로는 '작가=책+블로그+트위터+팟캐스트'가 된다(p.37)'고 말하며, 작가가 되기 위해서는 ''신춘문예'를 꿈꿀 바에야 차라리 '파워 블로거'가 되도록 노력(p.38)'하라고 조언한다. 블로그와 직접적으로 연관된 꼭지가 그렇게 많지는 않았지만, 여러 꼭지들에서 기본적으로 블로그를 글쓰기의 장(場)으로 활용한다는 느낌이 배어났다.
<창작과 빈병>이라는 책 역시 저자의 블로그에서 먼저 연재되었던 글이다. 그렇다 보니 각 꼭지에 실린 글들에도 확실히 블로그 포스팅 같은 느낌이 서려 있다. 완성도가 떨어진다든가, 생각이 부족하다든가 하는 나쁜 의미는 결코 아니다. 분명 저자가 심사숙고해서 쓴 글들일 테고, 담겨 있는 내용들도 충분히 알찼다. 대신, 가벼움이랄지, 그런 느낌이 들었다. 편하게 한 손으로 턱을 괴고 한 손으로 마우스 휠을 내리며 볼 수 있는 글이라는 느낌? 각 꼭지의 내용이 짧았던 탓인지도 모르고 저자의 본디 스타일인지도 모르겠지만, 아무튼 읽으면서 '포스팅을 읽는 것 같다'는 느낌을 상당히 많이 받았다.
'작가가 되기 위한' 글쓰기
또 한가지, 다른 작법책들과는 다른 부분이 있었다. 내가 지금까지 읽은 작법책들, <문장강화>나 <안정효의 글쓰기 만보>, <우리 문장 쓰기>같은 책들에서 가장 중요한 포인트는 '글'이었다. 그 책들에는 글을 어떻게 써야 하는지, 어떤 글이 좋은 글인지, 문장을 어떻게 다루어야 하는지, 그런 내용들이 주가 되어 있었다. 그러나 <창작과 빈병>은 조금 달랐다. 이 책에서 말하고자 하는 것은, 적어도 내가 느끼기에는, '좋은 글을 쓰는 방법'이 아니었다. 그것보다는 '작가가 되는 방법'에 가까웠다. 머릿말 첫마디에서부터 '나는 작가 지망생을 위해 이 글을 쓰고 있다.(p.4)'고 운을 띄웠으니 어쩌면 당연한 일인지도 모른다. 그렇기에 작가는 '좋은 글쓰기'보다는 '작가가 되기 위한 글쓰기'에 초점을 맞췄다.
이렇게 말하면 너무 부정적으로 보일 것 같아 말을 덧붙이자면, 결국 좋은 글을 쓰는 사람이 작가가 되고 그렇기에 작가가 되기 위해 글을 쓰는 것은 곧 좋은 글을 쓰려는 노력이다. 다만, 미묘하지만 명백한 강세의 차이가 있다. 단순히 '글을 쓴다.'는 것이 아니라, '작가가 된다'라는 목표를 위해 '글을 쓴다.' 책을 읽다 보면 '작가가 되기 위해서는' '작가 지망생이라면' 따위의 말이 수도 없이 등장한다. 모든 과정과 조언의 바닥에는 '작가라면'이 깔려 있다. 다시 한 번 말하지만, 이 자체가 나쁘다는 것은 아니다. 애초부터 '작가지망생을 위해' 쓴 글이었으니, 창작 의도에 부합하는 일관성이라고 볼 수도 있다. 하지만 나는 책을 읽는 내내 그 점이 조금 껄끄럽게 느껴졌다. 본 의도는 아니었으리라고 생각하나, '글'이 작가가 되기 위한 '수단'처럼 여겨지는 면이 없잖아 있어보였기 때문이다.
이 책에서는, 일단 독자들이 '작가가 되고 싶다'는 소망을 가지고 있다는 것을 전제로 한다. 그러다 보니 작가가 되기 위해서는 좋은 글을 써야 하고, 신춘문예보다는 파워 블로거가 되어 자신의 매력과 실력을 어필해야 하고, 그러기 위해서는 이러이러한 방법으로 글솜씨를 갈고 닦아야 한다, 는 전개가 나올 수밖에 없다.
그러나 작가가 되려 하는 사람들이 모두 '작가가 되고 싶다'를 먼저 떠올리는 것은 아니다. 내 경우만 해도 그렇다. 나는 저자만큼은 아니지만 그래도 어린 시절부터 많은 책을 읽었고, 읽다 보니 내가 이야기를 만들고 싶어졌다. 그래서 머릿속으로 이야기를 꾸미다 그것을 끼적이기 시작했고, 점점 더 좋은 글을 쓰고 싶은 욕심이 생겼다. 그래서 작가가 되겠다고, 정확히는 죽기 전에 책 한 권은 내고 싶다고 마음 먹었고, 지금도 글을 쓰고 있다. 다시 말해 나는 글을 쓰는 것이 첫째 목적이고, '책을 내고 싶다'는 소망은 사실 '책으로 낼 만큼 좋은 글을 적고 싶다'는 소망의 다른 표현이라는 말이다.
어느 쪽이든 '좋은 글을 써서 책을 낸다'는 도착점은 같다. 그러나 그 도착점에 이르기까지의 출발점과 과정이 조금은 다르고, 나는 책을 읽는 내내 그 차이로 인해 조금은 불편한 마음을 가졌다.
