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으로 바로가기 주메뉴 바로가기

대한민국 태극기이 누리집은 대한민국 공식 전자정부 누리집입니다.

공식 누리집 주소 확인하기

go.kr 주소를 사용하는 누리집은 대한민국 정부기관이 관리하는 누리집입니다.
이 밖에 or.kr 또는 .kr등 다른 도메인 주소를 사용하고 있다면 아래 URL에서 도메인 주소를 확인해 보세요.
운영중인 공식 누리집보기

12월 월장원 발표

  • 작성자 고래바람
  • 작성일 2015-12-31
  • 조회수 616

12월 월장원을 발표합니다.

 

첫째주/
류즈, <늪지소년> :  시가 생동감이 있고 톡톡 튀는 군요. 표면으로 드러난 것만으로 잔혹한 사건을 유추하도록 하네요. 이런저런 상상의 나래를 펼칠 수 있다는 것은 좋은 것 같아요. 그렇지만 심리적인 정황만으로는 왜 소녀가 소년인 척해야 하고 다시 소녀로 남아야 하는지, 시적화자는 왜 늪지로 스며들어야 하는지 근거가 더 필요해요. 그렇지 않으면 시적 의도를 이해하기 어려워지거든요. 이유 없는 행동이 없듯 어떠한 근원적인 이유들이 더 드러나면 어떨까요. 늪이나 악어떼가 상징적인 공간이겠지만 다소 모호한 느낌이 든답니다.
투또우, <깜빡> : 눈을 깜빡이는 것 자체가 '살아있다'고 우리의 존재를 말해주기도 하죠. 투또우 님의 시가 존재론을 펼치고 있는 것 같습니다. 이때 삶과 죽음이 빠줄 수 없는 거대한 물음으로 다가올 수밖에 없겠죠. 시적화자의 진술이 너무나 복잡한 언어로 꾸며진 것 같아요. 장식적이라는 느낌도 듭니다. 차분하게 깜빡이는 것을 묘사하면서 시적정황에서 자연스레 나오는 진술이 있었다면 더 공감이 가지 않았을까 싶어요. 그렇게 된다면 죽음은 암시적으로 묘사 속에서 나올 것이라 믿어요. 아, 1연에서 '계단을 오르고 아침을 먹고'는 '~먹을 때'라고 하는 게 다음 행과 호응을 이루지 않을까요. 시의 소재가 좋으니 묘사에 더 치중을 해보세요.

 

둘째주/
투또우, <갓난여인> : 저는 우리 사회에서 가장 슬픈 일 중 하나를 청소년이 화장실에서 몰래 출산하는 일이라 생각합니다. 이 시가 그러한 이야기를 들려주고 있지 않나 생각하니 씁쓸해지네요. '토마토'라는 시어를 새롭게 의미부여해 재탄생시켰군요. 어색하지 않고 잘 어울려서 좋았습니다. 그런데 여인의 삶을 너무나 설명하고 있지 않나 싶어요. 오히려 '몸을 웅크렸다'고 했듯 행동 언어로 시를 풀어나갔다면 더 좋지 않았을까요. 시로 삶을 담기에는 시가 짧죠. 투또우 님이 들려주고 싶은 이야기를 토마토로 충분히 형상화할 수 있답니다. 진수미 시인의 '바기날플라워'와 유병록 시인의 '붉은 달'이 떠오르네요.

 

셋째주/
은빛나래, <8번 버스> : 무한대 기호 '∞'를 숫자 '8'로 의미화한 듯 싶어요. 마지막 연 '8의 궤도'에서 의도를 감지해봤습니다. 우리가 사는 이 시간은 한시적이나 우주의 시간은 무한대로 흘러가죠. 하루의 일과를 마치고 귀가하는 시적화자의 사유가 잘 나타났습니다. 시적인 표현도 잘 어울리고 이미지가 정갈해서 좋았습니다. 그러나 4행과 6행이 사족처럼 느껴졌습니다. '네온사인'이 밤의 시간과 풍경을 보여줄 수 있지만 시의 흐름에 방해가 되는 듯 싶어요. '얼룩진 창문'도 불특정한 공간인데 가로등이 빛을 피우기 위해 얼룩을 등장시킨 듯 싶구요. 마지막 연의 '걷는다'는 표현을 더 고민해보면 어떨까요. 5연에서 '몸을 싣는다'고 했으니 화자가 8번 버스 안에 있는 것 같은데 '걷는다'보다 더 좋은 표현이 나오지 않을까 생각해봤어요.

