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으로 바로가기 주메뉴 바로가기

대한민국 태극기 이 누리집은 대한민국 공식 전자정부 누리집입니다.

공식 누리집 주소 확인하기
go.kr 주소를 사용하는 누리집은 대한민국 정부기관이 관리하는 누리집입니다.
이밖에 or.kr 또는 .kr등 다른 도메인 주소를 사용하고 있다면 아래 URL에서 도메인 주소를 확인해 보세요.
공식 누리집 확인방법

성화(腥火)

  • 작성자 Ariel
  • 작성일 2011-05-08
  • 조회수 542

성화(腥火)

 

 

 

 

 그 때에 우리는 뒤를 돌아보지 말았어야 했다.

아니면 내가 그 길을 지나가지 말았어야 했거나, 혹은 그가 그 자리에 없어야 했던 것이 옳았다. 로마가 사랑하는 불의 여신, 베스타를 추앙하기 위한 축제가 한참이었던 어느 꿈과도 같은 날 밤에, 수많은 인파 속에서 왜 하필 우리는 서로와 마주쳤어야만 했었는가? 가느다랗게 떨리는 두 손에서 그의 맥박 소리가 고동친다. 대리석 조각을 깎아내린 듯이 하얗고 그리고 단단했다.

 

****

 

 나는 행복해 하곤 했다. 나를 감시하던 이들 위로 까만 장막이 드리워질 때마다, 그의 쇄골에 얼굴을 묻고는 언제나 나만의 것이었던 그의 온기를 느낀다. 규칙적으로 뛰는 그 사람의 심장 소리. 따뜻한 살결에서 익숙한 향이 물씬 풍겨졌고 영원할 것만 같은 시간이 흘러갔다.

 그가 곁에 있어.

 나와 함께 하고 있다는 사실 하나만으로도, 그의 존재만으로도 내겐 위로가 되는 걸. 처음이자 마지막이 될, 그리고 처음부터 마지막까지 이기적일 나의 사랑.

 아련히 비치지는 햇살과 종달새의 울음소리로 우리들의 새벽은 시작되었다. 이른 시각, 잠에서 깨어날 때 마다 나는 불안감에 떨어야만 했기에. 허락되지 않은 선을 넘었다는 것에 대해, 이제는 더러워져 용서 받을 수 없을 거라는 두려움에 사로잡혀 감정이 북받쳐 올랐다.

“용서받지 못할 거야.” 내가 울먹이며 말했다.

“내게는 보여. 우리 사랑의 결말이.”

사실 알고 있었어. 조그맣게 흐느끼는 내게 괜찮다고 속삭여 주던 당신도. 당신도 사실은 울고 있었다는 걸.

 

****

 

 그 따뜻한 목에서 고동소리가 느껴진다. 아무런 힘이 들어가지 않는 손아귀. 거기에 조금이라도 힘을 줬다간 그가 아니라 내가 베어질 것만 같았다.

이젠, 돌아갈 수 없어.

그렇게 난, 반듯하게 누워있는 그의 위에서 울 것 같은 표정으로 그를 바라보았다.

그는 아무런 저항도, 움직임도, 말도 없었다. 그저 나를 바라볼 뿐이었다. 언젠가 이런 날이 찾아올 것이라는 걸 예상했었다는 듯이. 한결같은 그의 눈에서는 어떠한 원망도, 체념도 전해지지가 않았다.

사랑해

 입을 열어 소리를 뱉어낸 것은 아니었지만 나는 들을 수 있었다.

당신을 사랑하고 있어.

 그가 손을 뻗어 나의 뺨을 어른다. 이마에서부터 코끝, 입술까지 내려와 다시 한 번 얼굴을 감싸 안아주었다. 들리지도 않는 그의 목소리를 들으며 시간이, 눈물이 흘러간다. 조금씩, 아주 조금씩 그를 조여 가며. 달콤하면서도 끝내 뿌리칠 수 없는 죄악의 희열을. 저린 마음 한 구석에 집착하며.

내게 사랑한다고 말해줘.

 내가 지금 보다 더 어렸다면 우리가 마지막으로 도달할 종착점은 과연 어떠하였을까? 아무것도 몰라 천진난만하게 거리를 뛰놀며, 모든 사람들이 내게 던지는 찬사와 축복 속에서 그저 마냥 즐거웠더라면. 만약 내가 지금 보다 조금 나이가 많았더라도 지금보다는 행복할 수 있었을까. 내게 가지고 있는 것들의 가치를 알고 또 함부로 모든 걸 내던지지 않을 정도로 이성적이었더라면.