조언들
세부적으로 들어가 보면, 조금 화가 나는 구절이 있었다. '작가 지망생들에게 펜으로 노트에 글을 쓰는 연습을 하라는 조언은 이 시대에 맞지 않다(p.336)'는 조언에서였다. 이 시대의 작가는 노트보다 컴퓨터를 다루는 게 좋다는 데는 동의한다. 그러나 나는 손글씨와 타자 사이에는 결코 어느 한쪽으로 통합될 수 없는 각각의 특징이 있다고 생각한다. 컴퓨터로 많은 작업을 한다 하더라도, 손글씨로밖에 담아낼 수 없는 그 무언가를 위해 노트에 글을 쓰는 연습은 해야 한다. 또, 손으로 글을 쓰고, 교정 부호를 사용해, 혹은 그저 두 줄 그어가면서라도 퇴고를 하고, 떠오른 생각들을 여백에 적고, 그러다 보면 노트는 그 자체로 하나의 '과정'이 된다. 컴퓨터를 사용하면 비록 편할지는 몰라도 그런 '과정'들을 잡아놓을 수는 없다. (지난 번에 김중혁 작가님의 특강에서 보니 스마트한 기계로는 컴퓨터 퇴고 과정도 기록할 수 있기야 했지만…….) 아무리 시대가 디지털로 바뀐다 해도, 언어를 도구로 사용하는 작가는 아날로그의 감성도 잊지 않아야 하는 것 아닐까. 디지털을 외면해서는 안되지만, 아날로그 역시 괄시해서는 안되는 게 아닐까. 조금은, 화가 났다.
그러나 그런 화나는 면보다는, 작가 지망생에게 충분히 도움이 될 만한 내용이 더 많았다. 언어의 폭력성에 주의해야 한다든가, 작가의 눈으로 세상을 봐야 한다든가, 보이는 글을 써야 한다든가, 그런 내용들을 읽으면서는 열심히 고개를 끄덕였다. 쓸데없이 어려운 표현을 쓰지 말라는, '먹물'이 되지 말라는 조언에서는 좀 많이 찔리기도 했다.
그 중에서도 가장 기억에 남는 조언이라면, '일단 좀 써라.(p.117)' '앞으로 일 년 동안 하루 20분을 투자해서 365장의 '생각 없이 쓴' 원고를 가져보라.'라는 조언이었다. 플롯에 치여가며 완벽한 글을 쓰는 것만을 바랄 게 아니라, 뭐라도 좋으니 매일같이 아무렇게나 글을 써보라는 말. 그러다 보면 뭔가 하나 건질 지도 모른다는 말. 최근의 나에게 상당히 필요한 조언이었고, 그래서 그 꼭지를 읽은 다음부터 냉큼 받아들여 실천하고 있다. (좀 찔린다. 실은 사흘 하고 시험 기간을 핑계로 멈췄다. 하교 버스 안에서 썼는데, 시험 기간의 버스는 너무 붐벼 시간 맞추기가 쉽지 않다, 는 핑계다. 마음을 다잡고 다시 시작해야겠다.) 아무튼 그런 '별 것 아닌 것 같지만, 도움이 되는' 조언들이 참 많다.
"돈 안 줘도" 하는 일
조언과는 조금 다르지만, 또 인상깊었던 구절이 있다. '"돈 안 줘도" 기어코 하는 일이 결국 당신이 원하는 정체성이다.(p.384)' '작가가 되려면 '작가'라는 타이틀에 대한 집착부터 버려야 한다. "취미나 자발적인 놀이, 또는 어떤 의미에서는 학습과도 같은 글쓰기"를 해야 한다.(p.386~p.387)'는 구절이다. '작가가 되기 위한 글쓰기'나 336쪽의 조언으로 인해 조금 부정적으로 돌아서던 내 마음을 단번에 되돌린 구절이다. '"돈 안 줘도" 기어코 하는 일'이라. 내가 지금 '성적 안 올라도/대학 안 보내줘도 기어코 하는 일'이 글쓰기가 아닌가. 열렬히 고개를 끄덕였다.
'2022년에도 서점에서 내 책을 찾았을 때, 비록 서가의 구석진 자리에라도 꽃혀 있다면 영광일 것 같다.(p.394)'도 공감가는 한 마디였다. 베스트셀러보다는 소수에게라도 꾸준히 읽히는 책. 내가 글을 쓰며 가장 이루고 싶은 소망이, '내가 죽은 뒤에 서점에서, 혹은 도서관에서, 가장 낮은 서가 눈에 잘 띄지도 않는 구석 자리에 내 이름 석 자가 박힌 책이 꽂혀 있고, 단 한 사람이라도 그것을 뽑아 읽고 웃거나 울었으면 좋겠다.'라는 것이다. 그래서, '2022년에도∼'라는 그 구절이 정말 반갑게 느껴졌다.
읽기 편한 책
<창작과 빈병>은 '작가 지망생을 위한' 글쓰기 노하우가 담긴 책이다. 저자 역시 10년의 광적인 다독 끝에 이제 막 작가로서 이름을 알리기 시작했기에(2009년에 첫 책을 내셨다.), 그 노하우들은 '수업'보다는 '공유'에 가깝다. 정립된 것들을 말하기보다, '나는 이렇게 했다. 해 보니 이게 좋더라. 이렇게 하면 더 좋을 것 같다.'를, 멀리 있지 않은 사람이 들려준다는 느낌. 앞서 말했던 '포스팅스러움'도 거리감을 좁히는 데 한몫 한 것 같고.
읽기 편한 책이다. 그러면서도 필요한 말은 거진 다 한다. 글쓰기에는 정도가 없다는 점을 감안해, 저자의 개인적인 견해에 대해서는 적당히 취사 선택을 할 필요가 있지만, 도움이 되는 책이라는 점은 틀림없다. '작가가 되기 위한' 책이라 해도, 나는 그 조언들을 가지고 '좋은 글을 쓰기 위해' 노력하면 그만 아닌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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