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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제 오늘 내일

  • 작성자 김줄
  • 작성일 2020-03-23
  • 조회수 1,401

어제는 소녀를 받았고
오늘은 자유를 받고
내일은 침대를 받을 것이다

어제는 드레스를 입었다
오늘은 브래지어를 하지 않고
내일은 노인을 기다릴 것이다

어제와 오늘은 사이가 좋지 않다 오늘과 내일은 지난 애인 관계다 어제는 늘 젤리를 달고 살았으며 젤리는 젖꼭지와 닮아있다

세 사람 중 과반수는 브래지어를 하기 싫어했다

셋은 시간을 자기 속도에 따라 걷고 있었다
시간은 브래지어를 해서 올라가는 순간이 둘, 내려가는 순간이 둘이다
그래서 인생에 좆같은 순간이 크게 잡으면 넷 이상이다

어제는 브래지어를 하지 않는 오늘을 창녀로 생각했으며
오늘은 브래지어 하는 어제를 바보라 생각한다

오늘은 내일과 함께 브래지어만 하는 삶을 좋아한다
몸이 덜렁거리지만
젖꼭지를 드러내는 것은
복숭아가 잔디 위를 뒹구는 것처럼 자유롭다

어제가 먹은 젤리는 뾰족한
복숭아 향이었다

복숭아가 아니어도 괜찮았지만
소녀가 아니라는 취급에
어제는 인공 복숭아가 되었다

사람들은 복숭아의 골을 좋아하며
그곳에 칼을 꽂아 도려내는 것이 자랑이다
인간을 만들어 내니까

오늘의 젖꼭지를 드러내고 싶은 마음에
시간을 돌아보니
아빠도 노인도 개도 브래지어 없는 시간을 걷고 있다

침대 위에선 개같이 놀면서
브래지어를 우리만 한다는 사실이
복숭아를 멍들게 했다

하지만
괜찮다

복숭아에 칼을 쑤셔 박으면 내일이 멍들겠지만
복숭아의 자유로움과
젖꼭지는 멍청히 가려지지만

괜찮아질 것이다

김줄
김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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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김줄
  • 2020-04-01
지문

손가락 마디를 뻗어요 안에서 구불대는 길이 보이나요 낡아 금이 간 모습이 보이나요 거친 활자 위에 하필 지면이 불안해서 작게 솟아오른 자음들을 어루만지는 손이 떨리는 게 보이나요 생각보다 앞서서 몸 떨며 활자를 적시는 땀샘들이 보이나요 당신은 지문에 사는 아름다운 새끼입니다 멀리서도 보이지 않고 가까이서도 겨우 보여요 수시로 배어드는 비에 청탁하지 않았는데 찾아온 계절에 잡아야 할 활자들을 놓치죠 따라오는 어지럽게 타자기를 맴도는 손과 주저앉아야만 생각 당신은 아프게 아름다우니까요 그렇기에 지문 주위에 반드시 살아야만 하는 거친 활자들입니다 당신의 잃어버린 말과 죽어버린 말 그사이 오늘도 헐떡댑니다

  • 김줄
  • 2020-03-17
기념일

횡단보도를 잘 다듬어 구를 만들었다 아무도 거들떠보지 않는 위에서 혼자 끔벅거릴 신호등 횡단보도를 잘 다듬어 애인과 나눠 가졌다 이런 정성의 세계 내 정성의 바닥엔 엉망진창 내 과거의 발목이 뛰어다니는 횡단보도 쫑알쫑알 전 애인이 아빠로부터 배달되었다 아무래도 아빠의 선홍색 혀로 넥타이를 만들어 줄 걸 그랬다 횡단보도는 내 손목같이 균일해서 위에서 지날 사람의 둥근 머리가 많아서 왜 구로 다듬어야 하는 지는 지난 뾰족한 기념일이 증명할 것이다

  • 김줄
  • 2019-12-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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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권민경

    안녕하세요. 김줄님. 늘 반갑습니다. 재미있는 시네요. ‘어제’, ‘오늘’, ‘내일’은 ‘추상어’이지만 구체적인 이미지들과 함께 사용하면 효과적일 수 있어요. 늘 밀당을 하면서 쓴다고 생각하세요. 이 시는 잘 썼지만, ‘복숭아’가 등장하면서 복잡해지네요. ‘어제는 인공 복숭아가 되었다’라는 말로 너무 쉽게 어제가 복숭아로 치환되었고요. 그 후 오늘과 내일은 그대로 등장하는데 ‘어제’만 ‘복숭아’로 바뀐 것 같아요. 복숭아 이미지는 좋으나 여러 가지 지칭이 나오면 독자들이 혼란을 느낄 수가 있으니 그 점에 대해서 고민해보세요. 또 한 가지, 앞부분에는 이미지와 메시지가 조화로운 편인데 뒷부분에선 김줄님의 목소리가 너무 커져서 메시지만 남는 것 같아요. 그것도 나쁘진 않지만 앞뒤 균형이 깨지지만 않게 조정해보세요. 김줄님의 시는 늘 앞으로 나아가고 있으니 지금처럼 계속 써나가세요. 응원합니다.

    • 2020-04-01 05:02:27
    권민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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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문곰

    줄님!!! 제 시에 댓글 남겨주신거 보고 왔어요 평소에 말 못했는데 줄님 시 엄청 좋아해요 단어 선택이랑 분위기가 너무 좋았고 예전부터 쭉 활동하시던 분이라 정겨워요 ㅠ ♡ 부지런하시고 열정도 크신 거 같아서 본받고 싶고 그러네요 ... 만약 나중에 글쓰기를 계속 하시며 책을 내거나 창작물을 낸다면 줄님 책 살거에요 그때 알려 주세요 ^---^

    • 2020-03-30 15:15:29
    문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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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소낙

    이 시 정말 좋아요ㅠㅠㅠ

    • 2020-03-25 20:21:33
    소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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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김줄

      헉 손악님 어느 부분이 좋았는지 말씀해주실 수있나요?!?! 좋게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

      • 2020-03-29 22:35:16
      김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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