안타깝게도 그 때의 나는 그러지 못하였다. 누군가의 사랑 없이는 살아갈 수 없을 정도로 어렸고, 또 그것에 충분히 헤어 나오지 못할 만큼 성숙했었기에.

사랑하니까 죽일 수 있다.

떨어지는 눈물방울로 그의 얼굴이 더럽혀져 갔다.

왜 가만히 있는 거야.

그는 그저 아무런 대답 없이, 빙그레 웃어보였다.

당신이니까.

그가 미웠다.

나의 모든 것을 잃게 해 놓고서는, 나의 모든 것을 빼앗아 놓고서 어째서 당신은 그토록 사랑하는 연인에게서 그리도 행복하게 떠날 수 있는 것인가?

 

 

베스타의 더러운 불꽃이 사그라져 가듯, 그의 맥박이 희미해져 갔다.

 

***

 

 모두가 나를 쳐다본다.

 전과는 사뭇 다른 눈빛으로 모두가 나를 경멸한다. 그리곤 비난한다. 더러워진 성녀라며. 이제 곧 나는 벌을 받게 되겠지. 그것이 법도이기에. 돌이킬 수 없는 죄를 범하였고 신을 모독하였음으로 나는 처벌될 것이다.

하지만 왜?

나는 단지, 그 사람을 사랑했었을 뿐인데.

어찌하여 신께서는 이리도 연약한 나를 그와 만나게 하시고는 그것을 엄숙히 죄라고 단언 하신단 말인가.

 저 높은 계단 위에서 신관님께서는 포박당한 나를 내려다보시며 이미 충분히 알고 계신 사실에 대해 또다시 신문하신다.

“당신은 진실로 여신과의 맹세를 깨뜨리고 성스러운 의무를 져버렸으며, 성녀로서의 고귀한 신분을 망각하는 죄를 범하였는가?”

그렇습니다.

조용한 신전 안. 그 어느 때보다도 평온하고, 또 온화한 목소리가 울려 퍼졌다.

“마지막으로 다시 한 번 묻겠다. 지금까지 고발된 내용에 대해 인정하고 받아......”

존경하는 신관님. 당신은 이미 알고 계십니다.

그가 원망스러운 눈초리로 나를 바라본다.

-아니라는, 딱 한마디면 될 것을. 모함이라며 필사적으로 목숨을 구걸했으면 차라리 좋았을 것만. 그랬더라면 모든 죄는 죽어버린 그에게 뒤집어씌울 수 있을 텐데.

어리석구나, 신이 애오(愛惡) 하는 처녀야. 비록 원래의 삶으로 돌아갈 순 없을 테지만 영원히 내 곁에서 평안을 누릴 수 있었을 것이다.

-제가 어떻게 감히 그 사람을 져버릴 수 있겠습니까.

부디 한 시라도 빨리, 속죄 할 수 있기를 바랍니다.

 신관님께서는 더 이상 내게 미련을 보이지 않으시며 마침내 걸음을 돌리셨다.

 면류관과도 같은 밧줄이 나의 작은 손목을 옥죄어 온다. 로마의 신병들이 나를 어디론가 끌고 갔다. 마치 ‘신을 위하여’라는 그럴 듯한 명목아래에 죽어가는 어린 양처럼. 솔직히 그 어린 양에게 무슨 죄가 있겠는가.

 아아, 이것으로도 마지막이 되겠지. 아름다운 이 신전 위를 걷게 되는 시간은. 신전 한 가운데를 차지하는 화롯불 가에서는 그저 타닥타닥 불꽃이 튀어 오르는 소리만이 가득했다.

 사실, 기뻤다.

한 때 사랑했던 고향사람들을 떠나는 건 아쉬웠지만 이제 곧 닥쳐올 고통스러운 죽음의 그림자가 몸서리 칠 정도로 두려웠지만 그것들을 다 삼켜버릴 수 있을 만큼.

 나는 기뻤다.

 조금만 기다려요. 이제 곧 나도 당신의 곁으로 가니까.

나와 함께 가요. 영원한 우리들만의 낙원으로. 영원히, 행복하게. 당신과 나와의 사랑은 저 꺼지지 않는 성화처럼, 감히 누가 건들 수 없을 정도로 뜨거웠고 또한 모든 것을 태울 만큼 순수했었어요.