 

마지막주/
폴란드미용실, <표범나비> : 이번에는 할아버지의 삶을 그렸네요. 폴란드미용실 님은 이야기를 끌어가는 힘이 있습니다. 글을 잘 쓴다는 느낌도 들지만 서사 속에 묘사들이 너무 장황해 보입니다. 목수였던 할아버지가 경비가 된 지금 "다시 목수 일을 할 수 있다는/대이변이 일어나길 꿈꾸며" 살아간다는 시적 전개에서 시인의 개입이 너무 많지 않나 싶어요. '표범', '나비' 그리고 '표범나비' 등의 상관물들이 시적 의도를 드래내는 비유적 대상으로 활용되었지만 이미지가 흩어지는 느낌이 듭니다. 애당초 할아버지의 삶을 다 그리려고 했던 것이 오히려 집중력을 잃게 만든 게 아닐까 싶어요. '할아버지'에 집중해서 시를 쓴다면 경비실에서부터 비롯해 지문을 잃은 손가락으로 전개되면서 할아버지의 삶을 압축시키는 것도 괜찮을 것 같아요. 저는 '나비'가 이 시에서 큰 효과를 거두고 있지 않다고 봅니다. 만약 '나비'에 집중해서 쓴다면 누군가의 삶을 은유화할 수 있지 않을까 싶어요.
Mobius, <새하얀 크리스마스> : 첫 연부터 아주 강력합니다. 얼마 전 성탄절을 보내고 이 시를 읽으니 본래의 의미가 사라진 자리에 자본주의가 채웠구나 생각이 듭니다. 낯선 프로그램 용어로 채워진 시가 더 효과적으로 다가오는 것 같아요. 마치 인터넷 글처럼 '[보기] [삭제]'로 선택할 수 있는 현실까지 느껴집니다. 그간 실험시들이 많는데 이 시는 명확한 주제를 갖고 있어서 좋습니다. 다만 5연이 약간 모호하답니다. 더 이미지로 드러내면 좋겠어요. 4연과 6연을 붙여서 읽으면 호응이 되는 듯 싶군요. 더욱이 낯선 용어를 쓸 땐 몇 번 더 숙고하시고 시 아래에 부연설명을 꼭 넣어주세요. 시가 읽기 쉬울수록(허나 내포된 의미망이 넓을수록) 좋은 시에 가깝답니다.

 

이번달 월장원으로 <새하얀 크리스마스>가 선정되었습니다. 다들 시를 잘 써서 우열을 가리기 힘들었지만 가장 참신하고 인상적인 시를 장원으로 선정했답니다. 12월 말일입니다. 올해도 시 쓰면서 공부하느라 수고 많았어요. 내년에도 즐겁게 만나요. 참, 월장원하신 Mobius 님에게는 문화상품권(10만원 상당)을, 주장원들에게는 김해자 시인의 시집 <집에 가자>를 증정하겠습니다.

 

* <시 쓰면서 뒹굴, 댓글 달기 캠페인> 이벤트 당첨자는 지난 달에 이어 슈슈엘 님이 다시 선정되었습니다. 글틴 친구들의 시에 늘 관심을 갖고 댓글 남겨주세요. 슈슈엘 님에게도 주장원과 같은 시집을 증정하도록 하겠습니다.

고래바람

추천 콘텐츠

작별인사합니다

안녕하세요. 고래바람입니다.   정든 글틴 친구들에게 작별인사를 합니다. 글틴 친구들의 습작시를 읽으면서 한 세월을 보낸 듯 해요. 막상 시 멘토를 마무리를 하려니 여러 친구들의 이름이 스쳐갑니다. 첫 인사를 나눈 게 엇그제 같은데, 그 사이 몇몇 친구들은 졸업을 했고 몇몇 친구들은 새로 합류하기도 했죠. 수없이 많은 친구들을 시로 만났네요.   나중에 습작을 했던 이 시절을 돌아보면 오롯이 백지와 싸웠던 무수한 나날들이 떠오를 겁니다. 그러니 시를 쓰는 것이나 시를 읽는 것이나 맘껏 즐겼으면 좋겠어요. 시 습작을 즐길 수 없다면, 만약 입시나 시상에만 마음을 뺏긴다면 시에 대한 초심으로 돌아가보세요. 제 초심의 시는 '외로움을 함께(위로)해준 친구'입니다.   여기서 저는 처음 시를 썼던 고교시절과 조우하기도 했어요. 빈 노트에 낙서를 하듯 끄적였던 시, 감성에 젖어 감정을 고스란히 노출시켰던 관념과 상념의 시, 하루에 세 편 이상을 거침없이 토해내듯 썼던 시 등등. 제 마음을 가장 알아주는 친구라고 여겼지만 일방적인 제 마음만 풀어놓은 관계이기도 했어요. 이듬해 시인이었던 국어 선생님이 학교에 오셨고 담임이 되었죠. 저에겐 행운이었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저는 노트 한 권 분량의 시편들을 선생님에게 보여드렸는데 불량식품에 비유를 했어요. 얼마나 열받고 속상하던지 저는 이를 악물었죠. 보란듯이 좋은 시를 쓰겠다는 오기도 생겼던 것 같아요. 아마 그때부터 시집을 읽고 일주일에 한 편씩 시를 써서 선생님을 찾아갔어요. 근데 얼마 지나지 않아 시 쓰기가 너무 힘겹고 어려워졌어요. 이전에 매일 썼던 시가 왜 불량식품인지 깨닫는 순간 창작의 고통이 밀려왔기 때문입니다. 더군다나 선생님은 제 시에 대해 장단점 등 자세한 설명을 한 적이 없었어요. 단지 '관념적이다', '모호하다' 정도의 메모와 빨간펜으로 문장을 삭제한 줄만 가득했답니다.  이상한 것은 한마디 메모와 삭제되지 않는 문장 한두 줄만으로 선생님이 무엇을 말하는 것인지 느껴졌다는 겁니다. 그렇게 저는 아주 조금씩 시에 눈을 뜨기 시작했고 시에 몰입하면서 시의 즐거움을 배웠던 것 같아요.   지금도  시가 친구라는 제 초심이 변하지 않았어요. 계속 시와 함께했으니까요. 때론 시가 제게서 멀어졌고 때론 제가 시를 멀리하기도 했으나 돌이켜보면 시는 제 곁에서 떠난 적이 없었어요. 당연한 말이지만 시와 저는 일방적인 관계가 아니라 동등한 관계에서 함께했던 것 같아요.  글틴 친구들도 시와 어떤 관계인지 한번 생각해보세요. 나아가 시를 왜 쓰기 시작했는지, 나에게 시가 무엇인지, 나는 시에게 무엇인지 등도요.   이번에 새로 오시는 시 멘토 선생님은 멋지고 훌륭한 분이랍니다. 아마도 여러분들에게 즐거움과 자극을 선사하지 않을까 싶어요. 늘 응원할게요.   다시 만나길 기대하며, 2017년 겨울에.