한 걸음 한 걸음. 조심스럽게 발걸음을 옮겼다. 이제 다시는 돌아 올 수 없을 테니. 내 삶의 마지막이 될 이 장면을 두 눈에 새겨 영원히 기억하리라.

이젠 네가 나의 모든 것을 가지게 되었구나.

수많은 군중들 속 몸을 숨기고는 안절부절, 나를 지켜보던 그녀에게 말을 건네었다. 처음으로 이 곳에 끌려와 그 사람과의 관계가 탄로 났었을 때에도, 그녀 때문이라는 것은 진작 알고 있었다. 나를 시기하고 내가 가진 것들에 대해 질투했었던.

하지만 널 원망하진 않아. 너로 인해 나의 사랑은 완전해 질 수 있었어.

나는 부디 그녀가 나 때문에 죄책감을 느끼지 ‘않도록’ 어느 때보다도 평안한 웃음을 지어주었다. 그녀는 여섯 명의 성녀 중 -이젠 다섯 명이겠지- 하나였다. 탐욕에 눈이 멀어버린. 그래서 나와 그라는 존재를 고발해 버린 나의 사랑하는 옛 친구.

앞으로도 영원할 네 삶을 축복할게. 사랑이란 이름의 저주를 평생 알지 못하며. 혼자 외롭고 쓸쓸하게 너는 천년토록 살아가게 될 거야.

 

 

***

 

꽤 오랫동안 이 형벌이 시행된 적이 없다고 한다. 그만큼 괴롭고 고통스러우니까.

하지만 결국엔, 불순한 성녀에게만 내려진다는 이 벌은 앞으로도 많은 이들을 괴롭히며 유지 될 것이다. 로마가 멸망하여 신전이 무너지고 그 기둥이 모래가 되어 사라지게 되는 그 순간까지도.

 내게 있어 사랑이란 그런 것이니까.

살갗이 넝마조각처럼 헤질 것 같은 매질을 이겨내고 나는 지금 광야로 걸어나고 있다. 기계적으로 내딛는 발걸음은 이미 나의 통제를 벗어난 상태이다. 이제는 고통마저도 희미해져가 무언가에 홀리듯 그렇게 나는 마지막을 향해 나아간다.

 이렇게 쓸쓸하고 황량한 벌판에 그 사람이 없다는 것이 정말 다행이었다. 그와의 추억들이 아로 새겨진 육체, 그것을 위한 관을 짊어지고서.

한 걸음에 사랑을 새기고 또 다른 한 걸음엔 그를 노래하며 다시 내걸은 한 걸음으로는 영원의 행복을 기도한다. 새벽녘이 와도 결코 사라지지 않을 환상을 위해. 이제 나만이 남은 것이다. 나만....... 떠나면 되는 것이다.

 모래바람에 지쳐 쓰러질 것만 같아도, 발의 살갗이 모두 벗겨져 아파 괴로웠지만 그래도 나는 걸어간다. 그가 바람이 되어 나의 등을 떠밀어 주는 것 같았으니까. 드디어 어느 무덤구덩이에 도착했다.

사랑하니까 죽을 수 있다.

다행이었다. 사랑하는 그 사람은 이런 수모를 겪지 않았으니. 이런 건, 나 혼자만으로도 충분했다. 하루, 이틀만 기다리세요. 우리가 영원히 행복해 할 곳은 그 어떤 규율도 형벌도, 제멋대로 질투하는 여신도 없을 테니까요.

 

 언제나 당신을 생각해요. 마지막으로 당신이 내게 선물해주었던 소박하고 아름다운, 당신처럼 망가져버린 토가를 입고서. 전에는 새하얀 눈과도 같은 옷감은 이제 지워지지 않을 핏물로 물들여졌고 반쯤 찢어졌지만 그래도 나의 최후의 순간을 아름답게 장식해 줄 것이다. 이 옷에선 당신이 느껴지니까. 마지막으로 채찍에 해져가는 천 주름을 바로 잡으려 이리 저리 둘러보았다. 그러다 얇은 금박으로 장식 해둔 치맛단에서 뭔가를 발견했다.

새까만 액체가 담겨진 작은 병.

 

아아. 지금 만나러 갈게요.

 

 만나는 그 순간부터 파멸을 향해 걸어 나가고 있었던 우리의 사랑은 드디어 마지막을 고하게 되었고 슬픔의 노래를 부르며, 영원히 지지 않은 꽃들 속에서 새롭게 시작하게 된다. 저 때 묻지 않은 비릿한 불꽃처럼, 이곳을 벗어나 영원함을 떠돌며 이제 비로소야 나는 행복한 결말을 품 안에 안을 수 있다.

 

 내가 그랬었던 것처럼.......

당신 또한 나를 죽일 만큼, 죽을 만큼 나를 사랑했었기에.

 

 

Ariel
Ariel

추천 콘텐츠

Time After time

Time After Time        그것은 끝없이 이어지는, 까마득히 아련한 한(恨). 언제부터인가 눈을 떠 본 그곳은 짙푸른 어둠만이 자리 잡아, 그 어떤 빛깔도 움직임도 없는 고요한 혼돈이었다. 지금 내가 여기서 보고 있는 것들이 과연 진실로 보여 지고 있는 것인지 아니면 단순히 잊고 지냈던 것들에 대한 환상인지, 그 조차 나를 혼란스럽게 한다. 바람도, 그렇다고 어느 이의 부드러운 손길도 아닌 것이 쉬지 않고 나를 스쳐 지나간다.  아, 아. 나는 이것을 시간이라 부르겠다.  비록, 본디 시간이라는 것은 이렇게 드러낸 살결에선 느껴지지 않다 하더니만 지금 이것이 어떤 상황인지 또 내가 어디에 있는지 알 길이 없어 잠시 그의 이름을 빌려 온 것이다. 현재로서 내겐 ‘안다는 것’의 혜택을 부여 받을 수 없기 때문이기에. 그와 함께 흩날리는 까만 머리카락처럼, 다만 나의 얕은 앎으로 확신할 수 있는 것은- 만약 내가 아직까지도 이 세상에 존재하는 것이라면 -시간만은 반드시 흐르고 있다는 것이었다. 손끝에서부터 퍼지는 그 흐름의 감촉이 어느 덧 익숙해졌다. 그저 하릴 없이, 보이지도 않는 아득한 수평선만을 바라보며.  얼마나 시간이 흘렀을까.  조금씩 뱉어내는 짧은 호흡을 느끼며, 나 자신이 살아 있다는 것을 자각하게 되었고 짙은 어둠 속에서도 시야가 적응이 되었는지 점점 무언가가 뚜렷하게 구분되기 시작하였다. 쪽빛에서 코발트블루, 그리고 하늘색이 되더니만 투명한 초록이 되어, 아!  나는 새로운 사실을 깨닫게 되었다. 내가 전에 시간이라고 부르던, 그 아름다웠던 흐름은 그저 바닷물에 지나지 않았다. 더욱이 나 자신이 ‘사람’이라고 믿는 시점에서 물속의 고통으로부터 자유로울 수 있던 것에 대해서도 그다지 놀라워하지 않았다. 지금에 있어서 내게 가장 중요한 것은, 내가 어떤 형태이던, 여기엔 나 혼자라는 것이다.   끝없이 이어지는, 까마득히 아련한 한(恨).   나는 인어(人魚)였던 것이었다.   ***    한(恨)이라기보다는 억원(抑冤)에 가까웠다.  그 이유는 알 수 없지만 온전히 정신을 차린 후. 어둠 속에서 해매지 않게 되었지만 그래도 나는 괴로워해야만 했다. 차라리 색감을 구분 할 수 없던 좀 전의 삶이 그리웠다. 아무것도 보이지 않아 아무것도 느낄 수 없었던 그런 무지의 평온함을 간절히 바라고 바라며. 어느 순간 들이닥친 묘연한 감정이 뒤섞기며 나는 억울함에 목이 메어 감히 우는 소리 조차 낼 수 없었다.  무엇이 잘 못 된 것일까, 무엇이 잘 못 된 것일까. 내가 왜 이러는 걸까.  수 없이 같은 질문만을 되풀이 해 보아도 나는 결코 그 해답에 도달 할 수 없었다. 오로지 내가 기억하는 건, 한 때 내가 사람이었다는 것과 그리고 지금 내가 가지고 있는 이 기분. 단지 그것 뿐.  감히, 한 때 사람이었던 하찮은