  • 고래바람
  • 2017-12-06
10월 월장원 발표

고등부 월장원을 발표합니다         첫째 주 /   백색소음, <마트료시카> : 시가 여운이 있군요. 인상적으로 봤어요. '우리는 누군가의 생의 오지'가 좋았습니다. '마트료시카'가 주는 이미지와 (글을 쓰는 듯한) 시적화자의 개인적 사유가 맞물리고 있어요. 화자의 상황이 더 부각되면 좋겠어요. 화자가 깃털이나 앵무새로 비유된 것이 분명한 이미지를 그리지 못해 아쉽네요. 다소 이미지들이 모호하거든요. 또한 '생활이 없는 이곳'과 '우리'를 구체화시켜보면 어떨까 싶어요. 은유적인 선명한 정황이 펼쳐질 수 있을 듯해요.     둘째 주 /   멜랑콜리다성, <뼈 같은 너에게> : 재밌게 읽었어요. 뼈와 살의 관계를 내밀하게 표현한 시였답니다. 시적화자 안에 '너=뼈'가 있다면 죽어서야 뼈 안으로 화자가 들어간다는 것이 시적이랍니다. 그럼에도 툭툭 튀어나온 시어들이 걸리기도 해요. '여름', '파도', '외곽' 등이죠. '영혼처럼 흘러버리고'는 좀 더 생각해봐야 합니다. 무형의 영혼이 어떻게 흐르는지 감이 오지 않거든요. 오히려 '파도처럼 넘실거리'는 모습은 형상화가 되니 괜찮답니다. 그러나 제목이 '뼈 같은 너에게'라고 했기 때문에 창작자는 '너'를 '뼈'로 비유했다고 못 박는 느낌이랍니다. 차라리 '뼈'라고 했다면 '너'에 대한 의미의 확장력이 있었을 듯해요. 독자는 뼈를 보면서 뼈와 같은 누군가를 상상할 테니까요. 좀 더 내밀한 '너'를 상상하면서 감상하겠죠. 직유법을 자제하면서 시를 써보면 묘사가 더 좋아질 거랍니다.   셋째 주 /   물개맨, <목에 물음표를 걸고> : 제목이 인상적입니다. 본문에서도 물음표를 형상화한 것도 좋았습니다. 근데 시가 길다고 해서 무조건 좋은 게 아닙니다. 긴 시는 긴 시 나름의 긴장감과 리듬이 있고 짧은 시는 짧은 시 나름의 긴장감과 리듬이 있어요. 형식과 내용의 차이나 취향대로 선택할 뿐입니다. 물론 짧은 시는 긴 시보다 이미지가 응축, 압축돼 있어서 시의 맛이 살아난답니다. 참고하시면 좋을 듯해요. 이 시는 시적화자가 '너'와 싸우고 멀어진 일을 후회하는 듯해요. 물론 화자는 '너'에게 물을 수 없어서 영원히 목에 물음표가 걸고 살겠지만요. 시만 보자면 해결될 수 없는 상황은 아닌 듯해요. 친구를 통해 너의 소식을 듣고 있는데 미련은 남아있지만 직접 만날 용기가 없는 듯해요. 어쩌면 인연이란 건 보내야 할 때 보내고, 잊어야 할 때 잊는 게 아닐까 싶어요. 퇴고를 할 때는 지금보다 더 간결하고 응축된 이미지를 고민해보세요. 구어체로 화자의 감정이나 심정을 풀어놓아서 설명적이고 사족이 많아 보인답니다. 마치 변명을 늘어놓은 편지 같기도 하거든요.     마지막째 주 / 쐐기벌레, <내 이름은 헤이어> : 시는 어떤 이야기를 들려주는 듯하군요. 덕분에 거울 나라의 앨리스를 떠올려봤어요. 앨리스가 거울로 들어간 세계는 보이는 것뿐만 아니라 어떤 현상이

  • 고래바람
  • 2017-11-23
10월 마지막째 주 우수작(25-31)