  • Ariel
  • 2011-05-14
이데아- 변하지 않는 진실

 "안녕"학교에 도착한 직후. 여느 때와 다름없이 힘없는 나의 인사는 소란스런 소음 소리에 먹혀버렸다. 아무런 침울함도 애도의 분위기도 바란 건 아니지만 이건 아니라는 생각이 든다. 그 사실을 아는지 모르는지....... 마냥 웃고 떠들며 좋다는 반 애들의 소리에 화가 끓어 온다. 그러고도 너희들이 친구들이라고 할 수 있니? 'In the end, I want to be happy'"아~ 그 일 때문에 우는 거야? 그러고 보니 은정인 한나랑 많이 친했지." 난 내 귀를 의심하지 않을 수 없었다. 잔인하게 내 가슴을 휘어파는 이기적인 그들의 발언. 자신과 상관없어 괜찮다는 무심한 그 한마디에 순간 현기증으로 어지러웠다. 윤한나. 나랑 같은 16살 중학교 3학년 같은 반 친구. 중학교 때 처음 만나 지금까지 아니 어제까지만 해도 세상에 둘도 없는 친구였다. 보통 애들같이 나랑 레슬링(?) 하는 것을 가장 좋아하고 항상 귀찮고 배고프고 졸려워 하며, 내 연애 상담 같은 비밀 정도는 충분히 공유해 줄 수 있는 사랑스러운 친구였다. 그런데 그런 그녀가 자살을 하다니! 필시 다른 사연이 있었을 것이다. 그 고통스러운 사연이 그녀를 벼랑 끝으로 내몰았을 것이게 이런 결과가 있었다고 굳게 믿는다. 오전에 비가 많이 내렸던 탓인지 별 없는 밤하늘은 무척이나 맑았다. 그리고 시원하게 내 얼굴을 감싸는 겨울바람과 달. 내 머리 위에 별 하나 없이 홀로 떠 있는 둥근 보름달은 세상을 집어삼킬 듯이 빛났지만 차마 내 방까지는 그 달빛이 머무르지 못했다.'똑 똑 똑'어머니께서 아직 안 주무셨나. 누군가 굳게 닫혀있던 내 방문을 두드렸다."문 열어 강은정. 나야.""아 네. 네"역시 나는 나답게 아무 생각 없이 방문을 열었다. 그러나 거기에 서 있는 사람은 결코 어머니나 아버지가 아니었다. 드르렁 코골이 소리를 뒤로 한 채 내 눈에 보이는 것은, 아무리 눈을 비벼 봐도 내 앞에 서 있는 사람은 한나였다. 한나는 한참 내 눈을 쳐다본 채 아무런 말이 없었었다. 끝내 피식하고 웃음을 뱉어놓고 말했다. "그래. 맞아. 나보다 더 힘들고 더 지친 사람들은 많겠지." 그녀의 뜻밖의 대답에 나는 말문이 턱 막혔다. 그리곤 한나는 마주 편에 걸려있는 조그마한 졸업사진을 바라보며 내게 물었다. "도대체 그 무엇이 널 이렇게 만들었지?"난 한나의 기에 눌리지 않으려고 당당하게 물어보았다. 그녀가 귀신이든 죽은 사람이든 결코 신경 쓰지 않는다. 다만 먼저 간 친구의 심정을 캐내려고 싶을 뿐. 지금 얼마나 땅을 치고 후회할 짓을 저질렀는지 깨닫게 해 주고 싶었을 뿐이었다."너를. 너를 사랑하는 사람들이 얼마나 많은데! 오늘 아침 학교에서도 내 안의 무엇인가가 무너져 내리는 그 처절한 심정을 네가 알기나하고 그런 소리를 지껄이냐고! 나뿐만이 아니야. 담임선생님도 얼마나 슬퍼하셨는데. 네가 그 장면을 봤어야 했어. 그리고 너희 부모님과 동생은? 언니 잃은 슬픔과 자식 잃은 부모님 심정이 얼마나 천 갈래 만 갈래 찢어지는 줄 네가 상상할 수 있을까? 그래. 지금 와서 내

  • Ariel
  • 2009-07-07

댓글 남기기

로그인후 댓글을 남기실 수있습니다.

여러분의 생각을 남겨 주세요!

댓글남기기 작성 가이드

  • 타인에게 불쾌감을 주는 욕설, 비방 등은 삼가주시기 바랍니다.
  • 주제와 관련 없거나 부적절한 홍보 내용은 삼가주시기 바랍니다.
  • 기타 운영 정책에 어긋나는 내용이 포함될 경우, 사전 고지 없이 노출 제한될 수 있습니다.
0 /150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