이번주 우수작을 선정했답니다. 대체로 관념적인 시가 많았습니다. 늘 강조하지만 관념을 어떻게든 구체화하는 게 중요하답니다. 아무래도 학생 신분이다 보니 여행을 다니기가 어렵겠죠. 몸을 움직이면서 시적 대상과 직접 만날 수 있고 관념에서 벗어날 수 있을 듯해요. 집에만 있지 말고 나가서 걸어보세요. 이야기하는 사람들도 보고 나무와 나뭇가지, 이파리를 보세요. 만지면 더 좋습니다. 바람을 온몸으로 느껴보고 손에 닿는 감촉을 느껴보세요. 뭐든 주의 깊게 관찰해보세요. 마음을 보여주는 게 가장 어려운 것이지만 마음에 빗댈 수 있는 대상을 찾는다면 어떻게든 마음이 구체화될 겁니다. 늘 건필하시길. —————————-         고등부         쐐기벌레, <내 이름은 헤이어> : 시는 어떤 이야기를 들려주는 듯하군요. 덕분에 거울 나라의 앨리스를 떠올려봤어요. 앨리스가 거울로 들어간 세계는 보이는 것뿐만 아니라 어떤 현상이 일어나는 순서를 바꾸는 세계죠. 제목이 '내 이름은 헤이어'인데 본문은 '그의 이름은 헤이어'라고 하니까요. 오마주든 팬픽이든 시는 고유의 이미지를 펼쳐놓고 정서를 담아내겠죠. 시적화자의 정서가 수동적인 느낌이 들어 아쉬워요. 보다 능동적인 태도로 전개되면 어떨까 싶어요. 그리고 (거울 나라의 앨리스에서 비롯된) 등장인물이나 서사, 동화적 상상력 등이 매력적일 수 있지만 (이야기에서 영감을 받았다 해도) 새로운 시적 이미지를 재창조 혹은 재구성했다면 더욱 상상력이 증폭될 것 같아요. 시 자체로 감동이 밀려올 수 있는 진솔함도 필요할 듯해요.     핑크징크윙크크림, <화이팅(Whiteing)> : 두 번째로 만난 시에서도 색채가 강렬합니다. 이번 시에는 댓글 조언이 많아서 흐뭇하군요. 제가 길게 말을 하지 않아도 될 듯해요. 하얀, 흰이 압도하는 시인데 '푸르스름한 새벽에 우리는 창문을 넘어 도망쳤다'는 구절이 두 번 나옵니다. 그것은 강조일 테고 시의 중심이 되는 구절이겠죠. 그런데 이 시는 이미지로 의도를 드러내기보다 감추는 느낌이 듭니다. 그것은 사유가 명확하지 않거나 사유를 명확하게 보여주지 못한 게 아닐까 싶어요. '우리는 하얀 병원에서 살았다', '우리는 창문을 넘어 도망쳤다', '하얀 숨들이 안개처럼 숲을 메웠다', '오래전 우리가 질렀던 비명', '우리가 도착한 곳' '여전히 하얀 창문들이 딱 우리만큼의의 숫자로 우리를 내려다보고' 등. 여튼 우리의 정체가 궁금합니다. 시적 흐름을 봤을 때 피상적으론 정신병원을 연상했습니다. 하얀색이 스스로 어떤 의미가 있는지 고민하고 의도를 좀 더 드러낼 수 있도록 퇴고해봤으면 좋겠어요.     달흔, <스무 살의 애> : '사랑은 무엇인가요'라는 질문 자체가 너무 어렵군요. 시적화자가 스무 살에 어떤 선생님에게 묻는 것인지 궁금합니다. 누구에게 물어보냐에 따라 화자의 의도가 나올 듯하거든요. 이를테면 전공 교수나 정신과 의사에게 물

  • 고래바람
  • 2017-11-23

댓글 남기기

로그인후 댓글을 남기실 수있습니다.

여러분의 생각을 남겨 주세요!

댓글남기기 작성 가이드

  • 타인에게 불쾌감을 주는 욕설, 비방 등은 삼가주시기 바랍니다.
  • 주제와 관련 없거나 부적절한 홍보 내용은 삼가주시기 바랍니다.
  • 기타 운영 정책에 어긋나는 내용이 포함될 경우, 사전 고지 없이 노출 제한될 수 있습니다.
0 /150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